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군단 (3)
“군단장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남작’은 고개를 돌렸다. 태생부터 눈이 하나인 외눈박이 마족이었다.
마족들 중에서는 그래도 머리가 꽤 돌아가는 편이라 ‘남작’이 참모로 삼은 자였다.
“사신의 목을 베어서 보내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흐응. 왜?”
‘남작’은 손에 든 단검의 칼날에 묻은 피를 닦으면서 물었다.
새까만 피. 인간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마족의 몸에 흐르는 지저분한 피.
수건에 끈적하게 묻어 나오는 그 피를 닦으면서 그녀는 참모의 말을 들었다.
“적들이 영 심상치 않습니다. 사신이 가져온 문서의 내용도 지나치게 간결하고… 호신용 단검 하나 주지 않고 보낸 게… 그냥 죽이라고 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쟤네가 정말로 나랑 언니 데려가려고 보냈겠니? 저번에도 까였는데?”
“그렇긴 합니다만….”
“쟤들도 명분 만드려고 보낸 거야. 죽이라고 보낸 거라고. 그걸 이해 못 하겠어?”
‘남작’이 단검을 탁탁 털면서 말했다.
“그래서 죽인 거야. 이해했어?”
“……예.”
“너 쫄았니?”
그녀의 물음에 그는 큼직한 눈을 끔뻑거렸다.
“예?”
“겁먹었냐고. 무섭냐고. 저것들이.”
참모는 잠시간 대답을 고민하다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달랐다. 불길했다.
사신이 가지고 온 문서의 내용부터가 달랐으니까.
―마족들을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 위대한 장군 드라일….
이런 식으로 휘황찬란하게 쓰여 있었던 이전과 달리 이번엔 달랑 한 문장이었다.
―잠시 만나서 담소라도 나누지 않겠는가.
참모는 그 한 문장짜리 문장이 두려웠다. 단순한 절차를 밟는 것 같이 느껴진 탓이었다.
단순히 의사를 물어볼 뿐. 일은 정해진 수순대로 벌어지고, 거기에 대해 자신의 의사는 조금도 반영되지 못하는… 그런 흐름.
“조금. 두렵습니다.”
“야, 쟤네 이번엔 3천밖에 안 된다면서? 저번에 5천 끌고 와서도 처발렸는데 이번엔 그거 반밖에 안 돼! 근데 무섭니?”
“그것이… 다름이 아니라.”
“뭔데. 뭐? 뭐!”
“저들을 이끄는 사령관이 퍽 기이한지라….”
“누구? 아~ 안타레스인가 하는 그 귀쟁이?”
비단 연합뿐만 아니라 모든 마족에게 유명한 자였다.
일단은 제국의 일원이자 동맹 종족인 엘프가 당당하게 제국에 반(反)하는 행동을 저질렀으니까.
북방의 공작 까마귀가 노발대발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그는 다른 간부들과 다릅니다.”
“뭐가 다른데?”
“지능적입니다.”
애초부터 드라일이 지배하고 있었던 ‘이레시아’는 완전히 연합에게 삼켜진 도시였다.
하지만 다른 도시들은, 연합의 치하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그곳에 있는 모두가 연합에 충성하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일부는 마왕을 신봉했다. 그들이 귀가 되어 주고 눈이 되어 주었다.
연합의 간부는 유명하기에 그 눈과 귀를 통해 이야기를 듣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그는 구태여 한 달이라는 시간을 허비해 가면서 군율을 바로잡았습니다. 저들, 8군단은 다른 연합의 군대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군율이 바로잡혀 상명하복이 잘 이루어지면 명령의 효율이 높고….”
“아, 짜증 나.”
귀를 후비던 ‘남작’이 단검을 휙 내던졌다.
허공을 가르면서 나아가던 단검은 참모의 머리 옆에 꽂혔다.
“그래서 어쩌라고. 명령 잘 들으면, 뭐 쟤네가 3천 명인게 3만 명이 되는 거 아니잖아. 근데 겨우 그거 가지고 쫄아?”
“…….”
“나가. 짜증 나니까.”
참모는 고개만 꾸벅 숙이고서 밖으로 나왔다.
확실히 그녀의 말에 틀린 바가 있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병사들이 명령을 잘 수행한다 해도 공성전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의 가짓수가 한정되어 있다. 전술로는 극복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여전히 불길함은 남아 있다.
―잠시 만나서 담소라도 나누지 않겠는가.
참모는 커다란 눈으로 손에 든 서신을 다시 한번 읽었다.
필체가 영 기이했다. 엘프인 탓일까. 구부러지는 글자가 많은 마족의 공용어에는 썩 어울리지 않는 반듯한 필체였다.
그 뭔지 모를 어색함이 불길했다. 마족도 아닌 자가 마족들을 이끌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 자신은 짐작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이겠는가….”
참모는 서신을 고이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성벽을 올라, 저 멀리 진을 치고 있는 적들의 진영을 바라보았다.
