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
1화 프롤로그
“아… 개 같은 거.”
패배!
붉은색에 쓸데없이 느낌표까지 붙어 더 짜증 나는 느낌을 주는 글자가 모니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정현은 짜증스럽게 키보드를 몇 차례 두들겨 초기 화면으로 돌아갔다.
그때, 모니터 아래의 작업 표시줄의 프로그램 하나가 금빛으로 반짝였다.
10초도 안 되는 짧은 동영상 파일. 자신의 게임을 온라인 채팅 프로그램으로 보고 있었던 친구가 보낸 것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또 졌어?! 이젠 아예 전멸을 했다고!!
아, 개새….
정현은 쌍소리가 튀어나오는 것을 참으며 알트와 탭을 눌러 화면을 전환했다.
에라 오브 엠파이어.
방금 동영상을 보낸 친구 놈과 내기를 한 게임.
내기의 조건은 단순했다.
인터넷에서 공략을 찾아보지 말고 3일 안에 시나리오의 최고 난도를 클리어할 것.
그리고 어떻게 깼는지 알 수 있도록 채팅 프로그램으로 중계를 하고 있을 것.
“아, 씨 어떻게 해야 하지?”
정현은 컴퓨터에 저장된 리플레이 영상을 재생했다.
어느 장르의 게임이든 리플레이를 보고 분석하다 보면 실력이 늘기 마련이었으니까.
“음….”
약 50분간 이어진 게임. 자신의 플레이를 분석하던 정현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게임 내내, 자신은 잃기만 했지 얻은 게 없었다.
“막는 데 너무 심혈을 기울였나….”
에라 오브 엠파이어는 여느 RTS 게임이 그렇듯, 기본적인 게임 형태는 메인 건물과 소수의 일꾼 그리고 소량의 자원만 주고 시작한다.
하지만 PVE 컨텐츠인 ‘시나리오’는 달랐다. 여기서는 처음부터 거대한 제국을 주고 시작했다.
외세의 침공, 돌림병과 가뭄으로 들고일어난 백성들의 반란을 막고 망해 가는 제국을 바로 세우는 것.
그게 이 시나리오의 마지막 미션이었다. 클리어하면, 내기에서 승리하는.
“다 지키려고 하지 말고 생각을 다시 해 보자.”
과유불급.
공자님도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는가. 지나친 건 못 미침과 다를 게 없다고.
넓은 제국을 다 지키는 게 아니라 버릴 건 버리고 지킬 것만 지키면 된다.
전공으로 배운 동양 철학을 게임에 써먹고 있다니… 정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나 곧, 어차피 사회에 나가도 써먹을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시나리오 시작 버튼을 누르자 트레일러가 재생되었다.
원래는 트레일러를 스킵하고 바로 게임을 시작하는 정현이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이번엔 트레일러가 재생되는 동안 어떻게 플레이 할지 미리 계획을 세웠다.
“음 일단… 제국 내부의 배신자부터 정리하고.”
플레이어는 설정상 제국의 황제였다. 하지만 황제치고는 그리 권력이 강하지 않았다.
배신자들 때문이었다. 제국이라는 몸뚱이의 내장 곳곳에 침투한 암 덩어리들. 그놈들부터 정리하면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지리라.
“그리고 공작 중에… 아덴 크로우를 없애고 시작하면 되나.”
제국에는 공작가가 다섯 개 있었다.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
아덴 크로우가 속한 크로우 가문은 북방을 다스리는 공작이었다.
“무능하고 말도 안 듣는 놈인데 시작부터 없애 버려도 상관없겠지.”
공작들은 황제만큼이나 강한 권력을 쥐고 있었다.
황제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려면 공작들의 위세를 좀 깎아내릴 필요가 있었다.
지금까지의 플레이 경험상 한 놈을 죽이면 다른 공작들은 알아서 기었다.
반드시 하나를 죽이고 시작해야 한다면 도움도 안 되고 무능한 놈을 조지는 게 맞았다.
“이놈 말고 이놈 동생이 살아 있으면 훨씬 나을 텐데….”
아덴 크로우의 동생, 카를로스 크로우. 지나가는 NPC의 대사로 한 번 언급될 뿐이지만 제 형보다 훨씬 뛰어난 인물이었다고 들었다.
아덴 크로우의 술수에 카를로스가 죽어서 시나리오에서는 볼 수 없는 캐릭터지만.
―그해 하늘에서는 보랏빛 번개가 쳤다.
―백성들은 황제의 무능에 신이 노하여 보라색 번개가 내리친 것이라 입을 모아 말했다.
―병사들은 그런 소문을 퍼뜨린 백성들을 찾아 매질했다. 그럼에도 소문은 그치지 않았다.
“……?”
몸을 움직이다가 헤드폰의 소리가 커진 건가?
귀를 찌르며 들어오는 트레일러 음성에 정현은 헤드폰을 벗었다.
―한낮에 달이 떠서 해를 가리니 이를 보고 어느 예언자는 제국의 운명이 다했다고 말했다.
