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완벽한 기만전술 (4)
“이 목소리는….”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온 직후 요한나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입을 손으로 틀어막은 요한나가 입을 연 것은 두 번째 비명이 터진 이후였다.
“…세리아 장군의 목소리인데.”
“세리아라면 제13 군단의 지휘관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전투 보고서에 적혀 있었던 이름. 원래 서열 13위의 간부였으나, 레칸을 뚫지 못하고 전멸하며 사망했다고 알려진 자였다.
“예.”
“살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안타레스’처럼 막 간부 자리에 오른 인물이 아니라면 연합의 간부는 얼굴과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마족들은 힘을 숭상했고, 간부들 개개의 무력은 그들의 숭상을 받기에 충분했으니까.
적병 중 누군가가 세리아의 얼굴을 알아보고 죽이는 대신 생포한 것이리라.
“……어매.”
“시부럴….”
비명 소리를 듣던 병사들이 몸을 움찔 떨었다. 비명 소리가 살기 위한 발악에 가까운 목소리였던 까닭이었다.
“혀가 잘린 것 같습니다….”
“혀를.”
“예…. 세리아 장군이라면 확성 마법을 눈치채고 목소리를 냈을 텐데….”
“아예 말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거군요.”
빌어먹을 것들 같으니.
카를을 일부러 주변의 병사들이 모두 듣도록 목소리를 높여 중얼거렸다.
“안타레스 님… 여차하면 패퇴를 연기하면서 물러날 게 아니라 진짜로 돌파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요한나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어 왔다. 작전의 내용에 대해 전부 다 알고 있었고, 이미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내렸음에도 이견을 제시한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세리아는 드라일의 조카였으니까.
“일단은 작전대로 가겠습니다.”
“하지만 안타레스 님… 그러다가 세리아 장군이 죽기라도 한다면….”
“알고 있습니다. 대장군께서 그냥 넘어가진 않겠지요.”
아무도 세리아가 살아 있다고 생각한 적 없을 것이다. 드라일 본인조차도.
당연한 일이었다. 내전을 일으킨 드라일이 아끼는 조카였으니, 그녀를 생포해 포로로 잡았다면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었다.
돌려보내 주는 조건으로 휴전 협정 따위를 맺는 것도 가능하지만… 마왕군은 그런 기미도 보이지 않았기에 죽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하필이면 저것들한테 잡히는 바람에….’
만약 세리아를 생포한 것이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자였다면 협상을 이끌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제13 군단은 레칸의 성벽 아래에서 레카샤의 병력에게 패배했다. 세리아를 붙잡은 것은 ‘남작’ 자매였다.
—흐으으아아악!
남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희열을 느끼는 사이코패스들.
그녀를 고문해 비명 소리를 뽑아 냄으로써 진을 친 병사들이 알아서 돌격하기를 유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방식엔 한계가 있었다.
‘저게 전부다.’
세리아가 전부라는 것.
제8 군단을 물리치고 저들을 구원해 줄 원군이 없다. 머릿수가 밀려 성밖으로 나와 보급선을 사수하지 못했기에, 물자도 점점 떨어져 가고 있다.
버티는 것이 불가능하고 성문 밖으로 나오는 것도 불가능하기에 꺼내 든 강수였다.
“저들은 세리아 장군을 못 죽일 겁니다.”
“예?”
“만약 고문을 가하다 세리아 장군이 죽으면 우리가 돌격할 이유가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아…!”
카를의 말을 들은 요한나가 깨달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탄성을 흘렸다.
요한나는 이런 간단한 것도 생각하지 못할 이가 아니었다. 다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리라.
“우리는 감정을 우선시하지 않을 겁니다.”
비명 소리는 평원에 넓게 퍼졌다. 그럴 때마다 성벽 위에선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제8 군단의 병사들은 침묵했다. 조용히 입을 다물었고, 귀를 막을 자는 귀를 막았다. 그렇게 숨을 죽이고 카를의 명령을 기다렸다.
“하지만 저들의 눈에는 더없이 감정적으로 보여야 합니다.”
찢어지는 비명 소리 때문에 약간 측은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전쟁에 감정을 우선할 이유가 없었다. 그것도, 자신이 제거해야 할 드라일의 혈육이라면 더더욱.
“조용히 때를 기다리다 보면 초조해지는 건 저들입니다. 반드시 무리를 할 겁니다. 세리아를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이겠지요. 그때 돌격한다면 적들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할 겁니다.”
카를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기울어지는 해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저희는 그때 패배하면 됩니다.”
* * *
레이 궁정의 레샬리에. 엘 칸토를 담당하는 군단장은 그렇게 불리는 나가였다.
