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군단 (4)
전선이 흔들리고 있다.
‘남작’은 그렇게 판단했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어이없는 나머지 실소가 새어 나왔다.
“이런 썅….”
시체들이 마구잡이로 성벽에 달라붙었다. 죽은 것이 산 것을 공격하려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적들만은 질서정연했다.
그녀는 시선을 돌려 최후방에 있는 엘프를 노려보았다.
―쏴라.
입이 그렇게 움직였다. 그것과 동시에 고블린들이 불을 붙인 화살을 쏘아 냈다.
고블린을 사수로 쓰다니.
팔이 짧은 고블린들은 활을 쏘는 것에 어울리는 생물이 아니었다. 사거리가 짧아 자칫하면 아군에게 맞을 수도 있는데.
그걸 증명하듯 빗나간 화살 하나가 성벽을 오르던 시체의 머리를 꿰뚫었다.
“허억.”
끼기기긱.
머리가 꿰뚫린 해골의 눈구멍 사이로 화살촉이 튀어나왔다.
그 화살촉이 눈이라도 되는 것처럼 해골은 성벽 위를 올려다보았다.
해골과 눈이 마주친 병사들이 기겁하며 숨을 삼켰다.
“이게….”
고블린은 공성에 어울리는 종족이 아니었다. 홉고블린이라 해도 다른 종족에 비해 키가 땅딸막했으니까.
성벽을 오르지 못하면 활이라도 쥐여 주자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활이라도 쏘겠다고 자원한 건가.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남작’이 당황스러운 눈으로 엘프를 노려본 순간이었다.
―파앙!
“군단장님!”
남작의 바로 옆에 선 서큐버스가 쏘아 낸 화살이 파공성을 내며 ‘남작’을 향해 날아들었다.
옆에 있던 병사가 밀쳐 내지 않았으면 그대로 목이 꿰뚫렸을 위치였다.
평범한 화살이 아니라 단창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커다란 화살.
고블린들의 화살은 방해될 뿐이었지만 이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방패!”
시체들은 어차피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 성벽을 올라오면 발로 차서 밀어내 버리면 그만이니까.
지금은 시체보다 화살이 더 위협적이다. 그렇게 판단한 ‘남작’이 외쳤다.
“방패!”
병사들이 그녀의 명령에 따라 방패를 들었다.
투투퉁! 화살들이 방패를 두들겼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를 닮아 있었다.
그렇게 한숨을 돌리려는 순간.
―돌겨어어억!
성벽 아래의 오크들이 악다구니를 지르며 성문을 향해 돌진했다.
화살로 요격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면 방패 진형이 무너진다. 그러는 사이에 다시 화살이 날아들기라도 하면….
머릿속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낀 ‘남작’은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외쳤다.
“오크들부터 쏴!”
지금은 화살 따위보다 성문이 더 중요했다.
병사들은 그녀의 명령에 따라 방패를 내려놓고 활을 들었다.
조금 전의 커다란 화살이 귀신같이 빈틈을 노리고 ‘남작’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그 존재를 알고 있었기에, 미리 기둥 뒤로 몸을 숨겨 피했다.
“군단장님!”
한 군장이 달려와 고개를 숙이고서 말했다.
“그리핀 기수들이 준비됐습니다.”
“내보내!”
“예?”
“빨리! 저기 활 쏘는 놈들을 죽이든 바위를 갖고 와서 떨어뜨리든! 뭐든 하라고!”
“알겠습니다!”
‘남작’의 신경질적인 외침에 군장은 당황하면서 성벽을 내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수를 태운 그리핀 여섯 마리가 하늘을 날아올랐다.
여섯 마리 그리핀은 모두 발에 바위나 쓰레기가 든 상자를 쥐고 있었다.
“떨어뜨려라!”
하늘 위에서 그리핀 기수를 이끄는 군장이 외쳤다. 육중한 바위가 하늘 위에서 적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남작’은 갑자기 눈꺼풀을 찌르고 들어오는 강렬한 빛에 눈을 질끈 감았다.
“으…?”
한 줄기 햇빛이 먹구름 사이로 새어 나온 것이었다. 햇빛은 마침 그녀가 선 성벽 위를 비추었다.
“아아….”
승리의 여신이 미소 짓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이 넓고 넓은 전장에서 자신에게만 햇빛이 쏟아질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한 ‘남작’이 회심의 미소를 지은 순간이었다.
―끼아아악!
찢어지는 괴성이 하늘에서 울려 퍼졌다. 깜짝 놀란 ‘남작’이 하늘을 올려 보았다.
