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별빛 (5)
카를보다 덩치가 두 배나 더 큰 사자 수인은 카를의 반응에 도리어 얼굴을 와락 구겼다.
“…웃어?”
카를은 그가 이런 식으로 나오는 이유를 대충 짐작했다.
실라스. 말리아. 라카엘. 각각 연합 간부 중 2, 3, 7위에 해당하는 이들.
4, 5, 6위의 간부들은 이곳에 없었다.
달리 말하면 드라일과 함께 레카샤까지 온 간부들은 이 셋이 전부였다.
계속해서 승전보를 거두던 상황에서 그야말로 참패를 당한 것이다.
“라카엘.”
아마 4, 5, 6위의 간부들이 이 셋의 간부들을 그야말로 물어 뜯을 것이다. 그러면 드라일은 제 체면 때문에라도 이 셋에게 벌을 내릴 것이다.
말석에 위치한 간부 ‘안타레스’는 그 잘못을 덮어씌우기에 적절했다.
지극히 정치적인 행동이었다. 이들이 이런 일을 저지르는 이유 또한 그럴싸했다.
하지만….
카를은 시선을 돌려 드라일을 잠시 노려보았다.
“…….”
시나리오의 진행을 위해서는 결국 드라일을 죽여야 했다. 하지만 거기에 사심은 거의 들어가 있지 않았다.
카를, 아니 정현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시나리오를 클리어해서 자신이 살아남는 것이었으니.
그렇게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진정하자.’
카를은 격앙된 감정이 밖으로 새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진정시켰다.
황천의 영향, 알시아의 권능, 아니면 대귀족 카를로스 크로우 공작이라는 가면에서 벗어난 탓일까.
점차 카를로스의 감정과 이성보다는 원래 자신의 감정과 이성을 더 우선하게 된 것 같았다.
“그러니께 네놈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라카엘.”
후. 시끄럽게 지껄이는 사자 수인의 말을 끊은 그는 묵은 숨을 짧게 뱉었다.
얼음물을 마신 것처럼 차가운 기운이 핏줄을 타고 흘렀다. 그만큼 침착해졌다.
‘빌어 처먹을….’
감정이 한결 침착해진 이성을 뚫고 나왔다.
아니, 어쩌면 마법사로서의 이성도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으리라.
변수의 발생을 모조리 차단한 상황에서 알량한 정치질 때문에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이었으니까.
이번 한 번만. 카를은 그렇게 마음 먹으며 말을이었다.
“다만.”
“다만?”
“여러분의 방식으로 결론을 짓지요.”
“…우리 방식이라니. 그건 무슨.”
“결투를 청하겠습니다. 라카엘. 책임은 패자에게 묻기로 하지요.”
사자 수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곧 험악한 눈빛을 지은 라카엘이 카를을 노려보았다.
“받아들이겠다.”
낮게 으르렁거린 라카엘이 꽈드득, 소리 나게 몸을 부풀렸다. 원래도 거대했던 근육이 대번에 커진 것이다.
덩치가 불어나 위압감은 배가 되었지만 그닥 실용성은 없었다.
이보다 더한 위압감을 가진 존재를 오늘 하루 동안 둘이나 만났으니.
“…….”
카를은 끝까지 아무 말이 없는 드라일을 잠시 응시했다.
자신이 아는 ‘대장군’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마왕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용에게서 승천의 자격을 얻어 낸 승천자가 아니었다.
혈흔과 붕대에 감겨 있는 미노타우로스의 모습은 꼭 겁에 질려서 시궁창 구석에 숨은 생쥐 같았다.
‘운명을 빼앗는다….’
카를은 언젠가 했던 다짐을 되새겼다. 드라일이 마주할 ‘승천’이라는 운명을 빼앗고 말겠다고.
그는 드라일을 응시하던 시선을 돌려 천막 밖으로 걸어 나왔다.
덩치가 컸던 라카엘은 허리를 엉거주춤하게 굽히고 천막 밖으로 나왔다.
말리아가 그를 뒤따라 나왔다. 결투의 참관인으로 나설 모양이었다.
“결투의 규칙은 알고 있느냐, 엘프.”
“예.”
거의 스포츠에 가까운 제국의 결투와 달리 마족들의 세계에서 결투는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다른 이의 개입이 불가능한, 오로지 개인과 개인의 싸움.
