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85
185화 누군가의 꿈 (3)
“오랜, 만이구나. 공작. 이게….”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손에 활기가 돌았다.
황제, 헬레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눈앞의 남자를 끌어당겼다.
“이게 얼마 만인가.”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
가짜가 아니다.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침실에 감금당한 것이 며칠째란 말인가.
이따금 식사를 놓고 가는 그림자였던 것 중 하나와,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못하는 호위대장을 제외하면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사람이었다.
“……믿고.”
너무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은 까닭에 성대가 갈라졌다. 목이 막혔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그녀가 힘겹게 목소리를 내었다.
“믿고, 있었다. 그대는 오리라고. 믿고 있었노라. 나의 공작….”
카를로스 크로우.
그의 이름이 희미한 목소리가 되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앞에 있었다.
“폐하?”
“듣고 있다. 듣고 있노라. 하나부터 열까지, 그대의 목소리를 하나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얼마든지 말하여도 좋다. 그러니…….”
순간 카를은 머리가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자신에게 달라붙는 황제의 모습에 머릿속에서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시아나가.
사도에게 몸을 빼앗겼던, 그 시아나의 모습이 순간 겹쳐 보였다.
‘사도…?’
설마 시아나와 비슷한 경우인 걸까.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불길함에 카를은 입을 열었다.
“폐하, 제가… 제가 폐하를 처음으로 알현하였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기억하고말고. 그걸 어찌 잊겠느냐.”
“제가, 그때 폐하께 진상해 드린 광산이 어느 광산인지 기억하십니까?”
뜬금없다고 여겨질 정도로 갑자기 던진 질문. 하지만 시아나의 몸을 빼앗은 사도가 그랬듯, 만약 사도가 황제의 몸을 차지한 상태라면 이런 작은 기억은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그런 계산하에 던진 질문에 황제는 잠시 카를의 눈을 바라보더니 물었다.
“철과 소금, 마력석… 그 셋 중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기억하고 계셨군요.”
“어찌 잊겠느냐. 나의 공작과 처음 만나서, 처음으로 나눈 대화인데 말이다.”
“…다행입니다. 정말로, 다행입니다.”
카를 자신이 아는 그녀 그대로였다.
안도감이 잠시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으나… 곧 더 큰 의문이 떠올랐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인가.
그 의문에 대답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눈앞의 황제 헬레나뿐이었다.
“…폐하.”
“왜 그러느냐?”
말투는 어느 정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 외엔 모든 점이 비정상적이었다.
수십 명의 대신들 앞에서 기죽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이던 황제다.
홀로 제국을 이끌 만큼 강건했던 그녀가 이제는 카를과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듯 엉겨 붙고 있었다.
“…펠하임 공자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들었습니다. 폐하. 제가 없는 사이에 그자가 폐하께 무슨 짓을 하였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펠, 하임이.”
헬레나가 떨기 시작했다.
아직 선선한 북부와 달리 제도는 여름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한겨울의 눈밭에 내던져진 것처럼 떨었다.
“나를, 배반하였다…….”
“…예.”
“연회가 있어서…… 얼굴만 비추고 돌아가려 하였다…… 그런데, 그자가…… 내게, 칼을….”
그녀의 어깨가 크게 떨렸다. 그날의 광경이 머릿속에 악몽처럼 새겨진 듯했다.
“짐은 믿고 있었다. 그림자들을…… 그것들을…… 할아버님을 지키었던 그것들을…… 말이다.”
“예.”
“그것들도…… 그자의 수하였다. 공작, 그것들이……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들이 말이다. 그것들이…….”
“괜찮습니다. 폐하. 그만 말씀하셔도 됩니다.”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에 카를이 그렇게 말했지만, 헬레나는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의지가 남아 있었다. 완전히 무너진 폐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카를은 그 사실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를, 여기에 가두었다……. 일이 끝나면, 말이다. 모든 일이 끝나면…… 풀어 주겠노라고, 모든 것을 되돌려 놓겠노라고…….”
제위(帝位)를 노린 것은 아니다. 헬레나를 끌어내리고 허수아비 황제를 새로 세워 꼭두각시로 조종하려는 것 또한 아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황제의 권위가 커지고 있다 한들 펠하임 공작가의 영향력이 작아지진 않았다.
지금까지 그러지 않았을 뿐, 펠하임 가문은 작정하면 황제보다 더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가능했다.
‘다른 목적.’
아무리 그래도 황실을 건드린 것은 반역이다.
펠하임의 위세가 드높아도 나머지 네 가문을 합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반역이라는 좋은 구실을 주면서까지 이렇게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자신이 신을 죽인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것 하나 외엔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공작…….”
헬레나가 떨리는 눈으로 카를을 바라보았다.
