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완벽한 기만전술 (1)
“안타레스 님.”
‘남작’ 캐롤 아르네스.
카를이 본명을 말하자 그녀는 핏기가 싹 가신 얼굴로 픽 쓰러졌다.
패배로 인해 받은 충격 탓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카를을 향해 요한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본디 ‘남작’은 인간이었습니까?”
“마족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인간처럼 생긴 것 같지 않습니까?”
“그래도…일단은 마족이긴 합니다만.”
요한나는 허리를 굽혀 ‘남작’의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었다.
새끼손가락만한 뿔이 머리카락 사이, 정수리에 자라나 있었다.
이각(利角)족이라 불리는, 마족 중에서 가장 인간과 닮은 마족이었다.
설정상 인간과 마족의 피가 계속 섞이면서 탄생한 종족.
“마왕 정도 되는 마법사라면 이만한 뿔을 달아놓는 건 가능하겠지요.”
“…확실히 일리가 있습니다.”
인간을 마족으로 만드는 마법은 예전부터 존재했다.
그래서 제국의 법은 마족과 가까이 지내는 인간을 강하게 처벌했다.
당장 시나리오에서 전쟁 시기가 되면 수많은 배신자들이 제국에 등을 돌리고 스스로 마족이 되기를 택하는 사건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안타레스 님께선 그 사실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대삼림에서 나와 제국을 건너며 보고 들은 것이 꽤 많습니다. 캐롤 아르네스. 그 이름에 현상금이 걸려 있는 걸 보았습니다.”
“현상금 말씀이십니까?”
“예.”
카를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백인장과 병사들이 ‘남작’을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죄목은 살인이었습니다. 혈육인 레니아 아르네스와 함께 6년 동안 78명을 죽였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 혹시 이 여자는 암살자라거나…그런 겁니까?”
“아뇨. 평범한 귀족이라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르네스 자매들은 미치광이들이었다. 남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에서 쾌락을 느끼는, 정신병자들.
당장 조금 전에도 그런 모습을 보였다. 이미 죽은 병사를 구태여 잔인하게 죽이고 성벽 아래로 떨어뜨리는 모습을, 카를은 똑똑히 보았다.
“다만, 사람을 너무 죽였지요. 현상금이 걸렸으니 제국에선 발붙일 곳이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아마 이곳으로 넘어온 것이 아닐까 싶군요.”
“그렇게 되면 마왕은 이 자를 군단장으로 삼았다는 것인데….”
사뭇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그것도 그럴만 했다. 연합에 속한 대부분의 마족들은 마왕 이시엘의 진면모를 모르니까.
고전적인 이미지, 이전의 마왕들처럼 순혈주의를 고수한다고 알고 있었다.
‘실상은 그 반대지만.’
그녀는 순혈주의에 대해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본인부터가 순혈과는 거리가 멀었고, 마족들보단 인간들과 섞여 지낸 세월이 길었으니까.
종족도, 혈통도 아닌 개인의 힘만을 보았다.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면 숙적과도 손을 잡았다.
그 예시가, 카를 자신이었다.
‘그래도 이걸 지금 당장 말할 수는 없으니….’
당장은 자신도 모르는 척 해야 했다.
카를은 요한나를 보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만큼 기세가 저희 연합 쪽으로 기울었다는 뜻입니다. 기용할 사람도 없으니 인간을 마족으로 만들어 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카를은 성벽 위에서 아래의 벌판을 내려다보았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이 있던 곳. 하지만 성문은 뚫렸고, 성벽의 병사들은 제압당했다.
“그게 아니면 ‘남작’이 정말로 뛰어나서 기용했을 가능성도 있긴 합니다.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으니까요.”
오후 무렵에 시작된 전투가 밤늦게 끝날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사령술로 되살린 언데드 5천. 죽지도 지치지도 않는 병사들로 끊임없이 몰아친 끝에 뚫어낸 것이었다.
13군단이 패배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온종일 싸우지는 못할 테니 중간에 물러나야 했을 거고, 그러면 성채의 병력들에게도 쉴 틈이 생겼을 것이다.
그렇게 싸움이 길어지다가 레카샤에서 온 원군에게 휩쓸린 것이리라.
“어느 쪽이든 저희에게는 희소식인 것 같습니다. 안타레스 님.”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예. 뛰어나다는 이유로 인간을 기용했다면, 최소한 마왕의 편에 선 이들 중 ‘남작’보다 뛰어난 이는 없다는 게 될 테니까요.”
“으음…그럴 수도 있겠군요.”
카를은 요한나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시엘의 편에 선 장군들은 대부분이 잘난 집안에서 태어난 도련님 아가씨들이었다.
크고 작은 싸움을 통해 수없이 많은 경험을 쌓은 연합 측의 간부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런 의미에서 안타레스 님. 그녀를 어떻게 처분하실 겁니까?”
“살려줄 겁니다. 아예 풀어줄 겁니다. 레카샤까지 도망칠 수 있도록.”
살려두는 것에 대한 명분은 충분했다. 다름 아닌 대장군 드라일이, 그녀를 포섭하라고 했기에.
