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안타레스 (5)
며칠 뒤, 아침 해가 밝자마자 마녀들은 8군단의 병영을 찾아갔다.
마침 병영 밖에 있었던 카를을 발견한 그들은 잽싸게 날아가 물었다.
“안타레스!”
“19번!”
“오랜만이야!”
극소수를 제외하면 성대가 굵직한 남자밖에 없는 병영에서 발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를은 그들을 돌아보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응! 오랜만!”
“그런데 안타레스….”
“지금 뭐 하고 있어?”
마녀들이 카를을 바라보면서 일제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일과입니다.”
“일과라구?”
“엄청 큰 구덩이를 파는 게…?”
“혹시 누구 죽이고 묻으려는 건 아니지?”
병영의 뒤편. 연병장으로 쓰기 위해 잘 관리된 앞쪽과 달리 뒤쪽은 그냥 황무지였다.
잡초밖에 없는 그곳에서 병사들이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고블린부터 오우거까지 다 같이 곡괭이질을 하는, 광산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었다.
“죽이다니요.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 다 팠습니까?”
오우거는 덩치가 크고 힘이 좋아서 곡괭이를 잘 휘둘렀다.
구덩이를 파고 있는 병사들 중에서 가장 먼저 완성한 오우거를 향해 카를이 말했다.
“잘했습니다. 메우십시오.”
“자, 자, 장군님… 이미 한 번 메우고 또 판 건데….”
“알고 있습니다. 메우십시오.”
“예…?”
“…….”
“알, 알겠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팔짱을 끼면서 오우거를 빤히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오우거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자신이 팠던 구덩이를 다시 메우기 시작했다.
세 배는 덩치가 큰 오우거가 쩔쩔매는 것을 본 마녀들이 놀라서 물었다.
“뭐 하려고 판 거 아니었어?”
“왜 다시 메우라고 하는 거야?”
“잘못 판 거야?”
“아닙니다.”
“그러면 왜?”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잖아.”
“근데 병사들한테 왜 구덩이를 파게 해?”
그러는 사이에 또 한 명의 병사가 구덩이를 다 팠다. 그 병사는 뭐라고 하기도 전에 카를의 얼굴을 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고는 구덩이를 메우기 시작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카를이 마녀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자야 하는 시간에 잠은 안 자고 이상한 짓을 하길래 힘이 남아도는가 싶어 시험해 보고 있습니다.”
“이상한 짓?”
“그게 뭔데?”
“뭐길래 그래?”
“잠도 안 자고 몰래 부하들을 두들겨 패고 있는 걸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아아, 하고 탄식한 마녀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병영의 군기를 바로잡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했다.
구덩이를 파게 시키는 것도 그 일환이리라. 그렇게 여긴 마녀들이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안타레스.”
“왜 아직도 출전을 안 해?”
“아직도 군기가 안 잡혀서?”
“으음… 아뇨.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카를은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시 오우거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두 번째 구덩이를 메워 낸 오우거가 땀을 닦아 내는 모습을 본 카를이 말했다.
“아, 다 메웠습니까? 다시 파십시오.”
“자, 장군님! 차라리 죽여 주십시오!”
“소중한 병사를 어떻게 죽이겠습니까. 귀관은 성채를 돌파할 때 앞장서야 하는 중요한 전력입니다. 잔말 말고 다시 파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그러니….”
“예. 알겠습니다. 잘 들었으니 일단 파십시오.”
오우거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것도 잠시, 결국 구덩이를 파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오우거가 곡괭이질을 시작했다.
만족스레 웃은 카를이 마녀들을 보면서 말했다.
“군기는 충분히 잡혔습니다. 이 짓을 2주 정도 하니 병사들이 저를 장군이라고 부르더군요.”
“어….”
“어어…”
“어어어….”
마녀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어 댔다.
“그런데 아직 부족합니다.”
“이걸로 부족해…?”
“군기는 충분히 잡혔다면서.”
“혹시 훈련이 부족하다는 거야?”
“병사들이 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카를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병사들이 장군을 존경해야 한다는 거면 또 모를까,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일지 궁금해 마녀들은 그의 말을 기다렸다.
“제가 출정해야 하는 곳은 레칸과 레카샤입니다. 과거에 이미 한 번 정벌에 실패했고, 그곳을 지키는 ‘남작’ 자매 또한 명장으로 유명하지요.”
“으음….”
“확실히 그렇긴 하지.”
