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악신 (5)
날카롭게 벼려 낸 창이 허공을 꿰뚫었다. 방금까지 드라일의 심장이 위치했던 장소였다.
미노타우로스와 같이 극한의 신체 능력을 보유한 마족들은 오감을 넘어 육감마저 가지고 있었다.
한때 성주에, 그리고 총독의 자리에까지 오를 정도로 무력이 대단한 드라일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것 하나만은 인정하마.”
찔러 넣은 창을 휘둘러 다시 자세를 고친 이시엘이 나직한 목소리를 흘렸다.
“네놈이 그 대단한 무용만큼이나 비상한 두뇌를 가지고 있음을.”
창끝이 휘둘러지는 것과 동시에 작은 돌풍이 일었다.
무영창, 무형상. 아무런 전조 없이 발동된 마법이 창끝에 담겨 사용된 것이었다.
바람에 휘날린 흙탕물이 사방을 튀겼다. 다시 창을 휘두르는 것과 함께 진흙이 튀었고, 창과 마법을 피하기에 바빴던 드라일의 갑옷이 더럽혀졌다.
그러나 이시엘만은 여전히 고아했다.
“하지만 이번엔 네놈이 실수했다.”
하늘에서 한 줄기 벼락이 내리쳤다.
두 사람의 결투가 벌어지는 곳의 한가운데였다. 둘만의 전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그 신은 괴상한 음성과 함께 수십 줄기의 벼락을 내리꽂기 시작했다.
“후방에 처박혀 있을 작정이었다면 영원히 처박혀 있었어야 할 것을.”
드라일은 이시엘의 창과 더불어 벼락을 피해 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어지간한 마족들은 벼락 한 번에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증발해 버리며, 웬만큼 강하다 여겨지는 이들도 새까맣게 탄 시체가 될 뿐이었으니.
안타레스가 막아 낸 한 줄기 벼락의 위력을 가늠했던 드라일은 자신이 맞는다면 치명상을 피할 수 없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처 장악하지도 못한 성채로 발걸음을 옮긴 것은 너의 실책이다.”
콰과광―!
굉음과 함께 떨어진 벼락에 정통으로 적중했으나 이시엘은 멀쩡했다.
머리에 쓴 투구에 달린 작은 깃털의 끝부분만이 약간 그을렸을 뿐.
명백한 격의 차이가 있었다.
“빌어 처먹을….”
흙탕물에서 구르던 드라일이 욕설을 짓씹으며 몸을 일으켰다.
지금은 이길 수 없다. 절대로.
드라일은 눈알을 굴리면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았다.
“네놈.”
콰앙!
창이 대지에 내리꽂히며 대지를 뒤흔들었다. 창대를 쥔 마왕은 눈을 흉흉하게 빛내고 있었다.
“결투를 신청한 주제에 한눈을 파는가. 퍽 여유로워 보이는군.”
“저 괴물의 동태를 살폈을 뿐이다!”
드라일이 악에 받친 목소리를 터뜨렸다. 아직 살아남은 병사들은 하늘에서 날뛰는 괴물에게 하나둘 휩쓸려 나가고 있었다.
애초에 드라일이 앞에서 시선을 끌어 주고 있었기에 맞서는 것이 가능했다. 평범한 병사들은 괴물이 아니라, 괴물이 내보내는 먹구름 괴물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군주여! 지금은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다! 설령 레카샤가….”
“흠.”
쿠르릉. 하늘에서 굉음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괴물이 팔을 움직였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주먹을 내리쳤다.
이시엘은 다만 그 주먹을 향해 창을 휘둘렀고, 격돌했다.
“총독.”
“…….”
“네놈은 신을 죽여 본 적이 없는 모양이군.”
시뻘건 주먹의 손가락들이 창날에 잘려 날아갔다. 잘려 나간 것이 무색하게도 씨앗에서 싹이 나는 것처럼 손가락들은 다시 자라났으나 그와 동시에 거대한 비명이 터졌다.
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괴물, 아니 신의 비명 소리. 이시엘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가슴 앞에서 주먹을 쥐었다.
그녀는 전음을 보낸 뒤,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내가 아는 누군가는 저 신을 죽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거늘, 네놈은 저깟 것 하나 감당하지 못해 결투를 더럽히는군.”
“저 괴물을 감당할 수 있는 자가 또 있다고…?”
드라일이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한 줄기 바람이 불며 하늘을 가득 채운 먹구름을 날려 버렸다.
신의 강림을 알리는 그 증거물이 다만 한 줄기 바람에 날려 사라진 것이었다.
―다아아….
불멸의 신이 입을 쩍 벌리고 굉음을 흘리며 바람이 불어온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벼락을 품은 먹구름 괴물 또한 자신들이 섬기는 신의 뒤를 따랐다.
드라일은 당황하여 자신의 싸움마저 잊고 그 방향을 바라보았다.
“대체 누가….”
“총독 그대는 알 필요 없다.”
