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이스터에그 (1)
“…그러니까.”
카를의 설명을 들은 사라는 입을 약간 벌린 채 되물었다.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걸로 덮자고?”
“그래.”
카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없이 진지한 그의 얼굴에 사라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일단, 탑주님은 사도한테 빙의를 당한 게 아니라 악마한테 잠시 몸을 뺏긴 거고.”
“그렇지.”
“그 악마의 존재에 이끌린 마수들이 아카데미 근처로 왔고, 그걸 선배가 격퇴했다.”
쌍둥이 사도의 등장 자체는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일급 비상사태가 내려지기도 했고, 수많은 학생이 두 눈으로 쌍둥이 사도를 보았다.
하지만 카를은 그 거대한 불가사리가 마수였다고 발표하고 넘어갈 생각이었다.
‘애초에 사도의 존재도 몰라.’
당장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라도 불과 몇 달 전까지는 사도의 존재에 대해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리안에서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을, 시아나의 도움으로 허상 공간에 들려 그 존재를 확실히 알게 된 것이었다.
“확실히 사도라고 하는 것보다는 마수라고 하는 게 나을 것 같긴 한데.”
알아서 좋을 게 없는 사실을, 구태여 알릴 필요가 없다.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지만 사도가 아카데미의 코앞까지 온 것도 사실이었으니.
마수가 나타나는 건 흔치 않아도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사도의 강림은 일어나선 안 되는 일에 가까웠다.
“이렇게 덮는다고 믿을까… 조금만 공부해도 그게 마수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사라 너도 모든 마수를 다 아는 건 아니잖아. 희귀한 마수라고 우기고 넘어가면 돼.”
“그건 그렇긴 하지… 근데, 그걸 내가 해야 한다는 거고.”
사라가 불만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다만 이것만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사태의 당사자가 아니면서, 사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사라뿐이었으니까.
정보를 다소 숨겨서 알릴 계획이라고는 하지만 그것도 사태를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이 해야 확실히 할 수 있었다.
“그러면 우리 애들은 따로 모아서 알려 주고 학생들한테는 대자보 붙여서 설명할게. 그래도 되지?”
“네가 편한 대로 해.”
“알겠어. 그런데… 하아, 이게 무슨 일이래.”
아까보다 더 깊은 한숨이 그녀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일라이트 탑주님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네.”
권능으로 흉내 낸, 가짜 마법사.
다시 아카데미로 돌아온 카를에게서 그의 정체에 대한 말을 들은 사라는 줄곧 저런 반응을 보였다.
언령 마법이 주가 되는 북부에 있다지만 그녀가 선호하는 마법은 단연 매개에서 비롯되는 마법이었다.
그 매개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들을 이끄는 탑주가 일라이트였다. 그녀에게는 우상이나 다름없었던 마법사가 가짜였다는 뜻이었다.
적잖은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했다.
“…근데 선배.”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사라가 물었다.
“진짜 선배가 일라이트 탑주, 그 사람을….”
“죽였지.”
“아, 응. 죽였지.”
단어 선택을 난감해하는 그녀를 향해 카를은 딱 잘라 명확하게 말했다.
달리 할 말이 뭐가 있을까.
카를은 그를 죽였다. ‘제압’이나 ‘봉인’ 따위가 아니라, 숨통을 끊어 놓았다.
그에 따른 후회는 조금도 없었다. 죽여야 하는 자를 죽였을 뿐이었으니.
“근데, 그거 진짜 선배가 한 거 맞아?”
“무슨 말이냐.”
“아니, 그게, 도움을 안 받고 했는지 궁금해서. 선배가 어떤지는 내가 제일 잘 알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어서.”
가짜 마법사였고, 권능에서 비롯된 힘이었다 하더라도 일라이트는 대외적으로 인정받는 탑주였다.
죽는 순간까지 그의 몸에는 권능이 남아 있었다. 탑주는커녕 대마법사의 반열에도 이르지 못한 카를이 그를 제압한 것 자체가 사라에게는 신기한 일이었다.
“운이 좋았다.”
“응? 운… 이면, 방심한 거야?”
“베샤네 탑주님께서 힘을 많이 빼놓으셨어.”
일라이트의 지팡이에는 스무 개도 넘는 마법이 스톡되어 있다. 이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일라이트는 카를을 상대할 때 고작 몇 개의 마법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지팡이에 스톡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으로는… 소모했다고 생각했겠지.’
베샤네에게 발을 묶인 동안 사용했을 가짜 마법들.
실제로는 권능으로 흉내 낸 것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마법사라 여기고 있었던 만큼 마법을 ‘소모했다’고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
‘말로 정신을 빼놓은 것도 있고.’
애당초 그와 정면으로 맞붙으면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상정하고 행동으로 옮긴 것이 ‘거울 세계’였다.
그 거울 세계에 또렷하게 남은 자신의 마법이 가짜라는 것을 확인한 데에서 오는 괴리감.