“안타레스 네가 미친 게 아닐까 싶었어.”
“예. 미친 짓이지요. 병사들도 그걸 압니다. 첫 군사 회의 때 백인장들이 출전을 꺼리는 것이 보이더군요.”
하긴, 하고 마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7군단이 전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3군단이 전멸해 그 충격이 더더욱 컸다.
새로 들어온 신참 병들도 13군단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았다.
“그러니 출정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겠지요. 그런 병사들을 억지로 끌고 나가 봐야 13군단이 전멸한 것처럼 전멸할 게 분명합니다.”
그가 말하는 사이 어디선가 나타난 개가 카를을 향해 다가와 꼬리를 흔들었다.
털이 새하얀 개였다. 날렵하게 생긴 것이 꼭 제 스스로가 사냥개라 주장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 개가 그거구나!”
“안타레스 네가 키운다는 개!”
“사냥개면 엄청 좋은 품종이지?!”
“귀한 품종이라고 들었습니다. 순혈 귀족들이나 키우는 개라더군요.”
“그럼 엄청 귀한 녀석이네!”
“만져 봐도 돼?”
“이름이 뭐야?”
“예. 괜찮습니다. 이름은 시프라고 지었습니다.”
마녀들이 머리를 쓰다듬고 털을 만지작거렸지만 개는 가만히 있었다.
사냥개는 생긴 것과 다르게 순했다. 정확히는 카를 때문에 순한 것이었다.
마물이 아닌 평범한 개. 마법을 활용해 자신을 주인이라고 각인시키면 쉽게 충견으로 만들 수 있었으니까.
카를은 시프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을 이었다.
“어쨌든, 병사들이 적이 아니라 저를 두려워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직 부족하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아직 병사들은 저보다 적들을 더 두려워합니다.”
“맞는 말이긴 한데….”
“공포는 부작용이 있어.”
“너무 공포로 억누르면 반발이 생길 거야.”
“생겼습니다.”
마녀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카를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반발을 억누르는 것도 지휘관이 할 일이지요. 한낱 병사에게 질 만큼 나약하진 않습니다.”
마족들은 힘으로 논리를 따지니 편했다.
자신에게 반발하여 한판 붙자고 나선 오우거 하나를 압도적으로 찍어 누르자 모든 오우거가 복종했다.
8군단 내에서는 가장 강한 종족이 오우거였다. 그런 오우거들이 복종하자 다른 종족들도 알아서 설설 기었다.
“저는 군율을 바로 세우고, 병사들을 합당하게 대우하고 있습니다. 공포로 억누르더라도 ‘이게 옳다’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저절로 반발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반발할 명분이 없으니까요.”
“우와….”
“이런 간부는 처음 봤어….”
“진짜 안타레스 네가… 특이한 마족이긴 하네.”
그렇게 중얼거린 마녀들은 카를과 함께 병사들이 구덩이 파는 것을 구경했다.
새벽부터 시작한 구덩이 파기는 한나절 내내 이어져 점심 무렵에야 끝났다.
곡괭이에 수없이 갈아엎어진 황무지가 당장에라도 씨앗을 파종해도 될 법한 땅이 될 정도였다.
“병사들이 너보고 미친놈이래!”
“엘프가 아니라 마귀 같다더라!”
“보고서에 올라온 거랑 완전 똑같네.”
“원래 병사들은 저를 배신자 내지는 귀쟁이라 불렀습니다. 그것보단 미친놈이나 마귀가 낫지요. 최소한 병사들이 저를 두려워한다는 뜻이 아닙니까.”
어느 세계나 미친놈은 두려움을 사는 법이었다.
빙그레 웃어 보인 카를은 병영 식당에서 일반 병사들과 뒤섞여 점심을 먹었다. 오늘은 마녀들도 함께였다.
마녀들은 체구가 작아 한 번에 먹는 양이 적었고, 카를은 일부러 그들에 맞춰 천천히 식사했다.
식당이 텅 빌 때쯤 식사가 끝났다. 카를은 마녀들을 향해 물었다.
“여러분, 혹시 이후에 일정이 있으신지요?”
“없어!”
“장군한테 네 동태를 보고하는 것 정도?”
“근데 장군은 바쁠 시간이니까 나중에 가도 돼!”
“그러면 잠시 시간을 내어 주시겠습니까? 날이 좋으니, 사냥이라도 같이 가시지요.”
