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별빛 (4)
똑.
나뭇잎에 매달려 있던 물방울이 돌멩이 위로 떨어지며 경쾌한 소리를 내었다.
똑, 똑, 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물소리가 울렸다.
“…….”
카를은 그 물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허어억. 눈을 뜨자마자 그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마력을 잔뜩 소비한 몸이 본능적으로 숨을 들이쉰 것이었다.
작은 숨을 여러 번 내쉬어 호흡을 고른 카를은 진정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건, 또 무슨.”
한 신이 강림한 까닭에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던 레카샤의 풍경은 아니었다.
실외도 아니었다. 실내. 햇빛이 잘 비쳐 들어오는 방이었다.
이상한 점은 자신은 누워 있는 게 아니라 정자세로 앉아 있다는 점이었다.
하얀 식탁보가 깔린 커다란 식탁 앞의 의자에.
여긴 대체 어디일까.
“…윽.”
의문을 풀기 위해 「분석」을 작동시킨 순간 눈에서 아찔한 통증이 밀려왔다.
처음 맛보는 통증이 아니었다. 이전에도 겪은 적이 있었던 통증.
크라누스가 강림하던 날에 느꼈던 두통과 상당히 흡사했다.
“…대체 뭐지?”
“아…! 미안해. 내가 미처 생각을 못 했….”
“아?”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카를은 두 눈 중 그나마 통증이 덜한 쪽을 간신히 뜨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붉은 머리카락.
파란 눈.
흰색부터 보라색까지, 다채로운 색으로 만들어진 의상.
기억을 되짚던 카를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자신이 아는 그 누구도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큭…!”
스캔하듯 잠시 살펴본 눈이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자신이 가진 이능을 발휘하는 것 자체를 차단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반쯤 자동적으로 발동하게 해 둔 이능들을 강제로 끈 카를은 몸에서 마력을 끌어 올렸다.
“어, 어, 혹시….”
“육신, 정화, 안정.”
다행히도 마법의 발동까지 차단되진 않았다.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마법으로 해소해 낸 그는 긴장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방패.
눈앞의 여성은 그렇게 보이는 무언가를 손에 들고 있었다.
카를의 시선이 방패에 꽂히자 그녀는 별안간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방패를 소멸시켰다.
“긴장했지 뭐야. 갑자기 마력을 팍! 끌어 올리길래 나를 공격이라도 하는 줄 알고….”
“대체, 누굽니까. 당신은.”
“아.”
적의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옛날에 헤어진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살가운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서 카를은 다시금 자신의 기억을 되짚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확신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인물이다.
“으음… 글쎄?”
“…….”
“너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해?”
“…납치범.”
말투에서 짙은 장난기가 느껴졌다. 딱딱하게 대응하면 오히려 장난질이 길어질 것 같다는 사실을 직감한 카를은 그녀에게 적당히 어울려 주었다.
과연 효과가 있었다. 납치범이라는 말을 들은 그녀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 것이다.
“납치범? 왜? 내가 너를 납치했을 것 같아서?”
“…모르는 장소에서 눈을 떴는데, 모르는 사람이 눈앞에 있다. 이게 납치가 아니면 뭐지?”
“어라, 그러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부정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납치라고 생각한 카를은 의연한 어조를 유지하면서 입을 열었다.
“여긴 어디지? 제국인가? 아니면 연합령? 왜 나를 납치했지?”
“제국도 아니고 연합도 아니야. 아마 네가 아는 대륙 어디도 아닐걸? 그리고… 음, 나는 너를 납치한 게 아니야. 그냥 만나러 온 거지.”
“…대륙 어디도 아니라니. 그러면.”
카를은 그녀의 말을 듣고 떠오르는 수백 가지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었다. 이 장소에서는 마법이 발동한다.
직전에 떠오르는 기억. 이시엘이 자신에게 준 정체불명의 마법. 목숨이 위험에 빠지면 벗어나게 해 준다고 하였으니, 이건 납치가 아니었다.
목숨을 위험하지 않게 하면서 납치하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그러면, 설마.”
카를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 가능성을 입에 담았다.
“여기는 내 의식 속이거나… 사념 세계인가?”
“정답이야! 정확히는 네 의식 속이지. 카를로스. 아, 이 장소는 내가 만든 거야. 예쁘지?”
“…….”
다른 사람의 의식에 침입했다고?
카를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의식이나 정신에 간섭하는 마법은 차고 넘치지만, 타인의 의식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설치고 다닐 수 있는 마법은 역사를 통틀어 전무했다.