“처음이다. 그대가, 처음으로 나를 구하러 왔다. 짐을 배반하고 버린 펠하임과 달리 그대만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숨결이 거칠었다. 불안에 떠는 그 목소리에 카를은 언젠가 그녀가 내비쳤던 트라우마를 떠올렸다.
―제국이 멸망하는 것이 두렵다.
카를은 언젠가 그녀의 트라우마를 보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황제. 마르트 헬레나 폰 아데나. 자신과 같이 ‘플레이어’의 기억을 가진 사람.
카를과 더불어 이 세계의 미래를 아는 사람.
‘아니….’
그녀는 카를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카를이 갖게 된 정현의 기억은 오직 그가 플레이한 게임뿐이었지만 그녀가 갖게 된 기억의 원주인은 커뮤니티를 둘러보고, 적극적으로 공략을 찾아보았으니까.
‘그런데도.’
그녀는 상황을 비관적으로 여겼다. 마지막 시나리오의 난이도는 단순히 어렵다, 수준이 아니라 난공불락에 가까운 것이 그 원인일 것이다.
클릭 한 번, 단축키 한 번 누르는 것으로 조종이 가능한 게임과 달리 이 세계는 현실이었다. 훨씬 투박했고 훨씬 어려웠다.
‘뭔가 이상하다.’
하지만 헬레나는 바로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최악의 시나리오처럼 2년 차에 공작령 중 한 곳이 무너지거나 하는 일 따위 없이 제국은 건재했다.
그 제국만큼 강인한 사람이 헬레나였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되다니?
“폐하.”
그가 아는 황제는 고작 골방에 갇히게 되었다고 이렇게 무너질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무언가의 개입이 있었을 것이다. 그 수단을 카를에게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은, 눈앞의 황제뿐이었다.
‘되돌려 놔야 해.’
어르고 달래는 것은 소용이 없다. 그녀를 더욱 약하게 만들 뿐이다.
수십 명의 대신 앞에서 과감히 용의 시대를 선포했던 강인한 황제가 되어야 했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카를은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드렸던 말을 기억하신다 하셨지요.”
“기억한다. 공작. 그러니….”
“일전에도 말씀드렸지요. 폐하께서는, 굳건하셔야 합니다.”
눈동자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무슨 말이느냐고 그렇게 묻는 듯한 눈빛을 향해 카를은 입을 열었다.
“황궁이 폐쇄되었습니다. 제도를 오가는 길이 모두 막혔습니다. 온 제국이 제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닐까 염려하고, 폐하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밤의 어둠으로 물든 방.
카를은 손안에서 마법을 펼쳐 내 방을 밝혔다.
움찔. 갑자기 터져 나온 밝은 빛에 어깨를 떨던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제국의 백성들이 지금 폐하의 모습을 보시면 실망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불길한 보라색 번개가 내리친 까닭에 제국이 기울어 간다는 소문이 이제야 막 잦아들었습니다.”
“…….”
“그 모든 것이 폐하의 공입니다. 폐하께서 쌓아 올리신 탑입니다. 아직 제국은 건재합니다.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 겁니다.”
“공작….”
“제게 의존하셔도 좋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달아나고 싶은 그 마음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러면… 제국은 끝내 무너질 것입니다.”
카를은 약하게 그녀의 트라우마를 자극했다. 작금의 상황에 놓여서 느끼는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공포.
정신을 일깨울 수 있을 만큼 적당한 자극.
“하지만 말이다. 공작… 펠하임도 그랬다. 그자도, 자신이 온 힘을 다해 나를 보필하겠노라고… 그리 말하였다. 만약 공작 그대도 그런다면…… 나는.”
“폐하. 기억을 되짚어 보십시오.”
“…아?”
“수만 가지의 미래 중에서 펠하임이 폐하를 배신하는 미래는 수없이 많았습니다. 허나 폐하, 제가 그랬던 적이 있었습니까?”
“그대가…… 그대가 없었다. 공작 그대가….”
“지금은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폐하의 곁에 있지 않습니까.”
그가 딱 잘라 말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는 법입니다. 폐하.”
“…….”
“폐하의 기억 속에 있는 그 타인은 공략에 성공한 적이 없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폐하, 첫 공략입니다.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렇지.”
황제가 한숨처럼 말을 내쉬었다.
불안감에 떨리고 있었던 어깨가 멈추었다. 호흡이 일정한 박자를 되찾았다.
카를은 염동 마법을 이용해 살며시 창문을 열었다. 혹여라도 투신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인지 잠금장치가 되어 있었으나, 부수어서 풀어냈다.
여름이 되기 직전의 계절에만 부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가만히 바람을 맞은 것이 30분 정도가 흘렀을까. 황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시원하구나. 공작.”
“정신이 드셨는지요.”