여기에 일라이트가 미처 짐작하지 못한 네 번째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던 팔찌가 없었다면.
‘못 이겼겠지.’
그만한 차이가, 그만한 벽이 있었다.
그런 일라이트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셰르핀은 어떨까.
적극적으로 공격할 수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사도에게 빙의를 당한 시아나를 상대하는 것도 그 순간에는 막막했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선배가 혼자서 일라이트를 죽인, 건 맞잖아.”
“그렇지.”
“그러면… 그 말이 진짜였네.”
“무슨 말?”
“실력 자체만 놓고 따지면 탑주급이라는 말.”
카를은 미간을 살짝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아티팩트가 없으면 아직 트리플밖에 안 되기도 하고.”
“따지고 보면 지팡이도 아티팩트잖아. 매개 마법 사용자들은 지팡이를 거의 무조건 쓰는데, 그럼 똑같은 거 아니야?”
“글쎄다. 그래도 아직 다른 탑주분들이랑 비교할 수준은 아니지.”
“겸손도 심하면 오만이야. 선배는, 선배 실력에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어. 안 그래요? 제국 최강의 마법사 카를로스 크로우님?”
“…….”
카를은 말없이 사라를 째려보았다.
피식 웃음을 터뜨린 그녀가 말했다.
“아, 오글거리는 별명이라 싫다고 했었지? 근데 사실인 걸 어쩌겠어. 내 말 맞지?”
“그만해라.”
“네~ 네. 근데 탑주님은 마음에 들어 하시던데? 그래도 별로야?”
“…그래도 별로다.”
“방금 잠깐 고민했지.”
카를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침묵했다.
묘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던 사라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선배가 부탁한 일이니까 한번 해 볼게. 정보 덮는 거야 뭐… 한번 해 보기도 했고.”
리안에서 발생한 역병의 원인이 사도라는 것을 숨겨 본 이력도 있으니, 아주 못 할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한 사라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을 때였다.
“선배님! 방금… 헛?”
“……사라.”
“왜?”
“너도 그렇고, 왜 다들 노크를 안 하고 다니냐.”
아무런 기척도 없이 갑자기 벌컥 문을 열고 나타난 마법사를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카를이 문득 중얼거렸다.
그 말에 사라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우리끼리만 있었으니까 편해져서 그래. 원래 마탑에선 다른 사람 방문 두드릴 일도 별로 없기도 하고.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다면… 내가 이해할 수밖에 없나. 그래서, 무슨 일이냐.”
“아, 예! 선배님, 남부 마탑의 키시온 탑주님께서 오셨어요. 베샤네 탑주님도요. 선배님을 꼭, 데리고 와 달라고 하셔서.”
베샤네를 찾아보겠다던 키시온의 말을 떠올린 카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계시지?”
“1층에 계세요. 아, 저희 탑주님도 거기 계세요! 셰르핀 탑주님이랑 그리고, 그 팔 여섯 개 달린 이상한 여자도… 요.”
“바로 내려가 볼게. 말해 줘서 고맙다.”
“어… 네, 네?”
자리에서 일어난 카를은 곧장 후배 마법사를 지나쳐 방에서 나갔다.
마법사는 당황한 얼굴로 그가 나간 문을 쳐다보다가, 사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카, 카를로스 선배님이 원래 저런 분이셨나요?”
“…아니?”
“그, 쵸? 제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니죠?”
“요즘 들어서 사람이 좀 변했어. 원래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흘리는 인형이었는데, 이젠 사람이 됐다고 해야 하나? 근데 노크 안 했을 때 옛날 성격 다시 나온 거 보이지?”
잠깐이지만 차갑고 날 선 성격이 드러났다.
애초에 성격이 바뀐 게 아니라, 스스로 바뀌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네. 조금 무서웠어요….”
“노크만 조금 조심해. 나한테도 그거 가지고 맨날 뭐라고 하니까. 또… 너무 피해 다니지도 마. 조금 있으면 당분간 못 볼 거야.”
“네? 카를로스 선배님 어디 가세요?”
“제도. 황제 폐하 접견하고… 한동안 다른 데 있다가 올 거래. 여기 몇 달은 없을걸?”
그가 사라에게 사건의 설명을 맡긴 이유이기도 했다.
직접적인 당사자인 자신은 황제에게 사실 그대로 사건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
다만 그 이후의 행방에 대해서는 그녀에게도 말해 준 게 없었다.
“몇 달이나… 어디에 가시는 걸까요.”
“모르지. 자기 약혼자랑 놀러 가는 거일 수도 있어. 너도 알지? 약혼자랑 사이 되게 좋은 거?”
“네?”
“몰랐어? 조금 유명하던데, 몇 개 말해 줄까?”
“네!”
후배의 활기찬 대답에 사라는 호사가스러운 눈빛을 지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 * *
1층으로 내려간 카를은 곧 키시온과 베샤네를 찾을 수 있었다.
