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4
14화 마탑 (1)
“나를 위해…?”
카를의 제안을 들은 순간 칼리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를 위해서 싸워 보라고? 그게 무슨 뜻일까.
“칼리.”
“…어? 아, 어?”
“나는 그대와 같은 혼혈이다. 피가 더 옅기는 하지만, 나도 순혈은 아니지.”
카를은 상체를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얼굴이 가까워지고, 눈동자의 모양새가 칼리의 눈에 들어왔다.
바다가 떠오르는 깊은 푸른색의 눈.
인간의 것보다는, 엘프의 것에 가까운 눈이었다.
“엇.”
카를은 칼리의 손을 가져와 자신의 귀를 만지게 두었다. 겉보기에는 차이가 없지만 손으로 만지니 귓바퀴가 살짝 뾰족했다.
이것도 엘프의 특징이다.
“나는 혼혈이다. 알 사람들은 다 알지. 허나 나는 이 자리에 앉아 있다. 북방의 대영주, 크로우 가문의 가주 자리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인간은 순혈이든 혼혈이든 차별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군.”
정확히는, 과거에 차별한 역사가 있었다.
차별 받은 혼혈 인종들이 일으킨 반란 때문에 제국이 한 번 크게 뒤집힌 후에야 차별이 사라지고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설정이 존재한다.
아마 ‘혼혈’이라는 특성을 통해 특수 유닛을 만들기 위한 설정이 아닐까 싶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엘프, 드워프 더 나아가서 오우거나 오크까지… 제국은 그들을 인간이라 부른다.”
아예 차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놓고 드러내진 않는다.
설정에 따르면 이런 차별을 없앤 것이 제국이 오랫동안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나는 쿼터다. 엘프보다는 인간에 가깝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지. 하지만 그대는 하프다. 그대가 생각하기에 달렸지.”
“생각하기 나름….”
나를 마족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인간인 건가?
그런 말을 하려는 건가?
칼리는 한참 동안이나 멍하게 있다가 이윽고 들려온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복수를 하고 싶지 않은가. 마족들에게.”
어머니는 화형당했다. 아버지는 얼굴도 모른다. 그리고 마족들은 자신도 죽이려 했다.
혈마법을 쓸 줄 안다는 것을 안 그들은 자신에게 목줄을 채우고 도구로 취급했다.
당하고만 살았다. 그 모든 것이 갚아 줘야 할 빚이다.
칼리는 자신의 목을 어루만졌다. 목줄 때문에 쓸린 상처와 흉터투성이였다.
“어떻게….”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약간의 긴장과, 희열이 섞여서 생기는 떨림이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될까?”
“간단하다. 나를 따라다니면서, 너의 그 혈마법을 연마하면 된다.”
“그게 다야?”
“마족들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을 테지. 내가 틀렸나?”
“…맞아.”
“그러면 그게 전부다.”
칼리는 한순간 벙찐 얼굴이 되었다.
고작 이게 다라고? 혈마법을 연마하는 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카를이 입을 열었다.
“내가 쓴 마법을 보았을 테지.”
칼리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가 쓴 마법. 생전 처음 보는 언령 마법과 한겨울의 눈 폭풍을 봄에 가져온, 그 말도 안 되는 마법.
“복수를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힘을 갖추면 다가올 전쟁에서 복수를 이룰 수 있을 테지. 마법을 연마하다 보면 너도 나처럼 될 수 있다.”
카를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는 신생 마족 연합의 공신, 혈법사 칼리라는 캐릭터를 알고 있었으니.
“내 생각에 최고의 복수는 허를 찌르는 복수다. 자신이 기르던 개가 집을 나갔다 돌아와 물어뜯어 죽이는 것만큼 억울한 일은 없을 테니.”
자신을 개로 비유하는 말이었지만, 칼리는 기분이 상하거나 하진 않았다.
개가 차라리 낫다. 자신은 개만도 못했으니까.
“받아들이겠는가?”
“…받아들일게, 그 제안.”
카를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책상을 두 번 두드렸다.
손님방의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집사, 마이크가 그 소리를 듣고 안에 들어왔다.
