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악신 (3)
알시아의 신격이 낮은 편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시나리오 내에서 등장하는 신들과 비교했을 때였다.
카를이 마주했던 카티아―라즈. 거수를 강림시켰던 허기와 굶주림의 신.
절망의 신과 전쟁의 신.
하나같이 강림하는 것만으로 시나리오의 흐름을 바꾸고, 캐릭터 한둘이 아니라 제국 전체를 동원해 상대해야 하는 존재들이었다.
‘알시아는 그 정도는 아니지….’
하지만 알시아 또한 신이었다. 카를이 죽여 보았던 사도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진짜 신(神).
그 신과 신격을 공유한다는 것은, 알시아가 다루는 권능도 자신이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들꽃의 축복] [수백 년 동안 자라난 고목부터 어제 피어난 들꽃까지, 모든 식물이 당신의 의지에 따릅니다.]시스템에도 일종의 자아 비슷한 게 있는 걸까, 오랜만에 본 까닭인지 평소에는 카를이 직접 찾아보아야 하는 정보들을 알아서 토해 내기 시작했다.
카를은 그것들을 눈으로 훑으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멧새의 축복] [딱정벌레와 다람쥐, 들고양이와 멧새. 모든 짐승들이 당신의 의지에 답합니다.]알시아가 관장하는 개념은 숲. 그런만큼 권능 또한 대부분이 숲과 관련되어 있었다.
[시의 축복] [성격은 밝게, 어조는 가볍게. 대다수의 사람은 자신에게 친절하고 재미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당신의 성격과 언어를 시어로 교정하여 다른 이들과 친해질 수 있도록 합니다.]‘내 성격이 이것 때문에….’
이시엘이 말하기 전에는 스스로 자각조차 하지 못한 자신의 성격의 변화.
이 또한 시스템처럼 알시아의 개입 때문에 발생한 까닭이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가장 필요하지 않은 축복. 그리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대가 꿈같은 이야기를 노래할 수 있길. 그리하여 새로운 길을 열 수 있길.] [알시아의 권능이 작용하여 축복의 효과가 변경됩니다!] [시어 마법을 사용하는 동안 당신은 마법에 신격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그 내용을 눈으로 훑던 카를은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알시아는 아마 카를 자신의 기억을 읽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간섭해 시스템을 숨길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일 가능성이 높았다.
기억을 읽었다면, 자신이 시어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라는 것도 알아냈을 것이다.
“이런 것도 가능한 거냐….”
하지만 카를이 진정 감탄한 이유는 알시아가 자신에게 맞춰진 축복을 주어서가 아니었다.
마법에 신격을 담아낼 수 있다는 그 효과 때문이었다.
카를은 잠시 고개를 돌렸다.
―아라시아스!
그곳에선 어느 신이 천둥 같은 목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아마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지금의 카를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
신은 자신에게 복종하라는 말을 외치고 있었다.
“내가 직접 소멸시킬 방법이 없다는 걸 아는 건가….”
크라누스는 불멸이라는 개념을 관장하는, 불멸하는 신이었다. 마법만으로 크라누스를 소멸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 축복이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크라누스가 거대한 바위고 자신의 마법이 망치라면, 이제부터 자신의 몸에 깃든 신격은 한 자루의 정이 된다.
망치만 가지고 바위를 깨뜨리는 건 어렵지만 정을 대고 망치를 그 위에 두들기면 바위라도 쉽게 깨뜨릴 수 있었다.
“진작 이렇게 할 것이지.”
그리고 카를은 가볍게 땅을 박찼다.
몸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비행 마법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몸이 떠올랐다.
간단하지만 유용한 축복.
카를은 순풍을 타고 앞으로 나아갔다. 크라누스의 강림 직후 벼락이 내리쳤던 첨탑은 이곳저곳에 불이 붙어 있었다.
지휘소 내부는 이미 화염으로 휩싸여 있었다. 어차피 다 필요 없는 자료들 뿐이었기에 카를은 무시하고 첨탑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쯧.”
첨탑의 내부 역시 벼락의 여파로 화재가 발생한 상태였다.
