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96
96
오랜만에 J.P를 찾았다.
항상 반갑게 나를 맞이하시지만, 평범하지 않은 관계에 이질감을 느끼곤 했다.
혈육 모두를 가족과 직원 사이의 무언가로 생각하는 것을 알게된 이후… 이젠 정말 할아버지라고 인식하는데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서 이젠 그냥 할아버지 대신 J.P로 칭했다.
“……”
우리 둘은 거실에 앉아, 말없이 금문교를 바라봤다.
J.P는 여전히 밝게 웃고 잇었지만… 평소와 다른 침묵. 무게감이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다.
물론 나도 웃으면서 그걸 감내했다.
결국 J.P가 먼저 입을 열었다.
“스탠퍼드 입학 거절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왜 굳이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구나.”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학교이긴 한데, 결국 다른 곳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지원도 안 했고?”
“어차피 가지 않을 학교의 자원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음… 뭐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거지? 내가 맞춰주라고 하마.”
“……”
사실 내 기준에선 스탠퍼드가 최적의 학교였다.
내가 대학을 선택한 기준은 크게 세 가지.
학문적 우수성.
강력한 동문회.
수준 있는 스포츠 리그 소속.
공부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고 싶었다.
[크롬웰] 집안을 무너뜨리는 건 혼자만의 힘으로 어렵기 때문에, 세계에서 활약하는 뛰어난 동문과의 협력이 필수였다.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대학 스포츠 리그를 경험하고 싶었다.
수준이 높지만 실제 프로리그처럼 단순히 비즈니스적이지 않고, 여전히 열정이 살아 있는 무대이기 때문에 꼭 한 번 밟아보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스탠퍼드는 나에게 완벽한 대학.’
세계적인 학문적 우수성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실리콘 밸리를 끼고 있기 때문에 동문회가 지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거기에 스탠퍼드가 소속된 Pac-12 대학 리그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편.
거기에 J.P가 지난 10년 동안 스포츠 프로그램에 1조원에 가까운 거액을 투자한 이후, 스탠퍼드의 농구와 미식축구는 늘 전국 랭킹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
하버드나 듀크를 비롯해 관심이 가는 대학이 많기도 했지만, 이러는 편이 나에게 더 유리하다고 생각해서였다.
“너에겐 하버드보다 스탠퍼드가 훨씬 잘 어울린다.”
애써 냉정하게 말하지만, 흔들리는 J.P의 눈동자를 보면서 확신했다.
‘안달이 났다.’
나는 능청스럽게 연기했다.
“그런가요? 전 항상 세계 1위 대학, 하버드에 가고 싶었습니다. 1위의 중요성은 할아버지가 더 잘 아시잖아요.”
“그건 어디까지나 정통성과 학문적인 부분을 고려해서 그렇지, 스포츠는 아무리 잘 봐줘도 2티어에 준한다. 가장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기를 낭비하게 된다는 말이다.”
J.P의 조급함이 느껴졌다. 점점 말이 길어지는 것이 노골적이었다.
나는 모르는 척 계속해서 하버드를 가고 싶은 이유를 강하게 말했고, J.P는 어떤 지원이든 아끼지 않을 테니 스탠퍼드로 회유했다.
“스포츠의 모든 프로그램이 너에 맞춰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원하는 포지션을 선택할 수 있고, 너를 보완할 수 있는 팀원으로 팀이 구성되겠지. 코치진도 너를 가장 도와줄 수 있는 인물들로 채울 수 있다. 그게 얼마나 큰 특혜인 줄 아느냐.”
그의 말대로였다.
스탠퍼드의 스포츠 부서들은 J.P가 [크롬웰]을 위해 돈으로 재창조한 인큐베이터 프로그램이었다.
크롬웰의 후손이 가장 이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대부분의 선수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감독의 눈에 들려고 꼬리를 착 내려 온갖 아양을 다 떠는 걸 생각해보면, 말 그대로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음, 글쎄요.”
나는 최대한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오히려 어중간한 팀에 들어가서, 최고로 만들어버리는 게 더 재밌던데요?”
J.P가 공들여 키운 [퍼시픽 하이츠] vs 나 하나 입학했다고 달라진 [오클랜드]를 지적하는 말이었다.
“고교와 대학이 같은 수준이라고 보느냐. 고교 스포츠를 하는 0.1%만이 대학 리그를 밟는다. 고교에서야 한 명이 모든 걸 좌지우지할 수 있지만, 대학에서는 자존심을 죽이고 팀으로 임할 때 정상을 밟을 수 있지.”
“전반적으로는 옳으신 말씀이나… 프로를 제패한 전설급 선수들은, 대학에서도 생태계 파괴하는 이레귤러였죠.”
“……”
J.P의 입이 꾹 닫혔다. 그는 나를 탐색하다가, 이내 눈치챈 듯했다.
