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동족 (1)
상대적으로 쉽게 깨진 결계와 지나치게 오래된 마공학 결계.
엘프라는 종족 자체가 보수적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전쟁이 발발하리라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는 건 충격적이었다.
‘이건 보수적인 정도가 아니야.’
루크바트가 이미 언질을 했음에도 무시했다. 최근에 장로가 된 이도 아니고, 오래도록 장로 중 한 명이었던 자의 말을.
‘그냥… 답이 없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이런 종족이 뭇 마법 그 자체인 종족이라 불리며 수많은 마법사의 존경을 받아 왔었던 건가.
마법사라 함은,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하는 자들인데.
“미안하군 공작. 우리 동지들은 귀가 어둡거든. 괜찮다면 설명을 한번 해 주겠나.”
“이게… 설명까지 필요한 일입니까?”
“그것도 그렇긴 하지. 하지만 나이나 무지 탓에 그런 간단한 것도 떠올리지 못하는 자들이 많네.”
“루크바트! 말은 가려서 하도록!”
아까부터 카를을 향해 맹렬한 시선을 쏘아 보내고 있었던 레굴루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루크바트는 그를 무시한 채 카를을 향해 말했다.
“레굴루스 저자처럼 말이네. 그러니 공작 자네가 설명해 주면 좋을 것 같네만.”
“…단순합니다. 그냥, 지극히 단순합니다. 마족들의 나라가 둘로 쪼개졌고… 언제 내전이 발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까지 치달았습니다.”
“그건 우리도 알고 있네만.”
한 장로가 중간에 끼어들어 말했다.
“하지만 내전으로 끝날 문제지, 저들이 미쳤다고 제국과 전쟁을 벌이겠는가. 전쟁이 벌어진다고 하는 건 호들갑에 불과하네.”
“…조금만 생각을 해 보시지요. 연합을 창설하고, 이끌고 있는 우두머리가 누굽니까.”
“드라일 아닌가.”
“그 드라일의 출신을 생각해 보십시오.”
“순혈이지.”
“그런데도 짚이는 바가 없습니까? 정말로?”
답답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언성을 높인 카를은 한숨을 내쉬어 이성을 다잡았다.
“마족들이 순혈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그 순혈 마족이 왜 마왕에게 반기를 들고, 신생 마족 연합이라는 반란군을 일으켰겠습니까.”
그랬다.
“애초부터 드라일은 권력을 잡으려고 반기를 든 겁니다! 차별 없는 세상 같은 걸 만들겠답시고 반란을 일으켰겠습니까?”
“그렇다면, 권력을 잡는다면 멈추지 않겠는가. 마왕이 쓰러진다면….”
“간부들은 남습니다. 왕위를 찬탈한 간부들을 바로 내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들에게도 권력을 나누어 주며, 같이 나라를 잘 통치해 보자고 할 것 같습니까?”
카를은 고개를 저었다.
“권력을 차지하려고 반란을 일으킨 자가 잘도 그러겠군요. 제가 드라일이라면 정말 가까운 수족을 빼면 다 제거할 겁니다. 그들을 제거하기 제일 좋은 방법이, 전쟁 아닙니까.”
그것 말고도 그가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증거는 또 있었다.
승천. 증오에서 힘을 얻는 승천자인 드라일에게 태평성대란 곧, 자신의 힘이 약해짐을 증명했다.
힘을 숭상하는 마족들의 사회에서, 나약해진 권력자가 여전히 권력을 붙잡고 있을 가능성은 한없이 낮았다.
“반란과 찬탈, 그 이후는 당연히 전쟁입니다. 설마 이 간단한 걸… 전혀 모르고 계셨습니까?”
“그렇다면 크로우 공작, 그대가 노리는 것은….”
“반란이 성공하기 전에 드라일을 제거하는 겁니다. 어떤 방식을 써서라도요. 가장 적합한 방법이 그에게 직접 접근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카를은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목소리로 ‘황천’을 영창했다.
그의 발밑에 검은 웅덩이가 생겼다.
그 마법을 어렵지 않게 알아본 엘프들이 놀라 눈을 치켜떴다.
마법이 제대로 발동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카를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저희 조모님께선 매몰차게 내쫓겨나시긴 했지만… 그래도 그분의 피는 제 몸에 남아 있습니다. 그 피를 진하게 만드는 것도, 여러분과 똑같은 엘프가 되는 것도 가능합니다.”