설정에 나오는 그 어떤 사도들도 이런 권능을 가지진 못했다.
눈앞에 있는 여자는 마법사도, 사도도 아니지만 카를의 의식 속에 침투한 것이었다.
“……너는.”
“응?”
“너는, 누구지?”
타인의 의식에 마음대로 침입할 수 있다. 심지어 그 공간을 마음대로 뒤바꿀 수 있다.
이 두 가지 사실이 카를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눈앞의 여자는 바란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의식을 망가뜨려 산 송장으로 만들 수 있었다.
‘괴물이다.’
카를의 머릿속에 카티아―라즈가 떠올랐다.
탐욕의 신. 그 신은 카를에게 사도를 심어 그의 의식을 망가뜨리려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만약 보조 특성 선택권이 없었다면 그때 의식이 망가졌을 것이다.
‘최소한 카티아―라즈만 한 괴물.’
눈앞에 있는 여자도 그 카티아―라즈와 비슷한 괴물이었다.
긴장한 채 몸에 남은 마력을 끌어 올리는 카를을 빤히 바라보던 그녀가 말했다.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조금 오랫동안 고민했어.”
“……고민이라고?”
“응, 네 의식이 잠들어 있는 동안 너랑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생각했거든. 그리고 너한테 날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도 생각했어. 어떤 인사를 건네야 할까도 조금 오래 고민했고.”
세계관 내에서 한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신과 비슷한 힘을 가진 괴물은, 평범한 소녀처럼 말을 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네가 아파 보여서 인사를 건넬 틈이 없었다는 거? 그러니까 다시 해도 되겠지? 만나서 반가워. 카를로스.”
그녀는 가슴 위로 손을 올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내 이름은 아스텔.”
“…아스텔?”
“응, 아스텔. 그게 내 이름이야. 아, 이렇게 소개해도 되겠다. 별자리.”
별자리.
밤하늘에 뜨는 북두칠성 따위를 칭하는 것이 아님을 카를은 자연스럽게 짐작했다.
카티아―라즈에 필적하는 사람이 말하는 별자리.
아마도 그녀가 말하는 별자리는 에라 오브 엠파이어의 특성 시스템을 칭하는 것이리라.
“별자리의 끝에서 나는 카를로스 너를 발견했어. 그래서, 이렇게 인사를 하러 온 거야.”
“…별자리의 끝.”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크라누스를 상대하는 너를 봤어.”
아스텔이 말했다.
“그리고 네가 그 신을 죽이는 것까지.”
“……별자리가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는 건가?”
“그 질문은 예와 아니오 둘 다 대답이 될 수 있어. 그런데… 자세하게 설명하기에는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은 것 같네.”
그 말에 카를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가 자신을 깨우고 있음을, 카를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의식이 점차 깨어나고 있었으니까.
“카를로스.”
“…왜, 그러지? 아스텔?”
“이번엔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너를 찾아왔지만, 다음엔 그러고 싶지 않아. 언젠가 다시 너를 찾아와도 될까?”
에스텔.
별자리.
이 두 가지가 카를에게 수십 가지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의문에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건 에스텔뿐이었다.
카를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에스텔이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면… 다음에 또 보자. 카를로스 크로우.”
다음 순간, 카를의 의식 속 세상이 새하얀 빛에 휩싸였다.
* * *
“안타레스 님.”
“…….”
“괘, 괜찮으세요?”
카를은 다시금 눈을 떠서 정면을 바라보았다.
여린 목소리. 악마족의 붉은 눈. 요한나였다.
“…예.”
“아아, 다행이다. 그런데 안타레스 님 대체….”
요한나가 무어라 말을 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카를은 그녀의 눈을 응시하다가 잠시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암흑.
크라누스에 의해 박살 난 도시는 거리를 밝히는 불꽃도 모두 꺼져 암흑에 뒤덮여 있었다.
그 암흑 사이사이로 연합의 병사들이 바쁘게 뛰어다니는 것이 보였다. 시신 따위를 수습하는 듯 했다.
“시간이.”
“…네?”
“시간이 얼마나 지났습니까? 그러니까, 그, 그 괴물이 나타나고 나서부터.”
“여덟 시간 정도… 지난 것 같아요.”
“여덟 시간이라.”
크라누스가 강림을 일으킨 것은 오전의 일이었다. 여덟 시간이 지났다고 했으니 해가 막 진 초저녁인 듯했다.
카를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마력을 소모한 여파는 아직도 몸에 남아 있었다.
