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reaming Tycoon RAW novel - Chapter (99)
꿈꾸는 재벌 99화(99/249)
99.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섣부르게 감사를 시작하면 꼬리만 자르고 넘어갈 것 같기도 했다.
“정은 주임님. 우리 대리점만 정책을 좋게 줄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내 말에 이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분당 안의 대형 대리점이 다 같이 모여서 실적을 조율해요.”
“대형 대리점이 다 모여서?”
“나중에는 이선수 대리님도 과장님하고 같이 가게 될 거예요.”
“어디를요?”
“대리점 모임에요.”
“모여서 실적 조율하는 건가요?”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드림 텔레콤 지사 담당자의 실적을 몰아주는 것이다.
적절하게 가입자를 조절하면서.
이게 어떻게 가능하느냐.
93일 정책 때문이다.
목표 가입자라는 것이 있다.
이번 달 100명을 가입시키면 인센티브가 회선당 1만 원씩 나간다.
200명이면 2만 원씩.
이런 식으로 일정 목표를 달성하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인센티브도 가입자가 93일 이전에 해지하면 회수가 된다.
93일만 넘기면 인센티브를 회수당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네. 잘 아시네요.”
“담합이잖아요.”
“담합이죠. 분당의 대형 법인 대리점이 다 같이 조율하니까요.”
실적 많이 올리라고 만든 정책을 편법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마케팅 비용으로 책정한 돈이 줄줄 샌다.
여기만 이럴까.
그리고 이상한 목록도 있었다.
“번호이동 관리 대상자는 뭔가요?”
“말 그대로 번호이동 관리 대상자죠.”
이정은이 파일을 열었다.
그 안에 드림 텔레콤 가입자가 언제 엘진 이동통신으로 이동했는지 날짜가 있었다.
거기에 가입자의 정보까지.
엘진 이동통신이 드림 텔레콤의 기지국을 임대하니 통화 품질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완전 산속만 아니면.
이제는 삼선 이동통신도 곧 드림 텔레콤 기지국을 임대하게 됐으니.
“하아.”
“왜 그러세요?”
“아니요.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요.”
짜증이 확 나는 것이 있다.
원래대로라면 가입자의 개인정보는 이렇게 파일로 수집하면 안 된다.
무조건 폐기다.
이런 파일이 유출되면서 수없이 많은 텔레마케팅 전화를 받게 된다.
확실하게 뜯어고칠 것이 하나 더 늘어났다.
“그런데 엘진 이동통신 약정 기간은 어떻게 알아요?”
이정은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대리점끼리 모여서 실적 조율한다고 했잖아요.”
나는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리점끼리 모이는데 왜 엘진…….”
나를 빤히 쳐다보는 이정은을 보며 이해할 수 있었다.
“설마… 다른 통신사 법인 대리점도?”
“네. 엘진 이동통신은 실적 인센티브 없겠어요?”
당연히 있겠지.
서로 가입자 뺏어오기인데.
“삼선 이동통신도 있겠네요.”
“네. 있어요. 이건 다른 파일에…….”
이정은이 삼선 이동통신 관련 파일을 열었다.
엘진 이동통신보다는 가입자 수가 적었다.
나는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이정은이 술을 마신 날.
“정은 주임님.”
“네. 대리님.”
“혹시 이런 것 때문에 일하는 것이 힘들어요?”
이정은의 눈이 흔들렸다.
하지만 대답은 다르게 나왔다.
“아니요.”
목소리도 조금 떨렸다.
힘들다는 이야기인데.
“오늘 저녁에 삼겹살에 소주 어때요?”
“싫어요.”
단칼에 거절이라니.
“삼겹살 싫어하면 한우에 소주?”
“내가 지금 삼겹살이 싫어서 싫다고 하겠어요?”
갑자기 처음 본 날 이정은의 모습이 나온다.
매력있는.
“그럼 왜요?”
“왜긴요. 대리님하고 안 먹고 싶어서죠.”
“왜 안 먹고 싶어요?”
“하아. 집요하네요.”
