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그녀의 계절 (1)
마(魔)에서 창조된 생물은 그리 두려운 적이 아니었다.
크툴루 신화를 방불케 하는 생김새 때문에 이리저리 많은 주목을 받은 종족.
하지만 실제 게임에서는 2티어에 불과한 중급 유닛으로 등장하며, 시나리오에도 지나가는 종족 중 하나로 등장할 뿐이었다.
‘마법을 쓸 필요도 없다.’
마력을 각종 방법으로 엮어 이 세계의 법칙에 따라 투영하여, 각종 현상으로 치환하는 것.
그것이 마법이었다.
오직 마력만 가지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카를처럼 내로라하는 마법사는 되어야 마력만 가지고 미약하게나마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스키퍼처럼 마에서 창조된 생물은 그 피육(皮肉)부터가 덩어리진 마력에 가까웠다.
‘마력만 가지고도 충분하다.’
카를은 자신이 방출한 마력을 그래스키퍼를 향해 쏘아 보냈다.
아니, 쏘아 보냈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일 수도 있었다.
제삼자의 눈. 혈마법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칼리의 눈에는 그의 마력이 거대한 해일처럼 보였으니까.
“아.”
칼리가 꿀꺽 침을 삼켰다.
마법이 아닌 순수한 마력. 격류라고 표현할 길이 없는 기세. 그 압도적인 마(魔)에 추격당하는 중이라는 사실도 잊고 전율을 느꼈다.
“……!”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괴성.
해일에 휩쓸린 그래스키퍼의 거대한 육체가 카를의 마력에 짓눌리기 시작했다.
쿠웅!
거대한 촉수 중 하나가 몸에서 떨어져 나가 굉음을 일으켰다. 썩은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촉수들이 차례로 떨어져 나갔다.
수십 개의 다리를 잃고 둥그런 대가리만 남은 육체. 한 점에 모인 마력이 그 대가리를 향해 쇄도했다.
“……!”
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소리. 본능적인 혐오감을 일으키는 괴성이 터져 나온 직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육체가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다만 카를의 마력에 압사한 것이었다.
“저쪽이다!”
“…….”
마력을 거두는 것과 동시에 그래스키퍼가 쓰러진 쪽으로 달려 나가려던 준비를 하던 카를의 귀에 병사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정면. 그리고 병사들을 지휘하는 실라스의 목소리도 귀에 흘러들어 왔다.
카를은 속으로 혀를 차며 등 뒤로 고개를 돌렸다. 뒤쪽에는 아직 병사들이 없었다.
다만 검을 뽑아 든 말리아가 자신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하늘은, 안 되겠군.”
이레시아의 하늘에 괴조(怪鳥)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분석」으로 바라보았으나 알 수 없는 생물체였다.
마법, 혹은 주술로 창조된 생명. 카를은 후자이리라고 짐작했다.
자신의 혈육. 카를로스 크로우의 아버지인 선대 공작을 죽인 것이 연합의 주술사가 남긴 저주였으므로.
어떠한 종류의 저주를 품은 생물이리라. 인위적으로 창조된 생물이니 움직임도 예상하기 힘들었다. 하늘로 날아서 도망치느니….
“칼리.”
“왜?”
“정면, 아니면 후방. 선택해라.”
차라리 뚫는 편이 나았다.
“……정면.”
“알겠다.”
후방을 뚫어 먼길을 돌아가느니 정면을 뚫어 바로 빠져나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카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에서 얼음 창을 빚어냈다.
포위망을 돌파할 때는 무기가 있는 편이 나았으니까.
칼리도 핏빛 검을 만들고는 손에 쥐었다. 그녀가 긴장된 숨을 뱉어 낸 순간, 카를은 이미 땅을 박차고 달려 나가고 있었다.
“조심해라!”
실라스가 쌍검을 뽑아 들었다.
“놈은 마법사다! 섣불리 달려들지 마라! 포위에 집중해라!”
명령을 내린 실라스가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카를은 그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모자라다!”
검 하나가 창을 쳐 냈다. 정확하게는, 베어 냈다. 마력으로 빚어낸 얼음을 고블린은 오러를 실은 검으로 썰어 버린 것이었다.
