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89
89
「착한 사람」의 촬영은 미국에서 가장 큰 홀리데이인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맞이해 1주일 휴식을 가졌다.
2024년 1월 2일.
제작, 연출, 촬영, 조명, 미술 등 모든 팀들은 새벽 6시에 칼같이 복귀했다.
“……”
“……”
평소 말이 많은 스텝들이 유독 침묵을 지켰다.
서로 눈치를 살피다가, 제작부원이 슬쩍 운을 띄웠다.
“그… 혹시 복싱 좋아하는 사람?”
그 정도면 충분했다.
“다들 봤구나! 일단 모여봐.”
신입들 위주로 머리를 맞대고 원형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작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맞지? 내 눈이 이상한 거 아니지??”
“미친… 자문 위원이 미성년자인 줄 알았던 사람??”
“솔직히 못해도 20대 후반인 줄. 와…”
“액면가도 액면가지만, 도대체 어떤 생활을 해야 그렇게 사람 대하는 게 능숙하고, 능력까지 뛰어난 거지?”
특별자문위원은 「착한 사람」에 합류한 이후 빠르게 적응을 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그의 신상을 캐볼 생각도 못했다.
특히 피셔 감독이 직접 데려온 인물에 대해 감히 이견을 가질 정도로 대담한 스텝도 없었다.
그때만 해도 고교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 로한이 전국구 인지도를 가지고 있던 상태가 아니었고… 암암리에 눈치를 챈 사람들은 피셔 감독과 데이비드 선에서 입단속을 시켰던 것이다.
“와, 근데 복싱을 그렇게 잘 하실 줄이야. 아무리 노쇠한 차머스라지만, 약까지 빤 전설급 복서를 상대로 이기다니.”
“핵주먹이라고 하잖아. 한 방씩 때릴 때마다 경기장이 전체가 울리는 느낌이었어.”
“피셔 형제도 그 경기 직관하러 간거 봄? 카메라가 줌인 할 때마다 바짝 굳은 두 분 표정 볼만하던데…”
스텝들은 [차머스 vs 로한]의 경기를 접하고 처음으로 특별자문위원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상상하지도 못한 나이. 스펙. 무엇보다 전 세계 정상급 복싱 실력은 모두 경악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 중에서 연출부원 한 명이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걸 나머지가 발견했다.
“케빈 너는 자문 위원이 ‘Big for nothing(키만 크고 운동 신경이 부족한)’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어?”
“…내가 언제!”
“나도 들음. 자기 대학 농구선출이라서 그런 거 잘 본다고. 뒤에서만 은근슬쩍 깠잖아.”
“아냐, 운동 하면 잘 할 것 같다는 말을 오해한거겠지.”
“어쭈? 그때 슬쩍 가서 자문 위원한테 쉴 때 농구나 한 판 하자고 그랬다가, 자문 위원이 거절하니까… 보라고… 못하니까 쫀 거 아니냐고 깐족댔잖아.”
“…뭐 농구는 내가 그래도 좀 하니까.”
“미식축구 랭킹 1위던데? 그것도 공수 포지션 다양하게. 원래 스포츠 탑 재능은 다 미식축구 하는 거 아니었어?”
“뭔 소리야. 두 스포츠는 재능 풀이 달라. 농구는 키가 클수록 유리하고, 미식축구는 적당한 키에 딴딴하고 빨라야지.”
케빈이 열심히 변명하지만, 다른 스텝들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자문 위원님은 농구도 잘 하시던데? 소속 리그에서 팀 1위 시키지 않았나?”
“음… 그래봐야 노스캘 리그지. 농구는 사우스캘, 플로리다, 아님 동부 이런 곳이 잘하지. 그리고 고교랑 대학을 비교할 수는 없지.”
“오오, 그렇다는데요? 자문위원님??”
순간 케빈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쩐지 유독 말을 많이 걸더라니…
‘설마?’
아니나 다를까 왼쪽에서 자문 위원이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프리프로덕션 때 스토리보드 작업 후 첫 출근이라, 6개월만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
그 사이 체격은 더욱 좋아지고, 눈빛이 훨씬 훨씬 날카로워졌다.
한 공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힌다.
‘하필이면 복싱 경기를 보고 난 이후라…’
“그, 그게 아니라. 그냥 제가 생각하기에 복싱이랑 미식축구는 아무런 상대가 안 되겠지만, 그나마 농구는 좀… 해볼만 하지… 않을까… 해서…”
다행히 자문 위원은 그냥 웃었다.
“그럼요. 휴식 시간 때마다 가끔씩 스텝분끼리 농구 하시던데, 저도 함 해요. 전 일단 감독님께 인사드리러 가겠습니다.”
“옙! 필요한 게 있으시면 바로 불러주세요!”
다들 긴장을 바짝한 케빈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케빈은 자문 위원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감히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생겼다.
‘이제 자문 위원이 돌아왔으니… 그 배우가 어떻게든 처리가 되려나? 자문 위원 픽이라 결정이 늦어진다고 하던데…’
안 그래도 연출부, 촬영부의 고민이 깊은 나날.
