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여제 (5)
[최우선 목표 : 토벌]그 흉흉한 푸른빛이 눈앞에 떠 있다.
하드라이누스를 죽이고, 쌍둥이 사도까지 멸하였음에도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퀘스트.
‘이놈은… 모른다.’
눈앞에 있는 신조차 그 퀘스트 문구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여섯 개의 눈은 오직 카를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정현 자신에게만 허락된 능력.
확신을 얻은 그는 고개를 들어 탐욕의 신을 마주 보았다.
―내가 틀렸다?
“그래.”
―나의 무엇이 틀렸느냐. 말해 보아라.
“순서가, 잘못됐다.”
어둠 너머에서 여섯 개의 눈이 반짝였다.
그 시선이 천천히 카를의 몸을 훑던 순간, 바로 옆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아나의 입과 목으로 사도가 외친 것이었다.
“뭐가 잘못됐다는 거야!”
―나의 아이야.
어미가 자식에게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상냥한 목소리.
그와 함께 어둠 너머에서 한 가닥의 촉수가 다가왔다.
무언가 끔찍한 생물을 보았다는 듯, 사도가 힉 숨을 삼켰다.
―잠시, 진정하거라.
사도는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르륵. 촉수가 다시 어둠 너머로 사라졌다.
―순서라. 무슨 순서를 말하는 것이냐.
“…먼저, 시아나의 욕망은 네가 욕심낼 만한 게 아니었어.”
시아나가 탑에 돌아온 후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카를을 찾아서, 껴안은 것이었다.
원래 시아나가 품고 있었던 욕망은 고작 그 정도였다.
탐욕의 신이 욕심낼 만한 강한 욕망이 아니었다.
“하지만 너는 시아나에게 네 사도를 심었어. 그렇다는 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네가 욕심낼만큼 강한 욕망이 생겼다는 게 돼. 내 말이 틀렸나?”
―너의 말이 옳단다. 그 아이의 욕망은 꽤 강했지. 나도 오랜만에 내 ‘탐욕’이라는 감정을 음미할 수 있었을 정도로.
“그런 욕망이 어떤 것이었을까.”
카를은 고개를 돌려 시아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목에 새겨져 있는 희미한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복종의 징표가 남긴 흔적.
완전히 지워졌던 흔적이 남은 이유.
“…누군가 복종의 징표를 되살린 탓에, 거기서 해방되고 싶다는 욕망이었을 수도 있고.”
―호오.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서 목숨을 잃은 탓에… 살고 싶다는 욕망을 품었을 수도 있을 거다. 둘 중 하나라는 건 확신해.”
여섯 개의 시선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눈으로 웃음을 지은 것이었으나, 그것을 보는 카를은 정체 모를 공포를 느꼈다.
꼭 벌레가 몸의 어딘가를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시아나의 복종의 징표가 되살아나든, 목숨을 잃었든… 그 일은 너 때문에 벌어진 일이고.”
―어찌하여 그리 생각하느냐?
확실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카를은 확신할 수 있었다.
“100년 전쯤에, 네가 내려보낸 사도에 빙의를 당한 마법사가 저지른 기록을 봤다.”
―그 아이라면 나도 기억하고 있단다. 모든 것을 바쳐도 좋다… 그리 욕망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만들어 주었단다.
“일라이트에게도 그렇게 했겠지.”
탐욕의 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른침을 삼킨 그는 설명을 이어 나갔다.
“복종의 징표를 해주한 건 우리 마탑의 전 탑주님이었다. 새로 새기는 것도 아니라, 과거에 해주된 징표를 다시 살리려면 최소한 같은 탑주 정도는 되어야 해. 그런데… 탑주 중 두 명은 아니야.”
키시온과 셰르핀.
그들에게서 자세한 설명은 듣지 못했지만 그들이 한 짓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카를 자신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면 두 명이 남지. 베샤네 탑주님과 일라이트. 하지만 베샤네 탑주님은, 내가 알아. 자신이 더 강해지기보다는 제자들을 길러 내는 걸 바라고 계셔. 그분이, 시아나 선배를 이렇게 만들 이유가 없어.”
즉.
“남는 건 일라이트뿐이다.”
―내가, 그 일라이트라는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였다는 증거가 있느냐?
“일라이트가 사라져 있었던 기간.”
