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동족 (5)
이레시아의 연합 본부.
본부는 이레시아는 물론이고 근방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그리고, 신분의 제약 없이 아무나 출입할 수 있는 장소였다.
표면상으로만 강습병이었고, 실상은 노예 취급을 받았던 칼리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칼리?”
아니, 그녀는 아예 본부에 방 하나를 배정받았다. 연합의 간부만이 방을 배정받을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예외적인 일이었다.
그런 칼리의 방 안으로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들어왔다.
“……?”
“아, 미안하군.”
그녀가 옷을 갈아입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방문자는 멋쩍게 사과하며 밖으로 물러났다.
잠시 뒤, 환복을 끝마친 칼리가 방문자를 향해 말했다.
“다 갈아입었어요.”
“들어가도 되겠는가?”
“네에.”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건장한 체구의 여성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눈을 마주친 칼리는 잠시 할 말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얇고 가벼운 백지장 같은 눈빛.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동자였다.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어도 그 이질적인 모습은 괴리감을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무슨 일이에요?”
“대장군이 돌아왔다. 칼리 그대를 불러 달라더군.”
칼리의 물음에 그녀는 허리춤에 찬 검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상한 상황이었다.
아무리 드라일이 연합의 수장이고 ‘대장군’이라고 하더라도.
눈앞의 여성은 한낱 심부름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말리아 당신한테요?”
연합의 간부 서열 3위.
마족 중에서도 그 개체 수가 현저히 적은 ‘에고소드’가 그녀의 정체였다.
“보통이라면 내게 이런 사소한 명령을 시키진 않겠지.”
“그러면요?”
“칼리 그대와 내가 함께 가야 하는 일인 듯하다. 급하니 내게 시켰을 것이다. 아마 그대가 근처에 있었다면, 그대를 시켰을 테지.”
“제가 말리아 당신과 함께… 라면.”
일단은 신분이 ‘귀환한 패잔병’에 불과한 칼리가 서열 3위의 간부, 그리고 대장군과 함께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그래. 마녀들이 돌아왔더군.”
안타레스.
일단 저들은 칼리 자신을 탈출시켜 준 엘프라고 믿고 있는 자가 왔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마른침을 삼켰다.
‘일단… 아무 일도 없는 것 같긴 한데.’
자신과 카를이 말을 맞추어 만들어 낸 거짓말도 아직 발각되진 않았다.
하지만 직접 마주하면, 발각당할 가능성은 존재했다.
위장이 철저하지 못하면 거의 무조건 발각당할 것이다. 지금까지 칼리가 봐 온 드라일은 그만큼 눈썰미가 좋고 눈치가 빠른 자였다.
‘제대로… 했겠지?’
긴장된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칼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말고도 실라스도 불렀을 것이다. 켈리단은 다른 용무가 있다고 들었으니… 넷이서 가게 되겠군.”
서열 2위의 간부. 실라스.
드라일과는 다른 의미로 연합의 상징 같은 인물. 능력만 있다면 누구라도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걸 표방하듯, 그의 종족은 고블린이었다.
대장군 드라일과 실라스, 말리아를 비롯한 최고위 간부들이 간다면….
‘으.’
아무리 그가 강하더라도, 정체가 밝혀지면 살아남기 어렵다.
걱정하지 말라고 장담까지 해 두었으나 걱정되는 건 사실이었다.
그 우려의 감정을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칼리는 말리아와 함께 연합 본부의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음.”
최상층의 입구에서 키가 큰 고블린이 그들을 향해 고개를 까닥 숙였다. 실라스였다.
칼리와 말리아가 도착한 것을 확인한 실라스는 방문을 두들겼다.
“다 왔군.”
쿠웅. 바닥이 살짝 흔들렸다.
다만 방에서 걸어 나왔을 뿐인데 순간 그의 존재감에 압도당했다.
이마 양 끝에 달린 두 개의 뿔. 툭 튀어나온 입.
마족들 중에서도 최상위 종족으로 분류되는, 미노타우르스였다.
그는 손바닥의 절반도 못 되는 작은 종이 쪽지를 들여다보았다.
“안타레스가 도착했다는 소식이다. ‘마른 나뭇잎’ 술집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더군.”
대장군.
짤막하게 쪽지의 내용을 설명한 그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의중을 알 수 없는 표정. 그저 상황을 설명했을 뿐인 그의 말에 칼리의 불안감은 한층 더 커졌다.