“가주님, 부르셨습니까?”
“준비는 끝났나?”
“예. 방금 전령이 와서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고 전해 달라 하였습니다.”
어리둥절해 하는 칼리에게 카를은 외투 안주머니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검지 크기의 기다란 열쇠였다.
“그걸 가지고 집사를 따라가라.”
“…뭔데 이게?”
“내가 그대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다.”
응?
약간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방금 자신에게 복수를 하고 싶지 않느냐고 제안해 온 사람이 준비한 선물이라면, 속임수나 이상한 것은 아니리라.
그녀는 집사를 따라갔다. 그가 준비한 ‘선물’은 흡사 성과 같이 생긴 거대한 저택 안이 아니라, 마차를 타고 가야 할 정도로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도착했습니다. 내리시지요.”
“…여기가 어디죠?”
“포로수용소입니다.”
황량한 평야에 2층짜리 건물 하나가 지어져 있었다.
포로수용소. 포로란, 전투에서 패배해 생포당한 이들.
즉, 저 수용소 안에 있는 포로들은….
“가주님께서 마족 포로들의 처분을 맡기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열쇠는 그럼….”
“수용소의 출입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선물이라는 게 이거였구나.
그녀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수용소의 출입문에 열쇠를 꽂아 넣었다.
“윽?!”
포로수용소 내부에는 창문이 없었다.
그 때문에, 그녀가 출입문을 열어서 들어온 햇빛에 눈이 부셨던 누군가가 놀란 소리를 내었다.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는 목소리,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대장.
자신에게 목줄을 채우고 끌고 다닌 놈.
“하핫.”
그녀는 섬뜩하게 웃었다.
그리고 손을 입가로 가져가 송곳니로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다.
다른 이의 강요도 아니며, 살아남기 위해서도 아니고 복수를 위해.
오직 자신만을 위해.
* * *
빙결 계열 마법을 단련하자고 마음먹은 뒤로, 카를은 매일 똑같은 시간에 저택 뒤편의 공터로 향했다.
점심 무렵에 대규모 마법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늦은 오후가 되면 마력이 회복되는 괴물 같은 육체 덕분이었다.
어제까지는 결계 마법과 눈보라의 조합에 대해 연구했으나, 오늘은 달랐다.
“이 포인트는… 어떻게 써야 하지?”
마물과 마족들을 처치하고 얻은 포인트.
기존에 쓰고 남은 것과 합쳐 총 16.4 포인트가 남아 있었다.
“특성을 둘 다 구매해도 포인트가 남는데….”
남은 특성은 「초급 성장 보조」와 「기초 사고 능력」.
이 둘 모두 5포인트짜리 특성이니 한 번에 구매하더라도 6.4 포인트가 남는다.
“흠.”
에라 오브 엠파이어의 특성 시스템과 비슷하다면 초급과 기초 특성 다음에도 특성이 있을 것이다.
중급과 심화 특성, 그다음은 고급과 특화.
“…보면 알 수 있겠지.”
특성 포인트.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눈앞에 글자가 떠올랐다.
카를은 망설임 없이 남은 두 개의 특성을 구매했다.
[기초 사고 능력을 획득했습니다!] [초급 성장 보조를 획득했습니다!]메시지 두 개가 떠오른 직후.
갑자기 눈앞에 떠올라 있었던 창이 확 넓어졌다.
“허.”
카를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10개도 넘는 특성들이 늘어졌다. 예상했던 대로 심화 분석, 이해, 사고 능력을 비롯해 중급 성장 보조 특성이 존재했고.
“이것들은 또 무슨….”
포인트를 더 많이 얻는 특성과 게임에서는 함정 특성 취급 받는 받는 피해 감소 특성까지 있었다.
한 개의 특성을 얻는데 필요한 포인트는 열 배로 늘어 50포인트였다.
“기회가 될 때마다 포인트를 벌어 둬야겠군.”
시스템이 ‘적’으로 분류한 마족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면 당장 두 세 개의 특성을 더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부분에서 후회는 없었다.
특성 두 개를 얻는 대신 혈법사 칼리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으니.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
카를이 칼리에게 한 말에는 거짓말이 섞여 있었다.
