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82
182화 그 별빛이 가리키는 것 (7)
“정말이지.”
아스텔이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넌 모르는 게 없구나? 멜릭 경은 우리 중에서도 제일 똑똑한데…그렇게 칭찬한 이유를 알겠어.”
“제가 머리를 좀 잘 쓰긴 합니다.”
“그런 것 같네. 그러면 어쩌다가 그런 결론을 내렸는지 물어봐도 될까? 답을 알아낸 사람의 풀이 과정을 듣는 것도 나한테는 즐거운 일이거든.”
“예.”
아스텔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 갑작스레 나타나 카를에게 답을 찾게 해준 이유.
유추할 수 있는 힌트는 많았다.
카를은 천천히 자신의 기억, 자신의 것이 아닌 기억을 되짚어가며 말했다.
이 세계를 담아낸 게임, 에라 오브 엠파이어에서 별자리는 플레이어의 특성을 칭하는 단어였다.
‘그 특성이 나한테 맞춰진 줄 알았지만.’
에라 오브 엠파이어는 기본적으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황제였고 제국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시나리오 내내 지휘한다.
그러다 보니 ‘별자리’에 나오는 특성들은 대부분이 다수에 적용되는 것이었다.
가령 예를 들자면 ‘2티어 유닛의 생산 시간 전체 1초 감소’ 따위의 특성.
‘별자리 특성이 나한테 맞춰진 게 아니었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아직도 순간순간 카를은 자신이 정현이라고 착각을 일으킬 만큼 그의 기억은 카를의 뇌리에 깊게 남아 있었다.
아마 ‘자신의 신’은 철학과를 다닌 정현이 한참 듣던 종교 철학 과목에 나온 수많은 신들이 이리저리 합쳐진 것이리라.
예수가 조금, 조로아스터가 조금, 시바가 조금, 부처가 조금.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나만 아는 신이라고 한 거겠지.’
이 세계에는 예수도 부처도 없었다.
가톨릭을 모티브로 한 백십자교가 있긴 했지만 신자들이 섬기는 건 하나님도 예수도 아닌 하얀 십자가였다.
심지어 정현 또한 신자는 아니었다. 학점이 달려 있었기에 공부를 했을 뿐이다. 그가 아는 종교 경전들의 문장 몇 개가 신을 탄생시킨 것이리라.
‘내 특성은 그 신이 나를 위해 만들어 준 거였어.’
카를이 자기 자신을 ‘정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마저도 알고, 거기에 맞춰 게임에 가까운 형식으로 만들었다.
자신은 플레이어가 아니다. 그렇기에 이 게임의 ‘특성’은 자신에게 맞춰진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이 세계는 저쪽 세상에서 ‘게임’이라는 형태로 존재한다고 했었죠. 그 게임에는 세계 단위로 영향을 미치는 특성이 있어요.”
“응.”
“특성들은 하나 같이 파격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이 세계가 0과 1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세계 단위로 영향을 끼칠 수 있어야 해요.”
게임이 아닌 세계에서 ‘별자리’는 어떻게 이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가.
전체 유닛 공격력 상승, 기술 연구 효율 증강 따위의 게임 같은 특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성이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뿐이에요. 플레이어가 제국을 부강하게 만들어서 신들을 쓰러트리고 멸망의 운명에서 벗어나는 것.”
“응. 맞아.”
“아스텔 당신이나, 두 번째 칼렉…멜릭 경, 사르시아 그리고 코스모스라는 사람까지. 당신들이 만약 별자리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제국이 몰락할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해요.”
하지만, 하고 카를이 말을 이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당신들은 망자에요. 제가 아는 칼렉이 다섯 번째나 여섯 번째라면, 여기에 있는 두 번째 칼렉은 최소한 ‘수백 년 전’의 인물이 될 겁니다.”
당장 그가 아는 칼렉도 200년 전의 인물이었다.
