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비틀리는 것들 (3)
전투 직전의 공기는 언제나 무겁게 느껴졌다.
로안은 잔뜩 긴장한 채 정면을 바라보았다.
옅게 깔린 안개 너머로, 적들이 탄 마물의 투레질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적장은 마왕군 친위대에 소속된 괴물. 거대한 곤봉을 들고 다니는 트롤이었다.
“뭔가….”
9군단의 지휘자인 로안은 자신의 양옆에 선 이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용인 특유의 거대한 파충류 형태의 입. 그 입안에서만 목소리가 울렸다.
옆에서 본다면 그저 입을 오물거리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뭔가 불안한데….”
비늘이 뒤틀리는 느낌.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해가 뜨면 사라질 것이라곤 하지만 전장이 안개에 감싸 있어서일까.
아니면 자신의 양옆에 선 이들 때문일까.
로안의 좌측에는 안타레스가, 우측에는 죽음의 기사 용병단의 단장이 서 있었다.
하나 같이 속내를 알 수가 없는 작자들이었기에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썩을….”
“크음?”
그 불안감에 씹듯이 내뱉은 말. 그러자 옆에 선 용병단 단장이 로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후우욱. 썩은 살점의 냄새가 치밀었다.
이런 썅. 입 안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 욕설을 중얼거린 로안이 입을 열었다.
“그, 그대에게 한 말이 아니오.”
그러자 단장은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어째서 언데드 놈들은 썩을이라는 말을 욕설로 받아들인단 말인가. 진짜 썩어가는 놈들이.
참자. 참자. 참아야 한다. 이들은 말리아 님께서 내려주신 동앗줄이다.
로안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참았다. 그러다 문득 돌린 시선에 용의 발톱 같은 문양이 들어왔다.
“아고르 왕국…이라 했었나.”
연합. 마왕. 그 어느 진영에서도 쓰지 않는 문양. 진짜로 인간들이 사용하는 문양일까.
왜 저들이 저런 갑옷을 입고 있는 건가….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찰나 로안은 어떤 생각을 떠올리고는 무릎을 탁 쳤다.
“설마….”
내가 용인이라서?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자신의 다리, 신발을 필요로하지 않는 강인한 육신의 끝부분을 바라보았다.
다리의 끝부분에 달린 발톱과…용병들이 입은 갑옷에 새겨진 문양이 비슷하다.
“이거였나?!”
“무엇이 말입니까?”
무심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번엔 좌측에 있는 안타레스가 그를 향해 물었다.
“아, 아무 것도 아니오.”
“그렇습니까? 뭔가 알게되시면 저한테도 가르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그렇게 하겠소.”
천연덕스러운 엘프의 얼굴에 로안은 긴장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그는 더 캐묻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로안은 다시금 시선을 돌려 갑옷에 새겨진 발톱 문양과 자신의 발톱을 비교했다.
“이거다.”
말리아 님께서 굳이 용병단을 보내주신 이유.
그 용병단의 갑옷에 새겨진 문양.
저 엘프는 저 문양이 인간들의 것이라며 의심을 내비쳤으나 진의는 다를 것이다. 용의 발톱 문양과 용인인 자신. 둘 다 용과 관련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동앗줄이 맞았다. 이거였다.
“그래…. 나도 이제….”
밑바닥에서 시작해 11위까지 올라왔다. 이제 더 높은, 한 자릿수의 간부로 올라갈 때가 되었다.
어쩌면….
라카엘의 자리가 공석이 되었으니 그 자리에 자신이 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시국에 말리아 님께서 구태여 자신에게 직접 용병단을 보내주심에는 그런 의미가 있을 것….
“……?”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로안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좌익의 8군단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다. 켄타우로스로 이루어진 기병대였다.
“이게 지금 뭐하자는…?”
기병대를 선두로 좌익이 전진하기 시작했다. 작전의 내용과는 한참 달랐다.
적은 한 명의 지휘관이 통솔하는 거대한 군대였고 아군은 지휘관이 셋이나 되는 작은 군대들의 연합이었다.
수비든 공격이든 합이 잘 맞아야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공격보다는 수비 쪽이 합을 덜 맞춰도 된다. 각자 할 것만 잘하면 되니까. 그런 생각으로 로안은 수비를 택했으나….