그리핀의 하얀 날개가, 얼음덩어리에 꿰뚫려 피칠갑이 되어 있었다.
“…마법?”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10개도 넘는 얼음덩어리들이 공중에서 형성되었다.
뾰족하게 날을 세운 얼음들이 그리핀과, 그리핀이 떨어뜨린 바위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끼아악!
날아오른 여섯 마리의 그리핀들이 순식간에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오크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던 바위는, 한낱 얼음에 꿰뚫려 산산조각 났다.
“이게, 대체 무슨….”
그리핀은 마수 중에서도 특히 빠르고 예민한 개체였다. 웬만한 마법은 본능적으로 회피할 수 있었다.
그런 그리핀이 반응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구성된 마법.
존재 자체로 전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이 마법을, 대체 누가 쓴 건가.
“…….”
저 엘프.
저 엘프가.
“…아.”
그때, 흩어지던 먹구름이 다시 모여들었다. 성벽 위를 비추던 햇빛이 사라져, 전장은 다시 어둠으로 물들었다.
―그워어어어!
어둠을 되찾자마자 시체들이 다시금 괴성을 토해 냈다.
그 모습을 보고 ‘남작’은 깨달았다.
적들이 시체 군대를 이끌고 낮에 공격을 한 근거가, 하늘에 낀 먹구름이 그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는 것을.
“군단장님!”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지?
수천 개의 시체를 되살리고 날씨를 바꾸는 마법사가 저곳에 있다.
악랄할 정도로 지능적인 전술을 구사하는 마법사가, 지휘관이.
“군단장님! 성문이 위험합니다! 지시를….”
막아야 한다.
막다 보면 언니가 보내는 원군이 올 테니까.
그렇게 마음먹은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뜬 후,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메리칸.”
“예! 군단장님!”
“성벽 위의 병사들을 수시로 확인해. 부상병이 있으면 바로 뒤로 빼. 오래 버텨야 하니까, 부상이 심해지거나 죽게 만들지 마.”
“예!”
여태까지 그랬듯이.
“말리코바.”
“예!”
“버텨. 성문이 못 뚫리게 막아. 뚫리면 목책을 세우고, 버텨.”
“예! 버티겠습니다!”
막아 내고, 또 막아 내서.
“기아트리스.”
“네. 군단장님.”
“발 빠른 병사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성벽을 지켜. 아무도 못 올라오게 만들어.”
“알겠습니다.”
원군을 기다리면.
“고른.”
“예. 군단장 각하.”
“공병들을 이끌고 다니면서, 성벽이 상한 부분을 고쳐. 오우거들 때문에 금이 간 곳이 있을 거야. 무너지게 만들지 마.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건 성벽밖에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이길 수 있다.
이길 수, 있을 것이다.
* * *
“군단장님, 서쪽 외곽 성벽이 일부 무너졌습니다. 병사들은 대부분 살았지만, 크게 다쳤습니다.”
“복구는?”
“기아트리스가 갔습니다. 사체들을 몰아내고 나면 곧장 복구에 들어갈 겁니다.”
“알겠어.”
‘남작’이 이를 빠득빠득 갈면서 대답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불리한 전장을 겪은 적도 없었고, 이런 상대도 처음이었다.
삼천이라는 숫자의 종족을 모두 고르게 쓸 줄 아는 상대. 그런 지휘관이 얼마나 있었는가.
연합은 물론이고, 마왕의 휘하에도 없을 것이다.
“군단장님!”
해가 저물자 전투는 더더욱 불리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시체 병사들을 햇빛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먹구름이 필요없게 되자, 마법사가 본격적으로 전투에 가담하기 시작한 것이다.
화살은 방패로 막을 수 있어도 팔뚝만 한 얼음 송곳은 방패를 그대로 꿰뚫어 냈다.
“피해. 저건, 그냥 무조건 피해!”
얼음처럼 보이지만 얼음이 아니다. 강철, 그 이상의 견고함을 가진 무기였다.
그리핀들이 떨어뜨린 바위를 산산조각 낼 만큼 강한 얼음이었다.
그런 얼음을 받아 내야 하는 건 고작 나무나 가죽으로 만들어진 방패였다. 막는 건 불가능했기에, ‘남작’은 피하란 명령을 내렸다.
“군단장님! 적이 올라옵니다!”
얼음 송곳의 폭격은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졌다. 조금이라도 방패가 밀집한다 싶으면 여러 개가 날아들었다.
보고 피한다 하더라도 수가 많아서 부상자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부상자가 빠진 성벽엔, 빈틈이 생겼다.
