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61
161화 별빛 (2)
“엄청난 걸 찾았어!”
“…또 무슨.”
도서관.
낡고 바랜 책들이 빼곡히 들어찬 서가가 늘어진 그곳에서, 평온을 깨뜨리는 목소리가 울렸다.
책을 펴 놓고 그 앞에서 웅크려 졸고 있었던 고양이 한 마리가 고개를 들었다.
“예쁜 거!”
고개를 들었던 고양이는 그 말을 듣고서 다시 웅크린 자세로 돌아갔다. 세상 만물의 대부분을 예쁘고 아름다운 것이라 부르는 자가 말하는 ‘예쁜 거’란 곧 아무것도 아닌 물건이었다.
고양이가 아니라 털뭉치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털이 길게 자라난 고양이가 꼬리를 말았다. 직전까지 하고 있었던, 굉장히 편안한 자세를 되찾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틀었다.
그 순간 열 개의 손가락이 털 사이를 파고들어 왔다.
순식간에 털뭉치가 번쩍 하늘로 들렸다.
“……놔라.”
“잠깐이면 돼! 잠깐! 어차피 하는 일도 없잖아?”
“…있다. 하는 일.”
“헤에, 뭔데?”
그 물음에 고양이는 앞다리를 아래로 뻗었다.
글자를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빛이 바랜 책. 삭을 일은 없었지만, 금방 삭을 것처럼 보이는 그 책을 가리킨 고양이를 향해 말이 되돌아왔다.
“그치만 칼… 너 이 책 다 읽었잖아? 한 300번 정도? 어떤 페이지에 무슨 문장이 쓰여 있는지도 알면서.”
“……모른다.”
“413페이지 네 번째 줄에는 무슨 내용이 쓰여 있게~?”
그 순간 고양이가 움찔 수염을 떨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입을 열었다.
“…413페이지에는 글자가 없다. 그 페이지는 통째로 삽화가….”
“거봐. 다 외웠잖아? 내 말 맞지?”
“……그러면 다른 책을.”
“여기 있는 책들, 다 외웠잖아. 왜 자꾸 그래. 잠깐이면 된다니까? 잠깐이면?”
“…다른 녀석들한테 말해라.”
“싹 다 거절당해서 칼을 찾아온 건데?”
고양이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후우… 하는 인간다운 한숨이었다. 폐에서 흘러나온 숨결이 목을 통해 입 밖으로 빠져나가는 생소한 감각이 어쩐지 낯설었다.
책을 붙잡고 있었던 시간이 꽤 길어졌다는 것을 고양이는 자각했다.
“…그래. 그 예쁜 거나 보러 가지.”
“좋아! 그럼 출발!”
“……갈 테니까 내려 주면 안 되겠나.”
“음. 아니! 이러고 있으면 따뜻하니까 조금만 더 이렇게 있자!”
“……하아.”
피곤하게 되었다. 고양이, 칼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언제 자신이 피곤함을 느꼈는지 기억도 제대로 안 난다는 사실을.
서고에 꽂힌 책들처럼 자신의 색채 또한 바래져 가고 있었음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이제라도 말하는 것인데.”
“응?”
“…혹시라도 정말 시답잖은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관두지.”
고양이의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열의라는 것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읽다 못해 외워 버린 책 같은 목소리였다.
다들 자신과 같으리라고, 고양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딱 한 명의 예외. 그러니까 자신을 품에 안은 채 걸어가고 있는 이를 제외하면.
“음… 아냐. 내가 평소에 보여 준 거랑은, 많이 다를 거야. 장담할 수 있어!”
“……대체 어떤 것이기에.”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손이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이 이마에서 뒤로 넘어갈 때, 눈꺼풀이 잡아당겨진 탓에 조금 아팠다.
그 통증마저도 오랜만에 느끼니 신선했다.
“자, 저길 한번 봐.”
“…….”
“아름답지 않아?”
고양이가 눈을 떴다. 가느다랬던 동공이 살짝 커졌다.
두 개의 눈동자에 들어온 것은 한 도시의 전경이었다. 하지만 고양이가 놀란 이유는 그 도시 때문이 아니었다.
도시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 거대한 육신을 가진 거인. 그 거인의 모습을 보고 고양이는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다.
“……저것은.”
“어라? 저걸 보여 주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고양이가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린 순간 자연스럽게 시선이 옮겨졌다. 그를 안고 있는 이가 몸을 튼 것이었다.
