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이스터에그 (3)
“아주….”
몇 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황제는 멍해진 카를의 얼굴을 재미있다는 양, 흥미로운 눈빛으로 살폈다.
마법의 유지도 힘들 정도로 혼란스러웠던 탓에 황천이라 불리는 마법의 영향에서 벗어나, 그가 원래의 얼굴로 돌아왔을 땐 보물을 발견한 모험가처럼 눈을 빛내었다.
“…생각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 공작 그대는 영특하니 그럴 것이라 생각하였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그대는 죽었어야 할 인물이었다. 그런데, 멀쩡히 살아서 돌아왔다. 혹시나 싶어, 처음으로 만날 날 내가 그대에게 넌지시 물었지. 그걸 기억하는가?”
그대는 몇 개의 고리를 쌓은 마법사인가.
그것을 듣고 카를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었다. 이 세계의 마법사들이 심장에 고리, 즉 서클을 쌓지 않게 된 것이 벌써 수백 년이었으니까.
서클이란 곧 흑마법사와 혈마법사의 상징이었다. 일개 평민도 아는 지식을 황제가 모를 리 없었다.
“예, 기억합니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입장에선 달랐다. 거창하게 할 것도 없이 ‘특성’으로 자신이 거느리는 마법사들이 서클을 쌓도록 할 수 있었으니까.
서클에 마력을 쌓는 마법사는 더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다.
5년이라는 타임 리미트가 걸려 있는 시나리오에서 마법사 유닛을 주력으로 운용하려면 그들이 서클을 쌓게 하는 특성을 쓰는 편이 나았다.
‘황제도 나처럼 플레이어였다면.’
서클의 존재를 안다.
플레이어였다면 마법사가 서클을 쌓는 것이 통상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폐하께서도 저처럼 이 세계에 빙의하신 겁니까?”
“흠?”
이번에는 황제가 놀란 얼굴이 되었다.
왜 그녀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는지 카를은 이해가 되었다.
입을 살짝 벌린 채, 눈을 크게 뜬 모습. 권태로운 표정이나 분노한 표정만을 내비치던 황제가 그런 표정을 지은 것 자체가 색달랐다.
“……공작.”
“예, 폐하.”
“그대는 원래의 그대가 아니었던 건가.”
“…그 원래의 제가, 크로우 공작가의 둘째. 카를로스 크로우를 칭하는 것이라면.”
카를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예. 저는 원래의 그가 아닙니다. 그의 육신에 깃든, 다른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라 하였는가.”
“왜 그러십니까?”
“나는 그것의 반대다.”
반대?
그녀가 말한 반대가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던 찰나, 황제가 멍한 얼굴로 카를을 향해 팔을 뻗었다.
그녀는 카를을 향해 자신을 향해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성큼. 한 발자국 다가가자, 황제가 멍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작.”
“예, 폐하.”
황제는 카를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푹.
하얗고 가는 손가락이 카를의 볼을 찔렀다.
“감각이 느껴지는가?”
“…잘 느껴집니다.”
“그러면, 눈을 감아 보아라.”
그는 눈을 감았다.
다시 한번 손가락이 볼을 찔렀다.
이번에는 여러 개였다.
“내 손가락이 몇 개로 느껴지는가?”
“…검지와 중지, 그리고 약지. 총 셋입니다.”
“감각은 아주 멀쩡하구나…. 다시 눈을 떠도 좋다.”
그녀의 말을 들은 카를은 눈을 떴다.
다음 순간, 그는 놀란 나머지 숨을 집어삼켰다.
황제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신기하구나.”
내쉰 숨결이 피부에 스칠 정도로 가까웠다. 황제는 그만큼이나 가까이 다가와 카를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몸의 감각이 온전한 데다가, 마법도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다. 그대가 이 육신을 완전히 통제한다는 뜻이지. 내가 알기론, 빙의란 불안정한 것일 터인데.”
“…예.”
마법을 이용한 빙의는 그녀의 말마따나 불안정하기 짝이 없다.
인간이 자신보다 하등한 새나 쥐 따위의 동물에 빙의해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하물며 같은 인간에게 마법으로 빙의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건 마법이 아니라, 이능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런가.”
“예.”
“그렇다면… 그대는 이 세계의 바깥에서 온 이방인이구나.”
카를은 고개를 끄덕였다.
홀린 듯 그를 바라보던 황제가 말했다.