마녀들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군기를 잡고, 병사들을 갈구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드라일이 ‘잘하고 있다’라고 말했을 정도였으니.
“사냥?”
“여기에 뭐가 있다고….”
“이 뒷산에 악마가 나온다는 소문이 있던데, 악마 잡으러 가는 거야?”
“평범한 짐승 사냥입니다.”
오전에 있었던 일들은 그저 보여 주기였고, 실상은 안타레스가 군율을 바로 세운다는 핑계로 놀고만 있는 게 아닐까.
마녀들의 머릿속에 그런 의문이 떠올랐다.
사납게 생긴 사냥개가 안타레스에게 반갑게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자면 그가 얼마나 많이 사냥을 나갔는지 짐작이 갔다.
사냥은 놀이에 불과했다. 드라일 대장군이 내린 임무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시간 낭비.
만약 그가 정말로 자신의 임무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것이라면, 적당히 손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머릿속으로 의견을 나눈 마녀들은 그 생각이 드러나지 않도록 발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음… 그러면 갈까?”
“오늘은 날도 좋으니까.”
“그래, 가자! 난 악마 나오면 악마 잡을래.”
“재미있으실 겁니다. 오늘은 시프도 사냥에 갈 예정이거든요.”
“원래 시프는 안 데리고 갔어?”
“예. 겨울 사이에 못 먹어서 비쩍 마른 탓에 데리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식당 입구에서 뼈를 씹어 먹던 시프가 카를을 보고서는 몸을 일으켜 다가왔다.
시프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카를은 마녀들을 데리고 무기고로 향했다.
“어?”
“다 모여 있네?”
“우리만 가는 게 아니었구나?”
“지리를 잘 아는 병사들입니다. 아직은 제가 저 산의 지리에 미숙한지라.”
카를이 양해를 구한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마녀들은 괜찮아~ 라는 말을 하면서도 병사들을 살폈다.
지휘관 대리였던 요한나 그리고 다른 병사들의 계급은 전부 다 백인장이었다.
안타레스가 군율을 어긴 병사들을 졸병으로 강등시켰다는 말은 유명했다.
하지만 백인장은 괜히 그 명칭이 백인장인 것이 아니다. 항상 일정한 수가 유지되는 법이었다.
이곳에 있는 백인장들은 그가 새로 뽑은 ‘그의 사람’이 아닌가.
마녀들은 그런 의심을 품은 채 카를을 따라 뒷산으로 향했다.
“…….”
“뭔가 이상해.”
“…사냥을 즐거워하는 것 같진 않은데?”
마녀들은 멀리 떨어져서 안타레스를 관찰했다.
활과 화살을 든 그는 토끼는 물론이고 사슴 따위의 커다란 사냥감이 나타났을 때도 적극적으로 사냥을 하기보다는 설렁설렁 움직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활 솜씨 하나는 대단해서 먼 거리에서도 토끼를 정확히 쏴 맞췄다.
“시프, 가져와.”
“…….”
“시프.”
하얀 사냥개는 혀를 내밀고 헥헥거릴 뿐이었다. 잠시도 주인과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안타레스는 사냥개를 타이르듯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시프. 일어나.”
“…….”
“일어나서 내가 맞힌 걸 가져와.”
의문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에 셋째 마녀가 그를 향해 다가가 물었다.
“원래 사냥개라면서? 종만 사냥개고 훈련이 안 되어 있었던 거야?”
“훈련은 잘되어 있습니다. 제가 무슨 명령을 하는지도 알아들을 겁니다.”
“그런데 왜… 네 말을 안 들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녀석은 사냥개로 써먹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그는 시프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한나 공?”
“예. 안타레스 장군님.”
“돌아가는 대로 병사들을 모아 주십시오. 오늘 출정식을 열겠습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는 화살을 등에 메고 떠날 채비를 했다.
백인장들도 그 사실을 눈치채고 떠날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사냥한 사냥감을 먼저 챙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 자리의 그 누구도 이 사냥을 즐거워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마녀가 아연한 얼굴로 카를을 바라본 순간이었다.
“출정식만 보고 가시지요. 여러분. 그래야 대장군께 보고를 올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는 병사들과 함게 천천히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셋째 마녀는 왜, 구태여 그가 자신들을 데리고 사냥을 왔는지 깨달았다.
이 사냥 자체가 하나의 준비물에 불과했다.
병사들을 공포로 복종시키기 위한 준비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