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86
86
[차머스 vs 로한]의 경기가 끝나고.나는 ‘로한’의 무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던 일련의 기억들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무척 역겨웠다.
‘그냥 불구를 만들어버렸어야 했는데…’
*
차머스와 ‘로한’의 사이는 좋게 시작했다.
“뭐든지 시켜. 사고 싶은 거 있음 말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곧잘 불러내서 비싼 음식을 사주었다.
유행하는 옷이나 운동화도 출시되는 즉시 구해주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로한에게 차머스는 분명 최고의 삼촌이었다.
‘나도 차머스처럼 되고 싶다.’
이미 3개 체급을 석권하면서, 최고의 복싱 선수로 이름을 날리던 시기.
그런 대단한 사람이 나처럼 하찮은 아이를 챙겨주니, 존경과 선망의 눈길로 우러러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차머스는 좋은 삼촌처럼 진로에 대한 조언도 해주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너희 엄마 다이애나는 우리 집안에서 가장 축복받은 신체를 타고난 사람 중 한 명이다.”
다이애나 크롬웰.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미국을 대표하는 육상 선수였다.
특히 단거리, 허들 경주, 그리고 멀리 뛰기에서 두각을 드러내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훈련의 강도를 높이며 기량이 계속 좋아지던 시기라, 앞으로의 올림픽에서 메달을 휩쓸 거라며 언론이 호들갑을 떨 정도였다.
‘하지만 그 무렵 할아버지와 틀어지기 시작했고, 이후 아버지를 만나면서 아예 은퇴를 선언하셨어.’
부녀 사이에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할아버지의 광기 어린 가치관과 부딪힌 게 아닐까?
어쨌든 차머스는 어린 로한의 호감을 사면서 살살 꼬드겼다.
“비록 너의 피가 탁해졌어도, 워낙 훌륭한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크롬웰’의 이름에 아깝지 않은 인재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전문 강사들을 데리고 와서 각종 스포츠를 시켜본 것이다.
“역시…!”
실제로 로한은 차머스가 보기에도 재능이 특출났고, 중학생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잘 보이고 싶었어. 차머스에게.’
당연히 스포츠를 잘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가장 큰 동기는 바로 어린 마음에 그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서였다.
로한은 진심으로 차머스를 따랐던 것이다. 그때까진 충분히 그럴 만했고.
다만 그 이후부터 둘의 관계는 끝없이 추락한다.
1~2년 집중적으로 운동을 시키다가 15살이 되자마자 정체모를 연구실에 끌고 가 각종 실험을 받게했다.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하는 절차다. 요즘 같은 하이테크 시대엔 단순 무식하게 훈련만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운동을 하고, 또 어떤 스포츠를 해야 가장 크게 성공할 수 있는지 분석해야 한다.”
가장 먼저 세밀한 신체검사를 하고, 그다음은 각종 운동 능력을 시험했으며, 나중에는 피 검사까지 며칠에 걸쳐 받았다.
“크하하하… 내 눈이 틀리지 않았군.”
차머스는 그 결과에 무척 흡족한 눈치였다.
평소보다 훨씬 잘해주기 시작했다. 그 바쁜 차머스가 자신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대폭 늘었다.
로한은 자신의 우상을 만족시켰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뿌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날을 기점으로 차머스가 변했어.’
의아했다. 지금까지 함께 훈련을 받은 것도 모자라 과학적으로도 피지컬의 우수성을 증명했는데, 차머스는 실험 결과 나온 직후 스포츠에 대한 모든 지원을 끊었다.
“지난 1년 동안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느라 고생했으니, 이젠 좀 즐길 때도 됐지. You only live once!”
차머스는 뜬금없이 중학생의 로한에게 상류층의 파티 문화에 입문시켰다.
VIP만이 들어갈 수 있는 화려한 클럽.
셀렙만이 모이는 프라이빗 파티.
초호화 휴양지에 수많은 여성을 데리고 시도 때도 없이 떠났다.
사람은 정말 적응의 동물이었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다가도 금방 차머스의 라이프스타일에 물들게 되었지.’
뭐라도 된 기분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별 볼 일 없는 중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차머스와 어울려 다니자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이었다.
헛된 성취감. 그것이 로한을 망가뜨렸다.
“남자네, 로한! 그래 놀 때 화끈하게 놀아야 큰 사람이 될 수 있다.”
차머스가 건네주는 술을 마시며 분위기에 취했다.
입문 마약(Gateway drug)이라는 대마초를 시작으로, 더 하드한 마약까지 순식간에 넘어갔다.
뇌를 절이는 듯한 쾌락에 젖어 비참한 현실도 잊었다.
이게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 당시 로한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파편을 들여다보니 차머스는 술만 적정량을 마시지, 마약류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는 권유만 할 뿐,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건 어디까지나 차머스의 측근과 아름다운 여성들이었다.
차머스는 냉정한 눈으로 가만히 로한을 지켜볼 뿐이었다.
‘도대체 왜?’
나는 그런 차머스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린 로한을 치켜세워주고 나서 철저하게 몰락시키는 이유가 뭘까?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건가?