고양이는 옮겨진 시선의 정면에 있는 것을 보았다. 한 명의 사람. 거인을 눈앞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때? 칼?”
“…….”
“아름다운 풍경이야. 저 아이가 만들어 낸 풍경. 나는 보자마자 네가 떠올랐다니까? 저 아이도 너처럼 마법사고, 음…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신들이랑 싸우고 있어.”
그녀가 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칼.”
“……듣고 있다.”
“내가 저 아이를 한번 만나 볼까 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리움일까, 아니면 회한(悔恨)일까.
고양이는 자기도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 채로 한동안 눈앞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만나 보는 게 좋을 것 같군.”
“그렇지?”
좋은 생각처럼 들렸다.
고양이의 모습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지고 있는 에르딘 칼렉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다중 연계 마법.
학생들에게 가르치겠노라고, 무려 탑주들 앞에서 큰소리를 쳤던 마법.
그러나 평범한 마법사들의 기준으로 다중 연계 마법은 배우기도, 그리고 가르치기도 어려운 마법이었다.
“카, 아…!”
그래서 카를은 마법의 구조를 연구하면서, 몇 번이나 개량해 왔다. 자신의 특권이 있으면 마법이 발동하는 구조 자체를 뜯어고치는 것도 가능했으니까.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숙련되어야 했다. 어지간해서는 숙련될 수 없는 마법. 그러나 그 숙련도 또한 자신의 특권이 보장해 주었다.
그래서 알시아에게 분노를 내비친 것이었다. 그 신은 카를 자신에게만 허락된 ‘시스템’을 감추고 숨기려 했으니까.
“카, 아아!”
크라누스가 포효를 터뜨렸다. 분노했다. 아마 카를이 사용한 마법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은 것이리라.
놈은 창을 벼려 내기를 멈추고 네 개의 팔을 높이 들어올렸다.
쿵!
육중한 충격과 함께 대지가 울렸다. 크라누스가 손에 머금고 있었던 벼락이 다시금 대지에 스며들었다.
“산을 태우고 사람을 태웠느냐. 태우고 또 태우다 못해 이제 들판마저 태우려 드는구나.”
크라누스의 행동을 본 카를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다시금 시어를 영창해 자신이 발동 시킨 마법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이곳에 들꽃이 피었다. 사방에 꽃이 피었다. 산을 태우고 사람을 태웠을지언정 이 들꽃만은 태우지 못할 것이다.”
즉석에서 지어낸 시어를 읊는다. 알시아의 신격과 함께 자신의 몸에서 마력이 미친 듯이 빠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피를 토해 낸 것도 있어서 눈앞이 살짝 흐릿해졌다. 하지만 카를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카, 투아! 카, 투아!”
크라누스의 입에서 연이어 고함이 터져 나왔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결과가 달랐다.
벼락을 머금어 모든 생물을 태워 죽이던 대지에는 다만 몇 송이의 꽃이 자라났을 뿐이었다.
“이게….”
카를은 그 광경을, 자신이 만들어 낸 세계를 똑바로 바라보며 눈에 담았다.
“…이게 다중 연계 마법.”
원리는 간단했다. 간단함을 넘어 단순했다. 그저 카를이 자신의 권속으로 삼은 새들과 함께 마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여섯 개로 분할된 마법.
새들은 지저귀며 노래를 할 수는 있었지만 시어를 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마법은 성립했다.
……시작은 뱁새였다.
참새와 비견될 정도로 작은 체구를 가진 새.
권속으로 삼아도 신격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작았다.
그래서 시작을 맡았다. 뱁새가 앉아 있었던 첨탑으로부터 마법은 시작되었다.
“…아.”
권속은 사도와 달랐다. 사도는 독자적인 의지를 가지지만, 신격으로 삼은 권속은 꼭두각시 인형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타이밍의 조정이 가능했다. 뱁새가 지저귀며 부른 노래의 첫 소절을, 그다음은 하얀 비둘기가 이어받았다.
비둘기에서 까마귀로, 그다음 새로, 그리고 그다음 새로, 마지막에는 송골매에게.
새들은 저들의 언어로 노래를 불렀다. 그들을 권속으로 삼은 카를의 제어가 완벽하게 통했다. 그 덕분에 마법은 성립했다.
“성공했다.”
단순한 결계.
방어의 결계도, 눈보라를 몰아치게 하는 결계도, 하다못해 먹구름을 만드는 결계도 아니었다.
신격이 담겼다지만 그저 단순한 결계였다. 레카샤라는 한 도시를 뒤덮는, 투명한 결계.