“지금 이게 뭐하자는 것이오!”
……바로 옆에 선 엘프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갑자기 치밀어 오른 화를 이기지 못하고 로안은 팔을 확 뻗어 엘프의 멱살을 잡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곳의 총 지휘관은 나요! 당신이 아니라! 그런데 지금 이게 뭐하자는 것이오! 설마 내 지시를 무시하고 이중 지시를 내린 것이오?!”
“음.”
엘프는 멱살을 잡히고도 선선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아니 오히려 약간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뭐시라?”
“뭔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가 생겼을지도 모르지요. 저는 제 부하들의 판단을 신뢰합니다.”
“이, 이, 이 무슨…!”
얼굴의 윗부분은 사람, 아랫부분은 용을 뒤섞어 놓은 괴상한 생김새의 아인. 그 탓일까, 그의 얼굴은 윗부분만 붉으락푸르락 변하기 시작했다.
우스운 꼴이라 할 수도 있었지만 카를의 눈에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의 멱살을 잡은 로안의 팔 위에 손을 올렸다.
“어, 어…억?!”
“그리고.”
마력으로 손을 강화하자 용의 피를 타고났다는 용인마저 견디지 못하고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런? 그런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로안을 향해 카를이 말했다.
“제 몸에 함부로 손대지 마시지요.”
“크윽….”
아릿한 손목의 통증에 로안은 침음성을 흘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좌익의 8군단은 계속해서 전진하고 있다.
이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좌익, 중앙, 우익으로 이어지는 아군의 수비진이 깨졌다. 좌익이 먼저 깨지면 양옆을 신경쓰지 않고 정면만을 신경 쓸 중앙에, 즉 자신의 군단에도 영향이 갈 것이다.
로안은 전령을 불러서 8군단 쪽으로 보냈다. 다행히 안타레스는 그 전령을 막지 않았다.
“…뭐지?”
전령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좌익은 계속해서 전진했다. 저 또라이들. 미친놈들. 저 엘프 놈부터 시작해 나를 음해하기 위해 아주 작정을 했구나!
로안은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최대한 굴렸다. 어떻게 해야 이 빌어먹을 싸움을 수습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하던 찰나.
“로안 군단장.”
“……방해하지 마시오. 지금….”
“로안 군단장.”
생각하기도 바쁜데 왜 자꾸 불러대고 난리란 말인가! 로안은 짜증 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체 뭐길래 그러시오!”
“전장을 한 번 보시지요.”
“당신네들 때문에 엉망이 되었는데 무슨….”
무슨. 거기서 말을 더 이어나가려던 로안은 무심코 입을 다물었다. 어느새 안개가 걷혔고, 앞서 나간 기병대가 되돌아오고 있다.
저 너머의 적들이 나팔을 울리면서 돌격을 개시했다.
먼저 튀어 나간 좌익의 기병대를 노린다. 기병대는 중앙으로 회군하고 있고 좌익은 그 기병대의 움직임에 따라 넓게 펼쳐진다.
“싸울 준비나 하십시오.”
일점(一點)을 노리고 돌파하는 적들. 마침 펼쳐져 있는 아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했다. 포위진이 구축되었음을 뜻했다.
그리고 포위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삿되이 말하여 허릿심, 즉 중앙이었다.
* * *
“…….”
“…….”
전투 보고서를 받은 마왕의 표정이 굳어졌다. 원래도 감정 표현 없이 거의 굳어 있었지만 이번엔 굳어진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이겼구나.”
“예.”
“피해도 크지 않고.”
“예….”
“그리고 반절에 가까운 적을 죽였구나.”
“예…….”
“그런데 어찌 찜찜하군.”
고개를 푹 숙이고 예, 로만 대답하는 신하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그녀는 신하의 손에 쓰인 전투 보고서를 소리 내어 읽었다.
“적의 갑작스러운 돌격에 급히 대응하였다. 안개가 옅어 추격을 지속했다. 그땐 이미 우측의 적들이 진형을 펼친 채였다….”
이시엘은 눈을 감고 전장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수백년 동안 쌓인 경험은 찰나의 시간 만에 가상의 전장을 구축했다.