물과 육지를 오가며 생활한다지만 그들의 근원은 물이었다. 바다는커녕 작은 호수도 없는 엘 칸토의 나가들은 하루 3분의 1 이상을 물에 몸을 담그며 지냈다.
레샬리에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낮 동안 성벽을 둘러본 그녀는 해가 진 직후부터 물에 반신을 담근 채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생선 대가리 새끼….”
그 일 중에는 다른 군단장에게서 날아온 서신을 받는 것도 있었다.
오늘 날아든 서신은 레칸의 군단장 ‘남작’이 보낸 것. 그 서신을 읽은 그녀의 눈 밑 비늘이 파르르 떨렸다.
손아귀에 힘이 꽉 들어간 나머지 살짝 젖은 서신이 조금씩 찢어지고 있었다.
“……이런 삶아 먹어도 시원찮을 년이.”
“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레샬리에 공주님…?”
“뭘 어떻게 하란 말이냐! 레칸이 뚫린 건 둘째치고 우리도 죽게 생겼는데!”
연합의 군대가 엘 칸토의 눈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아직 적극적인 공세가 시작된 건 아니었지만 경계를 늦출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하필이면 나가가 약해지는 계절인 봄이었다.
날씨가 건조한 나머지 모든 병사들이 항시 전투를 준비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버티면 군주님께서 구원하러 오실 것이다. 우리는 버티다가 레이 궁정으로 돌아갈 생각만 하면….”
“공주님!”
한 나가가 문을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왔다. 레샬리에가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며 호통치기도 전, 그 나가는 바싹 엎드려 고했다.
“적의 혈마법사가 성벽 위의 병사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혈마법사? 적에게 혈마법사가 있더냐? 숫자는? 얼마나 되느냐?”
나가는 마력에 익숙한 종족이었다. 평범한 마법이라면 쉽게 대항할 수 있지만 평범의 궤를 아득히 벗어난 혈마법은 이야기가 달랐다.
혈마법사의 수가 많다면 위험하다. 레샬리에가 잔뜩 긴장한 채 묻자, 병사는 머리를 살짝 들어 올리면서 대답했다.
“한 명입니다.”
“…무어라?”
“적장이 홀로 나와서 혈마법으로 성벽을 폭격하고 있습니다. 다른 혈마법사는 물론이고 평범한 마법사도 없습니다.”
“내가 가 보아야겠다.”
레샬리에가 몸을 일으켰다. 바로 옆에서 기다리던 전속 시녀 겸 부관이 재빨리 몸을 닦고 준비해 놓았던 옷가지를 입혀 주었다.
삼지창을 든 그녀는 성벽 위를 올랐다.
레샬리에가 제일 처음 들은 소리는 어느 병사가 공포에 떨며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히이이익!”
마력이 해골의 형상을 이루어 허공에서 터졌다. 문자 그대로 피가 터지며 비릿한 혈향이 사방에서 풍겨 왔다.
피에서 마력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피 그 자체를 마력으로 다루는 혈마법.
그 흉흉함에 병사들은 지느러미를 떨어 대며 두려워했다.
“……진조의 혈통인가?”
흡혈귀 중 진조라 불리는, 순수한 혈통의 흡혈귀만 쓸 수 있다는 혈마법이었다. 레샬리에는 긴장을 삼키며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진조라 불리는 흡혈귀들은 달이 없는 밤에도 눈에 띌 정도로 살갗이 창백하다 들었다. 하지만 적장은 그만큼 창백하지 않았다.
“왜인가….”
외견으로 진조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은 어려웠다. 하지만 설령 진조가 맞다하더라도 혼자서 무한히 마법을 펼쳐낼 수는 없다.
더군다나 성벽에 실질적인 타격은 없었다. 혈마법으로 인해 살짝 금이 갔을 뿐, 여전히 굳건했다.
“왜 갑자기 이렇게 나오는가….”
밤중에 공성전을 치를 생각인가. 그렇다면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할 터인데.
달리 효과가 뛰어나지도 않은 공격을.
어째서.
“……기만술이다.”
“예?”
레샬리에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레샬리에의 옆을 지키던 레이 궁정의 장군들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레칸이 뚫렸다면 레칸을 공격한 적들은 필시 레카샤로 진군했을 터이다. 그러면 후방이 취약해지지 않겠느냐.”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공주님.”
“레칸을 뚫어 낸 적들은 후방을 맡길 아군이 필요한 게다. 저들은 그 후방을 맡기 위해 철수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게다!”
“예? 그렇다면 진작에 철수하지 않았겠습니까? 왜 이제야….”
서신은 반나절 전에 도착했다.