그저 그 결계의 주인이 카를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이 정도라면.”
하지만 다중 연계 마법으로 발현된 결계는 그 위력이 차원이 달랐다.
크라누스의 신격(神格)이자 신성(神性)인 벼락이, 자신의 결계를 조금도 뚫어 내지 못할 정도였다.
시나리오에 나오는 보스. 초반부에 나온다고는 하나 명백한 ‘신’이라 불리는 존재를 저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충분히 가능해.”
반드시 권속이 아니더라도 가능할 것이다. 카를은 그런 확신을 얻었다.
자신은 새들을 지배해 마법을 사용하게끔 한 것이 아니라, 통제한 것에 불과하므로.
훈련을 반복한다면 권속이 아니라 각기 다른 마법사들이라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하지만, 그 일은 나중이었다.
카를은 다시 눈앞의 일에 집중했다. 지금의 자신은 안타레스라는 이름을 대고 다니는 엘프였고, 연합을 무너뜨리기 위해 마족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다중 연계 마법을 가르치는 것은 한참 나중의 일이 될 것이다.
“이것부터, 끝내야겠지.”
마법을 사용한 여운에 잠겨 있었던 카를은 미친 듯이 울부짖는 크라누스를 보았다.
유리한 환경을, 권속들을, 그리고 비장의 수단까지 모조리 막힌 셈이었다.
아마도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운명을 직감한 것이리라.
“아아!”
괴성이 폭발했다. 아직 크라누스에게는 무기가 남아 있었다. 카를의 결계가 펼쳐지기 직전, 창으로 벼려 내려던 벼락들이었다.
파지직! 벼락들이 크라누스의 손아귀 안에서 반짝였다. 모든 것을 빼앗겼으나 진짜 신이 가지는 신격은, 그 위용이 대단했다.
“그오오오!”
네 가닥의 벼락들이 수십 개로 쪼개졌다. 거대한 창이었던 것이 작게 줄어들어 화살 크기가 되었다.
크라누스는 분노로 눈을 불태우며 카를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팔들을 확, 뻗었다.
“…결계에 대해 모르는 게 있는 모양이군.”
수십 발의 화살들이 사방에서 자신을 향해 날아들었다. 십자 포화. 눈속임 따위로는 절대 피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다분했다.
거대한 창의 형태일 때는 단순하게 일직선으로만 날아갔으나, 화살들은 제멋대로 움직였다.
막거나 맞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으리란 것을 카를은 직감했다.
“여긴 이제 내 결계 안이야. 내, 세계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카를은 날아드는 화살들을 바라보며 다만 손을 들어 올렸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그러자.
사방에서 날아들던 화살들이 동영상의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일제히 멈추었다.
카를은 고개를 들어 크라누스를 올려다보았다.
“이 안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거지.”
다른 손가락들을 접고 검지만을 펼친 카를은 손가락을 공중에서 한 바퀴 돌렸다.
그를 노리고 날아들던 벼락들이 뒤집어졌다. 방향이 뒤바뀌어 크라누스를 노렸다.
까닥. 그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오…!”
신이 다시금 포효를 터뜨렸다. 네 개의 팔을 움직였다. 아마도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된 화살을 막아 보려는 듯 했다.
하지만 반드시 맞추겠노라고 작정하고 저지른 공격이었다. 공격의 종류가 바뀐 것이 아니라, 대상만이 바뀌었을 뿐이었다.
“카….”
쿠웅!
거대한 팔 한짝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어서 다른 팔들이 떨어졌다. 종국에 크라누스는 팔이 하나만 남게 되었다. 그 하나도 너덜너덜했다.
불멸의 신은 자신의 공격조차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신격을 소모한 상태였다.
“…….”
이윽고.
크라누스가 털퍼덕 무릎을 꿇고 엎어졌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기뻐하는 내색이 가득 담긴 바람임을 카를은 알 수 있었다.
터벅.
그는 지붕 위에서 내려와 신이 쓰러진 장소로 걸어갔다. 그 앞에는 마왕이 서 있었다.
신으로서 죽더라도 사념체로 돌아가는 불멸의 신을 앞에 두고 그녀가 물었다.
“방법이 있다고 하였지.”
“…그래.”
“어떤 방법이지?”
“신격에 의한 개념 재창조.”
신격을 모조리 소모한 크라누스와 달리 알시아의 신격에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사념체 크라누스가 관장하는 ‘개념’을 변형할 수 있을 정도로.
“그거면 ‘불멸’을 파훼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