아군의 기병대가 적들을 좇았더니 어느새 적들이 진을 펼친 곳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상황….
그녀의 머리가 내린 결론은 참패(慘敗)였다.
“그런데 이겼다라….”
“보고서에 나와 있는 것과 일치하옵니다. 적의 우군과 좌군을 상대하기 위해 급히 병력을 펼쳤는데, 의외로 기병대가 중앙을 쉽게 뚫어서….”
“어찌 뚫었는가.”
“그것이….”
“그대 말고.”
이시엘이 신하의 말을 잘라내었다. 그녀의 시선이 곧 흉터투성이의 한 트롤에게 향했다.
“그대가 직접 말하지.”
“예. 전하.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제가 곤봉을 휘두르며 적들의 공격을 받아내었나이다. 적장으로 보이는 용인이 제게 덤벼들었으나 그리 강한 이는 아니었습니다.”
“이름은 로안…보고서에 따르면 그 용인은 연합의 간부일 터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깟 것에게 진다면 저는 폐하의 대련 상대로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흠.”
이시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 그녀를 기준으로는 꽤 큰 칭찬이었다.
영광이라는 듯 트롤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헌데.”
“예. 전하.”
“기이하군.”
“……예?”
“중앙이 뚫렸으나 좌우측은 건재하다. 오히려 이쪽은 적이 우세했지. 한쪽은 삼천에 달하는 군세였고 다른 한쪽은 죽지 않는 망자병들이다. 그런데 어찌 이들이 중앙이 뚫렸다고 선선히 후퇴한 것인지 모르겠군.”
이시엘이 중얼거렸다. 눈을 끔뻑거리던 트롤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그것이…아마 저희가 너무 용감하게 뚫은 것이라 적들이 겁을 먹은 것이 아닐지….”
“죽은 시체들은 겁을 먹지 않지.”
이것이 맹점이었다. 이미 한 번 죽은 망자병들은 마지막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워댔다.
그런데 이들이 물러났다는 것은 이들의 우두머리가 망자병들을 뒤로 물렸다는 뜻이 되었다.
“적은 연합군이다. 중앙이 아니라 우측…적들의 좌익을 맡은 이들은 다른 군단이지. 이들의 수가 삼천이구나.”
삼천. 그 수가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하여 이시엘은 의문스러웠다.
“혹시 이들을 이끄는 적장의 얼굴을 보았는가.”
“예! 전하! 허여멀건한 엘프 놈이었습니다!”
“엘프라.”
우렁찬 목소리로 외친 트롤은 이시엘이 적군에 대비해 미리 배치해두었기에 레카샤로 동행하지 않았다. 그래서 보지 못한 듯 하였다.
그 새하얀 엘프가 거수를 사냥하기 위해 자신과 같이 전장에 선 적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어찌 되었는지 이해가 된다.”
“예?”
“적이 패배를 꾸몄구나.”
이시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녀를 아는 신하들은 그 광경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웃는 모습은 그만큼 흔치 않은 것이었다.
“너희는 지는 것이 정상이었다. 적의 좌익이 후퇴하지 않았다면 너희는 이기더라도 큰 피해를 보았겠지. 그런데 적은 얌전히 물러났다.”
“……예.”
“포위를 성공시켰음은 전략의 성공을 뜻한다. 그러나 중앙이 뚫린 것은 전술의 실패를 뜻하지. 전략을 성공시키긴 하였으나 전술이 실패하였으면 이 포위를 지시한 자는 책임을 피해 가겠구나.”
보고서를 덮은 이시엘이 말을 이었다.
“책임은 죽은 자에게 있으니 이 도마뱀이 모든 책임을 지겠구나. 전략은 나쁘지 않았으니 적장인 엘프는 또 어딘가에서 적들을 지휘하게 되겠지….”
치밀한 작자 같으니라고.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는 이시엘의 입가에는 명백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기어코 이 전쟁의 승리를 우리에게 선물해주려고 하는구나.”
“예? 그, 엘프가 말씀이십니까?”
“그래. 우리는 최고의 아군을 얻었고 적들은 최악의 적을 품은 셈이다.”
그녀가 옥좌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잠시, 그를 만나고 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