원래도 괴팍한 노인 같은 인상이었던 베샤네는 자린고비 같은 얼굴이 되어 있었다.
카를은 곧장 그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무사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음? 아, 자네로군.”
“예. 괜찮으십니까?”
베샤네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일라이트처럼 아티팩트의 용도로 들고 다니는 지팡이가 아니라, 진짜로 땅을 짚고 다니는 용도의 지팡이였다.
“괜찮냐 안 괜찮냐를 굳이 논하자면 안 좋은 편이네. 일라이트 그놈 때문에 빌어 처먹을 지팡이가 없으면 걷기가 어려워졌어.”
“…예? 어디를 다치신 겁니까?”
“의외로 다리는 멀쩡하네. 허리를 삐끗했지. 개떡 같은 놈….”
미간을 일그러뜨린 채 온갖 욕을 씹어뱉은 베샤네는 카를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지팡이를 짚지 않은 손으로 카를의 어깨를 두드렸네.
“예언자 녀석한테 자네 이야기를 들었네. 혼자서 그놈을 때려잡았다면서?”
“…베샤네 탑주께서 힘을 빼놓은 덕입니다.”
“힘을 빼기는 무슨. 나 때문에 힘을 빼앗길 놈이 아니었네. 그리고 설령 내가 힘을 빼놓았다 하더라도 혼자서 때려잡았단 사실은 변하지 않지.”
한참 그렇게 말하던 베샤네는 문득 입을 다물었다. 그의 시선은 허공에 붙박여 있었다.
무언가를 회상하듯 골똘한 표정에 잠겨 있었던 노인은 빌어먹을, 하는 욕설과 함께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어쨌든,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으면 우리 실책 때문에 제국이 박살 날 뻔했네. 그래서, 셰르핀 그 영감탱이는 어디 있나?”
“응접실에 있습니다. 같이 가시죠.”
“그러지.”
카를은 그를 본관의 응접실로 안내했다.
탁, 타악. 베샤네가 손에 쥔 지팡이가 복도를 두드리면서 경쾌한 소리를 내었다.
키시온은 말없이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음.”
카를이 응접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베샤네를 안내한 순간, 조금씩 들려오던 대화 소리가 끊겼다.
며칠 전까지 엉망이 되어 있었던 수염을 다시 깔끔하게 정리한 셰르핀이 베샤네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네… 살아 있었군?”
“뭔가 그 말은. 그럼 내가 뒈질 줄 알았나?”
“찾아도 보이지 않기에 그런 줄 알았지. 그동안 어디 있었나?”
“영감탱이 도망칠 시간 벌어 준다고 싸우다가 허리를 삐끗해서 의원에 있었네.”
“음. 그 정도 나이가 되면 허리를 조심해야지.”
“이 영감탱이가….”
“또 시작이군요.”
눈이 마주치자마자 으르렁거리기 시작하는 두 사람을 본 키시온이 카를을 돌아보며 물었다.
“카를로스. 폐하와 접견하는 건 어떻게 됐습니까?”
“2주 뒤로 일정이 잡혔습니다. 선조치 후보고 형식인지라 기한을 조금 미루되, 충분한 시간 동안 보고를 받아 보시겠다 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아주 늦는 것도 아니니 상관없겠네요. 저는 그동안 중앙 마탑에서 임시 탑주를 맡을 만한 마법사를 찾아보겠습니다.”
셰르핀과 베샤네, 두 사람이 설전을 벌이고 그 사이에서 시아나가 곤란해하는 사이.
카를과 키시온은 일의 뒤처리에 대해서 빠르게 논의를 나누었다.
얼추 결론을 내린 카를은 응접실을 한 번 둘러본 뒤 셰르핀을 향해 물었다.
“셰르핀 탑주, 거미는 어디 갔는지요?”
“아, 그 녀석? 방금 잠시 나갔네. 그… 아담이라는 자가 부르더니 쫄래쫄래 따라 나가더군.”
“……?”
대체 아담이 은빛 거미를 따로 부를 만한 일이 어디에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찾을 수 없는 인과 관계에 고민하던 카를은 키시온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고서 말했다.
“키시온 탑주, 잠시 두 사람을 찾아보고 오겠습니다.”
키시온은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곧, 본관을 나온 카를은 어렵지 않게 그들을 찾을 수 있었다.
본관 뒤편. 건물의 그림자가 진 곳에 검귀와 은빛 거미가 있었다.
늘 허름한 차림으로 검 한 자루만 차고 다니는 낭인인 검귀가 어째서인지 오늘은 말쑥한 차림이었다.
“…….”
둘이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카를이 말을 꺼내려던 순간 아담이 꽃 한 송이를 꺼내 그녀를 향해 내밀었다.
“그대를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이 떨렸습니다. 낭자.”
그 순간.
“저와 교제하여 주시겠습니까?”
카를이 알던 인과 관계가 완전히 박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