하지만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카를은 결국 ‘남작’을 제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때는 당장이 아니라,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걸 이용한 이후일 것이다.
“굳이 그렇게 하시는 까닭이 있습니까? 도망쳤다가 괜히 일이 틀어지기라도 한다면 대장군께서 곱게 넘어가진 않을 듯 한데….”
“괜찮습니다.”
마왕 측의 장군들은 대부분이 고위 귀족인 만큼, 그녀의 출신을 알 것이다.
같은 마족도 멸시하고 차별하는 그것들이 다른 종족을 단지 같은 편이라고 좋게 대해줄까.
심지어 패배자를.
‘절대 아니지.’
결국 캐롤 아르네스가 도망칠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 뿐이다.
레카샤. 마찬가지로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패스 언니가 지키는 성채.
그리고 카를이 마저 공략해야 하는 성채.
“도망칠 수 있는 곳은 레카샤 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피붙이가 지키는 성채니까요. 아마 자신이 아는 것을 다 털어놓을 테고, 레카샤를 지키는 ‘남작’은 자신의 피붙이가 하는 말이니 곧이곧대로 믿을 겁니다.”
“저희 측의 정보가 저들에게 넘어가서 좋을 게 없지 않습니까?”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전투가 시작하자마자 그리핀 하나가 이곳을 떠나는 걸 봤습니다.”
사령술로 만든 언데드 군대. 병력의 비율 따위의 정보는 이미 넘어갔을 것이다.
그렇기에, 카를은 되려 그 점을 이용할 작정이었다.
“방심은 알고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아마 저희가 언데드 군대를 끌고 오고 있다는 걸 알면 그에 대한 방비를 하겠지요. 저희는 그 점을 공략할 겁니다.”
“어, 음….”
요한나가 눈을 깜빡거렸다.
“죄송합니다만 안타레스 님. 대체 어떻게…말씀이십니까?”
허리춤에 매고 있었던 작은 가죽 가방. 요한나는 그 안에서 구겨진 양피지를 꺼냈다.
“레카샤에 주둔하는 병사들은 저희보다 수가 많습니다. 물론 망자병들을 포함하면 저희가 많겠지만…이번처럼 숫자로 압도하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공성전을 할 때는 머릿수가 중요했다. 그래서 처음에 병사들이 출전하기를 꺼려한 것이었다.
그 간극을 사령술로 극복했지만, 레카샤에선 그것이 불가능했다.
레칸과 레카샤가 함께 난공불락이라 불리는 이유는 레칸이 전초 기지 역할을, 레카샤가 사령탑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적들은 레칸의 앞에서 쓰러졌고, 레카샤에서 되살릴 망자병들은 많아도 천 명이 되지 않으리라.
“제 3자를 끌어들일 생각입니다.”
“제…3자라면 어떤…?”
“엘 칸토.”
그래서 칼리를 엘 칸토로 보냈다.
“엘 칸토를 지키는 군단장은 레샬리에입니다. 레샬리에가 어떤 종족인지 아십니까?”
“…나가라고 들어 알고 있습니다.”
“예. 나가. 이런 육지 한복판에서는 보기 어려운 종족이지요. 엘 칸토의 주둔 병력 대부분이 나가이니 군단장의 명령을 잘 들을 테고…결속력도 끈끈할 겁니다.”
엘 칸토의 공략은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카를은 칼리가 떠나기 전, 적극적으로 싸우지 말라고 말해두었다.
나가라는 종족은 해안가 근처의 도시에서는 위세가 대단해도 이곳에선 아니었으니까.
‘해묵은 갈등을 접지 못한 게 문제였지.’
이시엘은 본인의 무력은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났다. 시나리오 내내 등장하는 웬만한 사도보다도 강할 것이다.
다만 정치는 쥐약이었다. 서로 싸우지 말라고 어르고 달래도 모자랄 판에 방치를 해둔 상태니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닌데….’
결국 그것 때문에 패배하는 것이 정사였다.
그리고 카를은 그 정사를 바꿀 수 있을 만큼 시나리오에 깊게 관여하고 있었다.
“그 끈끈한 결속력을 이용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할 테니…간단하게 심문이라도 하러 가지요.”
“예. 안타레스님.”
“아, 그 전에. 먼저 백인장들을 불러 모아주시겠습니까?”
“예.”
요한나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서 성벽을 내려갔다.
레칸은 성벽이 무서운 것이었고, 성벽을 활용한 ‘남작’의 전술이 무서운 것이었지 주둔하는 병사들은 크게 무서울 게 없었다.
점령한 후 적병들은 대부분이 투항했다. 백인장들은 각자 역할을 나누어서 성채를 완전히 장악한 상태였다.
“부르셨습니까! 장군님!”
승리한 직후였기에 병사들의 사기는 드높았다. 특히 카를이 지시한 명령을 직접 듣고, 그대로 행한 결과가 승리로 이어지는 것을 몸으로 체감한 백인장들은 더더욱 그랬다.
