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두 마리 토끼 (5)
인간들이 강대한 제국을 꿈꾸며 중앙 집권을 이룬 것과 달리 마족들의 사회는 여전히 원시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족들은 서로 종족을 나누어 씨족이나 부락으로 나누어 살았다. 어지간해서는 다른 종족과 얽히는 일이 잘 없었다.
예외는 마왕이라 불리는 존재들이었다.
“참….”
마족들의 우두머리. 강한 힘만 가지고 있다면 누구든 마왕이 될 수 있었다.
레카샤의 주민 대부분은 켄타우로스를 비롯한 말을 닮은 종족이었다.
고향이 레카샤는 아니지만 저희들과 같은 종족의 전 마왕을 숭배하는 마음에서 그들은 거대한 동상을 세웠다.
“…쓸데없이 공을 들인 동상이군요.”
웃통을 벗은 켄타우로스가 앞다리를 들어 올린 자세. 현실의 나폴레옹을 담은 유명한 그림과 비슷한 구도였다.
동상은 크고 웅장했지만 연합에 속한 이들의 눈에는 그렇지 않은 듯했다.
카를의 옆에 서 있었던 요한나는 동상을 보며 작게 혀를 차고는 입을 열었다.
“장군님… 여쭙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요한나 공.”
“대장군 각하께서 여기까지 먼 길 걸음을 하시게 하실 필요가 있었을까 하여서…. 사실 세리아 장군의 부상이 그렇게까지 심각한 편은 아닌 듯한데….”
“음.”
근래 들어 카를은 요한나의 어조가 꽤 조심스러워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단 요한나뿐만 아니라 백인장 등, 대화를 나눌 일이 많은 이들 대부분이 그랬다.
어색한 거리감 따위가 아니었다. 명령을 따르기만 하면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두 번이나 증명한 까닭에 카를이 내린 판단에 의문을 가지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그렇긴 합니다. 세리아 장군은 본디 미노타우로스인 까닭에 부상이 심하긴 해도 이 정도면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요.”
“그러면 왜… 그러셨는지요?”
“단순합니다. 요한나 공. 저도 출세해야지요.”
“예?”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는 잠시 뒤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런 연유로….”
“말단인 제가 대장군 각하께 은혜를 입힐 기회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조금 출세를 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서신의 내용을 다소 부풀려서 썼습니다.”
카를의 목적은 출세와는 한참 거리가 먼 것이었지만 ‘안타레스’라면 출세가 목적이어야 했다.
그런 계산하에 한 대답. 요한나는 납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더군다나 앞으로는 이곳 레카샤가 최전선이 되지 않겠습니까. 대장군 각하께서 전선을 시찰하신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드라일은 제 나름대로 병사들에게 신경을 많이 썼다.
자기가 손에 넣은 도시를 주기적으로 들렸고, 휘하의 간부들이 승리를 거두어 빼앗은 성채를 돌아다녔다.
시찰의 순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간부 서열에 따라서였지만….
“어차피 한 번은 레카샤에 들리실 것인데 저희가 일정을 조금 앞당긴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일이 있겠습니까.”
“확실히… 대장군 각하께서 아셔도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긴 합니다.”
본디 임시 지휘관이었던 만큼 요한나 또한 드라일 휘하의 간부들이 서열 다툼에 얼마나 열성인지 알고 있었다.
유명한 일화로는 실라스와 말리아는 서로의 서열을 놓고 생사결까지 갔다가 드라일의 중재로 겨우 멈추었다.
그에 비하면 ‘안타레스’가 한 행동은 애교 수준이었다.
“으음… 그래도 안타레스 님, 혹시 모르니 다른 핑곗거리도 미리 생각해 놓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이들이 들어서 좋을 게 없었기에 요한나는 지휘소로 돌아와서야 자신의 의견을 꺼내 놓았다.
“그렇습니까?”
“예…. 대장군 각하께선 아무래도 미노타우로스인지라….”
“그럴 수도 있겠군요.”
지휘소 건물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들어올 수 있는 백인장들 대부분이 자기들의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쁜 시간이었다.
카를은 요한나를 향해 조금씩 다가갔다.
“그러면 제가 치료했다고 하겠습니다. 치유 마법에는 나름 자신이 있습니다.”