자세한 단서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몇 번이나 다시 ‘체험’을 했다.
정말 더러운 기분이었다.
심상 세계에선 실제로 경험을 하는 느낌이라, ‘로한’이 마약에 빠져 있을 땐 아예 감각을 통째로 차단해야 했다.
‘……?’
다행히 고생한 성과가 있었다.
로한이 만취하고, 마약까지 하게 되면 기억이 온전할 수가 없다.
마치 지옥의 한 장면이 재현되듯 주변의 모든 것이 뒤흔들리고, 사람도 악귀의 형상으로 물들었다.
‘또렷하게 기억하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정보를 취합해 재구성한 기억이구나.’
집중한 끝에 몇몇 장면을 해부해본 결과 나는 수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매번은 아니지만… 로한이 인사불성이 되면 누군가가 그를 이끌고 침실에 눕힐 때가 있다.
한 번은 차머스가 고개를 끄덕여 직접 지시하는 부분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로한을 부축하는 건 항상 한두 명의 여성.
함께 파티를 하던 여성 중 한 명일 때도 있고, 가끔씩은 다른 곳에서 대기하다가 은밀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
그 여성들은 대부분 신체적인 조건이 뛰어났다.
키가 크고, 뼈도 굵고. 남자인 로한을 어렵지 않게 부축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좋았다.
그걸 깨달은 순간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기억의 파편을 샅샅이 뒤져본 끝에 최소 4~5번의 같은 정황을 찾을 수 있었다.
욕지기가 치밀었다.
‘피지컬이 뛰어난 로한을 필요로 한 게 아니다. 피지컬이 뛰어난 로한의… 유전자가 필요했을 뿐이다.’
미국의 명망 있는 스포츠 집안에서 우수한 유전자를 보전 혹은 발전시키기 위해 어느 정도 교배(Breeding)를 한다는 건 공공연연한 사실이었다.
꼭 그런 이유에서는 아니겠지만, 유독 흑인 집안은 할아버지처럼 한 남자가 여러 베이비마마(Babymama: 미혼의 애엄마)를 두기도 했다.
‘그런데…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 않나??’
다행히 ‘로한’도 이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처음 한두 번은 그냥 넘겼지만, 몇 번이 더 반복되니 의심스러웠다.
– 차머스 삼촌. 도대체 이러는 의도가 뭐야?
좀 도발적으로 물었다.
삼촌의 장난이었다, 혹은 조카에게 좋은 경험을 시켜주려고 했다… 그냥 그런 가벼운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에서 장난기가 발동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심기가 뒤틀렸던 차머스의 태도가 180도 돌변했다.
– 더러운 잡종 새끼가 눈치만 존나 빨라 가지고.
그는 벼르고 있었다는 듯이 로한을 죽여버릴 듯이 팼다.
이유도 모르고 맞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정말 고통스러웠지만, 가장 존경했던 사람이 자신에게 이럴 수 있다는 배신감과 충격이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이후 로한은 그 누구도 믿지 못했고… 오로지 마약에 의지한 채 빠르게 망가졌다.
그게 이번 ‘파편’의 끝이었다.
“……”
나는 정말 평화적인 사람인데, 너무 화가 나서 당장 차머스를 찢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그래. 먼저 확인할 게 있었다.
*
그나마 분노를 어느 정도 컨트롤 할 수 있을 때 차머스의 병실을 찾았다.
“……”
초라하게 누워 있는 그의 목을 살짝만 비틀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들었지만, 그럴 가치가 없다고 계속 내 자신에게 되뇌었다.
“다 기억난다고? 열심히 씨 뿌리고 다니던 시절이?”
“오래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묻는 말에나 답해.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됐지?”
“……”
차머스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봤다.
순순히 불지 않을 때를 대비해 나름대로 준비해온 카드가 있었는데, 이미 모든 걸 잃어서 그런지 의외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모두 실패했다. 역시 도태된 아이의 자식답게,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도 여자들에게 손 하나 까딱하지 않더군. 고자 새끼 때문에 돈과 인맥만 낭비했다.”
“……”
어느 정도 짐작은 했다. 파편을 아무리 샅샅이 뒤져도 그 어떤 낌새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의식을 완전히 잃어도 무의식이 기억하는 감정의 변화가 있기 마련인데.
‘그래… 실패했으니까 이후 효용가치를 없다고 느끼고 다리우스를 필두로 로한을 집요하게 괴롭히기 시작한 거야. 재능이 특출난 로한이 진지하게 운동하는 건 꺼림칙했겠지.’
그래도 차머스에게서 확답을 받으니 나도 모르게 안도감이 들었다.
‘아무리 망나니였어도… 엄마와 여동생을 아끼는 마음은 진심이었구나.’
하지만 금방 다시 분노가 치밀었다.
“고리타분한 노인네가 굳이 올드스쿨의 방식을 고집해서 말이야. 생명의 잉태가 가장 원초적인 적자생존의 방식이라나 뭐라나. 그냥 씨만 추출해서 저장했으면 일이 간단할 것을… 윽! 이 새끼가?!”