나는 그가 필요 없고, 그는 내가 절실하다.
그 사실을 우리 둘 다 너무 잘 알고 있다.
“말해보거라. 나에게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지 들어주마. 스탠퍼드에 입학하겠다는 약속만 해준다면.”
그제야 본격적인 협상의 분위기가 잡혔다.
그리고… 나는 J.P에게서 아주 중요한 회사를 더 받아올 수 있었다.
[크롬웰 그룹]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복수의 단초가 될 회사였다.*
2024년 5월 말.
오클랜드 고교 2학기가 끝났다.
3개월이나 되는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때문에, 재학생들은 다시는 안 돌아올 사람처럼 학교 입구에 침을 퉷퉷 뱉고는 박차고 나갔다.
보통은 여행을 가거나, 스펙을 채우기 위해 타주로 이동하는 학생들이 많은 시기.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2학기가 끝난 이틀 후, 5월 24일.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몇몇을 제외하고, 전교생이 다시 학교로 모여들었다. 정확하게는 오클랜드 고교 미식축구 경기장.
“와, 이게 현실이야? 졸업식도 티켓팅을 한다고???”
오늘은 바로 오클랜드 고교의 졸업식.
안 그래도 졸업률이 30% 이하였던 학교인지라, 학교의 규모에 비해 졸업식은 항상 초라했고… 졸업생 자체도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행사였다.
“아니 줄은 또 왜 이렇게 길어?? 누가 보면 드레이크 콘서트인줄??”
그런데 올해의 졸업식은 경찰이 동원되는 등 경비가 삼엄했고, 출입구를 철저하게 통제해 티켓이 있는 이들만 안으로 들이고 있었다.
“진짜 대단하긴 하구나. 오클랜드 고교 최대의 행사가 미식축구 경기도 아니고, 졸업식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이게 모두 한 학생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걸 과연 누가 믿을까.
소설을 이렇게 써도 개연성 없다고 욕먹을 만했다.
“……”
학생들은 심경이 복잡한 얼굴로 차분히 입장을 기다렸다.
“미쳤다.”
그들이 기억하던 경기장의 풍경이 아니었다.
필드 위에는 무대가 세워져 있었고, 사방으로 의자가 빼곡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졸업식 시작 1시간 전임에도 불구하고 관중석 60% 이상 찼다.
학생들은 도저히 적응이 안 된다는 얼굴로 어수선하게 빈자리를 찾았다.
“저걸 보니까 실감이 나네. 적어도 1년은 더 남아 있을 줄 알았더니.”
새로 입장한 이들은 운동장에 그제야 가장 크게 걸려 있는 플래카드를 확인했다.
[Live as a villian, Die as a hero.]‘악당처럼 살고, 영웅으로 죽는다.’
로한에게 저 문구만큼 어울리는 말이 또 없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의 기억에 악당으로 남겠지만… 적어도 우리 오클랜드 고등학교에게 로한은 영웅이다.”
졸업식은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됐다.
행진악단의 공연 후 레이몬 교장의 환영사가 이어졌다.
“…작년에는 이 인원의 10분의 1도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졸업생의 수는 오늘의 절반도 안 됐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다릅니다. 우리는 작년의, 그리고 재작년의 오클랜드 고교가 아니니까요.”
레이몬 교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면에 한 통계가 떠올랐다.
[2022년]– 재학생: 1500명
– 전국 랭킹: 15,163/18,000
– 졸업률 : 28.5%
[2024년]– 재학생: 2230명
– 전국 랭킹: 3,575/18,000
– 졸업률 : 66%
“꼴찌 학교라는 오명은 모두 옛말이 됐습니다. 이제 오클랜드 고교는 인근에서 가장 인정 받는 학교로 발돋움했으며, 수많은 스포츠 유망주가 문을 두드리는 명문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게 모두 한 학생 덕분입니다. 미식축구 경기를 보러 학교 왔더니 1학기가 끝나고… 농구보려고 학교 왔더니 2학기가 끝났다고 하더군요….”
관중들의 웃음이 터졌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어느정도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다시 화면을 통해 일련의 영상들이 재생된다.
– 푸하하하! 미친. 저게 겨우 2년 동안 찍힌 영상이라니.
– 와 망나니 세러머니, 언제 봐도 웃음벨이라니까.
학교 영상부가 녹화한 영상들 위주라, 친숙한 광경이지만 각도도 다르고… 미공개 영상이 많아 관객들이 흥미진진하게 시청했다.
분위기가 잠잠해졌을 때, 그 깐깐하던 외양의 레이몬 교장은 한없이 따스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한 사람의 영향력이 이렇게 대단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항상 명심하세요. ‘나 하나쯤이야,’라며 스스로의 가치를 폄하하게 되는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저 빌런을 떠올리며… 말 그대로 주변을 뒤흔드는 존재가 되십시오.”
짧지만 아주 임팩트 있는 환영사.