“세리아 장군께서 사실대로 말씀하시면 곤란해질 터인데….”
“그러니까 대장군 각하께서 오시기 전에 세리아 장군을 치료해 드려야지요.”
아무도 없는 지휘소 내부.
지금이 적기라 판단한 카를은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그러고 보니 제가 미처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예?”
“이번 전투의 공적을 인정받게 되면 저는 대장군 각하께 제8 군단을 당분간 제게 배속해 달라 요청할 생각입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훨씬 가까이서 들린 까닭일까. 서류 더미를 뒤지던 요한나가 고개를 바로 옆까지 다가온 카를의 얼굴을 보더니 확 얼굴을 붉혔다.
서류를 만지던 손을 오므린 그녀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 타레스 님… 너, 너무 가까운 것이 아닌지….”
“그리되면 아마 앞으로도 요한나 공께서 제 부관을 맡으실 것 같은데….”
“에, 예…?”
“앞으로도 함께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남이 들으면 오해를 살 법한 말에 요한나는 귀까지 새빨갛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이시엘에게서 배운 ‘매료’까지 사용할까 하던 카를은 이내 관두고는 그녀를 지그시 쳐다보기만 했다.
매료라는 마법은 요한나를 비롯한 악마족들이 잘 다루는 마법이었으니까.
‘없어도 될 것 같긴 하네.’
“아, 그, 그게….”
제8 군단을 카를 자신의 군대로 통째로 삼켜 버리기 위한 전초 작업.
그 시작은 부관인 요한나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카를은 이시엘에게서 들은 조언을 떠올렸다.
세리아를 단숨에 제 충성스러운 부하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을 보고 먼저 요청한 조언이었다.
―악마들은 쉽게 사랑에 빠지고 쉽게 식는다. 몇 주를 바짝 붙어 지냈다면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다.
그녀가 지칭하는 악마는 악령 따위가 아닌 ‘악마족’이라 불리는 마족.
일부는 마왕의 자리에 오를 정도로 강하지만 요한나와 같이 대부분의 악마족들은 흔히 말하는 서큐버스나 인큐버스였다.
―그 점을 이용해라, 공작 까마귀. 연심으로 이성을 흐트려 놓고 자기도 모르게 그대를 따르게끔 만들어라.
“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겠습니다. 요한나 공께서도 부관 자리에 계속 머무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거절하시더라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대가 삼켜야 할 병사들은 그대보다 그 부관이라는 자를 훨씬 오래 따랐다. 부관이 먼저 그대를 맹목적으로 따르기 시작하면 병사들도 그리할 것이다. 그대가 한 일이 있으니, 맹목적으로 따르더라도 의문을 품는 이도 없겠지.
“아, 아니요. 안타레스 장군님.”
“예?”
“다, 당분간이라 하셨으니 뎨가… 아, 으. 제가, 그동안은 부관을 맡… 도록 하겠습니다.”
혀까지 씹을 정도로 당황한 요한나의 대답에 그는 부드럽게 웃어 보이며 답했다.
“고맙습니다. 요한나 공.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 대화를 주고받은 후, 카를은 이시엘이 해 준 조언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내가 악마들을 요직에 앉히지 않는 이유다. 그것들은 연심에 너무 쉽게 휘둘려.
마족들의 왕이 해 준 조언은 제대로 적중했다.
* * *
“…으.”
아직 임시로 사용되고 있는 지휘관용 숙소에서 카를은 지끈거리는 두통을 느끼고 몸을 일으켰다.
새소리는커녕 사위가 적막하였다. 창문을 열자 동이 트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힐.”
꾸욱 눌러 대는 듯한 통증에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대고 치유 마법을 사용하였으나 두통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육체적인 통증은 회복해도 정신적인 통증은 회복하기 어려운 게 치유 마법이었다.
“진짜… 이것 때문인가.”
카를은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부여잡고 중얼거렸다.
이시엘의 말마따나 황천은 결코 은혜로운 마법이 아니었다.
육체와 정신에 남기는 적지 않은 부작용.
대규모 전장형 마법에서, 아티팩트로 발동하는 소형 마법으로 축소되었기에 육체적 부작용은 덜했지만 정신에 남는 부작용은 여전한 것 같았다.
