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새하얀 것들 (1)
아나스타시아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쩌면 같은 ‘플레이어’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황제보다도 더.
자연스럽게 말을 털어놓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다.
“…안나. 혹시나 해서 그러는데.”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말라고요?”
아나스타시아는 마차에 올라탄 카를을 향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신의 생각을 거의 뻔하게 읽은 듯한 말에 카를은 속으로 놀라움을 삼켰다.
“제가 설마 다른 사람한테 말을 하겠어요?”
“그게 아니라… 당부를 해 두고 싶어서. 너도 알잖아. 칼리테 그 녀석은….”
“아.”
탄식을 흘린 그녀는 카를이 구태여 말을 꺼낸 이유를 이해했다.
“그렇네요. 저희 오라버니라면 작은 단서로도 당신이 뭘 할지 다 알아챌 테니까….”
그만한 두뇌가 있었고, 그만한 정보력이 있었다. 칼리테 펠하임이 사실상 제 아버지를 허수아비 공작으로 만들고 공작가를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당신이랑 만났다는 사실도 숨겨야겠네요. 저희 직원들 입단속도 해 둘게요.”
“…이해해 줘서 고마워.”
“이 정도는 해야죠. 대신에.”
아나스타시아가 마차의 발판 위로 성큼 올라섰다. 카를의 넥타이를 잡은 그녀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의 상반신을 확 끌어당겨 입술을 겹쳤다.
“…….”
마차의 작은 문이 가림막이 되어 주었다. 그래도 다른 이들이 본다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가 유추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마차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행인들은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원래 아내들이 전쟁터에 나가는 남편을 배웅할 땐 보통 이렇게 한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아마도?”
“헤. 아직 부부는 아니니까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까요.”
아나스타시아가 손을 뻗었다. 손가락으로 뺨을 쓰다듬은 그녀가 말했다.
“잘 다녀와요. 아, 그리고, 죽지 말고요. 알겠죠?”
죽지 말라는 말은 황제가 했던 말을 의식한 것이리라. 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 카를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은 것임에도 신경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쓴웃음을 지은 카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죽어. 절대로.”
“말을 해 주니까 안심되네요. 잘 가요. 정현.”
그 작별 인사를 끝으로 마차가 천천히 출발했다.
* * *
워프 게이트라는 사기적인 이동 수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를은 돌아가는 수단을 마차로 결정했다.
주변의 풍경을 보면서 여행 따위를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공작위 승계 절차가 복잡해진 바람에 바로 돌아간다면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고, 그 처리 방안을 고민하기 위해서 먼 길을 선택했다.
‘일이 이렇게 꼬일 줄이야.’
황제의 정체는 예상외였다. 어쩌면 플레이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으나, 어디까지나 한순간 스쳐 지나간 생각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들어맞다니.
황제가 자신에게 우호적이었던 이유.
아니… 약한 모습을 보여 가면서까지 결투에 나가게 할 정도로 심한 기대를 가졌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왜 탄신일에 그런 선포를 했는지도 이해가 가네.’
용의 시대로의 회귀.
플레이어의 기억을 가졌다면 그렇게 가는 방향이 나으리라고 판단할 수 있으니 내린 결정이리라.
하지만 황제 헬레나는 자신과 달리 빙의자가 아니었다. 빙의자의 기억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제국이 몰락한다는 소리를 한 것도 미래를 아니까 그런 건가….’
백성들이 자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그로 인해 반란이 일어났다고 한들 그걸 제국의 몰락까지 연관 지어 생각하는 건 확실히 이상했다.
플레이어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렇게 된 것이리라.
‘다른 것도 아니고 자기가 죽는 걸 봤을 테니까….’
황제의 죽음. 수없이 많은 자기 자신의 죽음을 보았다면, 그렇게 되는 게 당연했다.
그 마음을 아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황제가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서 작위의 구분이 애매해졌다.
‘결국 황제가 승인을 안 해 주면 작위는 계속 내가 유지하는 거고… 그러면 의미가 없잖아.’
당장 펠하임 가문이 그랬다. 사실상 가문을 지배하고 있는 칼리테의 신분이 ‘공자’ 혹은 ‘공작 대리’로 통했다.
그렇다 보니 ‘공작’이 필요한 자리에는 그의 아버지인 펠하임 공작이 나왔다.
유리아를 공작 대리로 삼는다고 해도 ‘공작’으로서 해야 할 일이 생긴다는 뜻이었다.
“…하.”