그가 세운 어마어마한 업적 탓에 아직도 마법계에서 자주 거론이 되었기에 잘 체감이 되지 않을 뿐이었다.
“현실에 개입할 방법이 없기에 아스텔 당신은 처음엔 제 의식 속으로 들어왔고, 두 번째는 제 기억의 회랑 속으로 들어왔죠. 이곳은 사념 세계고요. 현실이나 허상 공간을 관측할 순 있어도 거기에 직접 개입할 방법은 없어요.”
“…응. 하늘에서 별이 반짝여도 올려다보지 않으면 별이 할 수 있는 건 없는 것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당신들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은 겁니다.”
아스텔은 말했다. 불멸자를 살해한 이들을 이곳으로 데리고 왔노라고.
그들에게서 가능성을 찾으려고 한 것이리라.
“멜릭 경은 당신이 누군가를 데리고 온 건 처음이라고 했죠. 단순히 신살자(神殺者)라는 이유는 아닐 거에요.”
이시엘 또한 신살자였다. 카를보다 훨씬 많은 신을, 오래전부터 죽여온 사냥꾼. 그래서 카를은 단언할 수 있었다.
“그러면 다른 이유가 있겠죠. 당신은 이 세계의 운명을 압니다. 저한테 보여주기 전에도 이 세계를 담아낸 ‘게임’을 알고 있었던데다가 다른 세계의 운명도 봤을 테니까요.”
“응. 맞아. 멜릭 경이 그런 장치를 만든 것도 다른 세계의 대처를 참고하기 위해서였어.”
크게 도움은 안 됐지만 말이야.
쓴웃음과 함께 아스텔의 입에서 그런 목소리가 흘렀다.
“여기서부턴 순전히 추측입니다. 신을 악이라고 규정 짓는 아스텔 당신만큼이나, 제가 이 세계의 신들을 증오해서이거나….”
“응.”
“아니면, 당신들의 손으로 세운 제국이 몰락하는 광경을 보고 싶지 않아서 마음이 급해진 것. 둘 중 하나일 겁니다.”
“…….”
아스텔이 입을 다물었다.
소리가 울리는 구조의 나선 계단에서는 목으로 침을 넘기는 작은 소리조차도 크게 울렸다.
순전히 추측에 불과했다. 나름의 근거를 덧붙이자면….
“아스텔 당신이나…두 번째 칼렉, 멜릭 경 등등. 제가 전혀 모르는 인물이에요. 사서엔 그런 이름조차 남지 않았죠. 그런데 사서의 첫 페이지엔 이런 기록이 있어요.”
여섯이 죽고 다섯이 살아남았다.
“제국은 사도에 대한 기록을 철저히 은폐해왔습니다. 만약 사르시아와 또 한 명의 사도가 있고 그 기록이 은폐되어서 여덟 명이 여섯 명이 된 거라면 말이 됩니다. 제가 아는 200년 전의 칼렉이 다섯 번째나 여섯 번째라면, 두 번째 칼렉은 대략 700년 전을 살았다고도 추측할 수 있어요.”
죽었다는 여섯의 이름은 남겨지지 않았다. 살아남은 다섯은, 아직도 제국에 건재하게 남아 있는 다섯 공작가의 시조들이었다.
“어디까지가 정답입니까?”
“정답이야. 여행자. 우리 중에 사도가 둘이 아니라는 것, 딱 하나만 빼면 말이야.”
“…예?”
그보다 더 있다는 이야기인가? 거기에 놀란 카를이 되묻자 아스텔은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따라와 줄래? 보여줄 게 있어.”
두 사람은 나선 계단을 다시 올랐다. 허상 공간을 들리기 위해 계단을 한참이나 내려갔던 것보다 더 오랫동안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공간이라지만 체감상으로는 거의 30분을 걸었을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앞서 걷던 이시엘이 문득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힘들어? 거의 다 왔는데 잠깐 쉬다 갈까?”
“아뇨. 괜찮습니다.”