“전달할 사항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끝낼 테니 경청해주시지요.”
“예!”
“알겠습니다! 장군님!”
“첫째, 성채의 주민들은 절대 약탈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점령했으니 이제 이곳은 연합의 성채입니다. 또한 주민들은 여러분의 형제 자매이고 가족입니다. 절대, 약탈할 생각 하지 마십시오.”
“어….”
백인장들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카를이 군율을 엄격하게 잡아놓긴 했지만 이들은 근본이 반란군이었다. 도적떼보다는 나아도, 제국의 정규군 수준의 의식을 기대할 순 없었다.
그래서 카를은 목에 힘을 주어 두 번 씩이나 말했다.
“절대, 주민들을 건드리지 마십시오.”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그들은 이미 수없이 많이 보았고 몸으로 겪은 적도 있었다.
그 기억을 떠올린 걸까, 백인장들은 제각기 몸을 살짝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만약 성채에서 도망치는 적 병사가 있거든 쫓지 마십시오.”
“…예?”
“그걸 쫓지 마시라는 건….”
“어어….”
“어차피 이들이 도망칠 수 있는 곳은 레카샤 밖에 없습니다. 그편이 저희에게 득이 될 테니, 쫓지 마십시오.”
“일단…알겠슴다.”
“장군님 말씀이니까…뭐…병사들한테 그렇게 전해두겠습니다.”
자신의 말을 들어서 손해볼 일은 없다. 카를은 이미 그걸 증명해주었고, 그 덕분에 그들은 성벽 안에 있었다.
그래서 백인장들은 그런 터무니 없는 명령도 수긍했다.
“마지막입니다. 5일 내로 레카샤를 향해 진군할 겁니다. 그 전에 레칸에 있는 말과 마수들을 모조리 저희가 이용할 수 있게끔 길들여 놓으십시오.”
“그건 뭐…간단합죠.”
“알겠슴다.”
“좋습니다.”
카를은 아까 캐롤 아르네스를 끌고 나간 백인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남작’은 정신을 차렸습니까?”
“어, 옙. 감옥문이 닫힐 때쯤 막 소리를 질러댔는데 아마 지금도 그러고 있지 않을까 싶슴다….”
“안내해주십시오. 만나보겠습니다.”
“예. 장군님.”
카를은 백인장을 따라 ‘남작’이 갇혀 있다는 감옥으로 향했다.
감옥 입구부터 날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말마따나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었다.
감옥 문에 보초를 선 병사들은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카를은 병사들을 물러나게끔 한 뒤에, 감옥 바로 앞에 섰다.
“캐롤 아르네스 경. 정신이 들었나?”
“넌, 넌…넌 씨발….”
“입이 험하군. 나는 차분히 대화를 나눴으면 하는데.”
“꺼져! 너 같은 거랑 할 얘기 없어!”
그렇게 쏘아붙인 캐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카를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레니아 아르네스가 죽은 뒤에는 정말로 할 얘기가 없지 않겠나. 그때는 그대도 살려둘 가치가 없는데.”
“이…이게….”
캐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다른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데서 쾌락을 느끼는 사이코패스도 자기 혈육은 소중한 법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말을 하지 않겠다는 듯 그녀는 입술을 꾹 다물며 부들부들 떨었다.
“흠. 요한나 공. 연필이 있으면 빌려주시겠습니까?”
“아, 예.”
“말로 하기 싫으면 글로 이야기하지.”
카를은 요한나가 건넨 펜과 종이를 받아 그 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와주면 다행이지.’
어떻게 필체를 얻어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본인이 이렇게 나와주면 다행이었다.
카를은 기꺼운 마음으로 글을 써서 그녀에게 넘겼다.
-우리 좀 솔직하게 이야기할까.
그렇게 쓴 뒤 종이와 함께 펜을 감옥문 너머로 내밀었다.
살짝 그 내용을 들여다 본 뒤에 그녀는 혀를 차고서 고개를 틀었다.
카를은 염동 마법을 이용해 종이를 다시 꺼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굳이 소중한 병사들과 시간을 들여서 레카샤를 점령하게 만들 생각인가?
-넌.
‘남작’은 연필을 거의 찍어 내리듯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넌 우리 언니 못 이겨.
-그럼 내가 그대에게 이길 거라고 생각했나 보군.
반박당한 ‘남작’이 종이를 손에 쥔 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한 카를이 육성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말하지. 그대를 풀어주겠다.”
“……?”
“레니아 아르네스 경을 설득해주게나. 두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포섭하라는 것이 우리 대장군이 내린 명령이었으니 말이야.”
빠득. 자물쇠를 향해 손을 뻗은 카를이 간단하게 자물쇠를 부수었다.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지는 그녀를 뒤로 하고 카를은 등을 돌려 떠났다.
감옥 문을 지키던 병사들도 카를을 따라 돌아갔다.
“어…?”
이게 전부라고?
순식간에 텅 빈 감옥 앞 복도를 쳐다보던 ‘남작’ 캐롤 아르네스는 잠시 뒤 문을 열고 안에서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