“당연히 집요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왜 집요할 수밖에 없죠?”
“예쁘니까?”
이것도 사실이지만,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너무 위에만 있다 보니 실질적으로 아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다.
그런데 이정은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보였다.
“장난치지 마세요.”
“장난 아닌데요. 한민수 대리도 이 주임님 힐끗 쳐다보잖아요. 그래서 신 주임하고 매번 싸우고.”
이정은이 눈을 크게 떴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한민수 대리하고 신지예 주임이 사귀는 거요?”
“네.”
“그냥 보이던데요?”
이정은은 이선수가 회사에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 두 사람의 관계를 파악했다는 것에 놀랐다.
그냥 인사만 하고 다닌 것처럼 보였는데.
“뭐 먹을래요? 요즘 와인 삼겹살집이 새로 생겼던데요.”
와인에 삼겹살을 담가 숙성시킨 것이다.
육질을 연하게 만드는데다가 와인 때문인지 고기 냄새가 없었다.
“삼겹살에 와인을 마셔요? 소주가 아니라?”
풋.
“왜 웃어요?”
“와인 파는지 모르겠네. 오늘 저녁 퇴근 후 콜?”
이정은은 이선수가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알았어요.”
“그럼 이 자료들은 제가 정리하죠.”
아직 컴퓨터로 작업하는 것보다 종이로 수작업하는 일이 더 많았다.
이것을 다시 파일로 저장해야 했다.
생각보다 지루한 일이다. 반복해서 서류의 자료를 옮기는 단순한 일이니까.
* * *
“아! 와인 삼겹살이라는 것이…….”
이정은은 이제야 와인 삼겹살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알았다.
“와인도 파네요.”
나도 와인 삼겹살집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와인까지 파는 줄은 몰랐다.
초벌구이된 삼겹살이 꼬챙이에 꿰여 나온다.
그리고 불판 한쪽에서 회전하며 익는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직원이 와서 와인 삼겹살을 꺼내 먹기 좋게 잘라준다.
“이정은 씨 밥은요?”
“삼겹살에 소주… 아니, 와인 마셔야죠.”
술을 생각보다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이정은 씨라고 불러요?”
“회사 밖에 나와서까지 그렇게 부르기는 싫은데요?”
이정은은 이선수가 너무 직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싫지는 않았다.
이정은은 와인 삼겹살이 생각보다 맛있다고 생각하며 계속 먹었다.
그리고 잔으로 파는 와인도 생각보다 삼겹살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아무리 낮은 도수의 와인이라도 많이 마시면 취하는 것은 변함없었다.
“왜 열심히 노력하고 아이디어 만들어서 경쟁할 생각을 안 하느냐고요.”
술이 들어가니 이정은의 마음도 약간은 틈이 생겼다.
그리고 이선수 앞에 있으니 더 틈이 벌어졌다.
희한하게 이선수와 같이 있으면 안심이 된다.
편한 것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무거운 어깨를 기대도 될 것 같은 그런.
“그래서 힘들었어요?”
“네. 힘들었어요. 솔직하게 말해서 담합하면 누구 좋은 거예요? 담합하는 회사만 좋잖아요. 소비자도 손해… 원청 회사도 손해…….”
“맞아요. 열심히 해서 가입자 늘리고 소비자에게 줄 수 있는 혜택도 자신들이 가로채고요.”
“그러니까요. 제가 일한 지 얼마 안 돼서 이거 불법 아니냐고 말했더니… 뭐라고 한지 알아요?”
“뭐라고 했는데요?”
“신고하래요. 신고해서 조사해도 벌금 맞으면 끝이라고…….”
나는 이정은이 회사에서 왜 다른 모습으로 일하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란 생각이 들어서겠지.
바뀌지 않으니까.
“정은 씨 성격에 벌써 회사 그만뒀을 것 같은데요. 왜 그만 안 뒀어요?”
“그걸 몰라서 물어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래요.”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인데.
“아무런 사회 경험도 없이 공부만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버지 회사가 망한 거예요.”