“다행이네. 아, 이건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넌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서 걱정은 안 되지만 말이야.”
카를은 한꺼번에 계단을 한꺼번에 두 칸 올라서 아스텔의 옆에 섰다.
나선 계단의 넓이 자체가 꽤 큰 편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 기울이는 아스텔을 향해 카를이 물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아스텔.”
“대체 어떤 궁금증이길래 이렇게 숙녀의 앞에 성큼 다가온 걸까?”
“여긴 사념 세계에요. 시간은 멈춰 있고 공간도 당신 마음대로 흐르죠. 그런데….”
카를은 자신의 몸 상태를 잠시 확인했다. 계단을 꽤 오래 걸어 올라간 탓에 진짜 육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리에 부담이 가고 숨이 차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느끼도록 인위적으로 조정된 환경이었다.
“여긴 지나치게 현실 같아요. 왜, 이렇게 만들어 둔 겁니까?”
“으음….”
잠시 고민하던 아스텔이 입을 열었다.
“우린 망자이지만, 뼈만 남은 백골은 아니야. 시간이 멈춘 채로 가만히 있으면 삭아버리거든. 그리고 이건 우리 나름의 속죄이기도 해.”
“속죄…라고요?”
“응.”
어느새 두 사람의 걸음은 나선 계단의 꼭대기에 도달했다.
그곳에도 문이 있었다.
아까와 다른 점은, 이번엔 아스텔이 오기 전부터 존재했던 문이라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해줄까? 만약 필멸자가 신을 완전히 죽이게 되면, 그 신이 관장하는 개념을 ‘극복’할 수 있어.”
“극복이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야. 신들이 마음대로 휘두르는 개념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어. 카를로스 너는 불멸의 신 크라누스를 죽였으니까, 다른 모든 신이 ‘불멸’하진 않게 된다는 거지. 동시에 카를로스 네가 ‘불멸’해질 수도 있다는 거야.”
처음 듣는 이야기에 카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이 세계가 게임이던 시절에도 알 수 없었던 것이었으니까.
그런 카를의 모습을 보고 아스텔이 후훗, 작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가 극복한 개념 중에는 ‘죽음’도 있어.”
“…….”
“왜 그래?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죽음을, 극복했다고요?”
“응. 우리가 가장 먼저 극복한 개념이었어. 만약 신들이 그 죽음이라는 요소를 이용해버리면, 우리가 이길 방법이 없었거든.”
“그게….”
놀란 나머지 말문이 막혔다. 한참이나 할 말을 고민하던 카를이 물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간단해. 모든 신이 악한 건 아니거든. 죽음의 신은 자신의 존재와 개념이 절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필멸자에게도 그리고 신들에게도. 특히 신들에게 이용당하기 시작한다면…이 세계가 금방 엉망이 될 걸 알았지.”
“죽였다, 기보다는 그쪽이 죽음을 택한 거군요.”
“응. 그래서 우린 순환의 고리를 망가뜨리지 않는다는 전제로 죽음을 극복했고, 이용할 수 있게 되었어.”
나선 계단의 끝에 위치한 문.
아스텔은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피부를 기분 좋게 스치는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삭막한 나선 계단에 있다가 갑자기 봄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곳에 들어선 카를은 몸에 생기가 도는 것을 느꼈다.
“사실상 죽지 않는 몸이 된 거야. 그런데…그런데도, 구하지 못한 친구가 있어.”
하얀 커튼과 넓은 창문. 아무 장식도 없는 하얀 방 안에는 커다란 침대가 놓여 있었다.
그 침대에는 평온한 얼굴로 잠든 여성이 있었다.
어쩐지 익숙한 외견. 카를은 그 여성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이 사람은….”
“아마 너도 아는 사람일 거야. 음…아니지, 제국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람이 아닐까? 얼굴에 별 모양 흉터가 새겨진 사람. 유명하잖아?”
“예.”
