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그녀의 계절 (4)
“이레시아는 그 상태로 방치해도 되는 건가?”
다음 날 아침.
이시엘의 집무실에서 손님 자격으로 앉아 차를 홀짝이던 카를이 물었다.
부하들에게 전달할 명령서를 작성하던 이시엘이 손을 멈추고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쯤이면 내 친위대원 중 하나가 병사들을 이끌고 도시 내부로 들어갔을 것이다.”
“아, 그랬군.”
“꽤 머리가 돌아가는 녀석에게 맡겨 두었으니 상황은 알아서 정리할 것이다. 딱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살아남은 드라일의 부하들인데….”
이시엘이 검지만을 움직여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톡, 톡, 톡. 얼마 전 그녀가 카를의 막사로 찾아왔을 때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과 리듬까지 똑같았다.
“카를. 하나만 묻지.”
“음?”
“그 고블린을 살려 둔 이유가 있나?”
“실라스를 말하는 건가?”
“그래, 놈이 드라일의 부하 중에서도 유별나게 강한 놈이라 듣긴 했다만… 그대가 제거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 살려 두었으니 아마도 도망쳤을 것이다.”
그는 잠시 고민했다.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도 좋을까. 고민한 끝에 그는 입을 열었다.
“곧 또 다른 승천자가 나올 거야.”
“검귀라는 인간 검사가 아닌, 또 다른 승천자?”
“카리아 프라헨이라는 이름의 인간이야. 내가 세운 아카데미에 학생으로 들어와 있어.”
“그 인간 아이가 승천자가 된다는 뜻인가?”
“그게, 애매해.”
카를의 대답에 이시엘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애매하다는 대답을 이전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카를의 입에서 애매하다는 말이 나와서였다.
“애매하다니?”
“원래라면 연합이 제국을 침공하면서 카리아가 일종의 각성을 하게 되는 건데….”
판타지 장르의 매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토리. 시골에 사는 평범한 소년 혹은 소녀가 주변 사람들은 몰살당하고 혼자 살아남아, 용사 따위로 각성하게 되는 것.
카리아 프라헨도 그 스토리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그 연합이 망했으니 이젠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애매하다는 결론만 나와.”
카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쌓인 포인트로 등급을 높인 「사고」를 이용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시나리오에서 이런 경우가 한 번도 없었기에 순수하게 미래를 예언하는 것에 가까웠다.
“승천이 미리 정해진 미래여서 카리아가 승천자가 된다면 실라스가 살아 있어야 해.”
“그 두 가지 사이의 연관성을 잘 모르겠군. 설명해 줄 수 있겠나?”
“카리아가 승천자가 된다면, 그래서 제국의 용사가 된다면… 카리아는 두 번 벽을 뛰어넘어.”
“벽이라….”
“그 두 개의 벽 중 첫 번째 벽이 실라스다. 실라스라는 벽을 뛰어넘고 더 강해질 거다.”
잠시 말없이 카를을 바라보던 이시엘이 물었다.
“그 아이가 남들보다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가?”
“남들보다는 훨씬. 마력 감응 같은 부분에 있어서 재능이 뛰어났어.”
“압도적이었나?”
“…재능을 말하는 건가?”
“그래, 그대도 마법사이니 그 아이의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것이라 생각한다. 제국 역사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 마법사, 이 정도는 되었나?”
카를은 고개를 저었다. 카리아의 재능은 뛰어났지만 제국의 천 년 가까이 되는 역사에 한 번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승천자가 된 이후에 계속 벽을 뛰어넘으면서 강해진 거니까. 압도적인 재능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어.”
“그렇군.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 아이는 승천자가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왜지?”
“그대도 알다시피 승천의 자격을 주는 것은 용이다.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사는 그들이 흥미를 느끼는 필멸자를 승천자로 만들어 주는 것이지.”
이시엘 또한 승천자였다. 그러니 시나리오에 나오지 않는 승천의 자격을 잘 아는 것이리라.
“만약 그 아이를 승천자로 만들어 줄 용이 그 아이의 재능에 흥미를 느낀 것이 아니라면 승천의 자격을 내어 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즉, 용은 카리아 프라헨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그 아이가 놓인 상황을 보고 흥미를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건가?”
“그럴 것이다. 용들은 바란다면 영원히 살 수 있지.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느끼지 못하는 비극을 즐긴다. 비극적인 상황에 놓은 필멸자에게, 승천의 끈을 내려 주지.”
“……사도에게 두 번이나 가까운 사람을 모두 잃은 사람을, 승천자로 만든 것처럼 말이지.”
“내 이야기군. 그렇다. 내 아비는… 사도에게 두 번씩이나 살아남은 내게 흥미를 느끼고, 나를 승천자로 만들어 주었지.”