키클롭스는 눈이 하나였지만 다른 종족들이 눈 10개를 가진 것보다 뛰어난 시력을 자랑했다.
어지간한 망원 마법보다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눈. 평상시에는 이게 오히려 독이 될 때가 있으나, 군사적으로 활용하기 좋았다.
마치 지금처럼.
“…….”
참모는 적진을 살폈다. 병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커다란 불 앞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과연.
과연 영악한 자였다. 지능적인 자였다. 역사에 병사의 몸을 편하게 해 주는 장군은 있었어도, 정신을 편안케 해 주는 장군은 없었다.
군영을 살펴보던 그의 시선은 가장 거대한 천막으로 향했다.
장군이 있을 천막. 그곳을 지켜보던 키클롭스는 천막을 걷으면서 나오는 엘프를 보았다.
“흠…?”
그는 군영 밖으로 걸어 나왔다. 기이한 상황이었는지, 아니면 시킨 것인지 서큐버스 한 명이 그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아무튼 기이한 상황이어서, 그는 달을 촛불 삼아 적장을 계속해서 노려보았다.
“대체 뭘….”
그는 평원을 걸으며 레칸의 성벽 쪽으로 다가왔다. 달빛이 흘러 넘치는 달 아래에서 그는 입술을 움직이며 무언가 말을 읊조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영악한 것과는 반대로 무언가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그러면 이번 전투는 쉬운 일이다. 적장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다.
그리 생각하던 참모가 다음 순간에 본 것은 땅에서 솟아난 하얀 뼈였다.
처음은 작은 뼈로 시작해 곧 수많은 뼈가 땅 위에서 올라왔다.
“사술(邪術)….”
사술을 다루는 자였다. 수천 구의 시체를 되살렸다. 그러니 3천밖에 되지 않는 병사를 가지고 온 것이다!
그는 기겁하며 성벽을 내려가 ‘남작’의 방으로 향했다.
“군단장님!”
“왜? 또, 뭐?”
“반드시 보셔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녀는 미간으 확 찌푸리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의 감정에 맞춰 줄 때가 아니었다. 참모는 ‘남작’을 거의 떠밀듯이 성벽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망원 마법을 사용해, 자신이 본 것을 그녀에게도 보여 주었다.
“…….”
남작의 얼굴 또한 확 굳어졌다.
이유는 다름 아닌, 사술의 규모.
본디 사령술이라 불리는 마법은 끽해 봐야 수십 개의 시체를 조종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방금 펼쳐진 사령술은, 되살아난 시체는 대충 봐도 수천 개였다.
“저게 대체 뭐야….”
그 가공할만한 마법의 규모에는 ‘남작’ 또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고작 3천의 병력을 가지고 온 이유는 저런 수를 가지고 있어서였던가.
‘남작’은 당황하면서도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저거, 당장 진격해 올 건 아닌 것처럼 보이지?”
“직전까지만 해도 몇몇 병사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전투 직전에 술을 퍼마시게 해 줄 리는 만무하므로, 당장은 아닙니다.”
“내일 아침까진 아니겠네.”
사령술로 되살린 시체는 햇빛 아래에서 취약했다. 밤에는 정말 죽여도 죽지 않는 괴물이라면, 낮에는 툭 치면 부서지는 장난감 수준이다.
저만한 사령술사면 그 정도 사실은 당연히 인지하고 있으리라. 남작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말했다.
“그럼 내일 낮은 아니라는 거네. 적어도 내일 밤.”
“그럴 겁니다.”
“그러면 아까 썰어 둔 목은 내일 낮에 보내. 점심때쯤에.”
자신이 벤 사신의 목은 전투를 시작하게끔 만드는 종소리였다.
상대도 그걸 알고 있었다. 적당한 명분이 필요했고, 적당한 구실이 필요하기에 고작 종을 울리는 데 누군가 피를 흘리게 된 것이다.
“결국 사술을 써서 시체로 공격할 작정이면 낮에는 공격 못 해. 그때 보내면 저녁쯤에는 기세가 어느 정도 누그러져 있을 거야. 그때까지 병사들 잘 재워 둬. 긴 밤이 될 거야.”
“예. 군단장님.”
“씨… 뭐 저딴 놈이 다 있어.”
‘남작’은 욕설을 내뱉으며 망원 마법 너머로 엘프를 보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인상이었다. 최소한 한 번은. 얼굴이 꽤 익숙했다.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저 엘프는 수천 구의 시체를 되살리는 사령술사라는 게 중요했다.
“혹시 갑자기 오늘 밤에 처들어올지도 모르니까 확실하게 감시해. 네가 못 할 것 같으면 믿을 만한 병사한테 시키고.”
“예. 군단장님.”
“에이 씨, 진짜….”
그녀는 욕을 있는 대로 씹어뱉으면서 성벽에서 내려갔다.
말투로 보건대 잠을 자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아마 곳곳에서 수비 준비를 하겠지.
참모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어둠 너머에서 우글거리는 해골 무리를 노려보았다.