잠시 불을 끌까 고민했지만 첨탑을 태우는 화염은 모조리 크라누스의 신격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마법을 동원해 불을 끄는 것도 카를이 지닌 알시아의 신격과 크라누스의 신격이 충돌하는 것이었다. 불필요하게 신격의 손실을 발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좋아….”
카를은 보호막도 없이 불타는 복도를 내달렸다. 불타 무너진 계단을 뛰어넘었다.
그 순간 허물어진 목소리가 카를의 귀에 들려왔다.
“……!”
불타 무너진 계단 앞에 세리아가 있었다.
말을 못 하는 그녀는 카를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만.”
“…?”
카를은 손으로 세리아의 턱을 부드럽게 잡았다. 당황한 기색의 세리아는 곧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손에서 흘러나온 새하얀 빛이 입가를 감싼 것이다.
“아, 어? 어라? 혀가….”
“미안하다. 진작에 낫게 해 줬어야 했는데.”
“괘, 괜찬항요. 아, 혀가 꼬여서… 그런데 제가 어떻게 부르면 될까요? 까마귀 님? 아니면 안타레스… 님?”
“원래 이름은 카를이야. 남들이 보는 앞에선 안타레스로. 다를 땐 편한 대로 불러.”
“앗, 네!”
세리아는 말끔하게 나은 것이 신기한지 혀를 살짝 내밀어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그러다가 곧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불타는 첨탑 내부라는 것을 떠올렸는지 아, 하는 목소리와 함께 카를을 바라보았다.
“저어, 까마귀 님. 저희 마왕 전하께서도 함께 오셨나요?”
열렬한 광신자 같은 눈빛. 이시엘이 그녀에게 건 매료의 효과가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잠시 침묵하던 카를이 대답했다.
“곧 올 거야.”
“아아… 다행이다. 그러면, 까마귀 님… 저희 삼촌은요? 아까 보니까 온 것 같던데….”
“저거 보이지?”
카를은 창문 밖을 가리켰다.
불멸의 신 크라누스와 놈이 소환한 번개를 머금은 먹구름 괴물들.
환각을 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그 광경을 가리키며 카를이 말을 이었다.
“저기에 있을 거다.”
“그러면… 저는요?”
“이렇게 말하긴 미안한데… 네 안부를 물어보기 전에 나부터 떠보더라. 내가 왜 마법을 몸에 두르고 있냐고.”
“저를 보지도 않고 그냥 갔다고요…?”
큼직한 눈을 몇 번 깜빡인 세리아가 연이어 물었다.
“제, 제가 여기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은 건가요? 아까 여기에 벼락이 떨어졌는데 어떻게….”
“알려 줬어. 드라일도 여기에 벼락이 떨어진 걸 봤고.”
“아….”
세리아가 탄식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전에 자신이 드라일에게 사실상 버려졌음을 알았을 때와는 다르게 절망이 묻어 나오진 않았다.
자신이 버려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까닭일까, 세리아는 눈이 돌아간 채로 물었다.
“그러면 까마귀 님, 저는 뭘 하면 될까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말해 주세요.”
“…으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그게 지금의 세리아였다. 돌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통제해야 했다. 자칫 잘못했다가 계획이 어그러질 가능성도 있었다.
“나가, 알지? 물고기 종족?”
“네? 들어 본 적은 있는데 직접 본 적은….”
“목에 아가미가 달렸고 뺨에 지느러미가 달린 놈들이야. 척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지하 감옥에 나가들을 이끄는 수장이 갇혀 있어.”
“네, 네!”
“그 나가 이름이 레샬리에야. 레샬리에한테 내 이름을… 그러니까 공작 까마귀가 보냈다고 하고 레샬리에를 풀어 줘. 그리고 남서쪽에 있는 수용소에 가서 다른 나가들까지 풀어 줘.”
드라일에게 사실상 버려졌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여전히 대장군의 혈육이었다. 감옥을 지키는 병사들은 세리아라는 이름만 들어도 설설 길 것이다.
“나가들은 이시엘을 따르니까… 나가들을 데리고 이시엘을 기다리면 될 거야.”
“네! 그러면 그렇게 할게요!”
“좋아.”
