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그녀의 계절 (2)
방금 이시엘은 이곳에 강림했다. 아니, 마왕이 강림했다.
승천자는 곧 불멸자. 사도들이 강림하고 신이 강림하였듯이 승천자 역시 이 세계에 강림할 수 있었다.
찰나의 순간 소리가 멎고 침묵이 흐른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만약 말리아가 내 말을 알아들었으면….’
멍청하게 이시엘에게 덤벼들진 않을 것이다.
카를은 저 에고 소드를 죽일 방법이 없지만, 마왕에겐 있었으므로.
한때 마왕의 검에 불과했던 존재를 현존하는 마왕은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다.
“…….”
말리아가 손에 검을 든 채로 고개를 틀었다.
하지만 그뿐. 그녀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인위적으로 생명을 얻었다지만 에고 소드는 어디까지나 무기물이었다. 감정이라곤 새끼손톱만큼 가진 것이 전부이리라.
그나마 가진 감정 중에는 지금 카를이 느끼고 있는 두려움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뭐지?’
되레 당황한 쪽은 카를이었다.
언젠가 호수에서, 그는 마왕이 강림하는 것을 두 눈으로 목도했고 그 마왕이 전력투구를 하는 모습 또한 보았다.
그때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금이 살짝 저릿했다. 본능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설마.’
그때 말한 비장의 수단이라는 게….
하필이면 가장 달이 밝은 보름달을 선택한 것이, 그 이유에서였나.
투욱.
카를은 얼음 창을 쥐고 있었던 손을 놓았다. 한껏 끌어 올려 육체를 강화하는 데 사용한 마력도 다시 잠재웠다.
그 행동에는 더 이상 변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깔려 있었다.
‘끝났군.’
그것도 완벽하게.
이미 결말이 정해진 싸움이었다.
“후우… 하?”
여러 가지 색의 피가 뒤섞여 끈적이는 검을 들고서 칼리가 숨을 몰아쉬었다.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 카를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던 그녀는 뒤바뀐 분위기를 그제야 눈치챘다.
“어?”
직전까지 그녀를 죽일 것처럼 달려들던 병사들이 하나같이 전의를 잃고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은 것이다.
칼리의 얼굴에 커다란 물음표가 떠오른 순간이었다.
“드라일!”
평소의 이시엘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목소리. 사자가 포효를 터뜨리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녀는 적을 부르고 있었다.
이 내전을 완전히 끝내 버리기 위해.
드라일의 진짜 성격을 알게 된 카를은 과연 그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긴 할까 우려했으나, 그 우려는 불필요한 것이었다.
―쿠웅!
육중한 무게를 지닌 것이 땅으로 쿵, 떨어졌다.
밤중에도 달빛을 받아 찬란한 은빛으로 번쩍이는 갑옷을 입은 미노타우로스.
무기가 없었던 이전과 달리 거대한 망치를 손에 든 대장군이 입을 열었다.
“드디어 이곳에 제 발로 행차했군.”
드라일. 용맹한 대장군이라는 간판 뒤에 숨겨진 성격이 겁쟁이의 그것이라 하더라도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이곳은 레카샤가 아니라 이레시아였다. 적진이었던 곳이 아니라.
‘이 도시 자체가 함정이나 다름없다.’
이레시아는 드라일이 오랫동안 총독으로 있었던 도시다. 마왕성에서 멀었기에 그곳에서 뻗쳐 나오는 권력의 영향도 거의 받지 않았다.
반란을 일으켜 연합이 되었으니 도시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연합의 간부까지 되었던 카를은 이곳에 어떤 함정이 있는지 알고 있었다.
수십 개의 함정을 깔아 두고 ‘협상’을 요구하며 드라일은 이시엘이 이곳에 오기를 기다렸다.
그 사실은 이시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꾸라지처럼 도망치고, 쥐새끼처럼 숨어 다니는 드라일을 직접 처단하지 못하고 계속 휘둘린 것이었다.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왕이여!”
이윽고 족히 백을 넘는 숫자의 병사들이 몰려왔다. 개중 절반 가량은 두 사람을 쫓던 경비병이었으나 나머지 절반은 휘황찬란한 갑옷을 입은 정예병들이었다.