검은 머리카락이 마력으로 타올라 새하얗게 물들었다.
피에 깃든 힘을 끌어내는 것이 아닌, 외형을 바꾸는 데만 집중해 개량해 낸 황천이었다.
누가 봐도 엘프라고 할 수 있는 모습으로 모습을 바꿔 낸 카를은 장로들을 향해 말했다.
“엘프들의 대표자. 그 명함으로 저를 포장해 잠입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협조를 구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래서는… 아무것도 안 되겠군요.”
“…안 되지.”
카를이 말을 끝마친 순간 레굴루스가 입을 열었다.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동지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피가 섞여 있다 한들 저자는 엘프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
“겨우 외형을 바꿀 수 있다는 것만 가지고 그를 우리 일족의 대표자로 삼아 마족들에게 보내는 건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동입니다! 만약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우리가 저들을 기만했다 여기지 않겠습니까!”
레굴루스가 카를의 눈을 노려보며 말했다.
“마족들이 설령 제국을 침공한다 하더라도 저희를 우선해서 공격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저들을 기만한다면, 그 대가가 전쟁이 될 겁니다!”
“…….”
“그렇지 않습니까 동지들?”
보다 못한 카를이 입을 열었다.
“…대체 공격당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은 어디에서 나온 겁니까?”
“저들은 한때 우리와 같은 핏줄이었다. 인간들과의 전쟁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국에, 구태여 그들을 적대시 하지 않는 우리를 공격하겠는가?”
“같은 핏줄….”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카를은 장로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전부, 다?”
“…그래도, 아주 남은 아니니까.”
“설마 우리를 먼저 건드리겠나.”
카를은 무심코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의도한 감정 표현이 아닌,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분노의 표출이었다.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이게… 부작용인가.’
마의 피를 진하게 만들어 주는 마법, 황천.
신체까지도 바꿀 만큼 큰 영향을 끼치는 마법인 만큼 정신 또한 그 영향을 피하기 어려웠다.
마법사의 냉철한 이성이 무너졌다.
본래의 정현이 가지는 감정보다도 더한, 원초적인 날 것의 감정이 북받쳤다.
“…제기랄.”
카를은 자신의 주먹을 꽉 쥐면서 욕지기를 뱉어 냈다.
장로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뒤에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시아나가 흡, 숨을 삼켰다.
“지금 동족도 죽이는 작자들이 한때 같은 종족이었다고 그냥 넘어갈 것 같습니까? 다들 왜 그렇게, 답답한 건지… 대체.”
“말은 가려서 해라! 파괴적이고 야만적이어서 말을 나누는 것도 역겹군! 도대체 인간들이란….”
“그러면 더 이성적으로 얘기해 봅시다.”
카를은 레굴루스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하나, 이 대삼림은 클로라리온 가문의 영지 내에 있지요. 영지의 4분지 1을 차지할 정도로 숲은 거대합니다. 과연 클로라리온 공작은 이 대삼림을 자신의 땅이라 여기고 있겠습니까.”
카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겠지요.”
시나리오에서도 스쳐 지나가듯 나온다.
북부가 뚫리고 엘프들이 공격받을 때 클로라리온 공작은 “내 땅도 아닌 곳을 지킬 필요는 없다”라며 손을 놔 버린다.
“클로라리온 공작이, 아니 여러분이 이 대삼림에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클로라리온 공작들은 이 숲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런 공작이, 전쟁이 발발하면 이 대삼림을 지키려고 하겠습니까.”
“…….”
“아니겠지요.”
카를은 검지와 중지를 세워 보이면서 말했다.
“둘. 마족 또한 엘프들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미 한 번 배신을 저질렀고, 제국과 인간의 편에 붙었는데 좋게 보는 것도 불가능하지요.”
아군은 없고, 적군만 있는 상황.
“셋. 전쟁이 발발하면 최전선의 지휘를 맡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접니다. 제게 대삼림이 있다는 것 외에는 지킬 이유가 전혀 없는 땅이 이곳, 동쪽입니다.”
지켜 줄 수 있는 방패도 없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십시오. ‘한때 같은 종족이었으니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따위의 허망한 기대를 갖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란 말입니다.”
“…우리를 협박하는 건가. 인간.”
“하….”
카를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입을 열어,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당신들은 발전이 없습니다.”
“…뭐라?”
“창천, 발현.”