한숨을 쉰 이정은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Мне так тяжело!(너무 힘들어!)”
러시아어다.
“러시아어도 할 줄 알아요?”
“그것만 할 줄 알까요? 영어는 기본에… 프랑스어도 합답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웃는다.
또 귀엽네.
이런 애교까지 볼 줄은 몰랐다.
“Je t’aime.(쥬 뎀므.)”
아무리 프랑스어를 모른다고 하지만. 이것은 안다.
내가 다 당황스러웠다.
사랑한다니.
“I love everything about this world. I love all that this world has to offer.”
착각이었네.
길게 한 영어다. 하지만 간단하게 말해서 ‘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능력 있는 여자네요.”
“능력 있는 여자요? 그래서 이렇게 사는 건가요?”
나는 그녀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꽤 잘 살았었던 것 같았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집안이 망한 것이다.
공부 말고는 다른 걱정 안 하고 살았던 그녀가 어떻게든 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래서 미안해요.”
“뭐가요?”
“내 주제도 모르고 대리님에게 일해야 한다고 말했던 거요. 그리고 이런 회사에 오게 한 것도…….”
“난 그래서 좋았어요.”
“좋았어요? 왜요? 이해가 안 되네.”
“그렇게 말해 준 사람이 정은 씨뿐이었으니까요.”
누가 감히 내게 어느 회사에 가서 일하라고 말할까.
담합에 관해 더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만 마셔요. 집에 데려다 줄게요.”
“싫어요!”
“또 왜요.”
“나… 대리님에게 좋은 모습만…….”
얼레.
와인 맛있다고 엄청 마시더니만.
저알콜 술이 한순간에 훅 가는 경우가 있다.
이정은이 머리를 테이블에 떨어뜨리려 했다.
다급하게 일어나 그녀의 머리를 손으로 받았다.
그때 주변에 있던 남녀 커플이 일어났다.
다른 테이블의 여자 두 명도.
그들이 다가왔다.
“팔에 화상 입으십니다.”
여자 경호원들이 이정은을 잡았다.
그렇지 않아도 테이블을 가로질러 그녀의 머리를 받치느라 뜨거웠다.
아직 불을 빼지 않아서였다.
솔직히 문제는 다른 것에 있었다.
“어떻게 하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이정은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임 대표님.”
“네.”
임강민 대표가 다가왔다.
“분당 경찰서에 아시는 분 있나요?”
“으음.”
잠깐 생각하던 임강민 대표는 말했다.
“전 서장이 아직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없어도 전 서장 통하면 됩니다.”
호텔이나 모텔 같은 곳에 데려가기는…….
가장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 * *
“으음. 물…….”
곧 누군가 물을 가져왔다.
“여기요.”
누구지?
이정은은 혼자 원룸에 살았다.
누가 물을 가져다 줄 일이 없었다.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제복을 입은 여자.
“누구세요?”
“경찰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제가 왜… 그리고…….”
간이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젯밤 남자분이 안전한 곳이 필요하시다고 해서 경찰서 숙직실에서 주무시게 했습니다.”
“왜요?”
“집을 모르신다고 하시던데요?”
이정은은 순간 화가 났다.
하지만 왜 화가 나는지 몰랐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바보.”
“네?”
“아닙니다. 그래서 그 남자는요?”
“가셨죠.”
정말 당황스러웠다.
경찰서에 버리고 가다니.
“불편을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이정은은 일어나서 옷을 여미고 짐을 챙겼다.
가방도 그대로 있었다.
“괜찮습니다. 국민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
조금은 다른 일이긴 했다.
경찰서장 지시로 여자 숙직실을 비웠다.
그리고 교대로 여자 숙직실 안에 들어가 이정은을 지켰다.
그렇다면 원래 여자 숙직실에 자야 했던 경찰은 어떻게 됐느냐.
근처 호텔로 가서 잤다.
비용은 누군가 다 냈다고 하면서.
“감사합니다.”
이정은은 여자 경찰에게 인사하고 숙직실을 나갔다.