이시엘의 창은 그런 드라일의 의식을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그녀가 내뻗은 창에 베여, 드라일의 얼굴에 얇은 상처가 새겨진 것이었다.
“이젠 알 수도 없을 테지. 총독 그대는 반역자로서 이곳에서 죽을 테니.”
“반역이라니!”
이대로 가면 어떻게 될지 결과는 뻔하다. 도망치기 위해서는 시간이라도 벌어야 한다.
그리 판단 내린 드라일은 금이 간 건틀렛을 낀 손으로 다시금 주먹을 쥐고 외쳤다.
“나는 군주의 자리에 도전했을 뿐이다! 군주가 앉은 옥좌의 앞에서 결투를 청하는 것만이 도전이던가!”
더 높은 자리에 이르기 위하여 군주에게 도전하는 것을 마족들은 반역이라 여기지 않는다. 따라서 도전만을 이유로 반역 혐의에 처하지도 않는다.
한때 총독의 자리에까지 오를 정도로 권력에 가까이 있었던 드라일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런 계산하에 외친 말이었다.
“내가 한 일 또한 군주의 자리에 도전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반역이라니! 군주의 자리에 올라서 도전자를 음해하려 드는 건가!”
“틀렸다. 총독.”
그녀의 눈빛은 결연했다.
이미 드라일의 말에 여러 번 속아 넘어간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자칫하면 그의 말에 현혹되었을 것이라고 그녀 스스로 인정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두 번 다시 없을 기회. 이시엘은 스스로를 믿기보단 자신에게 기회를 만들어 준 그 남자를 먼저 생각했다.
“네놈이 잊고 있는 게 있구나.”
일섬(一閃).
창이 휘둘러지는 것과 동시에 드라일은 그 공격을 받아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분명히 막아 냈으리라고 확신했으나.
“나는 네놈이 섬기고 따라야 할, 군주다.”
“…컥.”
“나의 말이 곧 네놈이 따라야 하는 법도다.”
날카롭게 벼려진 창은 건틀렛 채로 드라일의 팔을 꿰뚫어 버린 채였다.
손목을 비틀어 창을 빼내자 붉은 선혈이 팍 튀어 발아래의 진흙이 한층 더 걸쭉해졌다.
누가 보아도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상황. 그렇기에 이시엘은 억누르고 있었던 말을 마무리 짓기 위해 입을 열었고.
“반역을 도전이라 포장하지 말….”
그 순간, 세 갈래의 마법이 굵은 빗방울을 뚫고 이시엘을 향해 날아들었다.
* * *
바람 소리가 빗소리에 파묻혀 가늘었다. 직접 강림한 신과 신격을 빌린 인간에게는 그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또 하나의 차이는 직접 강림한 크라누스와 달리 카를에게는 권속이 없다는 것이었다.
“카르르르륵!”
벼락을 머금은 먹구름들이 성난 사냥개 같은 포효를 터뜨렸다.
파지직! 닿는 모든 것을 감전시키는 괴물들은 제 주인을 따라 카를을 쫓아오고 있었다.
벼락을 머금었다지만 구름 덩어리인 그들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데, 시알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구름들은 카를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고작 인간 하나 잡지 못한 탓에 답답해진 것일까, 크라누스가 제 권속들을 향해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를 터뜨렸다.
재촉에 지친 권속들이 카를을 잡기 위해 한 줄기 벼락을 쏘아 냈다.
“지각, 변형, 구릉.”
세 가지 단어가 조합되어 하나의 마법이 만들어졌다.
시어 마법은 아니었으나 크라누스도 아니고 권속들이 쏘아 낸 벼락을 막아 내는 데는 충분했다.
쩌저적. 카를의 마법으로 대지가 뒤틀리며 높은 각도의 경사면을 만들어 냈다.
“흡.”
가볍게 숨을 들이쉰 카를은 바람에 몸을 실어 자신이 만들어 낸 작은 언덕을 부드럽게 타고 올랐다.
언덕에 꽂힌 벼락은 아무 충격도 주지 못하고 증발했다.
자신들의 공격이 무력하게 무위로 돌아가는 것을 본 먹구름 괴물들이 포효를 터뜨린 순간이었다.
―공작 까마귀.
이시엘의 전음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무려 신과 그 권속들에게 쫓기고 있으나 아무 일도 없으리란 확신을 가진 듯, 그녀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이쪽은 끝났다.
“그래?”
―그대가 말한 대로 드라일은 놓아주었다. 죽기 직전까지 내몬 상황에서 기습을 당했으니 고의로 놓아주었다는 의심도 못할 것이다.
이시엘은 세 명의 마녀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고 간략히 설명했다. 그들의 마법에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여서.
―곧 그쪽으로 합류하마.
그것을 끝으로 전음이 끊겼다. 가볍게 벽을 타고 오른 카를은 주위의 가장 높은 건물의 지붕 위에 올랐다.