“조금 나아졌다. 아니, 역시 잘 모르겠다. 잠시만 이대로 있자꾸나.”
“예.”
카를은 헬레나의 상태를 살폈다. 두 동공에 이전과 같은 총기가 서서히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다만 외견은 그렇지 못했다. 헝클어진 머리와 허름한 단벌옷. 차림새만 보면 황제가 아니라 집시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이래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카를의 손에서 빚어진 마법이 헬레나를 집어삼켰다.
“무슨…?”
“상황이 이렇긴 해도 최소한의 구색은 갖추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씻는 것이라기보단 세척에 가까운 마법을 거치자 몰라볼 정도로 깨끗해졌다. 거기에 방에 있는 부드러운 천들을 모아 마법으로 재구성해 눈 깜짝할 사이에 환복을 끝마쳤다.
트리플 이상의 마법사만 할 수 있는 재빠른 마법의 운용. 황제는 얼떨떨한 얼굴로 어느새 정갈한 복장을 하게 된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그렇지.”
피부에 닿는 안감이 꽤 부드러워서 미소가 지어졌다. 침대의 솜이불을 가져다 쓴 걸까.
황제보다는 귀족에 가까운 복식이었으나 급조한 것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하아아. 묵은 감정을 내뱉기 위해 그녀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아 지셨습니까?”
“아직… 이다.”
과장된 말이 아니었다.
한겨울의 눈밭에 서 있다가 돌아온 것처럼 뼈에 사무친 절망감이 남아 있었다.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밟고 있는 상태. 지금도 약간만 정신을 놓으면 먹힐 듯했다.
“……기이하구나.”
“폐하께서도 느끼셨습니까?”
“그래. 단순히 짐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구나. 꼭 무언가 저주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멍한 얼굴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던 황제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펠하임 그것이 마탑에 개입해서 장난질을 쳐 대더군. 공작, 혹 이것은 짐이 모르는 마법인가?”
“아니요. 폐하. 마법의 종류는 아닙니다.”
몸이 닿았을 때 다른 종류의 마법은 느껴지지 않았다. 주술의 감각도 알고 있었던 카를이었기에 주술조차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카를이 제일 처음 의심한 것은 사도에게 몸을 빼앗겼느냐였다. 하지만 황제는 그 경우 또한 아니었다.
“무언가의 권능에 가깝습니다.”
“권능이라…. 펠하임 그것도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지. 그래, 「잊지 못하는 자」였던가?”
“예, 하지만 그 스킬로는 권능 같은 것을 다루지 못하는데….”
“……왜 그러느냐 공작? 말을 하다가 말고.”
불현듯 무언가 생각을 떠올린 카를이 입을 열었다.
“폐하. 시녀나 시종들, 아니면 호위 기사들이 어찌 되었는지 알고 계십니까?”
“잘 모른다. 짐이 이곳에 갇혔을 때 문 밖의 저 녀석을 제외한 전원을 끌고 나갔다. 죽이지는 않겠다고 했으니 살려 두었을지도 모르지.”
“기이합니다.”
빠르게 사고가 회전한 까닭에 과정이 아닌 결론부터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반역을 일으켜 황궁을 점거했으나 정작 죽인 자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무언가를 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제도를 오가는 길이 막혀 있으나… 특별히 뭔갈 하지도 않습니다.”
반역은 얼마나 큰 권력을 쥐고 있든 간에 사형감이다. 주동자는 물론이고 그 혈육까지 조금이라도 가담했으면 사형당했다.
칼리테는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것이다. 하지만 반란군과 마족들을 끌어들였다는 것 외엔 이렇다 할 행동이 없었다.
반란군과 마족들을 끌어들여도 마찬가지다. 연합은 무너졌고, 나머지 잔당들은 제국의 상대가 되지 못하니.
“만약 폐하를 이렇게 만든 것이 다른 무언가의 권능이라면….”
권능은 불멸의 존재들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무이한 힘.
승천자도 사도도 용도 신도 아닌 한낱 인간에 불과한 칼리테가 어떻게 권능을 얻었는가.
“……마족을 끌어들인 게 눈속임이라면.”
잔당이라고 해도 경계할 수밖에 없다. 제국은 수백년 동안 마족과 척을 졌으니까.
반란군에 크게 덴 하카인도 한동안은 거기에 집중할 것이다. 클로라리온은 스스로 고립되었고 레지엘은 가문이 양분되었다.
당분간은 제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대규모 군대가 없다.
왜? 그 의문에 떠오르는 답은 하나뿐이었다.
“…신.”
그리고.
[스스로 답을 찾아낸 그대에게 감탄하노라.] [보상 : 특성 포인트 +5]어느 신의 목소리가 문자가 되어 그의 눈앞에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