카를은 벽을 향해 손을 뻗은 뒤, 마력을 터뜨려 벽을 무너뜨렸다.
알시아의 권능을 이용해 자신과 세리아의 몸을 바람으로 휘감은 그는 금세 첨탑 아래로 내려왔다.
“와, 와, 와, 와…?”
“조금 있으면 이시엘이 올 거야. 내가 말한 거 말고, 다른 짓은 하지 마.”
“네!”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단단히 당부까지 전달하고 나서야 카를은 안심할 수 있었다.
지하 감옥이 위치한 방향으로 향하는 세리아에게서 고개를 돌린 카를은 수십 개의 벼락이 몰아치고 있는 도시의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이시엘.”
―…….
“내 목소리 들리지?”
―이게 무슨…?
게임 내에서, 어떻게 사도들이 기가 막히게 승천자들이 있는 곳을 피해서 강림했는지 알 것 같았다.
분명히 패턴대로 강림하던 사도들은 패턴을 외워 승천자를 미리 배치하자 괴이한 장소에 새롭게 강림했다.
원인은 지극히 단순했다.
‘위치가 대충 감이 잡혀….’
신격을 지니면 저절로 힘을 가진 자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적지 않은 존재감을 뿜어내는 크라누스와, 그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적지 않은 존재감을 흘리는 이시엘.
레카샤가 등지고 있는 산의 반대편에 그녀가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곳으로 전음 마법을 전송하자, 이시엘의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공작 까마귀, 그대인가?
“그래. 나 맞아.”
―까마귀에게서 흐르는 마력과 성질이 다르다. 이건….
“밀크티. 설탕 가득.”
―……네놈이군.
순식간에 험악해진 목소리가 마력을 타고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알시아의 신격을 얻은 카를이 이시엘의 기운을 느끼듯, 이시엘은 지금 카를에게서 신격을 느낀 것이리라.
―설마 저것의 사도에게 몸을 빼앗겼나 생각했는데… 그런 건 아니었군.
“나중에 설명할게. 지금은 당장 눈앞의 일에 집중하자.”
―그러지. 그러면 언제 돌입하면 되겠나?
목적은 드라일에게 패배를 안기는 것.
“지금 당장.”
―…지금?
“지금이라면.”
원래 계획은 드라일과 그가 이끄는 군사들이 크라누스와 싸우다가 서로가 궤멸적인 피해를 입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카를은 계획을 바꾸는 것이 나으리라고 판단했다.
“내가 저 신을 죽일 수 있어.”
―…….
“너는 드라일을 꺾는 데 집중해. 병력의 절반 정도는 성 밖에 있고, 성 내부는 난장판이 되어 있으니까 기습이 제대로 먹힐 거야.”
―알겠다. 그러면 지금 당장 움직이지.
“그럴 필요 없어.”
카를은 단호하게 대답한 뒤 마력을 끌어올렸다.
평소의 자신이라면 시도조차 하지 못할 일. 아니, 그 어떤 마법사가 와도 시도하지 못할 마법.
하지만 신격을 빌린 지금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휘몰아치는 태풍의 눈이 감긴 지금, 나는 세상을 속일지어니.”
카를의 마력이 대지에 펼쳐졌다. 막대한 양의 마력이 몸에서 빠져나갔으나, 곧 알시아에게서 빌린 신격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눈앞에 반투명한 글자가 떠올랐다.
[당신의 마법이 알시아의 권능을 발현시킵니다.]권능의 발현.
그것과 동시에 카를의 눈앞에 백이 넘는 숫자의 마족들이 나타났다.
“……이게 무슨.”
이시엘과 그녀의 친위대들.
그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전이한 것이었다.
공간 마법의 발현도 아닌 전이 마법.
대상은 시전자 자신이 아닌 먼 거리에 떨어진 백이 넘는 타인들.
인간은 물론이고 마왕이라 불리는 이시엘도 시도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마법이었다.
“음.”
그 마법을 성공한 장본인은 다만 만족스럽다는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이게 되네.”
또 한 가지.
“이거면 확실해.”
마법의 성공을 통해 카를은 자신이 크라누스를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