파발이 엘 칸토를 둘러싼 적들의 포위망을 뚫어 내고 들어왔을 것을 고려하면, 적들은 훨씬 이전에 소식을 접했으리라.
장군들도 그것을 알기에 레샬리에에게 의아함을 담아 물었다.
“일이 꼬인 게다. 세상만사가 저들의 뜻대로 흘러갈 성싶으냐. 원래 후방을 맡기로 한 다른 적군이 패퇴하여, 저들이 필요한 게다. 적장은 후퇴할 시간을 벌고 있음이….”
“공주님! 피하십시오!”
레샬리에가 한참 말을 잇던 도중이었다.
퍽! 공중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핏물이 튀었다. 레샬리에는 시선을 돌렸다.
—크르르르.
붉은 바윗덩어리가 살아 움직인다. 핏물을 뚝뚝 흘리며, 바위 속에서 눈을 치켜뜨고 이쪽을 노려보았다.
혈마법으로 소환된 악귀였다.
장군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검을 뽑기는 했으나, 누구 하나 먼저 나서는 이가 없었다.
아가미만 뻐끔거리는 장군들을 보며 레샬리에는 혀를 찼다.
“썩을 것들 같으니라고.”
레샬리에는 삼지창을 악귀의 몸통 한가운데를 노리고 내질렀다.
돌덩어리 같은 외견과 달리 진흙처럼 물렁거렸다. 창을 뽑아낸 순간, 악귀의 육신이 허물어지며 성벽 아래로 추락했다.
“보아라.”
레샬리에는 피가 흐르는 삼지창을 성벽 아래로 겨누었다. 화려하게 마법을 펼치던 적장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기어코 달아나지 않았느냐. 애초부터 우리를 속일 작정이었다.”
“……!”
“전군! 성문을 열고 출병을 준비하라! 적들은 도망칠 작정이다! 우리는 적들을 쫓아 멸할 것이다!”
적들의 후방을 쳐서 승리를 거둘 것이다. 마왕에게 공훈을 인정받아, 이런 물기 없는 땅에 온 것을 후회할 일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레이 궁정으로 돌아가, 영광된 이름으로 왕좌에 앉으리라.
레이 궁정의 레샬리에는 다만 그렇게 욕망에 젖은 눈으로 적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 * *
“흐윽….”
“어렵네에….”
레니아 아르네스는 수건으로 손에 튄 핏물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저기 병사들을 끌고 온 간부는 새로 간부가 됐다는데, 너를 모르는 걸까?”
“으으, 으.”
“아니면 나처럼 네가 비명을 지르는 걸 좋아하는 걸까.”
“아, 으. 아아.”
“어라?”
혀가 잘린 세리아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짓뭉개져 있었다.
알아듣기 어려운 말. 하지만 레니아 아르네스의 이목을 끈 건 그녀의 말이 아니었다.
그녀가 말을 했다는 사실 자체였다.
“아직 입을 열 기운이 남아 있네? 신기해라.”
“…으아.”
“내가 너무 살살한 걸까, 아니면 네가 강인한 걸까. 아무래도 내가 너무 살살한 것 같네.”
레니아 아르네스는 즐겁다는 듯 미소 지으며 세리아를 향해 다가갔다.
스윽. 레니아 아르네스가 들이민 칼날이 살덩이 사이로 파고들었다.
“으으…!”
“미안. 얼굴 가죽을 벗겨 보는 건 처음이라 조금 미숙할 수도 있어. 생각보다 어렵네. 아.”
또 한 번 비명이 터졌다. 레니아 아르네스의 입꼬리가 점점 더 올라갔다.
“미안해. 귀를 자를 생각은 없었는데. 이건 정말로 실수야. 귀는 나중이었거든.”
섬뜩하게 웃은 레니아 아르네스가 다시 칼을 대려는 순간이었다. 성벽 위에서 뿔피리 소리가 길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마법사는 그 소리가 겹치지 않도록 잠시 확성 마법을 중단했다. 레니아 아르네스 또한 칼날을 내려놓았다.
“성주님! 적들이 돌격하고 있습니다!”
“해골들을 앞세워 돌진해 오고 있습니다!”
“네가 예쁘긴 한가 보다. 얼굴을 건드리니까 바로 달려드네.”
“아아, 아아아….”
“있는 힘껏 나팔을 불고 북을 두들겨. 적들의 고막이 터질 정도로. 그래서 명령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무아지경으로 싸우게 만들어.”
“예! 성주님!”
“계속 들이받으면 그대로 잡아먹고, 내빼려고 하면 쫓아가서 물어뜯어.”
레니아 아르네스가 환희에 찬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저것들이 돌진한 순간부터 이 싸움은 우리가 이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