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비틀리는 것들 (5)
까마귀는 북방에 많이 보이는 새였다. 거대한 제국의 북방을 맡아 다스리는 거대한 공작가에서는 까마귀를 가문의 문양으로 삼았고, 마족들은 까마귀를 상서로운 새라 여겼다.
남쪽에선 흉조로 취급받는 것과 달리 북방에서 까마귀가 귀한 대접을 받는 이유는 단순했다.
겨울이 되면 얼어붙어 썩지도 않는 시체를 대신 처리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마왕이 동족들을 학살한다!
시체를 처리하는 것만으로 귀한 새 취급을 받을 정도로 북방은 예전부터 시체가 많았다.
마왕을 중심으로 통합되기 전의 마족들은 모든 종족이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며 크고 작은 전쟁을 했고, 통합된 이후에는 인간들과 크고 작은 전쟁을 벌였다.
인간들 틈에서 자라난 한 마족이 왕이 되면서 한동안 평화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 뒤로 내전이 발발하며 다시금 까마귀의 수가 늘어났다. 그리고 이제는 그렇게 수가 늘어난 까마귀들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많은 시체가 생겼다.
―최소한 천이 넘게 죽었다.
―죄 없는 이들이 배신자라는 오명을 쓰고 무참히 학살당했다!
―제 백성을 학살하는 자를 왕이라 부를 자격이 있는가!
“…….”
창문 밖으로 그러한 외침들이 들려왔다. 연합의 본거지인 이레시아에까지 소식이 들려온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이시엘은 돌아가자마자 배신자들을 색출해 대대적인 숙청을 한 것이리라.
카를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보고서를 다시금 읽었다. 연합의 모든 간부들에게 전해진 보고서였다.
―6월 1일. 마왕이 본인의 친위대를 각지로 파견해 일제히 숙청을 감행함. 숙청당한 이들은 우리가 접촉한 이들이다. 어딘가에서 정보가 유출된 듯하다.
삐뚤빼뚤한 글씨. 짧은 손가락으로 쓰인 글자였다. 카를은 그것을 보고 한눈에 고블린이 쓴 글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글을 아는 고블린. 간부들에게 편지를 전달할 권한이 있는 고블린.
실라스의 부관. 짐작을 끝마친 카를은 보고서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부들은 속히 이레시아로 모일 것. 이는 서열 제2위의 간부 실라스의 명령이며, 곧 대장군 각하의 명령이다.
정보가 새어 나간 구멍을 찾기 위함이리라.
하지만 이미 소를 잃었고, 외양간을 고치기에도 늦었다.
늘 그랬듯이 드라일은 각 간부에게 목표를 주었다. 그의 명령을 받지 않고 움직이는 제8 군단만이 다른 군단과 합류해서 싸웠을 뿐, 간부들은 제각기 각자의 군단을 이끌고 싸웠다.
결과는 대패(大敗).
라카엘을 제외한 18명의 간부 중 열여섯이 패했다. 그중 아홉은 패사(敗死)했다. 둘은 포로로 잡혔고, 이레시아로 모인 간부는 7명뿐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둘은 배신자였다.
“거의 다 왔다.”
카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시엘은 자신을 배신한 성주와 지휘관들 대신에 자신의 친위대들로 하여금 병사들을 이끌게 했다.
이시엘 본인이 너무 강했던 까닭에 잘 부각되지 않는 사실이었지만, 그녀의 친위대는 웬만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될 정도로 강한 전사들이었으므로.
‘크라누스의 권속들을 상대했었지….’
신의 권속을 상대할 정도면 이미 끝난 이야기였다.
강한 전사라고 무조건 지휘도 잘한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강한 전사 중에서도 지휘를 잘하는 이들은 있었다. 이시엘은 그런 이들로 하여금 전투를 치르게 했다.
‘진작에 이렇게 했다면….’
시나리오에서도 그녀가 이렇게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하등 의미 없는 생각이었다. 카를 자신이 ‘안타레스’로서 한 행동은 시나리오의 제약을 받아, 하지 못했을 일이었으므로.
카를은 머리를 가볍게 저어 생각을 떨쳐 냈다. 아무 의미 없는 생각을 할 생각이 없었다.
‘아직… 고비가 남았지.’
중요한 일이 남았다. 제8 군단. 자신의 병사들. 이 내전이 평화로운 방법으로 끝날 가능성은 전무했으니 이들을 살릴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 했다.
