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악신 (1)
“안타레스.”
큰 숨소리와 함께 울리는 낮고 육중한 목소리. 두통 때문인지 그 소리가 머릿속에서 조용히 메아리쳤다.
카를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예. 대장군 각하.”
“각하라는 표현은 너무 무겁군.”
이건 또 무슨 개소리를 하고 있는 걸까.
드라일은 이런 사담(私談)을 하지 않는 캐릭터였다. 호칭 한두 마디 가지고 딴지를 거는 자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서열이 가장 높은 실라스조차 그를 대장군 각하라 부르지 않던가.
‘무슨 말을 하려고….’
두통이 심해지니 드라일의 말 한두 마디에도 짜증이 확 치솟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카를은 그의 의중을 읽어 내곤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이레시아와 그 주위의 도시를 관리하는 총독이 되었을 땐 각하라 불리긴 했지. 그 이전에는 군단장 합하였고. 그런데 그게 지금 와서 다 무슨 의미가 있겠나.”
무미건조한 어조로 옛날 이야기를 중얼거린 그는 주먹을 쥐어 제 갑옷에 달린 연합의 휘장을 쿵쿵, 두드렸다.
총독이나 군단장이라는 호칭은 마왕의 아래에 있을 때니 그 호칭을 쓰지 말라는 걸까.
카를은 그를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럼 제가 대장군 각하를 어떻게 부르면 되겠습니까?”
“대장군 동지라고 부르게. 아니면 장군 동지도 괜찮군.”
“예, 대장군 동지. 그래서, 제게 무슨 질문을 하시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드라일이라는 캐릭터를 알고 있었던 카를은 그가 왜 이런 말을 꺼냈는지 짐작했다.
나름 대화를 통해 분위기를 풀고 기습적으로 질문을 던지려 한 것이리라.
그걸 파악한 카를이 먼저 묻자 드라일은 눈을 살짝 뜨면서 대답했다.
“마녀들에게 안타레스 자네가 마법으로 몸을 감싸고 있다고 들었다.”
“그렇습니까?”
“그래, 그것도 늘. 한시도 빠짐없이. 지금도 느껴지는군.”
드라일은 아직 승천자가 아니었다. 마력을 조금 감지하고 마법을 조금 쓸 수는 있을 테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마법인지는 모를 것이다.
카를은 담담한 어조로 사실대로 말했다.
“대장군 동지께서도 아시는 마법입니다. 황천이지요. 제 몸에 흐르는 피에서 힘을 끌어내는 마법입니다.”
“그러한가.”
드라일은 다시 한 차례, 무미건조한 어조로 물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푸륵. 옅은 콧김과 함께 순간 드라일의 덩치가 커졌다.
갑옷에 틈이 없을 정도로 부푸는 근육. 게임에선 ‘위압감’이라는 스킬로 구현된 미노타우로스들의 위협이었다.
설정상 고블린 같은 종족은 이 스킬 하나만으로도 미노타우로스에게 설설 기어야 하지만 카를에겐 그런 효과가 없었다.
‘위압감’은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나약한 적에게만 효과가 있는 스킬이었으니까.
드라일은 자신이 압박을 느끼고 이유까지 털어놓기를 유도했으리라. 그것까지 읽어 낸 카를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렇지요. 단순한 마법입니다.”
“……흠.”
“충분한 대답이 되었습니까?”
이렇게 물으면 드라일은 수긍하거나, 자신이 직접 이유를 물을 수밖에 없다. 그런 계산하에 던진 질문이었다.
어째서일까.
두통이 머리를 짓누르는 지금이 오히려 사고의 회전이 빨라진 것 같았다.
“왜 계속해서 마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
그래.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다.
카를은 드라일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마녀들이 먼저 의심하기 시작했으리라.
아직은 때가 아니다. 이 의심을 벗어나야 한다. 그러니 태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제 힘을 끌어내기 위해서지요.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 다른 이유를 물었다. 안타레스.”
“불리한 전투를 이기기 위해서는 다른 변수가 필요했습니다. 대장군 동지.”
카를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이럴 때는 오히려 더 당당하게 나가는 것이 낫다는 계산하에 행한 행동이었다.
“제가 쓰러트린 ‘남작’ 자매들은 세리아 장군을 인질로 잡고 전세를 유리하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제가 제힘을 이 마법으로 끌어내지 않았다면 승리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아.
숨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 카를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장군 앞에서 보일 만한 행동은 아니었다. 하지만 먼저 의심한 건 드라일이었기에, 그는 카를의 행동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못했다.