왼쪽 볼에 별 모양 흉터가 새겨진 사람. 유명하다 못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제국을 세운 시조 건국제(建國帝) 아카시아 폰 아데나였다.
“여섯이 죽고, 다섯이 살았다. 그런 기록이 남았다고 했지?”
“예.”
“기록에서 사라진 두 명 중 한 명은 사르시아야. 누가 봐도 사르시아는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숨길 수밖에 없었거든.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아카시아야.”
그녀의 말을 들은 카를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그는 자신의 특성을 이용해 기억 속에 있는 제국의 역사서를 머릿속에서 펼쳐 다시 읽기 시작했다.
건국제인 아카시아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제국이 세워져서 기록을 남기기 전의
“황위를 동생에게 양위했다….”
“응.”
“그 뒤로 기록이 없군요. 무엇을 했고, 언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따위의.”
“그럴 수밖에 없었어. 아카시아는…영혼을 빼앗겼거든. 황제가 영혼을 빼앗겼다고 알릴 수는 없었으니까. 더군다나 아카시아는 죽은 게 아니었기 때문에 되살리는 것도 불가능했어.”
아스텔은 침대에 걸터앉아 아카시아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말을 이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무너지기 시작했지.”
“…….”
“흩어졌던 인간들을 규합한 거대한 제국이 생겼고, 수많은 악신들을 쓰러트렸어. 아카시아가 돌아올 수 없게 되었을 때부터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냐고, 그런 말이 나오기 시작한 거야.”
조금이나 짐작이 갔다.
죽음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면 자신감이 생겼으리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하지만 상대는 이 세계의 신들이었다.
전지전능하진 못해도 세계의 법칙을 규정할 수 있는 괴물들.
죽음을 극복했다 하더라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이들의 자신감을 무너뜨렸을 테니까.
“그리고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우린 완전히 무너졌어.”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건…?”
“전쟁의 신.”
아. 그 대답에 카를은 짧은 탄식을 뱉으며 아스텔이 그렇게 말한 이유를 깨달았다.
전쟁의 신은 전쟁이라는 개념을 관장하는 신. 이들의 싸움은 전쟁이었을 테고, 그렇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전쟁의 신은 강해졌으리라.
“우리가 시작한 싸움이었고, 우리가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었어. 그래서 우리는 죽지 않을 수 있었지만 죽었고…영혼만은 남겨서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 거야.”
내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
바람에 파묻혀 거의 들리지 않게 된 말이 아스텔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맞아. 내가 너를 선택한 건, 우리가 피와 땀을 흘려서 세운 제국이…아카시아가 돌아올 수 없게 되면서까지 지킨 이 제국이 멸망한다는 걸 알아서였어.”
쓰디쓴 미소를 지으면서 아스텔이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어떤 신이 강림하냐고 물었지? 어떻게 대답할 수 없어. 왜냐하면, 수많은 신들이 강림할 테니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적들이 있으니까.”
“……신의 강림이 아니라, 제국의 멸망. 그게 목적이었군요.”
“응.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아줬으면 해. 마침 그곳에 네가 있어서가 아니라, 너라서 선택했다는걸. 오로지 너 자신의 의지로 싸웠으니까. 그러니까…이번엔 우리를 위해 싸워줄래?”
아스텔의 그 말에 카를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건 확실하게 하죠. 아스텔.”
“아…응?”
“당신들을 위해서가 아니에요. 저를 위해서, 제가 살려고 싸우는 겁니다. 원래부터 그랬고.”
자신이 이 세계를 정현이라고 생각했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 결국 시나리오의 끝을 보겠노라고 다짐했다.
시나리오는 클리어 할 수 있다. 만약 시나리오가 이 세계의 운명을 담고 있는 것이라면, 클리어가 곧 승리가 될 것이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러면 충분히 해볼 만하지 않은가.
“지금도 그렇습니다.”
모든 판단 하에 그는 이성적인 결론을 내렸고.
아스텔은 더없이 환희에 찬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