멸지에 가서 마력석 따위를 수집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100여 년 전의 기록에도 그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100년 전의 그 마법사도… 갑자기 사라졌다는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일라이트도 그 마법사처럼 사라졌던 시간 동안 너를 접촉한 거야. 내 말이 틀렸다면, 반박해 봐.”
―후훗.
나이 든 숙녀가 입을 가리고 웃는 모습이 연상되는 웃음소리였다.
실상은 무수히 많은 촉수가 달린, 눈 여섯 개의 괴물이 웃는 것이었지만.
―머리를 잘 쓰는 아이구나. 너를, 당장에라도 내 아이로 삼고 싶을 정도야. 그런데… 아이야, 그게 왜 내가 틀렸다는 뜻이 되느냐?
“시아나가, 그런 강렬한 욕망을 가지게 된 건 전적으로 일라이트 때문이다. 한 가지 묻겠는데, 100년 전, 네가 내려보낸 사도 때문에 죽은 자들 중 너의 사도로 삼은 자가 있었나?”
―없는 것 같구나.
승부처가 될 말.
카를은 속으로 몇 번이나 고심한 끝에, 입을 열었다.
“그들도 시아나처럼 살고 싶다는 욕망을 품었을 거야. 그런데도 너는 그들을 네 사도로 삼지 않았지. 그렇다는 건, 너는 시아나의 ‘살고 싶다는 욕망’을 들어준 게 아니야. 순전히 네 탐욕에 따라 시아나에게 사도를 심은 거지.”
―부정할 수 없구나. 그래서?
“카티아―라즈. 당신은 스스로를 탐욕의 신이라 자칭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탐욕에 휘둘리는 건가? 겨우 자기 자신도 통제하지 못하면서, 스스로를 신이라 자칭할 자격이 있나?”
카를이 팔을 벌리고 당당하게 외쳤다.
“그런데도 네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넌 저 아래에 있는 괴물들이랑 똑같은 거다.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순전히 네 욕망에 따라 시아나에게 심은 사도를 다시 거둬 가라.”
여섯 개의 눈이 동시에 움직여 카를을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이나 정적이 이어졌다.
―이리도 당돌한 아이는 처음이구나. 그래, 너의 말이 옳다. 내가 잠시… 나의 탐욕에 휘둘렸구나. 그 아이의 탐욕은 짙고, 또 단맛이 났거든.
“…….”
―그런데 만약에, 내가 너를 무시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내가 왜, 내가 애써 뿌린 나의 사도를 다시 거둬 가야 하느냐? 단지 나의 ‘탐욕’에 휘둘렸다는 이유로? 아이야, 너의 논리는 옳지만 너는 나약하단다.
“그렇다면.”
카를은 그 눈들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속에서 올라오는 공포를 짓이기고,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말했다.
“언젠가 내가, 너보다 강해진다면… 너를 내 마음대로 죽여도 되는 건가?”
―아이야, 너는 평생을 다 해도….
“내가 어떻게 너의 진명을 알았을까. 네 사도들도 모르는 이름을.”
대답이 없었다.
길게 이어진 침묵.
카를은 어둠 너머를 향해 대답했다.
“네 이름을 알아낸 것처럼, 나는 네가 짐작조차 하지 못할 방법으로 강해질 수 있다. 그런데도 내가 평생을 다 해도 부족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나?”
어느 웃음소리가 카를의 귓가를 간질였다.
―확실히, 장담할 순 없겠구나. 나 또한 언젠가 너와 같은 욕망을 품었던 적이 있으니. 그래.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마.
“아악!”
그 목소리와 함께 기다란 촉수들이 어둠 너머에서 뻗어져 나왔다.
촉수들이 시아나의 머리에 달라붙었다.
“어머니! 그만, 그마… 아악!”
―한 가지, 궁금한 게 있구나. 인간의 아이야.
머리에 달라붙었던 촉수들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시아나의 몸이 힘을 잃고 스러졌다.
카를은 재빨리 다가가 그녀를 안아 올렸다.
―나조차도 나의 탐욕에 휘둘리는데, 너는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느냐?
카를이 채 대답하기도 전에 수십 가닥의 촉수들이 뻗어져 나왔다.
결계보다도 촉수가 카를의 이마에 닿는 것이 빨랐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속임수의 준비는 철저했다.