* * *
사신의 목이 원래 타고 온 마수의 안장에 매달려 보내진 것은 다음 날 점심 무렵이었다.
간밤에 있었던 일이 널리 알려져 레칸의 병사들은 중무장한 채로 성벽 위에서 탁탁탁, 달려가는 마수를 보았다.
‘남작’ 역시 성마루 아래에서 가만히 그 뒷모습을 좇고 있었다.
“…군단장님.”
“뭐.”
“뭔가 이상합니다.”
마수가 어느 정도 갔을 때 그 뒷모습을 쫓을 수 있는 건 키클롭스인 참모뿐이었다.
그는 아예 적진을 살피면서 말을 이었다.
“뭐가 이상한데.”
“병사들이… 싸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드는데 이건….”
“준비만 시키는 거야.”
그녀가 확신을 담아 말했다.
평범한 눈을 가진 자라고 해도 보일 것이다. 성벽에 서면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적의 군영 옆에, 새하얗게 바글거리는 것이 있다는 걸.
그 새하얀 것들은 해가 떠 있는 낮에는 싸우지 못한다는 것도.
“긴장을 시켜 놔야 해가 떨어지자마자 전투를 시작할 수 있겠지. 설마 미쳤다고 저것들이 당장 들어올까? 시체도 내버려두고.”
“…그렇긴 합니다.”
“그래. 그러니까….”
말을 잇던 ‘남작’은 무엇인가 위화감을 느끼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슬릴 정도로 강렬했던 햇빛이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대신에,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했다.
먼지가 뭉쳐지듯이 먹구름이 서로 모여들었다. 색이 더욱 더 우중충해졌다. 그런 하늘을 바라보던 ‘남작’은 드디어 깨달았다.
“이런 썅….”
어두컴컴해질 정도로 먹구름이 끼자 수천 구의 해골들이 뛰쳐나왔다.
참모가 뿔 나팔을 꺼내 불었다. 그러는 사이 ‘남작’은 주변의 아무 군장을 붙잡고 말했다.
“야! 병사들 다 깨워!”
“예! 군단장님!”
밤에 공격할 것이라는 생각에 꽤 많은 병사를 자게끔 한 상태였다. 지금 성채를 지키는 병력은 채 400명도 되지 않았다.
수비 진형이 완벽하게 갖춰지려면 못해도 30분이 필요했다.
그 30분을 버티는 건 순전히 ‘남작’ 자신에게 달려 있었다.
“성문부터 철문 내려서 틀어막아!”
이미 죽은 시체들에겐 죽음의 개념이 없었다. 무작정 성문으로 돌진해 오면 수십 가지의 성문 방어 전술이 다 소용이 없었다.
아예 뚫지 못하게끔 틀어막아야 했다.
“이것들이…?”
그러더니 성문에는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해골들은 그 얄팍한 손과 팔로 성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것도 예상해 둔 바였다. ‘남작’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바위를 굴려라!”
해골을 죽이지 못하는 화살과 달리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무기.
어젯밤 ‘남작’의 명령으로 구해 둔 바위를 병사들은 한 차례 굴렸다. 성벽을 기어오르는 해골들이 바위에 치여 산산조각 났다.
―그워어어어어!
사람이었으면 전의를 잃고도 남아야 했다. 하지만 해골들은 아니었다.
전방에 선 거대한 오우거 해골이 썩다 만 성대를 가지고 괴성을 질렀다.
움찔. 병사들이 어깨를 떨었다. 레칸에는 오우거가 없기에, 기세 좋게 받아칠 함성 소리가 없었다.
병사들의 관심이 그곳에 쏠린 순간이었다.
“그라아아아!”
갈색 피부의 오우거 하나. 살아 숨 쉬는 적이 폐에서부터 올라오는 커다란 함성을 내지르며 성문을 향해 돌진했다.
아무리 단단한 철문이라도, 중갑을 갖춘 오우거가 정면으로 부딪히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
‘남작’은 그곳을 향해 단검을 겨누며 요격을 지시했다.
―피융!
하지만 사수들이 화살을 쏘기 전에 성벽 위로 화살이 먼저 날아왔다. 바글거리는 해골들 사이에서, 고블린들이 몸을 낮추고 화살을 들고 있었다.
“사다리다!”
멀리 떨어진 성벽에서 외치는 목소리. 해골들이 사다리를 놓았을 가능성은 만무하니 진짜 적병의 짓이었다.
백골 사이사이에 살덩이가 섞여 있었다. 그 살덩이들이 전장을 쥐며 흔들고 있었다.
백골과 살덩이를 구분하기 어려웠다. 전장이 어지러웠다. 해골은 막아 낼 수 있으나, 해골만 막아서 끝나는 싸움이 아니었다.
“…….”
‘남작’은 고개를 돌려서 적진을 바라보았다. 해골과 살덩이의 후방에 서 있는 엘프를 바라보았다.
부관의 말이 맞았음을 그녀는 속으로 짐작했다. 그 엘프는 악랄할 정도로 지능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