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reaming Tycoon RAW novel - Chapter (97)
꿈꾸는 재벌 97화(97/249)
97. 마음은 마음대로 못 한다
“아니요…….”
“그런데 어떻게 내 이름을…….”
그러니까.
나도 이 여자의 이름을 어떻게 아는 것인지 궁금했다.
“정말 이정은이 맞아요?”
이정은은 황당했다.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내 이름 아는 거죠?”
왜 아는지 모른다.
“그냥 그럴 것 같았어요.”
말도 안 된다.
하지만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혹시… 스토커?”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내저었다.
“스토커라니요. 분당에 온 지 5일밖에 안 됐어요.”
휴가를 받았는데 어디 갈 곳이 없었다.
어머니가 있는 곳에 갔다가는 무슨 일 있느냐고 걱정하실 것 같았다.
그렇다고 회사 근처에 있는 것도 그랬다.
또한, 서울에서는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서울을 벗어나는 것으로 하면서 김성웅 사장이 최대한 빠르게 양재동에 집을 구해 놓기로 했다.
그래서 양재동과 가까운 분당에 오피스텔 하나를 단기로 임대했다.
“그럼 직업이…….”
직업이 뭐?
“무속인이세요?”
요즘 무속인은 처음 보는 사람 이름도 맞추나 싶었다.
“아닙니다. 현재 쉬고 있어요.”
“아. 네. 그럼.”
이정은이 그냥 절뚝거리면서 다시 움직였다.
나는 이정은을 따라가 자전거를 잡았다.
“뭐하는 거예요?”
“돈도 안 받겠다고 하시니… 자전거라도 옮겨 드릴게요. 그 다리로 불편하잖아요.”
이정은은 이선수를 빤히 쳐다봤다.
정확하게는 이선수의 눈이었다.
이선수의 눈에 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순수한 호의라고 생각됐다.
그리고 이정은은 이런 이선수가 솔직히 싫지 않았다.
처음에는 화가 났다. 그런데 지금은 화가 안 난다.
“이놈의 금사빠.”
갑자기 이정은이 중얼거렸다.
작게 말해서 잘 들리지 않았다.
“네?”
“아니에요. 집 앞까지만 자전거 옮겨 주세요.”
“그럴게요.”
이정은이 절뚝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나는 자전거를 끌고 약간 뒤에서 걸었다.
그런데 이정은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가 마음에 걸렸다.
그 안에는 못 쓰게 된 음식 재료가 있었다.
“저녁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내 물음에 이정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라면이나 끓여 먹어야죠.”
“사과의 의미로 저녁을 사 드리면 어떨까요?”
이정은이 멈췄다.
그리고 돌아서서 내게 말했다.
“혹시 나한테 관심 있어요?”
평소 같았다면 무슨 소리냐며 부정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정도는요.”
솔직하게 말해서 이정은은 예쁜 편이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이정은의 이름을 아는지도 궁금했다.
그녀를 조금 더 알게 되면 이름을 아는 이유도 알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좋아요. 3만 원 한도 안에서 저녁 사요.”
이렇게 쉽게?
“제가 분당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어느 식당이 맛있는지 잘 모릅니다.”
“이 근처에서는 순댓국이 가장 맛있어요. 따라와요.”
“더 비싼 것을 사도 되는데요.”
“백수라면서요. 아! 돈 많은 백수인가?”
이선수가 쉬고 있다는 말을 해서 백수인 줄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1백만 원짜리 수표를 꺼낸 것을 보고 돈이 많아고 생각했다.
“그냥 잠깐 쉬는 겁니다.”
“괜찮아요. 돈 많은 백수가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잖아요.”
어째 말리는 것 같은데.
“가요. 실망 안 할 거예요.”
다리가 조금 괜찮아졌나?
절뚝거리는 것이 나아졌다.
나는 이정은을 따라갔다.
* * *
이정은이 말한 대로 순댓국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국물이 진하고 건더기도 넘치도록 많았다.
어떤 곳은 그냥 멀건 국물에 고기는 조금인데다가 순대도 2개밖에 안 들어 있는데.
그리고 서비스로 순대와 간을 따로 줬다.
“어때요? 괜찮죠?”
“괜찮네요.”
“순댓국에는…….”
이정은이 손을 들었다.
“이모 여기 두꺼비 하나요.”
“다쳤는데 술을 마셔도 돼요?”
“살짝 삔 건데요. 그리고 알콜로 소독하면 금방 나아요.”
“설마 소주를 삔 곳에…….”
내 말에 이정은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귀한 소주를 발에 왜 부어요.”
“소독한다고…….”
“말이 그렇다는 거죠. 소주를 마시면 그 알콜이 발까지 가니까 내부에서 소독하는 거죠.”
말이나 못 하면.
“술 좋아하시나 봐요.”
“그냥 가끔 마셔요. 오늘 같은 날이면 더 마시고 싶죠. 되는 일이 없는 날이니까요.”
무언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소주가 오고 이정은은 술잔에 소주를 따랐다.
“알아서 마시세요. 이건 내 것이니까요.”
귀엽네.