그는 침착하게 마음을 다잡고, 속으로 외쳤다.
‘…보조 특성 선택권을 사용한다!’
눈앞에 푸른 창이 떠올랐다.
턱, 터덕. 두꺼운 촉수들이 카를의 얼굴을 뒤덮었다.
그중 한 촉수가 오른쪽 눈을 가렸다. 카를은 목을 비틀어 왼쪽 눈을 덮으려는 촉수를 피한 뒤, 목록을 선택했다.
「인형처럼 망가지지 않는」.
특성이 발현되는 것과 동시에 무언가가 그의 정신을 헤집고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 시아나의 몸을 차지하고 있었던 사도였다.
“…….”
“뭐야, 왜… 아?”
사도가 카를의 목을 빼앗아 놀란 목소리를 냈다.
“아무것도… 없다고? 아무것도?”
특성의 영향.
망가지지 않게 만들어 주는 특성이 아닌, 사람을 살아 움직이는 인형으로 만들어 버리는 특성.
카를로스의 기억.
한때 마수의 회복 인자를 몸에 심어서라도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했던 욕망.
정현의 기억.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다, 따위의 별 볼 일 없는 사소한 욕망부터 지금 그를 움직이는 살아남겠다는 욕망.
그 모든 것들이 고작 하나의 특성으로 인해 씻은 듯 사라졌다.
“말도 안, 돼. 이건, 아니야! 어머니! 구해 주세요! 어머니!”
사도가 카를의 손을 뻗어 어둠 너머의 존재를 향해 외쳤다.
그러나 탐욕의 신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당황한 사도는 특성으로 만들어진 인격 속에서 도망치려고 발버둥쳤다.
밑바닥까지 떨어진 까닭에 도리어 카를이 몸을 되찾았다.
“구하지 않을 셈인가.”
계산 아래에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말.
무덤덤한 표정으로 물은 카를에게 어둠 너머의 신은 침묵으로 답했다.
대신 한 가닥의 촉수를 더 뻗어 왔다.
―너는 정말로, 신기한 아이구나.
심장이 위치한 왼쪽 가슴 위에 촉수가 달라붙었다. 여섯 개의 눈들이 카를을 빤히 바라보았다.
―정녕 그 어떤 것도 욕망하지 않는 것일까.
카를은 자신의 가슴에서 고통을 느꼈다.
맨살을 칼로 찢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다른 변화는 없었다. 고통을 그저 고통이라 여길 뿐, 아픔이라 여기지 않았다.
―아니면 나의 아이로는 무너뜨릴 수 없는 인간일까.
이윽고 촉수들이 얼굴에서 떨어졌다.
가슴 위에 붙어 있었던 촉수를 마지막으로 카를은 해방되었다.
“…하아.”
그 고통이 아픔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카를은 자신의 특성 창을 살폈다.
「인형처럼 망가지지 않는」.
게임에서 특성이 비활성화될 때 나타나는 취소선이 보였다.
여섯 개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괴물은 카를이 ‘퀘스트’나 ‘특성’ 따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특성의 비활성화를 의도하지 않고 한 행동.
‘최소한 폐인으로 만들 작정이었나.’
카를은 어금니를 갈았다.
이젠 공포보다 분노에 가까워진 감정을 억누른 그가 외쳤다.
“이 정도면 됐나?”
―괴이할 정도로 고강한 정신을 갖추고 있구나. 정말로, 욕심이 나. 그래, 그 정도면 되었다.
여섯 개의 눈이 다시금 휘어졌다.
바퀴벌레가 더듬이로 미소 짓는 걸 보면 이런 느낌일까.
불쾌함을 느낀 카를은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돌아서려던 여섯 개의 눈이 다시 카를을 보았다.
“일라이트까지… 다시 거둬 가게 만들어 줄 테니.”
―그래.
그 목소리는 웃고 있었다.
―나의 아이가 무너뜨릴 수 없는 인간이 맞을까, 궁금해지는구나. 한번 해 보아라. 방해는 하지 않으마.
그 말을 남긴 거체는 그대로 떠나갔다.
카를은 시아나의 마법을 떠올리며 균열을 열었다.
쩌저적!
어둠이 얼음처럼 갈라졌다.
“…집으로, 돌아갑시다.”
새근새근.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는 그녀와 함께, 카를은 다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