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비틀리는 것들 (2)
로안은 현재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딱 지금 자신의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혼자 노를 저어도 충분한데 사공이 무려 셋이나 되는 것이다.
“제기랄….”
연합의 서열 11위의 간부 ‘용인(龍人)’ 로안은 팔의 비늘이 빠진 틈새를 긁적였다.
그 긁적임이 자신의 자존심을 긁는 기분이 들어 그는 욕을 씹어뱉으며 손가락을 멈추었다.
“나는 11위인데 왜 말석 따위에게….”
사공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로안 자신과 자신이 이끄는 9군단의 4천 병사들. 이들만 있어도 허접한 적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충분했다.
하지만 저번 주에는 웬 용병단이 합류하고….
이번 주엔 다른 군단과 그들을 이끄는 간부 한 명이 통째로 합류했다.
결전의 예상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난리란 말인가.
“용병단까지는 이해를 할 수 있지….”
사실 마음 같아서는 용병단도 내쫓고 싶었다. 기분 나쁜 음기(陰氣)를 뿌려 대는 죽음의 기사 놈들. 투구 사이로 썩은 살점이 튀어나오는 모습은 혐오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로안은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 죽음의 기사들로 이루어진 용병단은 무려 말리아가 직접 붙여 준 이들이었으니까.
“잘만하면 말리아 님의 줄을 탈 수도 있는 거고.”
서열 3위의 간부 말리아.
무려 그 실라스를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무력의 소유자.
대장군의 검.
말도 제대로 하지 않는 말리아가 직접 붙여 준 용병단. 필시 이들을 이끌고 승리를 거두면 자신의 쪽으로 붙여 주겠다, 이런 의미가 내포된 것이리라.
로안은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가라앉혔다. 승리. 그래, 승리가 중요했다.
아직은 승리를 거두지도 못했으니 기뻐할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놈은 대체 무슨 생각이지?”
안타레스.
말석에 위치한 8군단을 이끄는 간부.
놈은 8군단을 데리고 로안에게 합류했다. 그리고 로안의 배에서 이리로 가자 저리로 가자 사공질을 하는 중이었다.
“아, 로안. 마침 잘됐군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허억…?”
줄무늬 늑대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더니. 속으로 그를 씹어 대고 있었던 로안은 그 증오의 대상자가 나타나자 숨을 훅 들이켰다.
키가 크고 훤칠한, 재수 없는 놈.
정말 전승처럼 젊은 엘프들은 하나같이 잘생겼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래 봐야 엘프지만.’
로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저놈은 엘프였다. 흔하고 약해 빠진 배신자의 종족.
하지만 자신은 용인이었다. 비록 진짜 용은 아니고 그 아종인 와이번의 아종의 아종쯤 되었지만, 배신자의 종족인 엘프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귀신이라도 보신 것 같은 얼굴입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 아니오….”
하지만 로안은 그의 앞에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무려, 라카엘을 쓰러트렸으니까.
라카엘은 간부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전사였다. 대련의 탈을 쓴 로안과의 싸움에서 그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로안을 꺾었다.
아무리 로안이 어린 용인인지라 완전히 성장하지 못했다고 한들, 자신을 무참히 꺾었던 라카엘을 쓰러트렸다니 믿을 수 없었다.
“그, 그래서 안타레스….”
소문으로는 그를 쓰러트리는데 그렇게 큰 수고를 들이지 않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로안은 의미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몇 분이 걸리든 며칠이 걸리든 결국 그는 라카엘을 꺾었고, 라카엘은 패배해 죽었다는 것만이 사실이었다.
로안은 안타레스의 눈을 잠시 마주쳤다가 거기서 느껴지는 이유 모를 살기에 고개를 돌렸다.
무슨 눈이…사람 잡아먹을 것처럼.
“할 말이라는 게 무엇이오?”
“용병단의 출처가 의심스럽습니다.”
안타레스의 말에 로안은 일부러 언짢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죽음의 기사. 흔한 병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말리아 정도 되는 간부라면 그들만으로 이루어진 용병단을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이오? 안타레스, 용병단의 출처라니. 말리아 님께서 내게, 직접 보내 주신 용병단이라는 것을 알지 않소? 그보다 확실한 출처가 어디에 있다고.”
로안은 ‘내게’와 ‘직접’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제깟 놈이 라카엘을 꺾어서 콧대가 높아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말리아는 그런 라카엘보다 훨씬, 훨씬 높은 곳에 있는 간부였다.