살아남은 간부들 몇몇의 모습이 보였다. 하늘에 괴조를 띄운 주술사의 모습도 그곳에 있었다.
“하아….”
“칼리.”
“아?”
“이쪽으로.”
그들을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한 걸까. 검을 꼬나쥐고 있었던 칼리가 한숨과 함께 자세를 고쳤으나 카를은 손짓을 해 그녀를 불러들였다.
오직 이시엘에게만 관심이 끌려 있는 상황이었다. 전장의 외곽으로 빠진 두 사람에게 달려드는 자는 없었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무관심했다. 방금까지 자신들을 쫓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한순간에 모든 관심이 이시엘에게 쏠렸다.
“어…?”
그 사실을 깨달은 칼리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모든 적의와 살의가 이시엘에게 쏠려 있다. 조금 전까지 싸운 탓에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던 칼리는 투명 인간이 되어 있었다.
“내가 너보다 더 많은 승리를 거두었다! 고작 몇 번의 승리를 거두었다고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드라일이 거대한 망치를 들어 올렸다.
“그 오만방자함! 후회하게 해 주마!”
그리고 내려찍었다.
“언제부터 전쟁의 승패가 거둔 승리의 갯수로 결정되었느냐. 드라일, 어린 아해야.”
“더 많은 승리를 거둔 자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구나.”
쩌저적!
땅에 충격파가 일었다. 요동치면서 갈라진 땅의 파편들이 이시엘을 향해 날아들었다.
마왕은 창을 한 번 휘둘러 파편들을 쳐 냈다.
“……우린 뭘 하면 돼?”
“아무것도.”
“응?”
“우리가 할 일은 이게 전부다. 칼리.”
“…어.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아? 그냥 이렇게 보고만 있으면 된다고?”
“그래.”
카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시엘의 마법을 눈여겨봐 두면 도움이 될 거다.”
“……어, 어.”
두 사람은 전장에서 조금 더 뒤로 물러났다. 싸움에 휘말리기 않기 위해서. 더 정확히는, 이시엘이 자신의 힘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내가 어리석었구나. 전쟁의 승패를 승리의 갯수로 정하려는 이를 총독으로 삼으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너의 어리석음은 이곳에 온 것이다!”
드라일이 다시금 망치를 휘둘렀다.
쩌엉! 땅을 두들겼으나 금속을 두들긴 것과 비슷한 소리가 울렸다. 게임에서도 나오는 드라일의 스킬, ‘대지의 방패’였다.
땅을 두들겨 적의 발을 묶고 아군에게는 보호막을 씌워 주는 스킬.
“죽여라!”
드라일의 병사들이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돌덩이들이 떠올라 병사들의 몸을 감쌌다. 대지의 방패. 그것을 보고도 마왕은 딱히 그 방패를 파훼할 만한 마법을 사용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무력을 한껏 뽐낼 뿐.
“…고통의 마법.”
콰직!
돌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창이 가장 먼저 달려든 병사의 어깨를 꿰뚫었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병사들을, 그녀는 일일이 창을 휘둘러 제압했다.
기이한 점이라면 그녀의 창이 약점을 노리지 않는다는 걸까.
무기를 쥔 팔의 어깨, 혹은 허벅지나 정강이를 노렸다. 창에 고통을 증폭시키는 마법을 부여해 팔이나 다리 중 하나를 못 쓰게 하여 죽이지는 않되, 전투를 이어 나갈 순 없게 만들었다.
“이게 끝인가. 드라일.”
그 결과.
백을 넘는 병사들은 제각기 몸의 어느 부위를 부여잡고 바닥을 굴러다녔다.
개중에는 팔이나 다리 하나가 날아간 것은 아무것도 아닌 종족도 몇 있었으나, 그들 역시 이시엘이 부여한 마법에 의해 극심한 고통을 느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레시아에는 6천에 달하는 병사들이 있다! 고작 마왕과 네놈 배신자들 셋이서 나를! 우리 연합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6천이라.”
마왕의 목소리에 카를은 등골을 타고 흐르는 오싹함을 느꼈다.