“그대는… 원래의 카를로스가 아니지. 하지만 짐은, 나는 원래의 나다. 조부께서 남자로 태어나길 바란다며 붙이신 남신(男神)의 이름 마르트와, 조모께서 지어 주신 여아의 이름 헬레나를 쓰는 제국의 황제다.”
“그러면 폐하께선 어떻게… 아신 겁니까?”
“나는 그대와 달리 빙의를 당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 세계에서 태어난 인물이, 이 세계가 게임인 것을 알고 있는가.
카를은 그녀가 말한 ‘반대’의 의미를 깨달았다.
“…다른 사람이, 폐하의 안에 있습니까?”
그런 식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할 물음이었다. 애매모호한 문장이었지만 황제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해 주었다.
“그대는 본래의 카를로스의 육신에 빙의해, 완벽히 그가 되었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나는 육신을 빼앗기지 않았다.”
“감히 추측컨대, 폐하께서는 자아가 강해 몸을 빼앗기지 않은 듯합니다.”
“자아가 강해서? 허면 원래의 카를로스는 자아가 약한 인물이었던가?”
“…제가 카를로스의 몸에 빙의한 순간은, 그가 죽어 가던 순간이었습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서 알고 있다. 크로우 공작가의 차남이,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잃었다. 잠시 그런 뜬소문이 돌았었지.”
“뜬소문이 아니라 아마 잠시 동안은 정말로 죽었을 것입니다.”
“…….”
“제가 빙의하면서 몸이 간신히 생기를 되찾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와 달리, 폐하께서는….”
“죽을 일이 없었지. 과연. 이해하였다. 굴러온 돌이 단단히 박힌 돌을 빼내지 못한 것이구나.”
전쟁터에서 죽어 가던 카를과 달리, 황제는 쭉 안전한 황궁에 있었다.
몸을 빼앗길 만큼 유약한 사람도 아니었으니 빙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듯했다.
“진아.”
“……예?”
“나의 몸에 빙의될 뻔한 이는 진아라는 이름의 여성이었다. 나는 그녀의 기억에서, 이 세계를 알게 되었다.”
자신이 0과 1로 이루어진 세계의 한 줄짜리 코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반쯤은 이 세계가 게임이라 여겨 왔던 카를은 말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혼란스러워하던 그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폐하. 괜찮, 으십니까?”
“무엇이 괜찮느냐고 묻는지 모르겠구나.”
“적잖이 혼란스러우셨을 듯합니다. 혹여나 폐하께선 그렇지 않았는지요.”
그 물음에 황제는 의아하다는 투로 답했다.
“혼란스럽고 자시고 할 여유가 어디 있겠느냐. 이 빌어먹을 ‘시나리오’를 클리어하지 못하면 내 모가지가 날아갈 텐데.”
“아…….”
“이런 면에서까지 짐을 염려하는가.”
황제가 카를의 뺨을 어루만졌다.
“공작가에서 태어난 것치고는 성격이 독특하다 싶었다. 이것이 ‘원래’ 카를로스 크로우의 성격인 줄 알았으나 그대의 성격이었구나.”
“…….”
“그대에게도 진아와 비슷한 이름이 있을 터다. 그대의 세계에서만 사용하는 두 글자로 이루어진 이름. 내게 그걸 들려주지 않겠느냐.”
그녀가 속삭였다.
“이 세계의 진실을 아는 이들로서, 오직 우리만이 공유하는 비밀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정현이라 합니다.”
“정현.”
황제는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말해 보았다.
두어 번 중얼거린 황제가 물었다.
“그대의 이름엔 어떤 뜻이 담겨 있느냐.”
“정은… 바로잡다는 뜻이고, 현은 어질다는 뜻입니다.”
“좋은 뜻을 담은 이름이구나. 앞으로 짐과 그대, 둘만 있을 땐 이 이름으로 그대를 부르마.”
“…예, 폐하.”
“정현.”
황제는 카를의 귀에 대고 그 이름을 속삭였다. 아무리 그래도 바로 그렇게 할 줄은 몰랐던 카를은 조금 당황하면서 대답했다.
“예, 폐하.”
“놀란 얼굴도 재미있구나. 더 놀려 먹고 싶지만 사족은 이쯤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대는 이 ‘시나리오’를 클리어해 본 적 있느냐?”
“…없습니다.”
“내게도 그런 기억은 없다.”
목소리에서 씁쓸함이 묻어 나왔다.
한 명은 플레이어의 기억을 가졌고, 한 명은 플레이어 본인이었다. 둘이 모였으나 클리어 한 사람이 없었다.