카를은 곧장 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인간보다 귀가 두 배는 크면서 말귀는 도저히 알아먹지 못하는 이 엘프들을 말로 설득하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평소의 자신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 하지만 ‘황천’이 발현된 상태의 카를의 이성은 제 스스로의 행동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
“침식.”
대삼림을 이루는 결계는 알시아의 육신이라 일컬어지는 ‘어머니 나무’를 코어로 삼는다.
그 높게 자란 나무를, 카를은 결계를 뚫고 들어오며 두 눈으로 보았다.
결계의 코어라지만 특별할 건 조금도 없는 평범한 나무였다.
‘결계의 코어를 빼앗는다.’
칼렉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존재해 온 결계.
그때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바뀌지 않은, 구시대의 마법.
그런 구시대의 마법을 이겨 내지 못할 정도로 허투루 단련하지 않았다.
“지금, 무슨 짓을!”
장로들이 경악해 목소리를 터뜨렸다. 레굴루스가 가장 격하게 반응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의 손끝에서 하얀 마력이 모여 바람의 마법이 맺혔다.
스치는 것만으로도 피부를 벨 수 있는 바람 칼날. 레굴루스는 거리낌 없이 그 바람을 쏘아 냈고.
“다, 다 생각이 있는 거지? 그치, 카를…?”
“예.”
난데없이 허공에 뚫린 균열에 의해 가로막혔다. 장로들만큼이나 놀란 시아나가 일단 카를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아낸 마법이었다.
“믿어 주십시오.”
“알겠어, 그러면….”
알게디. 아크투르스. 베가.
알파성의 이름을 가진 엘프들이 펼쳐 낸 마법도 허무하리만치 쉽게 막혔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존재감이 없었던 시아나가 엘프들의 눈에 들어왔다.
“저 인간은 대체….”
탑주塔主.
시나리오에서 말하길, 모든 마법사들의 정점.
그 ‘모든 마법사’에는 당연하게도 엘프들이 포함되었다.
“…모든 꽃향기를 삼킨다.”
엘프들이 발한 자연계 마법들이, 공간의 비틀림과 동시에 일제히 사그라들었다.
카를은 이미 확신을 하고 있었다.
저들이 합심한다고 해도 결코 시아나를 제압하지 못하리란 것을.
‘마법사들은 물론이고… 탑주들까지 껴서 겨우 제압했다.’
갓 태어나 시아나의 몸을 차지한 사도마저 그랬다.
온전한 제정신인 지금은 그때처럼 셰르핀과 키시온의 도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제압할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될 정도였다.
“큭.”
레굴루스가 이를 악물었다.
그는 젊은 장로들에게 명령을 내려 어머니 나무에 대한 침식을 막도록 했으나.
“…끝났습니다.”
그들이 채 회의실을 나서기도 전에 카를의 입이 열렸다.
즉각적으로 밖으로 나가서 대처하지 않은 이유를 이해했다.
어머니 나무를 감싸는 마력 방벽이 무려 세 겹이나 되었다.
그 방벽이 시간을 끄는 사이에 카를 자신을 직접 제압하는 편이 옳다고 생각했으리라.
‘그런데….’
생각보다도 방벽이 훨씬 허술했다.
분명히 마력으로 만들어진 방벽임에도 불구하고 방어막이 아닌 방패에 가까운 마법이었다.
당연하게도 방어막을 뚫는 것보단 방패를 뚫는 게 훨씬 쉬웠다.
“10년이면 새로운 이론이 정립되고도 남는 시간입니다. 그런 10년이, 30번을 넘게 흐르는 동안 우리는 발전했고.”
카를은 자신이 빼앗은 결계의 코어를 오른손에 띄워 보였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엘프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개중에는 놀라서 혼절하는 자도 있었다.
“당신들은 그대로입니다.”
“…….”
“발전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지요. 그게 순리입니다. 당신들이 그렇게 섬기는 알시아가 관장하는 자연의 섭리란 말입니다.”
도태되었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여느 도태되는 생물이 그렇듯, 그 끝을 기다리는 건 몰락이다.
“저는 그 멸망을 막으려는 겁니다. 여러분과 똑같은 피가 제 몸에 흐르고 있기 때문에!”
카를이 목소리를 터뜨렸다.
기세에 눌린 엘프들이 입을 다무는 바람에 사위가 적막해졌다.
그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협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