두려움의 출처는 마왕이 아니었다. 더 정확히는, 그녀가 데리고 온.
“그러면 이쪽도 수를 맞추어 주어야겠구나.”
용(龍).
거대한 질량을 가진 생물이 날개를 펄럭이며 달빛으로부터 밤하늘을 가렸다.
순식간에 이레시아 전체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속에 삼켜졌다.
다시 밤하늘에 달의 모습이 다시 드러난 순간, 달만큼이나 큼지막한 또 하나의 광원이 붉은빛을 뿜어냈다.
“……”
검은 눈. 붉은 눈동자.
붉은빛은 용의 거대한 눈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카를은 그 붉은 눈을 마주 보고 온몸에 저릿한 마비가 오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강해지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종류의 공포가 아니었다. 생존 본능에 뿌리 박혀 있는 공포였으므로.
‘확실히… 차원이 다르군.’
하늘꿈. 그 어린 새끼용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신들이 가득한 허상 공간을 유유히 헤엄쳐 다니며, 한낱 필멸자를 사도에 맞설 수 있는 승천자로 만들 수 있는 존재.
그 거대한 용의 존재에 카를은 경외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
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동상처럼 이시엘의 뒤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나, 그 존재감과 위압감은 독보적이었다.
“자아, 드라일.”
“…….”
“나는 이것이 전부다. 그러니 네가 자랑하는 수천의 병사들을 데리고 오거라.”
이시엘이 창을 겨누며 외쳤다.
“어서!”
“화, 환상이군.”
마왕의 외침에 드라일은 망치를 고쳐 매며 목소리를 높였다. 기세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외침을 터뜨리려 했으나, 바람 빠진 풍선처럼 목소리에서 힘이 빠졌다.
“나는, 나는, 나는! 마왕 네놈을 잘 안다! 다른 이들의 공포를 삼킨다는 것을! 두려움으로 힘을 다룬다는 것을!”
우렁찬 포효였을 목소리에 떨림이 섞여 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으나, 드라일은 망치를 들고 달려들었다.
“저 용이 눈속임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아무리 네놈이 마왕이라 하더라도 사사로이 용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내 눈과 귀를 속일 작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러면.”
드라일이 거대한 망치를 휘둘렀다.
부우웅! 바람을 가르며 휘둘러진 망치를 향해 창이 휘둘러졌다.
본래라면 더 막대한 질량을 가진 망치가, 창을 부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서진 것은 창이 아니라 드라일이 쥔 망치였다.
“네놈은 왜, 나를 두려워하고 있지?”
“두려워하다니! 네놈의 바람을 사실인 것마냥…!”
“어린 아해야. 부정하지 마라.”
망치를 깨부순 창이 휘둘러진다.
“네놈은.”
찬란한 은빛 갑옷이 흙으로 구워 낸 토기처럼 부서지고.
“나를 두려워하고 있음이라.”
거두어 다시 내지른 창이 심장을 꿰뚫었다.
“그것이 네놈이 내게 패한 이유다.”
“커억…?”
“끝이다. 총독. 너의 반란도.”
마왕이 창을 뽑아냈다.
아무리 미노타우로스의 육신이 강인하다 하더라도 심장은 하나뿐이었다. 그 하나뿐인 심장을 꿰뚫렸으니, 죽음을 피할 순 없었다.
“그리고 이 전쟁도.”
그녀의 말이 끝맺음 지어지는 것과 동시에 드라일의 몸이 앞으로 쓰러졌다.
마왕은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연합에 소속된 수천의 병사들. 드라일이 말했던 6천의 병력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마왕은 마법을 쓰지 않았다. 무기를 휘두르지 않았다. 다만 명령했다.
“복종하라.”
쓰러진 드라일.
눈을 뜨고 있는 거대한 용.
그리고 마왕.
“이제까지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하듯이.”
상황이 끝났음을 병사들은 깨달았다. 승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투욱.
누군가가 버린 검을 시작으로 병사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기를 버리기 시작했다.
“나를 섬겨라.”
마왕이 말했다.
“내가 그대들의 군주이며 그대들의 마왕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