“대장군 각하. 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대장군 각하의 혈육을 구하고, 대장군 각하의 간부들이 실패를 두려워해서 도전하지 않은 성채를, 대장군 각하의 이름으로 점령하게 만든 제가, 의심스러우십니까?”
“…….”
“그리 의심스럽다면 저를 여기서 내치십시오. 단, 저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는 않겠습니다.”
“허.”
드라일이 헛웃음을 지었다. 투구를 벗고 눌린 자신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그가 말했다.
“그렇게 안 봤는데, 안타레스 자네는 엘프답지 않게 꽤나… 호탕하군.”
“겁쟁이였다면 대삼림에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 그것도 그렇지. 동지여, 의심해서 미안하네.”
그는 필요할 때는 제 자존심을 꺾을 줄 아는 자였다.
완벽하게 통했다는 것을 직감한 카를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의심이 풀리셨다니 다행입니다. 대장군 동지.”
“다행이군. 그래서, 안타레스여. 세리아의 상태는 어떤가?”
“웬만한 상처는 거의 다 치료했습니다. 다만 아직….”
쩌저저적―!
갑자기 들려온 굉음에 카를의 목소리가 갈 곳을 잃었다.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드라일이 이상을 느끼고 고개를 틀었다.
레카샤에서 가장 높은 첨탑. 도시를 점령한 연합군이 임시 지휘소로 삼은 곳.
그곳에 벼락이 내리꽂혔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니.”
조금의 당황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드라일은 벼락을 맞아 불타는 첨탑을 바라보며 다시 투구를 썼다.
아직 승천자가 아니라지만 그래도 드라일은 손꼽히는 강자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겁먹지 않을 정도의 강자.
“기이한 일이군. 안타레스, 나는 상황을 확인해 보겠다.”
투구를 쓴 그가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이었다.
번쩍! 머리 위로 시야를 하얗게 물들이는 빛이 터져 나왔다.
카를은 반쯤 본능적으로 마법을 펼쳤다. 영창 없이 형성된 보호막이 둘을 감쌌고, 뒤이어 굉음이 그들을 덮쳤다.
“……우연은 아니군.”
마른하늘에 떨어진 날벼락. 첫 번째는 가장 높은 건물이었기에 우연이라 치부할 수도 있었지만 두 번째는 아니었다.
쿠르르릉―!
이후로 다시 벼락이 내리쳤다. 허공이나 빈 땅에 내리치지 않고, 누군가가 있는 곳으로.
순식간에 누군가가 죽어 나갔다. 병사들이 점령한, 승전의 분위기가 지배한 도시에 죽음의 향기가 풍기기 시작한 건 순식간이었다.
“고맙군, 안타레스. 이 빚은….”
“…….”
“안타레스?”
조금 전부터 아무 말이 없는 그를 향해 드라일이 고개를 돌렸다.
마법을 펼쳐 벼락을 막아 낸 그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입에서 흐른, 새빨간 피.
“이게 무슨…?”
카를은 자기가 토해 낸 피가 손에 묻어 있는 것을 보고 말을 이었다.
반응은 늦지 않았다. 마법은 펼쳐졌고, 벼락은 완벽히 막혔다. 그 증거로 드라일은 솜털 하나 다치지 않았다.
“웬 피가 이렇게….”
“안타레스?”
대장군의 목소리가 귀를 스쳤다. 붉은 선혈을 보고 잠시 멈추었던 사고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고, 판단을 내렸다.
곧, 강림이 이루어진다. 자신의 이 원인 모를 부상으로 인해 드라일이 강림할 신과의 싸움을 피하게 된다면, 그거야 말로 최악이다.
“가십시오. 대장군 동지. 저는 괜찮습니다.”
“피를 그렇게 흘리고….”
“저는 겨우 피만 흘렸지만, 병사들은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목소리를 높이자 입안에 고여 있었던 피가 살짝 튀어 드라일의 갑옷에 묻었다.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드라일이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빚은 반드시 갚지.”
그는 카를을 등지고 돌아섰다. 맑았던 하늘은 어느샌가 어둡게 물들었고, 하늘에 모인 구름이 점점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신의 강림. 그 직전에 있는 전조 현상임을 카를은 바로 알아차렸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입에서 흐르는 피였다.
눈앞이 번쩍거리며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뇌는 계속해서 그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독…?”
순간 떠오른 가능성 중 하나. 하지만 곧 독은 아님을 직감했다.