어떻게든 자신과 말리아 사이의 줄을 끊으려 하는 것이다. 로안은 그렇게 생각하고 강경하게 나섰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말리아 님께서 보내 주신 용병대들이 아고르 왕국의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을 아십니까?”
“아고르 왕국…?”
“제국 남쪽에 있는 인간들의 왕국입니다.”
제국의 남쪽에 위치한 군소 왕국. 제국에 가로막혀 마족에 접촉하려면 머나먼 바닷길을 통하는 수단밖에 없는 이들.
죽음의 기사라 이름 붙여진 존재들이 입은 갑옷에는 그 왕국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모르시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저 커다란 제국 너머에 있는 자그마한 나라에 불과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죽음의 기사들의 갑옷에 저희 연합의 문양은 고사하고 인간들이 만든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이 의심스럽지 않습니까?”
“죽인 적의 갑옷을 빼앗아 입었을 수도 있는 것 아니오.”
이놈이 지금 나를 훼방 놓으려고 하는구나. 로안은 확신을 가졌다.
아니면 라카엘도 꺾었으니 나를 꺾으려고 수작질을 벌이는 건가.
로안이 짜증이 섞인 얼굴로 눈을 부라렸다. 안타레스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골똘히 생각에 잠기었다.
“알겠습니다.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요. 대신 로안.”
이자는 자신이 한참 서열이 뒤처진다는 것을 모르는 것인가. 로안은 기분인 나빴지만 내색할 수는 없어 얌전히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오?”
“혹시 모르니 조심하십시오. 아무리 말리아 님께서 보내 주신 용병대라고 하더라도 용병은 고용주의 뒤통수도 치는 법입니다.”
“내가!”
그는 비늘을 곤두세우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러다가….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는 안타레스의 눈빛을 보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무슨 눈빛이… 젠장.’
칼날을 들이대는 것 같은 섬뜩한 눈빛. 그가 라카엘을 죽였다는 사실을 떠올린 로안은 분을 삭이면서 말을 이었다.
“내가, 알아서 하오. 계속 잊는 모양인데, 이곳의 총지휘관은 나이고 그대는 중간에 합류했소. 상관에게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지 마시오….”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전장에서 뵙지요.”
전투의 개시일까지는 대략 이틀이 남았다. 그 이틀 동안 나는 너를 볼 일이 없다는 건방진 언사였으나, 로안은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
지적할 수 없었다.
어떻게 지적한단 말인가. 라카엘을 쓰러트린 강자를.
“제기랄….”
용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고고한 용인은 욕설을 내뱉으며 배신자의 종족이 당당히 천막을 나서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 *
“안타레스 님, 어떻게 되셨습니까?”
“신경 쓰지 말라더군요. 말리아 님이 보내 주신 군사라면서.”
8군단의 지휘소로 돌아가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요한나가 물어 왔다.
카를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저으면서 로안과 나누었던 대화를 설명했다.
신경 꺼라. 그렇게 일축할 수 있는 대화였다.
“그런데 왜 진짜로 아고르 왕국의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입고 있을까요?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대부분이….”
“그러게나 말입니다.”
용의 엄지 발톱 문양. 그것이 아고르 문양의 깃발이었다. 지구의 종교가 보통 기독교, 이슬람, 불교로 나뉠 때 이 세계의 인간들의 종교는 백십자, 태양 그리고 용으로 나뉘었다.
아고르 왕국은 그중에서도 용이었다. 오직 용만을 믿고 섬기는 왕국.
그 왕국의 갑옷이 제국 너머의 마족들의 땅에서 발견되는 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시나리오에서 연합과 아고르 왕국 사이의 연관점이 있었나?’
카를은 잠시 기억을 되짚고는 스스로 고개를 작게 저었다. 공통점은 있었다. 둘 다 제국이 약해졌을 때를 틈타 침공을 감행했다는 것.
하지만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다. 왕국과 연합 사이에는 제국이라는 강대한 세력이 있었기에.
“혹시 모르니 병사들에게 용병대를 주의하라고 전달해 주십시오.”
“네. 아, 그리고, 이거….”
요한나가 양피지 더미를 내밀면서 물었다.
“이것도 미리 전달해 둘까요?”
작전 명령서였다. 그 두께가 상당해 묶는다면 작은 책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이번 작전은 그만큼 복잡해질 예정이었다.