한숨을 내쉰 그는 마차의 푹신한 좌석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어차피 가문의 업무 처리는 유리아가 막힘 없이 처리하고 있다. 사교계에서 터놓은 인맥 덕분에 가문의 사업도 호황이었다.
자신이 손대지 않아도 일은 잘 굴러가고 있다.
“그래 까짓거 뭐라고….”
행사 몇 개에 나가서 얼굴 비추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일까.
군권만 쥐고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게 양심에 찔리기도 했다.
카를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눈을 감았다 뜬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래. 뭐… 공작, 하면 되지. 뭐가 그리 어렵다고. 지금까지 잘해 왔잖아.”
더군다나 정무에 시달릴 일은 없다.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얼굴도장을 찍어야 하는 행사도… 당분간은 무시할 수 있을 테고.
그리 결론을 내린 카를은 창밖을 보았다. 마차는 어느새 제도의 중심가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첫 번째 문제는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앞으로 한 달 정도… 그사이에.”
아티팩트의 설계를 끝마쳐야 한다.
카를은 짐칸을 가리는 천을 걷고 짐칸을 향해 팔을 뻗었다.
황제의 배려를 통해 빌린, 황실 마법사들의 마공학 서적들이 있었다.
그중 한 권을 집어 든 그는 천천히 페이지를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까.
그가 만들고자 하는 아티팩트는 ‘황천’을 상시 유지 시켜 주는 물건이었다.
자신의 겉모습을 엘프로 바꾸는 것은 간단한 환영 마법이나 변형 마법으로도 가능했다. 문장까지 갈 것도 없이 단어 하나면 충분하다.
하지만, 마족들은 그런 눈속임으로 속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위장은 힘을 들여도 의미가 없어.’
위장 마법으로 몸을 숨겨도 웬만한 마법사는 간파할 수 있다. 은빛 거미가 자신의 팔들을 적극적으로 숨기지 않는 이유기도 했다.
신경 써서 감춰도 마탑에 소속된 마법사라면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황천은 다르지.’
외형을 속이거나 바꾸는 게 아닌, 몸에 흐르는 마족의 피를 일깨우는 것.
종족의 특성인 ‘귀가 길어진다’ 따위는 일종의 부작용에 가까우니 마족들의 눈으로도 간파하는 건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이런 마법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유지를 하는 거냐는 거고.’
황천은 최고위 흑마법 중 하나였다. 그런데 지금의 자신은, 다른 마법은 몰라도 흑마법엔 조예가 깊지 않았다.
범위를 작게 압축시키는 것부터 가능한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까지.
하나하나가 해결하기 힘든 난제였다. 더군다나 아티팩트를 만드는 데 쓰일 마력석을 구하기 위해 멸지에도 들려야 했다.
그렇기에 워프 게이트가 아닌 마차로 이동하는 것을 택했다.
“…으음.”
카를은 자신의 특성창을 띄웠다.
하드라이누스, 쌍둥이 사도 그리고 일라이트까지.
세 명의 사도를 쓰러트리고 얻은 특성 포인트를 두 곳에 나누어 사용했다.
하나는 「심화 사고 능력」.
「분석」과 「이해」와 달리 오랫동안 기초에 머물러 있었기에 거리낌 없이 투자했다.
다른 하나의 특성은 「인벤토리」였다.
‘이딴 게 100포인트라니.’
정해진 개수의 물건을 인벤토리라 불리는 아공간에 저장할 수 있게 해 주는 특성.
시아나가 비슷한 마법을 활용하는 모습을 자주 보아서일까, 포인트가 아깝게 느껴졌다.
‘나한테 그만한 공간 마법 숙련도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지.’
쯧, 혀를 찬 그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새하얗게 열린 아공간의 틈. 그 안에서 크리스탈 해골을 꺼냈다.
해골을 꺼낸 카를은 마부석까지 걸어가 마부를 향해 말했다.
“쉬고 있을 테니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면 깨우지 말도록.”
“앗! 알겠습니다!”
아나스타시아가 고용한 사람인 까닭일까. 마부는 카를을 향해 믿음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만족한 카를은 몸을 돌려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해골 위에 손을 얹었다.
“앗!”
작은 세계 안.
언제나 자신을 기다리는 치즈색 고양이가 밝은 목소리로 자신을 맞이해 주었다.
“주인! 오늘은 뭐 한다?”
“오늘은.”
턱. 카를은 자신이 들고 들어온 마공학 서적을 회랑 속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아티팩트 하나 만들어 보자.”
* * *
“씨발…?”