그것 외에 다른 규칙은 없었다.
바둑이나 체스에서 볼 법한, 도전자가 선공을 갖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래, 그렇다면 문제가 없겠지.”
뚜둑. 라카엘이 목을 풀었다.
“시작하겠다!”
그리고 라카엘이 카를을 향해 달려들었다.
소형 트럭이 자신을 향해 돌진해 온다면 이런 모습일까. 7위라는 서열을 거저 얻은 것이 아니라는 듯 라카엘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돌진해왔다.
하지만, 느렸다.
“나의 의지가 곧 앞으로 나를 나아가게끔 하는 방패이니.”
카를은 이미 결투를 치러 보았다. 그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검귀였다.
그리고 지금의 카를은 그 검귀를 상대로 결투를 치렀을 때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다.
“나의 방패는 그 누구의 것보다 굳세다.”
두 문장의 영창과 동시에 카를의 왼팔에서 방패가 나타났다. 기다란 방패의 형상.
라카엘이 그것을 보고 눈을 부릅떴으나 속도를 줄이진 않았다.
그 결과, 격돌했다.
“그래! 막아 보아라!”
라카엘은 방패에 부딪혀 바닥을 한 바퀴 나뒹굴었다. 흙투성이가 되었으나 사자는 으르렁거리며 다시 카를을 향해 달려들었다.
“언제까지 막을 수 있는가 보자! 엘…!”
엘프. 라카엘은 그 단어를 끝까지 발음하지 못했다. 갑자기 몸속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고통 때문이었다.
사자의 두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라카엘은 고개를 떨구어 자신의 몸을 관통한 것을 보았다.
기다란 얼음 창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의아함에 찬 눈으로 지껄이는 라카엘을 바라보며 카를은 말없이 창을 뽑았다.
마법사가 한 번에 여러 개의 마법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이 아니었던가.
카를은 세 개였다. 자신을 엘프로 만드는 마법을 유지하기 위해 둘로 줄어들었지만, 라카엘은 두 개의 마법만으로도 충분했다.
“빌어 처먹을.”
창은 라카엘의 심장이 위치한 곳을 정확히 꿰뚫고 들어갔다.
그 바람에 창을 뽑는 것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양의 피가 뿜어져 나왔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피가 불쾌했다. 카를은 앞으로 쓰러지는 라카엘이었던 것을 옆으로 밀어냈다.
“……힘을 숨겼나. 안타레스.”
“숨긴 적 없습니다.”
살아 있는 검이 자신이 만든 육체의 입을 빌려 물었다. 카를은 말리아를 향해서도 적개심을 숨기지 않으며 대답했다.
“저는 예의를 갖추었을 뿐입니다. 말리아.”
“…예의?”
“예,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말입니다. 저는 당신들을 존중했고, 그래서 예의를 갖추었습니다.”
카를은 피가 흐르는 얼음 창을 사자 사체를 향해 겨누며 말했다.
“책임을 남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이 당신들의 예의입니까. 말리아.”
“…….”
“라카엘은 그랬어도, 말리아 당신은 아니길 빌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카를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얼음 창을 계속해서 유지시킨 채 드라일이 머무는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흡. 실라스가 숨을 삼켰다. 카를은 드라일을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대장군 각하.”
“안타레스. 네 심정은, 내가, 이해는 한다만….”
“닥치십시오. 토굴에 처넣어 버리기 전에.”
못 참았다.
전투로 인해 감정이 격앙된 까닭이었다.
고블린에게는 엄청난 모욕으로 느껴질 말. 그 탓에 실라스의 이마에서 두툼한 혈관이 부풀었고, 놈이 험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카를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철회하지 않았다. 속으로 후회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나가는 게 맞아.’
오히려 이게 맞는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뒤 떠오른 「분석」의 결과도 카를의 판단이 옳은 것이라 알려왔다.
지금의 안타레스는 떳떳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에게는 드라일을 압박할 방법도 있었다.
“대장군 각하께서는 빚을 이런 식으로 갚으시는지요.”
드라일과 함께 연합 또한 무너뜨려야 했기에 죽일 수 있었음에도 죽이지 않은 것이지만 드라일의 눈에는 안타레스가 그를 살린 것이었다.
“…….”
꽤 날카로운 말이었으나 드라일은 끝까지 침묵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속담이 떠올랐으나, 해야 하는 말이 있지 않은가.