순식간에 얼음 창이 얇은 몽둥이가 되었지만 카를은 당황하지 않았다. 애초에 직접 부딪혀서 실라스를 이길 생각도 없었다.
“큭?!”
발밑에서 날카로운 얼음 가시들이 돋아났다. 실라스는 재빨리 땅을 굴러 피했으나 오른발이 꿰뚫려 푸른 피가 줄줄 흘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에 불과했다. 그가 연합 최고의 간부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상처가 난 발에서 피가 멎더니 이윽고 발과 다리의 크기가 커진 것이었다.
“…….”
채 3초도 되지 않는 사이에 발생한 현상. 구태여 설명하자면 ‘진화’였다.
고블린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수백 년을 산 ‘에고 소드’인 말리아를 꺾고 간부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실라스에게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저 능력 덕분이었다. 놈에겐 종족의 한계, 고블린이라는 한계가 없었다.
‘진화를 하기 전에 죽이거나….’
완전히 진화하면 실라스는 어지간한 보스 몬스터에 버금가는 존재로 거듭난다.
이 세계의 보스 몬스터는 곧 사도와 신, 혹은 승천자인 것을 고려했을 때 전투를 지속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전투 불능으로 만들어야겠지.’
카를은 실라스를 죽인다는 경우의 수를 배제했다. 놈은 죽여선 안 되었다. 레카샤에서 드라일을 죽이지 않은 것처럼, 실라스 또한 살아 있어야 했다.
놈이 살아 있어야 카리아 프라헨이 ‘벽’을 넘어설 수 있을 테니까.
“더러운 배신자 같으니라고!”
실라스가 고함을 터뜨리며 카를을 향해 달려들었다. 놈의 쌍검이 직전까지 카를이 서 있었던 장소를 베고 지나갔다.
“나만은 네놈을 계속해서 의심하고 있었다!”
“…….”
“네놈들! 엘프! 배신자의 종족 같으니라고!”
여섯 번 검이 휘둘러졌고, 여섯 개의 얼음이 깨졌다. 검의 폭풍이 몰아쳤으나 카를의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카를은 반격하지 않았다. 반격을 통해 상처를 내면 놈이 또 한 번 ‘진화’할 것이 분명했으므로.
대신에 그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구상했다. 생각했다. 곧, 결론을 내렸다.
“칼리!”
다급함이 섞여 들어간 외침. 검을 휘두르던 칼리가 카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실라스의 검이 카를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는 말을 잇는 대신 몸을 틀어 칼날을 피했다.
두 사람은 다만 시선을 교차했다.
“알겠어!”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하지만 칼리는 그렇게 대답하며 카를과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이해한 것일까.
그런 의혹이 마음속에서 스쳐 지나갔으나 카를은 그녀를 믿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후, 그는 마법을 영창했다.
“사방.”
아무리 카를이라도 동시에 실라스와 말리아 두 간부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말리아를 이 전장에서 강제로 제외시키는 것을 택했다.
“발현.”
동시에 실라스를 고립시킬 필요가 있었다. 다른 변수 없이 순수한 일대일이라면 카를은 실라스에게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선택한 것은.
“길을 가로막는 벽.”
오직 실라스와 자신만이 놓일 수 있는 전장이었다.
“무슨…?!”
카를과 실라스의 양옆으로 거대한 얼음벽이 세워졌다. 성벽보다 살짝 모자란 크기. 하지만 그 내구도는 돌과 진흙으로 지어진 성벽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터였다.
양옆으로 길게 뻗어 나간 벽은 후방에서 홀로 다가오던 말리아를 홀로 고립시켰다.
“네놈 지금 나를, 혼자서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못 할 것도 없지 않나.”
“엘프들은 하나같이 네놈처럼 주제 파악을 못하는 모양이군!”
실라스가 말끝을 올리며 카를을 향해 달려들었다. 퍼억! 두 개의 검이 휘둘러지며 카를이 즉석에서 만들어 낸 얼음 방패를 깨뜨렸다.