어떻게. 그걸 고민하던 카를의 귀에 똑똑, 하고 무거운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셔도 됩니다.”
“…안타레스 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요한나였다. 안타레스의 부관 자격으로 연합 본부 내에 들어와 있는 요한나는 다크서클이 눌어붙은 눈으로 카를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과 살짝 내쉬는 목소리에서 깊은 근심이 느껴졌다.
“…앉으시지요. 요한나.”
공(公).
카를은 일부러 그 호칭을 떼어 내고 말했다.
“……어디에, 앉으면 될까요.”
“음, 의자가 하나뿐이니… 침대에 앉는 게 좋아 보입니다.”
카를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잘 정돈되어 있는 침대를 가리켰다. 요한나의 눈이 살짝 커졌으나, 그녀는 곧 고개를 끄덕이고는 침대에 앉았다.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요한나. 무슨 일입니까?”
“그게….”
요한나의 입술이 움찔거렸다. 카를은 그녀의 태도를 보고서 나름대로 이유를 짐작했다.
“저희가 패퇴한 것 때문입니까?”
“……네.”
“그러고 보니, 요한나 공께서 현장에서 직접 최고 지휘관으로 지휘를 한 것은 처음이었지요.”
요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를이 명령서를 내리긴 했지만 전투의 세세한 부분은 요한나가 담당했다. 본디 그녀는 부대의 관리를 맡는 임시 지휘관이었고 부관이었다.
그는 로안의 곁에 있어야 했기에 그녀가 전투를 맡았고, 그 전투가 패배로 끝난 탓인 듯했다.
“괜찮습니다. 요한나의 실수는 없었습니다. 잘잘못을 가리면… 중앙에서 제대로 못 버틴 제 잘못이 더 크지요. 작전은 성립했지만 성공까지 끌고 나갈 힘이 부족했습니다.”
“아….”
요한나가 한숨을 흘렸다. 작게나마 위로가 된 모양이었다. 그래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진 못했는지, 여전히 그녀의 얼굴은 어두웠다.
만약.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와 함께 요한나가 입을 열었다.
“만약, 저희가 지면 어떻게 될까요…?”
“다음 전투에서 말입니까? 아니면… 이 전쟁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 전쟁이요.”
이젠 기세가 기울다 못해 완전히 역전당했음을 모두가 알았다.
어리버리한 신참 병사들도 알았다. 순식간에 상황이 패배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밖에서 마왕을 동족 학살자라 선동하는 이들에게 홀린, 무지한 평민들 뿐이었다.
“마왕은 저희가 접촉한 이들을 배신자로 처형했어요. 만약, 저희가 이 전쟁에서 지면….”
처형당할 것이다. 요한나가 걱정하는 것은 그 부분인 듯했다.
“무사하지는 못하겠지요. 저는 간부이고 요한나는 제 부관이니까요.”
“아….”
카를은 요한나가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잘 알았다. 그래서 방금 흘러나온 한숨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도 알았다.
아마도 연인으로서의 미래 따위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 미래가 전쟁의 패배로 꿈꿀 수 없게 되었으니 이렇게 가라앉은 것도 이해가 되었다.
‘내 의견을 거절하지 못할 정도.’
요한나의 감정을 이용하자고 마음먹었을 때 카를은 그런 기준을 세웠다.
그리고 카를이 보기에는 지금의 요한나는 그 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다. 감정이 조금 부풀어 있었지만, 그렇기에 카를의 말이 더욱 효과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 선이 넘어가면 통제하지 못할 정도가 된다.
계산을 끝마친 카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요한나.”
“네…?”
“투항하지 않겠습니까. 마왕에게.”
“……예, 네?”
“완전히 패배하기 전에 투항하면 받아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들려오는 말로는, 전투에서 패하고 포로가 된 로즈마리도 투항하였다 합니다.”
“안타, 레스 님. 그게, 지금 무슨 말씀이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습니다. 승산 없는 싸움을 하느니 투항하는 편이 낫지요. 제가 요한나를 신뢰하기에 하는 말입니다.”
카를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한껏 낮춘 목소리를 속삭였다. 단어 뜻 그대로 은밀한 제안이었기에.
“아, 어, 아아….”
삽시간에 요한나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이래도 되나? 하는 얼굴로 카를의 눈을 바라보던 요한나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예?”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알겠습니다. 편하게 정하세요. 어떤 결정을 내리든 저는 요한나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카를의 말에 요한나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달리 힘이 없는 발걸음으로 그녀는 간신히 고개만 끄덕이고는 카를의 방에서 나갔다.