―황실의 병사가 그 예언자의 목을 치자 거기서는 붉은 피가 아닌 하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예언자는 죽었지만 백성들은 예언자의 말을 잊지 못했다.
“뭐야?”
헤드폰을 벗었음에도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스피커를 껐으나 트레일러의 소리가 이어졌다.
정현은 귀를 후볐다. 요 며칠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환청이 들리는 건가? 그렇게 의심했으나, 아니었다.
―제국은 멸망의 기로에 서 있다.
머리가 아팠다. 뇌가 쪼개질 것 같은 통증이 일었다.
―이제는 황제도 멸망을 막을 수 없으리니. 제국을 구할 수 있는 건 오직 당신뿐이다.
* * *
“아… 윽.”
정신이 든 순간 그가 느낀 것은 고통이었다. 몸의 어딘가가 꿰뚫린 고통.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아찔한 고통이 올라왔다.
“뭐야….”
그는 천천히 기억을 되짚었다. 분명히 친구와 내기를 하고 있었고, 실패 후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큭….”
복부에 상처가 나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기다란 나무 막대가 그의 몸을 꿰뚫은 상태였다.
‘일단 이것부터 뽑아내야….’
정현의 얕은 의학 지식에 따르면 그걸 뽑아내면 출혈이 도리어 더 심해질 것이다. 그러면 과다 출혈로 죽을 것이다.
하지만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살려면 뽑아내야 한다고.
“으윽….”
나무 막대를 잡아 뽑아내려 했으나 실패였다. 정현은 어느 정도 고통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여러 번 짧게 호흡한 그는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그리고 셋!
“큭…!”
조금 뽑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고통이 너무 극심해서 중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살아야 한다. 카를로스 크로우.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야만 한다.’
카를로스 크로우?
머릿속으로 중얼거린 이름이 어쩐지 익숙했다. 카를로스 크로우. 외국인의 이름이었지만 흔한 이름은 아니었다.
‘살아야 한다.’
어쩐지 그 말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정현의 목표 또한 그것이었다. 당장 살아남는 것. 자신은 개꿈을 꾸고 있는 게 분명했지만 꿈속에서라도 죽고 싶지는 않았다.
‘다시 해 보자.’
이번에는 셋이 아니라 다섯까지 셌다.
그리고.
“끄으윽….”
거의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막대를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의 몸을 꿰뚫었던 것은 막대가 아니었다. 끝에 날카롭게 제련된 강철이 달려 있었다.
역사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창이었다.
“이게, 왜 나한테 꽂혀 있는 거야….”
알 수 없었다. 그걸 알려 줄 만한 사람이라곤, 더 이상 이곳에 없었으니까.
오직 시체뿐이었다.
‘전쟁터? 무슨 꿈을 꿔도 이런 꿈을 꾸냐….’
창과 칼, 그리고 시체가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개중에는 피부가 보라색인 사람도 있었고, 동물과 비슷하지만 덩치가 훨씬 큰 외계인 같은 시체도 있었다.
하도 게임을 많이 해서 그런 건가.
이젠 아예 꿈도 게임으로 꾸는 모양이었다.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
또다시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
그걸 들은 정현은 손을 자신의 복부에 가져갔다. 상처에서 피가 울컥거리며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치료해?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사지는 멀쩡했지만, 상처를 막을 붕대도 감염을 막을 약품 같은 것도 없었다.
‘마법.’
“마법?”
마법. 마법이라면 가능하다. 그것을 깨달은 정현은 잠시 눈을 감았다.
고통 때문에 어지러운 의식 속에서 그는 무언가를 찾아내려 애썼다.
몸속에서 흐르고 있는, 피가 아닌 무언가.
그 감각을 깨달은 순간 정현의 시야가 탁 트였다. 정신이 명료해졌다.
‘마력.’
다시 한번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마력이었다. 정현이 사는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 꿈속의 세계를 이루는 힘.
이거라면 몸의 꿰뚫린 상처도 치유할 수 있다.
‘어떻게…?’
마력의 존재를 깨닫긴 하였으나 그걸 마법으로 바꾸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어떻게 하면 이 힘으로 뚫린 상처의 피를 채우고 근육을 재생시키며, 피부를 되살린단 말인가.
‘주문.’
주문이었다. 필요한 것은 두 가지. 상상력과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 줄 마력.
정현은 멀쩡한 몸을 상상했고, 마력은 이미 그의 몸에 흐르고 있었다.
이제 그걸 입으로 내뱉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힐.”
고작 해야 한 단어일 뿐인 중얼거림.
그러나 그것만으로 정현의 새로운 몸에 뚫린 구멍이 피와 살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아….”
마법은 정현의 복부에 난 상처를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치유했다.
고통이 사라지고 한순간에 긴장이 풀어진 정현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몇 분 후, 시체가 널린 벌판에서 홀로 몸을 일으킨 정현이 중얼거렸다.
“살아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