사실, 이미 모든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을 하는 건 아닐까.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칼리는 천천히 그를 따라갔다.
“……음.”
“이상하게 조용하군.”
“술집에 손님은 있다. 왜 다른 곳과 달리 이곳만 조용한지 모르겠군.”
‘마른 나뭇잎’ 술집 앞에 도달한 드라일, 실라스 그리고 말리아가 각각 중얼거렸다.
당장 다른 술집은 가희들의 노랫소리와 손님들이 떠드는 소리 때문에 분위기가 왁자지껄했다. 하지만 그곳만은 적막했다.
“……얼굴 없는 신랑은 오직 밤에만 만날 수 있었지. 이름 없는 시종들은 극진하였으나 인형 같았지. 그들과의 대화에서 즐거움을 얻는 건 말라비틀어진 밭에서 곡물을 수확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네. 결국 프시케는 신랑에게 간청했다네.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고.”
오묘한 목소리가 술집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술을 끊임없이 퍼마시는 것으로 유명한 노움들의 술잔도 비어 있었다.
술집에 저 목소리밖에 없어서일까, 아니면 저 목소리 때문에 다른 목소리가 사라진 걸까.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신랑이 말했네. 가족들의 호기심과 말을 조심하라고. 그리고는 서풍의 신령에게 부탁해 프시케의 가족들을 산 위의 궁전으로 데려왔네. 프시케, 그녀의 언니들은 이름 없는 시종들의 극진한 대접과 웅대한 궁전의 모습에 질투했네. 그들의 신랑 중 한 명은 머리가 몽땅 빠져 버린 대머리에, 구두쇠이고 다른 한 명은 병이 들어 매일같이 수발을 들어야 했거든.”
키득거리는 소리가 살짝 흘러나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잡음에 불과했다. 그다음 목소리에 묻혀 사라질.
“언니들이 프시케에게 말했네. 아폴론께서 내린 신탁을 떠올려 보려무나… 네 신랑은 무시무시한 괴물이라고 하지 않았었니? 마침 이 궁전 근처에 커다란 괴물 뱀이 지나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하더라…… 자아, 여기 등불과 칼을 줄게. 몰래 그의 얼굴을 확인해 보려무나, 그리고 만약 괴물이라면 그의 목을 베어야 해. 그래야, 네가 산단다. 만약 괴물이 아니더라도, 무슨 일이 있겠니? 네 신랑이 정말로 너를 사랑한다면 말이야.”
“으….”
“프시케는 신랑의 말을 떠올렸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자신의 얼굴을 보지 말아 달라고. 자신을 믿어 달라고. 하지만 프시케의 마음은 흔들렸네. 밤에만 찾아오는 얼굴 없는 남편보다는 혈육이고, 가족인 언니들의 말이 더 믿음직스러웠거든. 결국 그녀는 언니들의 말에 따라 등불과 칼을 침대 밑에 숨겼어.”
일인 연극.
음유 시인처럼 시를 읊던 그가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말을 이었다.
“프시케는 신랑을 끌어들여 밤일을 치렀네. 사랑으로 행해진 것이 아니었어. 신랑을 지치게 만들어… 그가 잠든 틈에 얼굴을 들여다볼 셈이었지. 그녀가 뜻한 대로 신랑은 지쳐 잠들고 말았어. 프시케는 침대 밑의 등불을 꺼내 불을 붙였다네….”
칼리가 서 있는 장소는 입구 근처의 복도였다.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였던 탓에 목소리가 잘 안들렸다.
조금 더 앞으로 가려던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어?’
공연을 하고 있는 건 웬 엘프였다. 머리카락이 하얗고 귀가 긴, 전형적인 엘프.
하지만 얼굴이 익숙했다.
그러니까.
‘저, 저 인간이 왜 여기 있어?’
카를이었다.
“허억…!”
“헉?”
“흡?”
그가 숨을 들이켰다.
이미 그에게 몰입해 있었던 관객들도 동시에 숨을 삼켰다.
“프시케가 본 것은 괴물이 아니었어. 하지만 사람도 아니었지. 그녀의 신랑은 새하얀 날개를 단, 절세 미남이었던 거야. 프시케는 한눈에 그를 알아보았어. 신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신, 에로스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보는 신랑의 얼굴에 홀린 프시케는 더더욱 가까이 다가가 그의 얼굴을 보았어… 그런데, 앗!”
그가 목소리를 터뜨린 순간이었다.