혼혈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건 사실이다.
다만, 마족은 그 경우가 다르다. 결국 마족은 인류의 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칼리는 마족으로서의 특징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혼혈이었다.
본인이 자기 입으로 마족의 혼혈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게 아닌 이상 들킬 일도 없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문득 카를의 눈에 풍경이 들어왔다.
“잡생각이 너무 많았나.”
어느새 해가 넘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마법을 수련하려 했으나 딴생각만 한 꼴이었다.
마법의 숙련도를 올리는 방법은 결국 수련뿐이다. 특성 포인트가 아무리 많아도 마법은 얼마나 수련했느냐에 달려 있다.
습관을 들일 때까지는 억지로라도 훈련을 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고비는 넘겼으니….”
당분간은 ‘눈보라’ 같은 대규모 마법을 쓸 일이 없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바닥이나 다름없는 숙련도로 최상급 마법을 쓴 것부터가 기적에 가까웠다.
「이해 능력」이라는 다른 마법사들에게는 없는 특성으로 억지로 이루어 낸 결과였다.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 볼까.”
빙결 계열의 기초는 둘로 나뉜다. 얼음을 다루는 방법과 상태를 변하게 만드는 방법.
어떤 것을 먼저 시작할까 잠시 고민하던 카를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얼음을 다루는 방법부터.”
빙결 계열 마법으로 물리력을 행사하는 방법이 얼음을 활용하는 것이다.
카를이 빙결 계열을 단련하고자 마음먹은 이유는 빙결 마법이 가진 방어력 때문이었다.
그 방어력의 출처는 마력으로 만든 얼음이다.
라고, 마법서는 설명하고 있다.
“강도가 중요한 건가….”
탁. 책을 덮은 카를은 미리 챙겨 온 수통을 꺼내 들었다.
마법으로 물을 만들어서 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숙련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챙겨 온 물건이다.
“…날카로워져라.”
뾰족한 창끝을 떠올리며 수통에 담긴 물을 손에 옮긴 뒤 중얼거렸다.
그러자 물방울들이 얼어붙으며 여러 개의 고드름이 되어 카를의 주위에 떠올랐다.
1티어 마법사가 빙결 계열을 단련하면 쓸 수 있는 마법 중 하나, 얼음 화살이었다.
“나쁘지는 않으나….”
한 번에 만들어 낸 화살은 여덟 개.
얼음의 강도는 어마어마할 테지만 그리 날카로워 보이지 않는 모양새다. 창이나 화살이라기보다는 돌덩이에 가깝다.
그렇다고 수가 많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다. 고작 여덟 개.
게임에서는 2티어 마법사가 만들어 내는 수다.
“이 정도 마력으로 고작 여덟 개라….”
숙련도가 바닥이니 어쩔 수 없다.
결국 반복하는 게 답이다.
“재미없는 노가다를 하게 생겼군.”
어쩔 수 없다. 마법이란 신비하면서도, 한없이 정직한 것이었으니.
지금 그의 육신에 깃든 압도적인 숙련도의 결계 마법도 카를로스가 과거에 반복된 단련을 거듭한 끝에 얻어 낸 것이다.
쯧.
카를은 혀를 차고 다시 손에 물방울을 떨어뜨리고, 그것을 마력으로 얼렸다.
다시 만들어 낸 고드름. 슥 살펴보고 그 과정을 한 번 더 반복하려던 카를은 뭔가를 발견하곤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모양이 다르다…?”
첫 번째로 만든 고드름과 두 번째로 만든 고드름의 모양이 달랐다.
첫 번째가 뗀석기라면 두 번째는 간석기일까. 조금 더 다듬어지고 날카로워져 있었다.
“내가 잘못 본 건가.”
그는 다시 ‘얼음 화살’을 사용했다. 세 번째 시도. 이번에는 명확히 날카로워졌다.
여전히 전체적인 모양은 돌이지만, 날카로운 끝부분만은 창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았다.
“묘하군….”
이게 바로 마법의 신비인가.
카를은 속으로 미소 지으면서 다시 한번 마법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