그리고 경찰서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괜히 죄지은 사람 같잖아.”
투덜대면서 경찰서 정문을 나서는 순간.
“정은 씨.”
“깜짝이야.”
놀란 것도 있지만, 이선수가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정은은 이선수의 옷이 어제와 똑같은 것을 알았다.
“혹시 밤새 기다린 거예요?”
“네.”
“왜요?”
“아침 해장하려고요.”
“바보예요?”
“네?”
“아침 해장하려고 여기서 밤새 기다려요? 어디 가서 자다가 일찍 오면 되지.”
“그럴 수가 없더라고요.”
“그럼 그냥 호텔… 아니…….”
이정은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자신의 입에서 호텔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호텔이나 모텔은 아침에 정은 씨가 일어났을 때 너무 당황할 것 같아서요.”
경찰서에서 일어난 것만큼 당황스럽겠냐!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가장 안전하고 정은 씨가 일어났을 때 안심되는 곳이 필요했어요.”
생각해 보니 말이 되긴 했다.
하지만 왜 짜증이 날까.
“됐어요. 잘 가세요.”
“해장해야죠.”
“옷 갈아입고 출근해야죠.”
“6시인데요?”
“여자는 시간이 걸려요!”
이정은은 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잡더니 타고 가 버렸다.
* * *
경찰서 사건이 있은 후 이정은은 내게 ‘나 화 많이 났어요.’란 것을 감추지 않았다.
지금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그냥 뒀다.
시간이 지나 화가 좀 풀리면 다시 대화해야 할 것 같았다.
아! 어렵다.
“이선수 대리!”
“네. 과장님.”
“오늘은 나하고 같이 나가자.”
“어딜요?”
“중요한 자리에.”
김두일 과장이 씨익 웃었다.
드디어 법인 대리점 담합 회의에 가는구나.
“이선수 대리에게 슬슬 내 일 좀 넘겨도 되겠어.”
김두일 과장은 이선수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업무 파악도 빠르면서 일처리도 확실했다.
이선수 덕분에 회사 체계가 잡혀 가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야근을 거의 매일 했다면, 최근에는 야근을 거의 하지 않았다.
“벌써요? 과장님 따라가려면 아직 부족합니다.”
일부러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김두일 과장은 이런 칭찬을 너무 좋아했다.
“하하. 그렇지? 그래서 조금 넘긴다는 거야.”
조금 넘기기는.
그렇게 말하면서 실제로는 다 넘긴다.
“가자고.”
나는 김두일 과장을 따라 나섰다.
그때 이정은과 눈이 마주쳤다.
요즘 화난 눈빛이 아니었다. 미안하다는 느낌의 눈빛이었다.
“화 풀린 거죠? 갔다 와서 커피 한잔해요.”
이선수가 웃으며 나가자 이정은은 어이가 없었다.
“눈치는 진짜 빨라요. 하아.”
자꾸만 이선수에게 끌려다니는 것 같았다.
* * *
김두일 과장과 간 곳은 다른 법인 대리점인 (주) 영통이었다.
3층짜리 건물 하나를 통째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곳에 들어가 회의실에 자리 잡았다.
김두일 과장은 다른 법인 대리점 실무자인 과장과 부장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자신의 뒤를 이을 인재라면서.
그리고 오늘은 드림 텔레콤 법인 대리점만 모인다고 했다.
특별 정책이 나온다나?
분당에만 크고 작은 법인 대리점이 12개나 있었다.
그런데 다 모였는데도 회의를 시작하지 않았다.
“과장님 회의 안 해요?”
“중요한 사람이 안 왔잖아.”
“누구요?”
“누구겠어. 우리에게 하늘 같은 본사…….”
회의실 문이 열리고 남자가 들어왔다.
“오셨네.”
응?
미치겠네.
“김동조 과장님이셔. 우리 MD.”
제부가 여기서 왜 나와.
그러니까 미애 이모 딸이자 사촌 동생 지수의 남편이다.
지사 프로젝트 팀장에서 잘리더니 영업 관리쪽으로 왔나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