카를은 그 침묵이 회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타레스는 표정을 굳힌 채 용건을 꺼냈다.
“서열의 상승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
간부 간의 결투가 끝나면 승리한 쪽은 서열 상승이 뒤따랐다. 이 경우에는 19위, 말석에 위치한 안타레스가 7위인 라카엘을 꺾었으니 몇 단계는 상승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 상승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드라일이 만들어 놓은 연합의 체제를 정면으로 거스르겠다는 것이었다.
“대신 제가 훈련시킨, 제8 군단을 제 휘하로 배속해 주십시오.”
“…….”
“대장군 각하께서 제게 빚을 어떻게 갚았는지, 라카엘이 어쩌다 죽었는지, 전부 함구할 테니 그것 하나만 해 주십시오.”
드라일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레스는 마지막 예의를 갖추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왜 증오인가 했더니….’
드라일이 힘을 얻는 감정은 증오였다.
세상을 여행하며 계속해서 강해지는 아담은 ‘호기심’이고 마왕으로 군림하는 이시엘은 ‘공포’였다. 용사라 불리게 될 카리아는 ‘용기’였다.
승천자들은 성격과 행적에 어울리는 감정에서 힘을 얻었다.
그런데 반란을 일으키고 기존의 체제를 무너뜨린 드라일이 힘을 얻는 감정이 ‘용기’나 ‘투지’가 아닌 ‘증오’인 이유를 카를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겁쟁이 같으니라고.”
신분제의 철폐 따위가 아닌 권력을 독점하기 위한 반란.
그것도 패기 있게 저지른 반란이 아니었다. 마왕의 통치가 느슨해진 틈을 타 벌인 반란이었지.
이게 드라일의 실체였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실체.
“하….”
카를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한심한 놈을 상대로 고전했던, 플레이어였던 자신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거듭된 실패의 끝에 결국 이렇게 몸으로 뛰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
이전의 기억을 떠올리던 정현은 문득 위화감을 느끼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토끼가 절구를 찧는 지구의 달과는 전혀 다르게 생긴 달.
이계의 달이 이제는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부터.”
가슴에 손을 얹은 카를이 중얼거렸다.
“언제부터였지.”
미약하게나마 느껴지던 ‘카를로스’의 감정이 사라지게 된 건.
꼭꼭 숨기고 감춰 두었던 정현의 감정이 드러나게 된 건 황천의 영향도, 알시아의 권능 탓도 아니었다.
대체 언제부터 자신은 임계점에 도달해 이 몸을 차지하게 된 걸까.
아마도 제국을 떠났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때 정현은 카를로스라는 가면을 완전히 벗어던졌으니.
“젠장할….”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사슬, 시스템, 별자리, 에스텔.
이미 하늘꿈은 아담을 승천자로 만들었다.
정현이 빙의하기 1년 전의 일이었다. 승천과 축복에 대해서는 설정으로도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아서 짐작하기 어려웠으나, 아마 아담과 이어져 있을 하늘꿈의 사슬이 자신에게도 닿아 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시스템.
카티아―라즈는 시스템의 존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격이 한참 낮은 알시아는 시스템의 존재를 알고 그것을 감추었다.
아마 자신의 기억을 읽었으리라고, 그렇게 추정하고 결론을 내렸지만 어떻게 시스템을 숨겼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었다.
“알시아.”
카를은 시험 삼아 그녀를 불렀다. 그녀가 내려 준 축복은 여전히 몸에 남아 있었지만 바람은 불지 않았다.
새로이 얻은 신격을 만끽하고 있겠지. 당사자에게 물어볼 방법이 사라졌다.
그리고 단순히 알시아의 짓이라고 생각하고 넘기기에는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는 이시엘의 말을 떠올렸다.
―카를로스 크로우 그대가 가장 깊은 꿈속 어딘가에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 사슬이란 것이 하늘꿈과 이어진 게 아니라면.
대체 누구와 이어져 있단 말인가.
“에스텔이 말한 ‘별자리’가 진짜로 그 별자리라면….”
이 게임의 특성 시스템. 별자리.
특성을 완성해 별자리를 얻으면, 플레이어에게 유물이 주어진다. 그 유물은 하나같이 신이나 사도에게 효과가 있는 물건이었다.
만약 에스텔이 그 별자리와 연관된 사람이라면….
어쩌면 답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