과거를 회상하듯 잠시 먼 곳을 바라보던 이시엘이 말을 이었다.
“그 인간 검사는 다른 것 없이, 오직 재능 하나로 용의 이목을 끌었다. 그 용이 비록 성체가 아닌 새끼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카리아 프라헨이라는 아이에게 그 인간 검사만큼의 재능이 없다면 용은 그 아이가 겪은 비극에 이끌린 것이다.”
그녀의 말을 카를은 무겁게 받아들였다. 시나리오의 변형.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연합을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겠다고 작정했을 때부터 각오한 것이긴 했으나….
카리아가 승천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그가 상정했던 것 중 ‘최악’에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쉬는 그를 보고 이시엘이 입을 열었다.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대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긴 하다만.”
“…일단 들어나 보지.”
“그대가 그 아이를 비극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면 된다.”
“…….”
“그럴 줄 알았다.”
이시엘이 딱딱하게 굳은 카를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대는 타인의 삶을 고의로 비극으로 만들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래서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 것이다.”
카리아 프라헨.
만약 카를이 그녀를 몰랐다면, 그저 이름만 알고 카리아 프라헨이라는 사람을 모르고 있었다면 그 가능성도 고려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현에게 카리아 프라헨은 곧 제국의 용사였다. 답이 보이지 않는 시나리오를 계속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희망이었다.
‘게다가….’
잠깐에 불과했지만 카를은 카리아를 직접 가르쳤다. 홀로 찾아와서 마법에 대해 질문하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 정도 열정이라면 아마 지금쯤, 어엿한 마법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비극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게 방법이라니.
“…그것 외엔, 방법이 없나?”
이곳으로 오기 전, 황제에게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녀가 말하지 않았던가. 카리아 프라헨은 천성이 올곧은 소녀라고. 악인(惡人)으로 타락시키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로.
삶이 비극이 되더라도 불구하고 카리아는 제국을 위한 용사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카를은 이시엘에게 물었고 깊이 고민하던 그녀는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확실하진 않으나, 이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카를 그대가, 승천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내 아비와 같은 흑색용들은 물론이고 백색용들마저 그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대는 신살을 이룬 인간이며 사도가 아님에도 신격을 가질 수 있는 유일무이한 인간이다.”
카를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비늘을 만지작거렸다. 단순히 관심을 가진다는 증거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물건.
자존심 높고 고고한 존재가 처음 본 인간을 위해 움직여 주겠다는 것만으로도 그 용을 비롯한 흑색용들이 카를을 어떻게 여기는지 알 수 있었다.
“그대도 알다시피 용과 신들은 사이가 그닥 좋지 않다. 그런데 신격을 가졌으나 사도가 아닌, 총애 받고 있는 인간을 보면 어떻게 하겠나.”
“……빼앗으려 들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
“그렇다. 승천의 끈으로 이어진 인간은 사도가 될 수 없으니 말이다.”
드라일이 겪을 승천의 운명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오래전에 카를이 세워 두었던 계획이었다. 결과는 같지만 방법에 차이가 있었다.
승천의 자격을 쟁취하는 것에서 받는 것으로 바뀌는 것이다.
사소한 차이라고 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큰 차이가 있었다. 후자는 용의 시험을 받지 않았고, 그렇기에 승천의 자격을 내려 준 용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아담과 드라일의 차이.’
용의 시험을 통과해 자격을 쟁취해 낸 아담은 자신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용 앞에서 언젠가 용을 죽여 보고 싶다는 소리도 겁 없이 내뱉었다.
하지만 시나리오의 드라일은 시종일관 용에게 휘둘렸다. 용의 시험을 통과한 것이 아닌, 그가 반발한 우두머리인 마왕이 승천자였기에 다른 용이 경쟁하듯 승천의 자격을 내어 준 것이 그 까닭이었다.
“…이시엘. 너는 용의 시험을 통과했나? 아니면 그냥 자격을 얻은 건가?”
“두 경우가 합쳐진 쪽에 가깝다. 내 아비는 먼저 다가왔으나, 시험에 응할 기회만 주었다. 무작정 자격을 넘겨주진 않았지.”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카를을 향해 잔뜩 날을 세우고 있었다. 인간이라는 종족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용이라고 달랐을까.
그런 이시엘이 스스럼없이 ‘아비’라 부르는데는 그 용이 자격이 아닌 기회를 주어서일 것이다.
자격만을 얻어 승천자가 되었다면 용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휘둘리면서 마왕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했으리라.
“하지만 내 아비는 용들 중에서도 특별히 강하고, 또 별종에 가까운 존재다. 그대가 승천자가 되려 하더라도 그대가 마주칠 용이 내 아비 같은 용은 아닐 것이다.”