“핫하!”
기어코 포위망을 뚫고 적 한 명이 성벽 위로 올라왔다.
성벽을 지키는 병사들보다 훨씬 덩치가 큰 마족이었다.
고블린이라기에는 키가 크고, 오크라기에는 마른 체형의 마족.
“제일 먼저 성벽을 접수하는 건 우리 붉은 이빨이다!”
트롤. 창을 든 트롤이 성벽 위에 서서 기세 좋게 외쳤다.
까드득 어금니를 깨문 ‘남작’은 그 트롤을 향해 손에 든 단검을 투척했다.
“커헉…?!”
다른 건 몰라도 단검술 하나는 레칸에서 ‘남작’을 따라올 자가 없었다.
집어 던진 단검은 정확히 트롤의 미간을 뚫었다. 가장 먼저 올라온 트롤은, 단말마만 남기고 숨이 끊겼다.
눈썹을 부들부들 떨며 트롤을 향해 다가간 그녀는 미간에 박힌 칼날을 주욱 아래로 그어 내렸다.
턱 아래의 목까지 칼날이 도달해서야 그녀는 칼날을 빼냈다.
“하….”
핏기를 띤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는 흉하게 훼손된 트롤의 시체를 발로 차서 성벽 아래로 밀어 버렸다.
되도록이면 적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이 ‘남작’ 그녀의 성격이었다.
“막아!”
핏물을 털어 내면서 외치자 병사들이 다시 방패를 들고 집결했다.
“군단장님! 적의 마법에 기아트리스가 전사했습니다…!”
“그럼 걔 종자한테 맡겨! 그딴 것도 일일이 보고해야겠어?!”
“알, 알겠습니다.”
가뜩이나 신경 쓸 것도 많은데.
입술을 짓씹으면서 ‘남작’은 계속해서 지시를 내렸다.
“첫 번째 성문이 돌파당했습니다! 목책을 세우고 최대한 응전하고 있으나 말리코바가 뚫리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부상병이어도 방패 쥘 수 있으면 성벽에 세우고, 멀쩡한 애들 내려보내!”
“예!”
적들은 끊임없이 몰아쳤다. 시체는 지치는 법이 없는 병사였기에, 산 병사는 힘을 아낄 수 있었다.
그렇게 아낀 힘으로 적들은 끊임없이 몰아쳤다.
“목책이 뚫렸습니다! 다수의 오우거들이 성문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핀 띄워서 막아.”
“예? 하지만 그리핀은 기수가 있어도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는데….”
“막으라고!”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팔을 휘둘렀다. 그 손에는 단검이 들려 있어서, 보고를 위해 올라온 군장의 뺨을 살짝 스쳤다.
윽, 신음을 삼킨 군장이 고개만 끄덕이고 성벽 아래로 내려갔다.
“왜 안 통하는 거야. 대체 왜…!”
자신이 아는 모든 전술을 동원하고 있다. 이게 최선의 수라고, 머리가 말해 주는 대로 명령을 내렸고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적도 그랬다.
끝이 없는 시체들. 그 시체들 사이사이에 섞인, 유의미한 타격을 입히는 적병들.
“붉은 이빨을 위하여!”
기어코 무너진 서쪽 외곽을 통해 트롤들이 성벽 위로 올라왔다.
성벽에는 체급이 훨씬 높은 오크 병사들도 있었지만 부상당하고, 시체를 상대하느라 힘이 빠진 그들은 트롤들에게 쉽게 제압당했다.
군장들이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적병들이 끝없이 몰려오기 전에, 트롤들을 어떻게든 걷어 내려는 작정이었다.
“그오오오오오!”
성벽 밖이 아닌 성벽 안에서, 오우거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성문이 완전히 뚫렸음을 의미하는 바였다. 적병이 성벽 위로 올라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군단장….”
그 사실을 전달하려던 한 병사는 가슴을 뒤에서 꿰뚫려 말을 전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병사를 꿰뚫은 무기는 검도, 창도 아닌 얼음덩어리였다.
‘남작’은 고개를 돌려 쓰러진 병사가 있었던 곳을 보았다.
새하얀 머리카락이 달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캐롤 아르네스.”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에게도 알려 주지 않은 이름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저 엘프는 어떻게 알고 있는가.
“아르네스 남작 가문의 차녀. 제국의 인간이었던 마족이여.”
성벽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울렸다. 레칸을 지키는 병사들의 비명 소리였다.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전투가 끝났음을.
“잠시 담소라도 나누지 않겠는가.”
패배했음을 알리는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