“……대장군 동지께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네? 아, 대장군 님은 부상을 입으시고 후퇴해서… 지금은 성 밖에 있습니다.”
“대장군 동지를 만나야겠습니다.”
여덟 시간이나 잠들어 있었으나 정신이 말끔했다. 아닌 게 아니라, 몸은 잠들었으나 의식만은 깨어 있었던 것이다.
에스텔.
카를은 그녀의 이름을 머릿속에서 되새겼다. 다시 만나러 오겠다는 말도.
‘지금은….’
에스텔은 자신에게 접근할 수 있었으나 그 반대는 불가능했다.
당장은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방도였다. 그녀와의 만남에서 할 말을 생각하는 것은 잠시 미뤄 두고… 카를은 지금의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다시 떠올렸다.
‘일단 다시 안타레스가 되어야 한다.’
빠르게 결론을 내린 그는 요한나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저, 안타레스 님.”
“예. 요한나 공.”
“걷기 불편하시면… 제가 부축해 드릴까요?”
악마들은 쉽게 사랑에 빠진다. 그 점을 다시 떠올린 카를은 요한나가 왜 자신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했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던 카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팔을 뻗었다.
“고맙습니다. 요한나 공.”
“이, 이 정도는… 딱히, 헤헤.”
“제 병사들은, 8군단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안타레스 님께서 일단 성을 빠져나가라고 하셔서 계속 성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어요.”
“다른 군단장 몇 명이 대장군 동지를 따라온 것으로 아는데… 압박은 없었습니까? 성안으로 다시 진입하라고 하는…?”
“있었어요. 그런데 비가 갑자기 쏟아지고 저희가 포로로 잡았던 나가들이 탈출해 버려서….”
카를은 요한나가 하는 말을 잠자코 들었다. 자신이 성 안에 멀쩡하게 있었고, 크라누스와 맞서 싸웠다는 사실은 모르는 눈치였다.
“그 이후로는 성문이 봉쇄당해서 진입이 불가했어요. 그 괴물이나 마왕이 친 건지 결계 때문에 성벽을 넘어서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했고요. 저희가 레카샤로 다시 들어온 건 아직 한 시간도 안 됐어요.”
“……그렇습니까.”
“네. 다행, 이에요. 안타레스 님께서 살아 계셔서….”
보는 눈이 없어서일까. 요한나의 목소리에서 무거움이 사라지고 ‘연심’이라 부를 만한 감정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다정한 목소리는 레카샤의 바깥에 설치된 연합의 막사들이 늘어선 곳에 도착하자 다시 상급자와 하급자 사이에서 나눌 법한 딱딱한 목소리가 되었다.
요한나는 카를을 커다란 막사가 있는 곳 바로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대장군 각하께서는 여기서 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혼자서 들어가 보겠습니다.”
“네, 그럼.”
요한나는 부축을 풀고 뒤로 물러섰다.
카를이 막사 밖에서 입을 열었다.
“대장군 동지. 안타레스, 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안타레스?”
믿기 어렵다는 듯 놀란 목소리가 막사 틈으로 흘러나왔다.
“들어오도록, 어서.”
“예, 대장군 동지.”
카를은 막사의 천을 걷고 안으로 들어갔다.
요한나의 말대로 드라일은 치료를 받고 있었다. 몸의 대부분이 붕대로 둘둘 감긴 모습이었다.
그의 곁에는 간부 중에서도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실라스, 말리아, 라카엘 등의 간부가 있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대장군 동지.”
“무사?”
카를이 꺼낸 말에 반응한 것은 다름 아닌 라카엘이었다. 드라일 본인을 비롯해 실라스와 말리아는 아무 말 없이 있었다.
“지금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했나? 안타레스?”
“예.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야 많지.”
터벅. 라카엘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안타레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안타레스 네 녀석이 대장군 동지께 서신을 보내 이곳에 오시게끔 하였지. 그런데, 하필이면 이날 레카샤에 저런 괴물이 나타났어. 정말 네 녀석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건가?”
라카엘의 말을 듣던 카를이 차분한 음색으로 맞받아쳤다.
“제가, 대장군 동지를 함정에 빠뜨렸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의심할 여지는 충분하지.”
“…….”
“내 말이 틀렸나?”
카를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눈치챘다.
드라일이 부상을 입었고, 상당수의 병사를 잃은 지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그 책임을 자신에게 지게끔 하려는 것이었다.
“하.”
그것을 깨달은 카를이 헛웃음을 흘리며 라카엘을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