그 뒷모습이 어쩐지 불길했다.
“…….”
카를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기 시작했다.
* * *
연합 본부, 최상층.
드라일은 엊그제 붕대를 푼 팔로 자신에게 온 서신을 펼쳐 읽었다.
―과인에게 날을 세운 반역자가 아직 버젓이 살아 있구나.
오만함이 묻어 나오는 필체와 내용. 첫 문장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서신을 보내온 자가 마왕이라는 것을.
까드드득. 드라일이 어금니를 씹는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그 소름 끼치는 소리에 곁에 있었던 고블린, 실라스가 한 차례 움찔 떨었다.
―달이 꽉 차는 날, 끝나지 않은 결투의 끝을 보자꾸나. 목을 씻고 기다리고 있거라.
서신의 내용은 그게 전부였다. 그것이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드라일의 얼굴이 불쾌함으로 일그러졌다.
꽈악. 그는 커다란 손으로 서신을 쥐어 구겨 버렸다. 형체도 남지 않을 정도로 구겨진 서신을 그는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
그러고도 한참을 분을 삭히지 못해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는 모습을 보고 실라스는 직감했다. 이번에는 폭발할 것이라고.
“빌어먹을!”
콰앙! 드라일이 양팔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책상이 우그러졌다.
“완벽했거늘!”
쾅!
“대체! 어쩌다가!”
쾅!
“빌어! 먹을!”
콰드득. 기어코 책상을 부서뜨리고 나서야 드라일은 팔을 멈추었다. 그렇다고 분노가 가라앉은 것은 아니었다. 억센 콧김이 그의 콧구멍에서 뿜어져 나왔다.
“대장군 동지.”
“…말리아?”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동행이 한 명 있습니다.”
숨을 몰아쉬던 드라일은 말리아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겨우 분을 가라앉혔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실라스가 문을 열었다.
문밖의 말리아를 본 드라일의 눈이 커졌다. 정확히는 말리아의 곁에 있는, 그녀를 동행한 여인을 보고 눈이 커졌다.
“……말리아?”
“제8 군단, 안타레스의 부관입니다. 이름은 요한나로 오래전부터 임시 지휘관을 맡아 온 자입니다.”
“……기억이 나는군.”
요한나. 처음 듣는 이름이었으나 드라일은 그리 말했다. 그는 손짓을 해서 요한나를 안으로 들였다.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지?”
“그…… 게.”
“어려워할 것 없다.”
잔뜩 긴장한 탓에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녀를 보고 말리아가 무감정한 어조로 말했다.
“그저 네가 내게 말한 것을 말하면 되는 것이다. 내 앞에선 편히 말하지 않았던가.”
“네, 네에….”
“대장군 동지께선 그대의 직위가 낮다 하여 그대의 말까지 낮게 생각하시지 않을 것이다.”
말리아의 말에 요한나가 눈을 떠서 드라일을 올려다보았다.
드라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도 요한나는 한참이나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녀가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은 거의 3분이 지나서였다.
“…….”
요한나의 말을 들은 드라일과 실라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언제나 굳은 표정을 유지하는 말리아는 그닥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제가 입수한 정보 중에도 그를 의심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내용의 정보이기에?”
“단순합니다. 대삼림의 엘프 의회에, 안타레스라는 이름의 엘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리아가 자신의 본체, 즉 칼자루를 만지작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알파성의 이름은 엘프 중에서도 상류층만이 쓸 수 있는 이름입니다. 안타레스라는 이름 역시 알파성의 이름이지요. 의회에 속하지 않더라도 모르는 자는 없습니다.”
“…엘프 의회에서 우리에게 직접 문서까지 보내오지 않았나.”
“예. 그랬습니다만, 제가 정보를 입수한 경로는 엘프 의회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제국의 귀족에게서 얻은 것입니다.”
드라일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그는 더 말해 보라는 듯 턱을 까닥였고, 말리아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서는 계속해서 말했다.
“제국의 마탑주가 된 루크바트라는 이름의 엘프가 있습니다. 펠하임 가문의 총애를 받는 엘프이지요. 그자가 말한 정보이고, 펠하임 가문이 보증했습니다. 출처는 확실합니다.”
“그렇다는 말은, 즉.”
“예.”
한때, 마왕의 애검이었던 자가 말했다.
“안타레스는 배신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