나는 화들짝 놀랐다.
처음 보는 여자를 귀엽다고 느끼다니.
“내일 출근 안 해요?”
“안 하고 싶지만… 해야죠. 하기 싫다고 안 하면 어떻게 먹고 살아요.”
술잔을 비우고 또 따른다.
그리고 순댓국물을 떠서 마시고.
“캬아. 안 먹어요?”
“먹습니다.”
일단 속부터 채울 생각이었다.
* * *
“어쨌든 잘 먹었어요.”
소주를 2병 반이나 먹고도 멀쩡했다.
순댓국을 먹으면서 그녀에 관해 더 알아낸 것은 없었다.
대답을 회피하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다.
“이것 봐요. 술로 소독하니까 멀쩡해졌죠.”
이정은은 땅을 다친 다리로 팡팡 내리쳤다.
술 기운 때문에 잠시 아픈 것을 모르는 것 같은데.
“여기서 헤어지죠. 집 앞까지 오는 것은 좀 그렇네요. 이선수 오빠.”
나도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것은 부담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나아진 것이 있다면 정식으로 통성명하고 나이까지 알게 된 것이다.
그녀의 나이는 27살.
4살 차이다.
자전거를 받은 그녀는 손을 흔들며 집 방향으로 걸어갔다.
나도 이제 오피스텔로 가려 하는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수 오빠! 나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백수는 싫어요.”
고백이냐?
그런 말이 나올 뻔했다.
그리고 멀쩡해 보여도 소주 2병 반을 마신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생각은 없었다.
이정은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며 갔다.
더 많은 것이 궁금하지만.
여기까지만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회장님.”
임강민 대표의 목소리였다.
“근접 경호는 안 하기로 했잖아요.”
“그게 아니라. 알아볼까요?”
“누구를요?”
“이정은 씨요.”
“왜요?”
“…….”
임강민 대표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도 순댓국집에 들어가서 이선수와 이정은 근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선수의 표정을 봤다.
즐거워 보였다.
일하는 즐거움이 아니라 그냥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아니시라면… 알겠습니다.”
이선수가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이정은에 관해 알아보지 않을 생각이었다.
* * *
“하하.”
그냥 웃음이 나온다.
이정은과 만난 지 7일째.
매일 그녀와 부딪쳤던 공원 의자에 앉아 있다가 순댓국을 먹으러 갔다.
갑자기 이런 내가 어이가 없었다.
쉽게 말해 현타가 왔다.
어떻게 해서든 한번 만났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탁.
숟가락을 테이블에 내려놨다.
순댓국을 다 먹었으니 이제 가야지.
“조금 일찍 휴가를 끝내야겠네.”
희망도 없는 일에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기는 싫었다.
이 정도 쉬었으면 많이 쉰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일에 집중하면 그녀에 관한 생각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르륵.
순댓국집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쳐다봤다.
습관처럼 그녀가 들어오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항상 그 기대는 허물없이 무너져 버렸는데…….
“이모! 소주 한 병하고 순댓국 하나… 어?”
나와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선수 오빠다!”
헤벌쭉 웃는 것이 이미 술 좀 마신 것 같았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내가 앉은 자리에 와서 앉았다.
“와! 다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술 마셨어요?”
“네. 마셨어요. 더럽고 치사해서 마셨어요.”
“뭐가 더럽고 치사했는데요?”
“몰라요. 그것보다 선수 오빠 보니까 기분 좋네요.”
나도 좋네.
“혹시 세런디피티란 말 알아요?”
“우연히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을 하는 의미라고 알고 있어요.”
“맞아요. 하지만 그것보다 난 지금이 세런디피티 같아요. 그날도… 오늘도 우연히 만났는데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것…….”
또 고백이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어요. 왜냐!”
얼마나 마신 거야.
“삶이 빡빡하거든요. 나는 오빠가 돈이 없어도 상관없어요. 왜냐!”
많이 마셨네.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면 되니까요. 그러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면 되니까요.”
울겠네.
“그 믿음이 서로를 지탱해 주며 살아갈 수 있게 해 준다고 믿거든요. 하지만 돈 많은 백수는 안 돼요. 그 돈 떨어지면 어떻게 살 건데요.”
저기요.
제가 돈이 좀 많은데요.
한 달에 1억 원씩 써도 100년은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닌가?
1년 12억에 10년이면 120억… 100년이면 1,200억.
1,000년도 더 쓸 수 있겠네.
“그래서 안 돼요.”
“왜 안 된다고 생각하죠?”
“안 되니까요. 오빠 정말 성실하게 열심히 살 수 있어요? 남들처럼 직장 다니면서?”
옆에서 입을 틀어막고 웃음을 참는 임강민 대표가 보였다.
임강민 대표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겠지.
“그럼 보여 줘요.”
“뭐를요?”
“성실하게 열심히 사는 모습이요.”
“어떻게 보여 주면 될까요?”
드림 그룹 본사로 초대하면 되려나?
성실하게 열심히 사는 것은 맞다.
그리고 내 직장인 것도 맞다.
“내일 여기로 와요.”