“그러니 세계수가 불탔고! 그러니 네놈들은 제국으로 도망쳐 간 것이다!”
“미안하지만.”
카를은 손안에서 얼음 창의 형태를 바꾸었다. 날카롭게 돋아난 부분을 뭉툭하게 변형시키고 조금 두껍게 만들었다.
창보다는 봉에 가까운 형태. 실라스의 검을 피한 그는 봉을 휘둘러 실라스를 가격했다.
“나는 엘프가 아니다.”
“큭….”
진화의 조건은 ‘상처’였다. 피를 흘리면 실라스는 일정한 시간 동안 피 흘린 부위의 몸이 다른 종족의 것으로 바뀐다.
하지만 상처를 내지 않는 공격, 단순히 때리는 것 정도로는 ‘진화’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니 싸구려 도발은 집어치우지.”
카를이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다.
―채앵!
무시하기 어려운 강렬한 소리가 벽 너머에서 들려왔다. 무언가 날카로운 물건으로 얼음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누가 검으로 얼음을 깰 생각을 하겠는가. 평범에서 아득히 벗어난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닌 존재뿐이었다.
“말리아!”
카를의 짐작이 맞아떨어졌다. 실라스가 벽 너머를 향해 목청을 높였다.
“이놈은 내 먹잇감이다! 건드리지 마라!”
하지만 그녀는 실라스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칼로 얼음을 깨기 시작했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었으나, 벽은 확실히 깨지기 시작했다.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다. 그 사실은 카를보다 실라스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다시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리자 실라스는 눈을 부릅뜨고는 카를을 향해 몸을 틀고는, 달려들었다.
“컥!”
마력으로 강화된 신체는 고작 다리 한쪽만이 단 한 번 진화한, 고블린 따위가 쫓아올 수 없는 속도로 거리를 벌렸다.
칼날이 한 번 휘둘러질 때 카를은 그 검을 피하고 봉을 휘둘러, 정확하게 그의 등을 두들겼다.
“크으윽…!”
실라스가 검을 지팡이처럼 짚으며 다시 달려들었다. 매서웠지만 위협이 되지 못했다.
이번엔 카를은 피하지도 않고 얼음 방패를 세운 뒤, 다시금 일격을 가했다.
상처가 잘 생기지 않는 등판이었다.
“이, 개 같은…!”
등을 강타한 일격에 실라스가 바닥에 엎어졌다. 실라스가 다시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카를은 상처가 생기지 않게끔 힘을 조절해 그의 뒤통수를 때렸다.
“컥…!”
외마디 비명과 함께 실라스가 쓰러졌다. 팔과 다리가 살짝씩 떨리고 있었으나 의식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카를은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손에 쥔 봉을 다시금 창으로 변형시켰다.
얼음을 두드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멎고, 벽을 뚫어 낸 말리아가 맞은편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
카를을 향해 다가오던 말리아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밤하늘 한가운데에 떠 있는 달을 향했다.
완벽한 보름달이었다.
“파트리시아.”
카를의 목소리에 검을 쥔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감정이라곤 일절 느껴지지 않는 그 얼굴에 약간의 동요가 떠올라 있었다.
진명(眞名).
그 검의 이름을 부른 카를이 이어서 말하는 순간이었다.
쏴아아아아….
한순간 사위가 적막해졌다.
카를과 칼리의 뒤를 쫓던 병사들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피로 만든 검을 들고 병사들과 싸우던 칼리가 숨을 집어삼켰다. 그녀에 맞서던 병사들의 목소리가 멎었다.
무엇인가 다가오고 있음을, 그 장소에 있는 모두가 깨달았다.
“…….”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왔다. 짙은 초록색 머리카락. 고아함이 느껴지는 간결한 갑옷. 투구를 허리에 낀 그 존재가 창을 고쳐 쥐었다.
“경배하라.”
말리아의 시선이 하늘에서 내려온 마왕을 넘어, 카를을 향했다.
“너희의 군주가 왔으니.”
네가 바라 마지않는 그 소원, 내가 이루어 주마.
적막이 내려앉기 직전, 그가 속삭인 말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