결국 ‘그’ 배우가 나오지 않는 장면을 먼저 땡겨서 일정을 새로 짜게 되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
피셔 감독이 이렇게까지 인내심이 있는 성격이 아니라, 다들 의아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자문 위원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배우를 추천한 거지?? 진짜 그냥 얼굴이 예뻐서?? 하긴 고딩이라면… 한창 혈기왕성할 나이이니.’
*
나는 세트장에 마련되어 있는 이동식 사무실을 찾았다.
연출부가 쓰는 곳으로, 안쪽에 감독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챔피언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데이비드가 넉살 좋게 웃으면서 악수를 청했다.
정작 내가 손을 맞잡자 흠칫 놀랐는데, 내가 너무 힘을 많이 줬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바쁘실텐데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인데요 뭐, 당연히 와야죠. 그리고 이게 어디 그냥 남의 작품인가요. 제가 특별히 애정하는 ‘착한 사람’인데 신경을 많이 써야죠.”
“……”
“……”
‘뭔가 분위기가 좀?’
내가 특별히 신경 쓰고 있다는 말에 정작 둘이 살짝 굳은 눈치였다.
피셔 감독과 데이비드는 서로 어색하게 쳐다보다가, 결국 무언의 지시를 받은 데이비드가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가 좀 고민이 되는 장면들이 있는데 한 번 자문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네! 그럼요.”
피셔 감독은 스토리보드의 완성도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효율적인 일처리를 위해 일단 촬영을 좀 진행해보고 내가 합류하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했다.
현재 프로덕션 3개월 차. 나는 벅찬 마음을 억누르며 화면에 집중했다.
‘내가 쓴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라…’
모든 소설가의 꿈이 아닐까?
수많은 관중 앞에서 스포츠를 할 때와는 다른, 하지만 그만큼 깊은 감동이 느껴진다.
“오? 이건…”
나는 아직 편집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촬영본을 보면서 그 장면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주인공과 아내의 첫 만남.’
주인공은 대외적으로 ‘착한 남자’라는 평을 받지만, 전형적인 겁쟁이에 호구라고 깔보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런데 의외로 그런 성향 때문에 아내를 소개 받을 수 있었다.
[안녕. 세드릭 맞지? 난 제나.]화려한 외모에 당당한 태도. 그 어느 곳에 떨어뜨려놔도 주목을 받는 제나는 항상 ‘나쁜 남자’만 만나왔다.
잘생기고, 능력 있고, 재력도 되는 젊은 남자들.
다 그렇진 않겠지만, 적어도 제나의 경험상 이 네 가지가 충족되면 대부분 나쁜 남자였다.
[나쁜 남자와의 연애는 최고의 경험이야. 즉흥적이고, 화끈하고, 남자답게 리드도 잘해. 근데 결국은 뉴페이스, 그리고 더 어린 여자를 찾아가더라?]제나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20대 초반에는 그런 남자만 찾아다녔는데, 결국 결말은 똑같았다.
바람을 피든, 나에게 싫증을 느껴서 차갑게 대하든. 결국은 마음이 떠나고 나중엔 몸이 떠나더라는.
[그래서 이젠 너무 지쳐서 잠깐 쉬어가고 싶어. 내 친구가 아는 가~장 착한 남자는 너라던데?]실제로는 계속 남자 소개시켜달라는 제나가 귀찮아져서, 한 번 당해보라는 심정으로 연결해준 것이지만… 둘은 의외로 잘 맞았다.
주인공 세드릭은 연애 경험이 현저히 부족했기 때문에, 착할지언정 능숙하진 못했다.
차 문을 열어주고, 첫 데이트 계산은 남자가 하고, 카페를 가거나 나중엔 집에 바래다 준다는 사실도 몰랐다.
[……]다만 함께 보내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농담도 진지하게 고민을 한 후 대답했으며, 시종일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음…”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나서 새삼 감격스러우면서도, 왜 이걸 피셔 형제가 나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는지 정확하기 이해했다.
다른 몇몇 촬영 장면들을 보니 더 확실해졌다.
“저 배우분… 역할에 잘 안 맞는 느낌이네요?”
주인공 역할의 남자 배우는 기대 이상이었다.
과연 현재 헐리우드에서 가장 뜨고 있는 A급 배우.
낯을 가리고, 조금은 소심한 남자를 잘 표현해줘서 고맙기까지 했다.
다만 아내의 역할을 맡은 여성 배우.
“죄송하지만, 다른 배우분을 캐스팅하기에는 늦었겠죠?”
“……!”
데이비드는 물론,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피셔 감독까지 깜짝 놀랬다.
“그렇게 쉬운 일이었습니까?? 저희는 작가님… 아니 자문 위원님께서 특별히 생각이 있으신 줄 알고…”
“네? 아, 혹시 캐스팅에 참여했을 때 제가 추천해서?”
“네. 뭔가 확신이 있으셨던 것 아닙니까?”
그 사이 워낙 많은 일이 있어서 잠깐 까먹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확실히 그녀의 오디션 당시 그런 느낌을 받긴 했다.