도시의 반대편. 약 2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누르스름한 폭발이 발생했다.
“저기 있는 건가….”
크라누스의 권속이 죽으면서 생긴 폭발이 분명했다. 카를 자신을 제외하면 크라누스의 권속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이시엘뿐이었으니, 아마 그녀가 맞을 것이다.
“그러면….”
이변을 눈치챈 신의 시선이 카를을 향했다. 지붕 위에 올라 서서야, 카를은 그 신과 시선의 높이를 맞출 수 있었다.
한 명의 신과 한 명의 인간의 시선이 서로 교차했다. 카를은 그 신이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에 자신의 마력을 섞었다.
“이제, 분위기를 한번 바꿔 볼까.”
마력, 즉 알시아의 신격이 담긴 목소리. 똑같이 신격을 지닌 크라누스 또한 카를의 말을 알아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의미까지 이해할 수는 없었는지 크라누스는 그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하늘에 가득 낀 비구름에서 벼락을 끌어 내리치려는 순간, 카를은 조용히 영창을 시작했다.
“이 하늘과 땅의 은혜는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니.”
카를은 일부러 레카샤의 하늘을 먹구름으로 뒤덮었다. 수용소에서 풀려 나온 나가들이 힘을 되찾게 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일부러 크라누스가 다루는 벼락이 강해지는 것을 노린 것이었다.
비구름은 번개를 머금기 쉽고 비에 젖은 땅 위에선 벼락의 위력이 강해졌으니까.
“내 몸이 작다 해도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며.”
그렇게 한 이유는 단순했다.
자신의 ‘불멸’을 과신하는 데서 나오는 크라누스의 오만함.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유리한 환경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더불어 그 환경을 완벽히 빼앗기리라는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 땅이 드넓다 해도 내가 가 보지 못할 정도로 넓진 못하다.”
서서히.
카를의 마법에 의해 만들어진 비구름이 걷혀 갔다. 그 비구름이 머금었던 크라누스의 벼락 또한 비구름이 걷히면서 함께 사라졌다.
카를은 자신의 눈과 똑같은 높이에 있는 어느 신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당혹감이 담겨 있었다.
“그대가 독점한 하늘과 땅의 은혜를 이제는 내가 독점하리.”
바람이 불었다.
약한 산들바람이 아니었다. 먹구름으로 이루어진 크라누스의 권속들이 제 형태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거센 강풍이었다.
한 기. 카를에게 벼락을 쏘아 냈던 권속은 그 여파로 몸뚱이가 줄어들어 그대로 바람에 휩쓸려 흩어져 버렸다.
“다라스…….”
이게 무슨. 그 정도의 뜻이 되는 말이 크라누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형세 역전.
오만한 신이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을 상황.
“카, 투아!”
구름 한 점 없이 찬연하게 빛나는 하늘 아래. 거친 강풍이 불어닥치는 도시의 한복판에서 거대한 신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듯 분노를 외쳤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쳤으나 그뿐.
카를의 마법은 형세만이 아니라 하늘과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고쳐 놓는 마법이었다.
벼락은 크라누스의 권능이었으나, 시어로 발동된 카를의 마법 또한 알시아의 권능이었다.
“카투아!”
이럴 리가 없다는 말을 외치며 크라누스는 거대한 몸뚱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의 주먹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시엘과 드라일의 싸움에 끼어들었던 그 주먹이었다.
카를은 여전히 지붕 위에 선 채로 가만히 있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주먹을 보고 카를은 다만 한 문장의 마법을 영창했다.
“불꽃의 아득함은 영원마저 깎아내리라.”
그의 주위로 거대한 불꽃이 일었다. 불꽃은 그대로 크라누스의 주먹을 삼켰다.
투두둑!
봉제 인형의 실밥이 뽑히는 것과 흡사한 소리. 그것과 함께 포효가 터졌다.
―까마귀.
쿠웅!
화염에 삼켜졌던 크라누스의 거대한 손이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
땅에 떨어졌다.
―저것의 권속들은 모조리 처리했다.
비가 그치고 벼락을 머금은 구름마저 사라져 약해진 권속들은 이시엘에게 쉽게 정리당했다.
그녀는 창을 든 채로 고통스러워하는 신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저것을 죽일 수 있을지 말해 다오.
“…크라누스가 관장하는 개념은 불멸이야.”
불멸(不滅).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지는 그 개념을 관장하는 신, 크라누스.
하지만 크라누스는 신격을 모으기 위해 악신으로 강림할 정도로, 명백히 신격이 낮은 신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불멸이 불사는 아니지.”
이 세계가 본디 게임이었기에 가능한 말장난.
완전한 소멸이 아닌 이상 신은 죽으면 사념체로 돌아간다.
즉.
―그랬군.
크라누스는 사념체로서 소멸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신으로서 죽는 것은 가능했다.
그것이 불멸이라는 개념을 관장하는 크라누스가 나약한 신인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