나는 침대를 툭 쳐서 단단히 고정되어 있던 차머스 몸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전신의 상처가 벌어져 붕대에 피가 물드는 걸 보곤 얼른 병원을 나왔다.
그 더러운 낯짝을 조금만 더 보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장담할 수 없었다.
‘미친놈들이 무슨 경주마 교배하듯…’
며칠 동안 감정을 추스르며 생각을 정리했다.
빙의한 지 고작 1년 반밖에 안 됐지만, 이제 나와 ‘로한’은 별개의 인물이 아니었다.
그의 인생은 나의 전생과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단지 인정받고 싶었을 뿐인데… 어른들의 추악한 욕심에 놀아났던 로한.
나는 꺼지지 않는 분노의 불길을 가슴속 깊은 곳에 숨겼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집안을 무너뜨려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뿌리째 뽑아서 다시는 재기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
“우리 손주가 웬일이냐. 할아버지를 먼저 다 찾아오고.”
나는 환하게 웃으며 으스댔다.
“아직 정산받을 게 남은 것 같아서요.”
“정산? WBC 헤비급 챔피언이 된 일로 말이냐?”
“네. ‘크롬웰 프로모션’을 주셨다고 해도 사실 차머스가 복싱계에 퇴출당하면서 휴지값이 되었잖아요.”
다른 프로젝트가 없는 건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차머스의 경기를 주최하면서 성장한 회사. 그의 명성이 바닥을 치면서 [크롬웰 프로모션]에 대한 신뢰도도 동반 하락했다.
“하지만 네가 물려받음으로써 회사의 가치를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제가 차머스의 자리를 메꾸는 건 의미가 없죠. 그렇게 되면 제가 회사의 덕을 보는 게 아니라, 회사가 제 덕을 보는 거니까요.”
“음… 일리가 있구나. 그런 생각에서 팔아치운 게로군.”
J.P.는 턱을 매만지며 생각을 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따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있어서 나를 찾아온 거겠지?”
“예.”
어쨌든 J.P.는 자손의 성취에 따라 보상해주는 구조로 집안의 경쟁과 발전을 부추겼다.
비록 ‘크롬웰’의 이름을 거부했지만, 현재 가장 주목받는 선수이기에 J.P.는 그 혜택을 나에게까지 허락하셨다.
“편하게 한번 말해보거라. 적당하다 싶으면 바로 증여해주마.”
‘역시. J.P.의 성격상 어지간하면 들어주실 줄 알았다.’
복수를 위한 내 첫 번째 전략은 단순했다.
–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J.P.가 지난 60년 가까이 세워 올린 왕국은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 없다.
아직은 그럴 자본력도, 영향력도 부족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그의 환심을 사면서 최대한 많은 사업체를 증여받고, 집안의 더러운 비밀을 캐내는 것이 목표였다.
“제가 이번에 확장하고 싶은 사업이 있어서요. 할아버지가 도움을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나는 일단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실현 가능성이 있는 요구를 했다.
‘일단 첫 단추를 잘 채우는 게 더 중요하니까.’
*
‘이제야 자리가 좀 잡혔네.’
로한의 아버지, 김진헌은 한숨을 돌리며 자리에 걸터앉았다.
[레드 치킨]이 개업한지 벌써 6개월.이젠 방문 손님은 거의 못 받고, 예약도 2~3일 전에 마감할 정도로 장사가 너무 잘됐다. 개업 초창기보다 튀김기를 비롯한 시설을 늘려 닭 튀기는 양을 두 배로 늘렸는데도 그랬다.
어쨌든 폭발적으로 늘어난 매출 덕분에 [레드 치킨]은 유능한 매니저와 직원들을 뽑을 수 있었고, 이제 시스템을 안정화되어서 김진헌과 다이애나가 굳이 출근하지 않아도 가게가 잘 돌아갔다.
몸이 편해지니 생각이 많아졌다.
“여보. 나… 또 좋은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어.”
다이애나가 기겁을 했다.
“네에?? ‘레드 치킨’ 잘 되고 있잖아요. 뭐가 아쉬워서…”
“에이. 이건 아무래도 로한의 덕을 많이 본 거고… 나도 아빠가 돼서 아들에게 도움만 받을 순 없지.”
“그렇지만… 지금까지 다 실패만 했는데 굳이 사업을…”
지금까지 크게 벌인 사업은 모두 쫄딱 망하고, 빚만 늘었던 기억에 다이애나는 극구 말리고 싶어 했다.
“걱정할 필요 없어. 이번에는 진짜 확실한 아이템이 있으니까…”
김진헌이 의욕을 불태우며 사업 구상을 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시장 조사도 하고, 아이템 개발이 완성되어갈쯤.
시기 적절하게 로한이 찾아왔다.
“아버지! 좋은 소식이 있어요.”
“……”
김진헌은 무척 밝은 아들의 표정을 보며 어째서인지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건??”
그리고 아들이 가져온 사업 내용을 확인하고 김진헌은 얼굴빛이 꺼멓게 죽었고, 다이애나는 급격히 밝아졌다.
미국 피지컬 천재 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