술집에서 유일하게 공연에 몰입하지 못했던 한 사람, 아니 한 검이 조용히 입을 열어 드라일을 향해 속삭였다.
“장군.”
“……음?”
“저기서 공연을 하고 있는 엘프가 안타레스처럼 보입니다. 왜 부르시지 않습니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내버려두지.”
연극에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다.
아니, 재능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휘어잡고 있었다.
일단 연합에는 그와 같은 재능을 가진 자가 없었다.
“프시케가 들고 있는 등불에서 기름이 한 방울 흘렀어. 불꽃에 달궈진 기름이 떨어져서… 에로스의 어깨에 떨어졌지. 편안하게 잠들어 있던 에로스는 깜짝 놀라서 눈을 뜨고는 보고 말았지. 프시케가 손에 든 등불과, 단검을.”
“아아아…!”
그의 연극을 가장 앞자리에서 보던 마녀들이 자그마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
“어리석은 프시케, 난 그대를 위해 어머니의 명령까지 어겼는데! 그런데 어떻게 나를 의심하고 목을 자르려고 하는가!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던가, 가족들의 말을 조심하라고. 내 말은 무시하고 가족들의 말을 중히 여겼으니, 그대는 내가 아니라 가족들을 더 사랑하는 것 같으니 돌아가시오! 그렇게 외친 에로스는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 버렸어. 프시케가 그를 따라갔지만 그녀에게는 날개가 없어서 창문 밖으로 나갈 수 없었지…. 에로스는 그런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고 떠나 버렸지.”
거기까지 말한 카를은 고개를 저으면서 술집 안을 둘러보았다.
대장군 드라일과 그의 휘하의 간부들. 그리고 칼리까지.
이미 그들이 술집에 들어오는 모습을 진작에 보아서 알고 있었다.
“화려한 궁전이 사라지고 폐허만이 남았네. 프시케는 절망과 함께 배가 불러오는 것을 느꼈어. 아아, 불쌍한 프시케….”
하지만 모른 척을 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아…!”
“어?”
“으?”
“에?”
객석을 둘러보며 말을 이어가던 카를이 한 지점에서 시선을 멈추고 입을 떡 벌렸다.
마녀들이 제각기 소리를 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머지않아 관객들도 다시 손님으로 돌아와 그의 시선을 좇았다.
“드라일 장군님이시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연기에 과하게 심취해 있었나 봅니다. 아아, 죄송합니다. 여러분. 장군님을 뵙기 전까지만 할 생각이었어서….”
“헉.”
“허어?”
“아니, 아니, 이건 아닌데….”
마녀들이 좌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마찬가지로 몰입이 깨진 관객들이 허망한 소리를 내었다.
다만 이렇게 된 원인은 ‘대장군’이었다. 신생 마족 연합의 수장.
연합의 지배 아래에 있는 도시의 주민들이었으므로 관객들은 감히 드라일을 원망하지 못했다.
“…안타레스.”
겨우 이런 일을 가지고 난감해한다면 ‘대장군’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은 확실히 이상해졌다. 졸지에 공연을 망친 난입범이 된 것이다.
드라일은 무심코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고, 카를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안타레스?”
“안타레스라면….”
“그 엘프 맞지?”
관객이 되어 있었던 손님들이 중얼거렸다.
무려 대장군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신뢰도는 한없이 높았다.
인간들로부터 마족들을 구원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한 엘프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그들 사이에서 술렁이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타레스!”
“그건 그렇고 프시케는!”
“프시케는 어떻게 됐는데?”
제일 앞에 앉아 있었던 마녀들이 외쳤다.
드라일이고 뭐고 일단은 연극을 계속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마녀들과 합의를 봤다. 대장군이 오기 전까지만 공연을 하겠다고.
그걸 자각시켜 주기 위해 카를은 마녀들과 드라일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 그게….”
“장군님! 이거 끝나고 하면 안 될까?”
“나, 나 너무 궁금한데!”
“신랑이랑 다시 만나는지만 알고 싶어!”
“…….”
마녀들마저 그렇게 말하자 드라일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한 번 시작한 공연은 끝을 봐야지.”
“감사합니다 장군님! 저 안타레스, 다시 연극을 시작하지요. 제가 어디까지 했었죠?”
“불쌍한 프시케까지 했어!”
“감사합니다. 그럼….”
그날 ‘마른 나뭇잎’ 술집은 개점 이래로 가장 많은 손님을 받았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자, 이레시아 전역의 마족들이 안타레스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