“젠장….”
두통 때문에 당장에라도 목걸이를 벗고 싶었지만, 카를은 필사적으로 그 충동을 억눌렀다.
한 번 황천의 영향에서 벗어나면 수 시간은 다시 그 영향을 받을 수 없었다.
지금 목걸이를 벗어 던진다면 오후는 되어야 다시 ‘황천’의 영향을 받아 엘프의 모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끈거리는 두통 탓에 몸이 아프다든가 따위의 핑계를 대고 방문자를 아예 차단할 수도 있을 테지만… 오늘은 불가능했다.
“벌써 준비하고 있나….”
신생 마족 연합의 대장군 드라일이 친히 레카샤까지 행차하는 날이었다.
병사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그 대장군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후우….”
그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성문 안쪽에서는 제8 군단과 더불어 칼리가 이끄는 병사들이 각각 오와 열을 맞추어 도열하고 있었다.
드라일이 도착하는 대로 전투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카를은 자신의 병사들을 향해 다가갔다.
“안타레스 님…?”
연인은 아니지만 단순한 상사와 부하의 관계도 아니게 된 요한나가 가장 먼저 카를의 이상을 눈치채고 다가왔다.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혹시 불편하신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두통이 조금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제야 카를은 병사는 물론이고 백인장들도 자기 눈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타레스’가 큰일이 없을 때는 늘 은은한 미소를 짓고 다닌 까닭이리라.
그는 병사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그 미소를 다시 지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다들 잘하고 있으니 전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시지요.”
“예! 장군님!”
새벽이었지만 병사들의 목소리에는 기합이 잔뜩 들어 있었다.
아무렴 대장군이 직접 행차한다니 잔뜩 긴장한 것이리라.
카를은 잠시 그들을 둘러보다가 요한나와 백인장들을 불러 모았다.
“작업이 끝나는 대로 떠날 채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전 같았으면 한 번은 되물었을 요한나가 별말 없이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에 백인장들은 조금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카를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짓누르면서 설명했다.
“이곳에 주둔하는 병력은 이리 많을 필요가 없습니다. 아마 대장군은 머릿수가 많고 여기 쌍둥이 성채까지 점령한 저희를 움직이실 겁니다.”
“아…! 그러면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예, 수고하십시오.”
연락병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아직 할 일이 남았던 요한나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 고개만 숙이고서 돌아섰다.
‘악신이 강림하고 이시엘까지 오면 난장판이 될 거야….’
제8 군단의 배반은 드라일이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 ‘정사’에는 이런 일이 없었고, 이런 일에 대비하는 모습도 없었으니까.
그런 만큼 더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더 깊은 상처를 남길 것이다.
그를 위해선 제8 군단의 병력을 온전하게 보존할 필요가 있었다.
―부우우우.
그때, 성벽 위에서 긴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드라일이 거의 다 왔다는 신호였다.
카를은 맞은편에 있는 칼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그녀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칼리 또한 카를의 계획을 들어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그녀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기로 결정했다.
혹여나 카를이 드라일에게 의심을 받더라도, 그녀는 의심을 피해 여전히 연합 내부에 남아 있을 수 있도록.
“대장군 각하께서 들어오십니다!”
레카샤의 성문이 열렸다. 드라일의 친위대인 세 쌍둥이 마녀가 제일 앞에 서 있었고, 드라일은 그들을 뒤이어 들어오고 있었다.
“안녕! 오랜만이야!”
“네 소식 많이많이 들었어!”
“잘했다, 잘했어! 완전 잘했어! 안타레스!”
“안타레스.”
통통 튀는 목소리 다음으로 육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나리오에 나오는 것과 똑같은 갑옷을 입은 대장군 드라일이었다.
“정말로, 이곳을 점령했군.”
“예. 대장군 각하. 레칸과, 이곳 레카샤를 점령했지요.”
카를은 안타레스가 되어 입을 열었다.
약간 오만하다 여겨질 수 있을 법한 미소까지 지어 보인 그가 말했다.
드라일은 무감정한 눈빛을 띤 채 물었다.
“세리아는? 세리아 장군은 어디 있는가?”
“세리아 장군이 계신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드라일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
머릿속을 울리는 두통을 애써 무시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