교장은 열렬한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퇴장했고, 졸업생 한 명 한 명이 무대 위에 올라와 졸업장을 받아갔다.
– 빌런 ! 빌런 ! 빌런 !
당연히 그 중에서 로한이 무대 위로 올라갔을 때, 경기장이 무너질 듯 관중들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로한은 의외로 담담하게 손만 한 번 흔들어줄 뿐. 특유의 장난기 어린 미소를 보여주진 않았다.
졸업식 마지막 순서는 로한의 졸업 연설.
모두를 대표해 졸업생들에게, 재학생들에게, 그리고 부모에게 지난 감상과 앞으로의 포부를 밝히는 자리였다.
“……”
로한은 가만히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관객들은 실제로 눈이 마주쳤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천천히… 360도를 돌았다.
그리고 나서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전쟁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진정한 영웅들은 잊혀지고, 악당들만이 영웅으로 기록된다. 영웅은 참혹한 전쟁의 현장에서 도망가지 못하고 희생을 당한다면, 악당들은 끝까지 악랄하게 살아남아 역사를 새롭게 쓰기 때문이다.”
시종일관 진지하던 로한은, 그제야 사악하게 웃었다.
“그러니 너희는 영웅이 되어라. 나는 이 시대 최고의 빌런이 될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로한은 위풍당당하게 무대를 내려왔다. 자신의 자리가 아닌… 그대로 경기장 자체를 퇴장하려는 모습.
졸업식 따위는 너무 지루하니 나 먼저 떠나겠다는 의지가 묻어났다.
“와아아아아!”
그때였다.
갑자기 경기장 사방으로 몇백 명이 일제히 뛰어들어왔다.
그 기세가 얼마나 살벌했던지, 학생들이 저절로 길을 터주었다.
“감히!!! 두 발 멀쩡하게 여길 떠날 생각이었어?”
“어림도 없지. 그동안 우리가 갈굼 당한 걸 떠올리면!!!”
“악마도 기겁할 진정한 악마!! 지금이 아니면 복수할 기회도 없다.”
오클랜드 미식축구부와 농구부를 주축으로 한 고등학교의 운동 선수들이었다.
그들은 양손에 크림이 잔뜩 덮어씌운 케잌을 들고 로한을 쫓았다.
눈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일단 잡히면 몸 성히 보낼 생각이 없는 듯했다.
“후후후, 오늘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운동부원들만이 아니었다. 관중석에서 적지 않은 학생들이 합류해 로한 추적에 합류했다.
금세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로한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봤자, 미식축구 경기장 안에 갇힌 생쥐 꼴.
천여 명이 달려드니 곧바로 붙잡혔고, 아예 로한을 통째로 들어서 콘서트장에서 ‘서핑’을 하듯 무대로 다시 올렸다.
의외의 사람이 삼단 케잌을 손에 들고 음흉하게 웃으며 로한을 기다렸다.
“육상 코치님?”
“너 때문에 전 재산을 다 날렸다!”
“…그러게 왜 멀리 뛰기는 다른 선수에게 거셨어요. 끝까지 저만 믿었으면 은퇴하셨을 텐데.”
“시끄럽다! 나만 쏙 빼고 다이애나랑 몰래 훈련한 이유가 다 날 빈털터리를 만들려는 속셈이었겠다!”
“……”
그는 천천히 다가오며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생일 축하한다, 로한.”
그랬다. 오늘은 오클랜드 고교의 졸업식이자, 로한의 18번째 생일인 5월 24일.
육상 코치는 반쯤 악의와 반쯤 선의로 오늘의 이벤트를 준비했던 것이다.
퍽 – !
안타깝게도 재빠른 로한은 몸을 틀어 그것을 피했고, 교장 선생님의 얼굴에 정통으로 꽂혔다.
“이거… 둘이 짜고 나한테 일부러?”
교장 선생님이 분노를 터뜨리며 다가왔지만, 이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실 수밖에 없었다.
육상 코치가 던진 케잌을 시작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무대를 향해 케잌을 던졌던 것이다.
과장을 보태 눈보라나 산사태에 가까운 천재지변.
로한은 그 와중에도 육상 코치를 방패로 삼아 막을 건 막고, 쳐낼 건(?) 쳐내고. 옷에 크림 한 점 안 묻은 채 유유히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반면 육상 코치는….
*
2024년 6월 말.
파리 올림픽을 한 달 앞둔 시점.
미국 육상 국가대표 선발전이 개최되었다.
“……”
로한의 참가로 수많은 언론 매체와 대중이 관심을 가지게 된 국대 선발전.
그 결과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딱 두 사람만 제외하고.
‘드디어!!!’
칼 크롬웰.
‘모든 건 계획대로.’
그리고 로한.
둘은 국대 선발전의 결과에 아주 만족해했다.
미국 피지컬 천재 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