“…그렇겠지.”
이시엘이 마왕이라 하더라도 용에게는 한낱 미물로 보일 것이다. 그런 미물을 스스로 딸이라 부르는 용은 그들 중에서도 별종, 삿되게 말해 또라이였다.
그런 또라이가 흔하진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 용 하나뿐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도 아직 시간은 꽤 여유가 있다. 당장 강림할 사도나 신 따위는 보이지 않으니 천천히 고민해도 될 것이다. 그대는 승천의 시험을 내려 줄 용을 선택해도 될 정도이니.”
“…그래.”
성급히 결정할 것도 없었다. 일단 시나리오대로라면 2년 차에 강림할 나머지 사도는 ‘세 머리 뱀’뿐이었다.
어쩌면 그 세 머리 뱀조차도 강림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세 머리 뱀이 섬기는 신은 카를이 눈앞에서 마주했고, 그 신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으니까.
‘그리고….’
아스텔과 별자리.
카를이 모르는 것을 아는 그녀를 다시 만나야 했다. 어지간한 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강자. 그만한 강자라면 어쩌면 용에게 의지하지 않는 다른 방법을 알지도 모른다.
“아, 그러고 보니 이시엘… 다시 나를 이레시아로 데려가 줄 수 있어?”
“가능하다만, 왜 그러지?”
“말리아. 연합 간부인 그 에고 소드를 만나야 해. 분명히 내가 배신자라고 눈치챌 만한 증거를 흘린 적이 없는데… 알아챘어.”
본부 내에서 처음으로 맞닥뜨린 것이 실라스가 보낸 병사들이었기에 처음에는 실라스가 알아챈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 성격 급한 고블린이 이미 알고 있었다면 부하들을 보내기 전에 먼저 공격해 왔을 것이다.
연합 본부 내에서 갑작스럽게 정보를 취득했을 리도 없다. 실라스는 카를 자신의 정보를 캘 수 있을 만한 정보원을 부리지 않았고, 혼자서 알아낼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도 아니었다.
‘말리아라면 다르다.’
하지만 실라스와 달리 말리아는 머리를 잘 썼다. 연합에 붙어 간부가 된 이유도 연합과 마왕의 싸움에서 연합의 승리를 예상하고 그렇게 했다는 사실이 시나리오에서 드러났다.
시나리오대로라면 연합이 승리했을 테니 그녀의 예상이 옳았다. 말리아가 자신의 정보를 캐냈으리라고 카를은 확신하고 있었다.
“이미 달아나지 않았겠나?”
“남아 있을 거야. 말리아는 연합의 승리를 위해서 싸운 게 아니니까.”
“…뭔가 다른 목적이 있다는 뜻이군. 알았다. 그쪽에는 내 사역마를 통해 먼저 연락을 취해두지. 2~3일 안에 다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마.”
“시간이 꽤 걸리네?”
“거리가 거리이니 말이다. 나는 용의 권능을 흉내 내는 것은 가능하다만 시간이 필요하다. 그대도 그동안 노고가 많았으니 편히 쉬는 것이 좋지 않겠나.”
그렇게 말한 이시엘은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제국에서 사용하는 시계와는 다른 단위의 시계. 제국 기준으로는 대략 9시 50분 정도의 시간이었다.
“미안하지만 정무를 볼 시간이 되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것 같다. 그대 집이라고 생각하고 편히 쉬도록.”
“아, 그러면 성에 있는 서고에 가도 될까? 제국에선 마족의 기록은 고사하고 마족을 따로 만나는 것만으로도 사형감이라, 마족들이 쓴 기록물을 볼 기회가 없거든.”
“사서에게 말해 두겠다. 편히 둘러보도록.”
“아, 고마워. 이 은혜는….”
“은혜라 할 것도 없다. 그 마음만 받지.”
이시엘은 최대한 무감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오려는 것을 최대한 감추고는 집무실을 나섰다.
집무실의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시녀가 이시엘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 여왕님? 다, 다치신 건가요…? 치, 치유술사를 데리고 오겠습니다.”
“필요 없다.”
“하지만 여왕님께서 붕대를 감으실 정도인데 상처가 꽤 심하신 게….”
“필요 없다 하지 않았느냐.”
죽음에 이르는 상처도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치료할 수 있다. 그런 이시엘이 구태여 목에 붕대를 감은 이유는 ‘흔적’ 때문이었다.
붕대로 가린 목의 피부에는 그가 남긴 흔적이 새겨져 있었으니까.
그녀는 자신의 목을 어루만지며 시녀가 고개를 갸웃거릴 만큼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