“맞아요. 오디션에 준비해온 연기 자체는 아쉬웠지만, 아내 역으로 좋아 보였거든요.”
정확하게는 그녀의 연기는 내 심상 세계를 자극했다.
「착한 사람」 속의 아내가 그녀로 덧씌워져 버린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눈을 감고 「착한 사람」의 이야기를 체험하면… 그 안에 배우인 그녀가 ‘아내’로 살아 숨 쉬고 있다.
다양한 배역을 캐스팅했지만, 그런 경험은 그녀가 처음 선사해주었다.
“아… 그럼 이대로 갈까요? 작가님이 구상하는 이미지에 잘 맞으신다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도 배우분의 연기가 몰입도를 해치는 것 같습니다.”
“……”
피셔 형제는 너무 충격을 받은 얼굴들이었다.
‘역시… 배역을 바꾸는 게 쉽지는 않겠지? 흠, 그렇다면.’
나는 잠깐 고민을 한 후, 두 분에게 제안했다.
“아,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일단 제가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그래도 영 진전이 없으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다른 분으로 캐스팅하는 방향으로 가시죠?”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자문 위원님!!”
“……?”
둘의 반응이 너무 격해서 나도 깜짝 놀랐다.
‘뭐야. 배역을 바꿀 수 있다면… 왜 이렇게까지 고민하신 거지??’
나는 의문을 갖고, 문제의 배우를 만나러 갔다.
*
– 딱 3일. 제가 봤던 이미지가 정말 없는지 확인해볼게요.
피셔 감독은 일단 ‘아내’가 없는 장면을 위주로 진행하고 있었다.
사실 「착한 사람」에서 아내는 조연 정도의 비중을 가졌다.
주인공을 ‘화’나게 하는 건 총 세 줄기의 이야기가 있다.
1. 아내와의 관계.
2. 상사와의 관계.
3. 일상 속 불특정 다수에게 당하는 다양한 부조리.
이 세 가지가 균형을 맞추며 끊임없이 주인공을 시험하고 또 시청자까지 부글부글 끓게 하는 것이 바로 「착한 사람」의 1부다.
아내가 안 나오는 다른 장면들은 워낙 스토리보드가 잘 나와서 촬영이 너무 쉬웠다.
‘거기에 작가님이 캐스팅에 추천해주신 배우들이 다 배역에 완벽히 적응했어.’
로한이 ‘아내’만큼 적극적으로 추천하진 않았으나, 항상 그가 좋다고 표를 던진 배우는 대부분 캐스팅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피셔 감독의 마음에 쏙 드는 연기로 배역에 잘 녹아들었다.
덕분에 재촬영 횟수도 적어지면서 촬영 현장 분위기도 피셔 감독답지 않게 부드러웠다.
“진짜 루나 걔 한 명만 빼면, 이렇게 쉽게 영화 찍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이상적이란 말이야.”
루나 메르세데스.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외모를 지닌 여배우였다.
아역 시절부터 천사, 엘프, 세이렌 등 인간 이상의 뛰어난 외모를 표현해야 할 때 찾는 배우 중 하나였다.
오히려 너무 아름다워서 장면의 몰입도를 해친다는 평을 들을 정도. 일부러 평범하게 보이도록 화장을 하거나 옷을 입는 등… 거짓말 같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외양의 소유자였다.
“진짜 연기만 좀 하면 전설로 남을 배우인데…”
그녀가 배역이 끊길 일은 없겠지만, 한계가 뚜렷했다.
책을 읽듯 딱딱한 말투. 표정 변화도 다채롭지 않아서 맡길 수 있는 역할이 굉장히 한정적었던 것이다.
“아쉽다, 아쉬워. 작가님 추천에 혹해 ‘아내’역은 잘 소화할 수 있나 기대만 품었어.”
데이비드의 말에 피셔 감독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작가님의 안목이 뛰어나서, 오디션 결과는 의아했지만… 다들 믿고 뽑았다.”
“뭐, 한 번쯤 실수하실 수도 있지. 그걸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으시잖아.”
둘은 로한과 약속한 3일동안 일정이 되는 여배우들을 리스트업했다. 오디션을 봤던 사람 중에 유력했던 후보, 그리고 그 외에도 염두에 두었던 사람들을 전부 포함시켰다.
이제 슬슬 컨택을 해보려고 하던 와중.
로한이 루나와 함께 감독실을 찾았다.
그의 표정이 미묘했다.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구분하기 힘든.
“이미 솔직하게 설명했어요. 루나도 잘 이해하는 눈치고.”
“아…”
“마지막으로 연기를 한 번만 보시고, 결정하시는 걸로 하죠.”
“좋습니다.”
데이비드가 익숙하게 대본을 가지고 와서, 루나의 상대역을 읽어주려고 했는데… 이미 로한과 준비를 해온 눈치.
둘은 자연스럽게 연기에 들어갔고.
“……”
“……”
피셔 형제는 자신의 눈과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3일만에?? 일이 이렇게 된다고???’
‘뭐지. 지금 이래버리면 그동안 연기 지도를 하고, 연출을 이끌었던 나는? 내가 무능력했던 건가?’
미국 피지컬 천재 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