아침 식사는 하지 않았고, 깨어난 이후로 마신 물도 없다.
독이 주입되도록 누군가와 접촉한 적도 없고, 결정적으로 중독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마력의 순환은 원활했다.
“일단….”
카를은 체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가슴에 손을 가져갔다.
손안에서 마법이 구성되고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손끝에 남은 마력의 감각이, 몸의 내부가 칼에 난도질당한 것처럼 갈가리 찢겨 있음을 알려 주었다.
[…….]“윽…!”
시야가 점멸하며 눈앞에 무언가 떠올랐다.
반투명한 푸른 홀로그램. 지금의 삶이 사실은 게임이었다는 것을 알려 주는 유일한 연결 고리, 시스템 창이었다.
그 시스템 창을 바라본 순간 또 한 번 강렬한 두통이 일었다.
[신규 퀘스트가 발급되었습니다.]신의 강림에 맞춰져서 때마침 퀘스트를 내린 걸까. 정신이 없는 와중이었으나, 그래도 이성을 가다듬고 그 내용을 확인하려는 찰나.
[최우선 목표 : 마녀들과의 조우]“뭐?”
[세 명의 마녀들은 대륙에서 가장 어리지만 가장 나이가 많은 마녀입니다. 그들은….] [보상 : 특성 포….]“이건….”
[최우선 목표 달성!] [보상 : 특성 포인트….]수십 개의.
[신규 퀘스트가 발급되었습니다.] [최우선 목표 : 대담한 기만전술] [드라일은 신생 마족 연합의 대표이자 명실상부한 반 마왕파의 수장으로서….] [보상 : 초급 특성….]시스템 알림들이 눈앞에서 휘몰아쳤다.
[최우선 목표 달성!] [보상 : ……] [신규 퀘스트가 발급….] [최우선 목표 : …….]카를 자신이 ‘안타레스’라는 가면을 쓴 채 활동하며 거쳐 온 일들이.
[적 처치 보상 포인트 : ……] [최우선 목표 달성!] [신규 퀘스트가 발급되었습니다!]눈앞에서 파도처럼 떠밀려 왔다.
망막 앞에서 수없이 많은 ‘시스템 알림’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셀 수도 없이 많은 포인트가 쌓였고, 각종 보상이 그것을 뒤따랐다.
하지만 카를은 그 보상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게 왜 갑자기….”
그는 자신의 기억을 되짚었다. 마지막으로 시스템 창을 보았을 때를 떠올렸다.
대삼림. 결계를 유지하는 어머니 나무 아래. 그곳에서 알시아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들꽃과 멧새와 시와 바람의 이야기.]그게 마지막이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시스템 창은 자취를 감추어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카를은 그걸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가 안타레스라는 이름의 엘프로 활동하는 건 명백히 정사에서 벗어난 일이었으니까.
정현 자신과 마찬가지로 시나리오에 대한 지식을 가진 황제는 이를 정사에선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 칭했다.
정사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자신에게, 시스템이 반응하지 않는 것이라 여겼다.
“시스템은 ‘정사’ 따위를 구분하지 않는다….”
문제는 지금도 눈앞에서 떠오르고 사라지는 수많은 알림의 내용이었다.
대삼림에서 나온 직후 마녀들을 만나는 것부터 시작해 쌍둥이 성채를 점령하는 과정까지, 곳곳에서 ‘시스템’은 퀘스트를 주며 카를 자신의 행동을 유도하고 있었다.
“…시스템은 그냥 이정표일 뿐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숨겨져 있었다가, 이제서야 다시금 시스템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는가.
“…….”
카를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소용돌이치는 먹구름의 한가운데, 태풍의 눈에서 10m는 훌쩍 넘는 정체불명의 거체가 서서히 내려오고 있었다.
이 세계의 악신(惡神) 중 하나.
불멸의 신 크라누스.
“당신이었나….”
아직도 머리를 괴롭히는 두통은, 크라누스의 강림이 예정된 오늘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입에서 피를 흘린 순간은, 크라누스가 내리친 벼락을 자신의 마법으로 막아 냈을 때부터였다.
단순한 두통이 아니었다. 벼락이라는 칼과 마법이라는 방패가 부딪친 게 아니었다.
신과 신의 싸움. 신격과 신격의 충돌.
그리고 지금, 카를은 어느 신의 그림자 아래에 서 있었다.
“알시아…!”
하늘을 올려다본 카를이 분노에 찬 목소리를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