내용이 복잡하니 미리 전달해서 숙지시켜 두는 편이 낫지 않겠냐는 것 같았다. 하지만 카를은 고개를 저었다.
“전날 밤까지 아껴 두지요.”
“앗, 네. 알겠습니다.”
로안과 그가 이끄는 9군단에는 숨겨야 할 내용이었다. 부대 간 화합 따위는 일절 존재하지 않는, 8군단만의 독단적인 작전이 될 테니.
미리 병사들에게 전달해 두었다가 말이 흘러들어 가면 귀찮아질 게 분명했다.
“아, 요한나 공.”
“예?”
카를은 잠시 요한나와 눈을 맞추었다. 눈빛이 꽤 떨리고 있었다. 그 눈빛에 화답하듯 카를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화악. 요한나의 얼굴이 붉게 변한 것을 본 카를이 입을 열었다.
“제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네, 네…?”
“저를 따라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요한나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눈망울은 커져 있었고 끄덕임은 열성적이었다.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이었다.
잠시 멍한 얼굴로 카를을 바라보던 요한나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저, 전달하고 오겠습니다!”
카를은 미소와 함께 끄덕임으로 대답했다. 요한나가 천막 밖으로 나간 뒤, 카를은 그녀가 내려놓은 작전 명령서를 다시 살폈다.
길고 복잡한 작전 명령서는 이번 전투를 연합의 패배로 바꾸어 놓을 내용을 담고 있었다.
* * *
―명심하십시오.
백인장들의 뒤에 선 요한나는 깃발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상관인 안타레스는 최전방에서 9군단의 지휘관인 로안과 함께 있었다.
명심. 그 단어 때문일까. 안타레스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돈다.
남들 앞에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고 있지만, 그녀가 품은 감정은 명백히 연심이었다.
모든 일이 끝나면.
그녀는 그때를 기점으로 잡고 있었다. 그 기점까지 가려면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저희는 연합의 그 어느 군단보다도 특별합니다. 자유롭지요. 우리는 이번 전투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겁니다.
로안을 비롯한 9군단의 지휘관들의 명령을 깡그리 무시하라.
그는 그 말을 덧붙였다. 8군단은 자신만의 명령만을 수행하면 된다고.
그리고 8군단에 속한 모두는 그 말을 믿었다. 그의 명령을 제대로 수행해서 난공불락의 요새를 함락했고, 이길 수 없는 괴물과는 싸우지 않아서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저희는 사전에 명령받은 대로 장군님만의 명령을 수행합니다.”
이번 전투의 양상은 받아치는 것이 될 것이다. 로안은 그리 말하였고, 8군단은 중앙의 9군단을 보조하며 좌익을 지키게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안타레스의 명령은 그 작전의 양상을 완전히 헤쳐 놓는 것이었다.
“기병대. 앞으로.”
8군단의 켄타우로스 기병대들은 독이 바짝 올라 있었다. 레카샤의 기병대에게 일방적으로 쫓기기만 한 탓이었다.
그 탓에 그들은 더더욱 민첩하게 움직였다. 요한나가 작전 명령서대로 명령을 읊자, 직후에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병대, 전진.”
“전진!”
기병대가 튀어나왔다. 8군단, 9군단 그리고 용병단까지. 거의 1만에 이르는 병사들 틈에서 겨우 500밖에 안 되는 기병대가 돌출되었다.
아군도 적들도 당황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기병대는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저들을 따라갑니다. 전진!”
이윽고 8군단 전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적의 3분의 1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적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대열이 흐트러진 것이 그 증거였다.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9군단 측의 전령이 달려와 요한나에게 윽박을 질렀다. 요한나는 그 전령의 말을 무시했다.
계급과 입장을 내세워 전령의 의견을 깔아뭉개 버렸다.
전령이 로안의 대리인이면 어떤가. 요한나는 안타레스의 대리인이었고, 로안은 안타레스에게 범 앞의 강아지처럼 깨갱대고 있었다.
“계속해서 전진.”
“전지이이인!”
목청 하나는 큰 오우거 백인장 벨라스가 목소리를 길게 뽑아냈다.
적은 돌격을 준비하고 아군은 받아칠 준비를 하는, 긴장감만이 흐르는 전장에서 그 목소리는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이 전투는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다만 안타레스라는 이름의 엘프가, 혼란을 가져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