“내 육신에 빙의된 진아라는 소녀는 손이 꽤 느린 편이었다. 아마 그래서 클리어에 실패하지 않았나 싶지만… 알아낸 것이 하나 있다.”
“어떤 것입니까?”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것이다. 수십 번을 반복하면서, 온갖 것을 다 해 보았더구나.”
신기한 말이었다.
정현 자신은 시나리오를 클리어할 때 정석적인 자세로 게임에 임했다.
하지만 그녀의 몸 안에 있을 진아라는 사람은 정석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이를테면… 다른 캐릭터에게 제위를 넘긴다든가.”
“…그런 게 가능합니까?”
“충분히 가능하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조건만 맞춘다면 말이다.”
신기한 일이었다.
플레이어가 다른 캐릭터에게 제위를 넘기는 게 가능하다고?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라지만, 살짝 뜬금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제위를 넘긴다 해서 바뀌는 일은 없다. 게임 오버가 뜰 뿐이지. 짐이 황제라 불리지 않게 되는 순간, 이 세계는 끝장나는 것이다.”
“…예.”
“하지만 시나리오에서 철저하게 막힌 플레이가 몇 개 있었다.”
황제가 말했다.
“아까 그대가 말한 것이 그것과 같았다. 동쪽 숲의 엘프 일부를 포섭하여 그들의 ‘대표’로 위장해 제국의 사람을 마족들 내부로 잠입시킨다는 건, 플레이어는 시도하지 못하는 방법이다.”
“…제위를 넘기는 것도 가능한데, 그건 불가능합니까?”
“엘프의 대표를 포섭한다는 선택지 자체가 뜨지 않는다.”
그녀의 말은 즉, 카를이 떠올린 방법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막혀 있다는 것이었다.
왜 그런 선택지를 막아 두었을까.
너무나 간단한 해답이 나왔다.
“…제가 생각한 대로 된다면, 마족 연합의 구심점이 사라집니다. 결속력이 약해지겠지요. 마왕을 쓰러트리기는커녕 그 전에 와해될 가능성도 있지요. 그러면 시나리오의 전반이 무너집니다.”
“그래서 막아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 말고도 억지로 막아 둔 플레이가 몇 개 있다. 정현, 그대는 ‘커뮤니티’를 둘러본 적 있나?”
카를은 고개를 저었다. 친구와 내기를 했을 때, 공략을 보고 클리어하지 않기로 했기에.
그래서 유튜브는커녕 커뮤니티도 찾아보지 않았다.
“카리아 프라헨. 그 소녀를 악인(惡人)으로 길러 내는 방법을 선택한 자가 있었다. 살육에 미친 학살자로 만들어 마족들을 막아 낼 작정이었다.”
“…그게, 가능합니까?”
“불가능하지. 그녀는 천성이 올곧거든. 그래서 실패했다. 하지만 만약에 성공했다면, 어찌 되었겠는가?”
“다, 죽였겠지요. 말 그대로, 전부 다.”
무력이 강한 캐릭터는 살인을 즐기지 않게끔 설정되어 있었다.
대표적으로 아담은 검귀라 불리지만, 불살주의를 고수하는 캐릭터였다.
“그래. 시나리오는 5년 차까지 시나리오가 ‘정상적으로’ 흐르게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이 세계는 현실이다. 혹여나 묻는 것인데, 그런 제약을 한 번이라도 느낀 적 있나?”
그녀의 물음에 카를은 곰곰이 고민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리안에서 일어난 역병은 사도가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게임에서… ‘역병의 원인을 조사한다’는 선택지를 눌러도 사도의 존재를 찾을 순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사도를 찾았고, 또 죽였습니다.”
제약은커녕 그 방법이 옳다는 것처럼 퀘스트까지 발급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도 하나가 있었다.
‘이게 게임이었으면… 허상 공간에 들어가 신이랑 담판을 짓는 짓 따위는 못 해.’
그런 플레이 자체가 불가능했다.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플레이어가 마법사가 아닌 황제라 그런 것이겠지만, 시나리오의 제약에서 벗어난 행동임은 분명했다.
“전혀, 제약이 없었습니다.”
“그래. 그대가 떠올린 방법을 실제로 실행한다 하여도 다른 요소가 아닌 시나리오의 제약을 받아 실패할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이라 여겨지는구나.”
황제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원래 게임이란 건, 꼼수로 클리어하는 법이니 말이다.”
정현 또한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