은빛 거미의 입에서 찰진 욕설이 튀어나왔다. 기껏 숨겨 놓았던 네 개의 팔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거미는 그 팔들로 종이를 빳빳하게 펼쳤다. 남는 팔로 돋보기를 가져온 그녀는 종이에 적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걸… 뭐 어떻게 하라고?”
“만들 수 있나?”
“이걸?”
“설계에는 문제가 없지 않나?”
현실의 시간으로는 한 달. 체감상의 시간으로는 거의 2개월 반을 투자해 만들어 낸 설계였다.
황실에서 빌려온 마공학 서적들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읊을 수 있을 정도로 달달 외웠다.
지금의 자신은 제국 최고의 마도 공학자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그런 만큼 설계에는 문제가 없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설계에는 문제가 없네. 어. 아주 완벽한 설계도를 만들어 오셨어.”
“그러면 만드는 데도 문제가 없지 않나?”
“아니, 이걸 어떻게 만들라고…!”
“무슨 일인가?”
거미가 버럭 소리를 지른 순간 문이 열리며 셰르핀이 안으로 들어왔다.
카를은 그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셰르핀 탑주.”
“음, 자네 돌아왔구먼. 혈색이 좋아졌군. 그래서, 무슨 일인가? 또 거미가 패악질을 부리던가?”
“야, 영감탱이. 이거 봐 봐.”
“음?”
셰르핀은 거미가 내민 양피지를 받아 손에 들었다. 시선, 즉 바라보는 것으로 마법을 펼치는 모사(眸使) 마법이 그가 이끄는 탑의 고유 마법이었지만 그는 마공학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래서 거미가 마공학으로 셰르핀을 이길 수 있다는 카를의 말에 홀라당 속아 아카데미로 왔던 것이다.
“으음. 이건….”
“이게 가능해? 이만한 출력의 마법을 상시 유지하면서 발광도 안 하고 소음도 안 내는 소형 아티팩트를 만드는 게?”
그야말로 꿈같은 아티팩트가 아닐까. 거미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마력만 충분하다면 상급 마법 하나를 유지하면서 본인의 기량만큼 많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의아해하는 거미를 본 셰르핀이 카를의 손목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팔찌랑 맥락은 비슷하지 않나?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 보이는군.”
“맥락으로 따지면 감자랑 고구마도 식감 비슷하니까 감자 심으면 고구마 나오겠다? 영감탱이 눈깔 옹이구멍 됐어? 이게 가능할 것 같다고?”
거미가 기가 찬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고등급 마법 하나를 자체적으로 유지시켜 주는 물건이야! 저건 그냥 마법 하나를 더 쓰게 해 주는 물건이고! 이건 속이 꽉 찬 강정이고 저건 속 빈 강정이라고!”
“그래도 가능은 하지 않겠는가. 충분한 재료와 충분한 시간과 충분한 재능을 가진 제작자만 있으면.”
“재료는 있습니다. 시간은 그리 많지 않고요.”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한가?”
“내년 봄이 되기 전까지는 만들어야 합니다.”
“내년 봄이면 세 달 남았잖아!”
마차 여행에 들인 시간이 한 달에 가까웠다. 그러는 사이 아카데미의 학기는 계속 진행되어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눈까지 내렸다.
북부의 겨울은 흙의 갈색보다 눈의 하양이 더 많이 보이는 계절이었다.
“세 달이면 할 만하지 않겠는가.”
“영감탱이. 자기 일 아니라고 말 막 하네?”
“이 마탑에 들어오는 것을 선택한 건 자네 아니었나.”
“영감 너는 이거 만들 수 있고?”
“못 만드네.”
“그래?”
탁. 거미가 세 개의 팔을 순식간에 뻗어 셰르핀의 손에 들린 설계도를 낚아챘다.
“그러면 내가 한번 만들어 보지, 뭐.”
카를은 셰르핀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 정도야 뭘. 그런 표정을 지은 셰르핀 또한 거의 보이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대신에 까마귀, 너도 손 놓고 기다리면서 날로 먹을 생각은 하지 마.”
“내가 쓸 아티팩트니 당연히 해야지.”
“좋아, 그러면.”
설계도를 책상 위에 올려 둔 거미가 말했다.
“나 잠깐 우리 검사님 얼굴 좀 보고 올게.”
“……검사님?”
“응. 우리 검사님 말이야.”
흐흐흥. 거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신의 연구실을 나섰다.
그 모습을 본 카를은 자신의 팔뚝에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