이정은이 명함을 하나 꺼냈다.
명함을 받아 보니.
[이정은 주임.]㈜영웅 시스템. (드림 텔레콤)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이동통신 가입 및 번호이동.
H.P: 011-795-9988
이정은이 어디서 어떤 일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드림 텔레콤 법인 대리점이다.
지나가다가 보이는 이동통신 대리점이 다 직영은 아니다.
본사와 계약하고 영업을 대신하는 법인 대리점이 훨씬 많았다.
본사와 계약한 법인 대리점은 가입 유치한 고객 회선에 따라서 일정 %의 수수료를 받는다.
그리고 그 법인 대리점과 계약한 판매 대리점도 있다.
판매 대리점은 모든 이동통신사를 취급한다.
대신 회선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일회성 수수료만 받는다.
“이모! 소주 안 줘요?”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오빠 만났는데 그냥 갈 수는 없죠. 마셔요. 마셔!”
솔직히 그냥 가기 싫었다.
* * *
“미쳤어. 내가 진짜 미쳤지.”
이정은은 어제 이선수에게 왜 명함을 줬나 싶었다.
그리고 헛소리도 많이 했다.
돈 많은 백수가 싫다니.
어떻게 보면 자격지심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자신의 삶이 싫어서 그런 말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도.
“이 주임.”
“네. 대리님.”
“면접 보러 온다는 직원 없어?”
“아직 없네요.”
쉽게 오겠냐?
핸드폰 판매라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반쯤은 사기꾼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이선수에게 오라고 했다. 명함까지 주면서.
다행인 것은 전화가 안 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서운했다.
“칫. 전화 번호 알았으면 한번쯤 할 수도 있지 않나?”
딸랑.
매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어서 오세요.”
이정은은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쳐다봤다.
하지만 곧 그 미소는 사라졌다.
안경을 쓰고 눈을 가리려는 듯 머리카락을 내렸지만.
이정은은 누구인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여기 왜 왔어요!”
이정은은 다급하게 이선수에게 다가가 조용하게 말했다.
“오라면서요.”
“진짜 와요?”
“이 주임 누군데?”
“아! 그냥…….”
나는 이정은을 두고 물어본 사람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여기 일해 보려고 왔습니다.”
“그래?”
너무 반겨 주는데?
“이력서는 가져왔어?”
“아니요.”
“일하러 온 사람이 이력서도 없이 와?”
“이정은 주임님이 일하고 싶으면 오라고 해서요.”
이정은은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멈췄다.
술김이지만, 이선수에게 명함까지 주면서 오라고 한 것은 사실이니까.
“이 주임 추천이야? 그럼 면접은 봐 봐야지. 이쪽으로 와.”
나는 그를 향해 갔다.
“이름.”
“이선수입니다.”
“이 주임하고 같은 성이네. 사촌인가?”
이정은은 그렇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이선수가 빨랐다.
“아닙니다.”
“그래? 나이는?”
“31살입니다.”
남자는 눈을 크게 뜨더니 나를 빤히 쳐다봤다.
“왜 그러시죠?”
“크흠. 나이가 있으시네요. 20대인 줄 알아서.”
“괜찮습니다. 나이가 무슨 상관입니까. 일하러 온 곳에서 나이보다 능력이 더 중요하죠.”
“그렇죠? 한민수 대리야.”
바로 말을 놓네.
“과장님하고 다른 직원은 지사에 가서 조금 있다가 올 거야.”
“마치 면접 합격한 것처럼 말하시는 것 같네요.”
“당연히 합격이지. 이정은 주임 추천인데.”
사실 누구 추천이건 상관없었다.
“그래도 회사 내규는 지켜야 해.”
“내규요?”
“어. 일단 일주일 일해 보고 이선수 씨가 제대로 일한다 싶으면 정식 채용될 거야.”
무언가 이상했다.
“일주일 일해 본다는 것은?”
“음. 그러니까… 회사도 이선수 씨가 제대로 일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하지 않겠어? 제대로 일도 못 하는데 돈을 주고 쓸 수는 없잖아.”
맞는 말인 것 같기는 했다.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되나요?”
“에이. 아니지. 3일 동안은 매장에서 다른 직원이 일하는 것을 보면서 일 머리를 익혀. 그리고 남은 4일 동안 가입자를 3명 이상만 만들면 돼.”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4일 동안 가입자를 3명 이상 만드는 것이 쉽나요?”
“쉬울 리가 있겠어? 하지만 나나 다른 직원이 매장 손님을 한 명쯤 선수 씨에게 밀어 줄 거야. 그건 나중에 갚으면 돼.”
“남은 2명만 가입시키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선수 씨. 그렇게 생각하면 될 일도 안 돼. 2명 가입시키는 것이 왜 안 돼? 친구나 가족도 없어?”
감이 왔다.
“저도 그렇고 친구나 가족 모두가 드림 텔레콤 사용하는데요?”
한민수 대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방법이 다 있어. 방법도 없으면서 이런 말을 할까.”
어째 느낌이 이정은 덕분에 드림 텔레콤 언더커버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