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86
186화 누군가의 꿈 (4)
칼리테 펠하임은 정상에서 아득히 벗어난 인간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지성(知性)이 그랬다.
아무리 펠하임가문의 공작이 데릴사위였고, 심성이 유약하다 한들 그가 무능한 것은 아니었다.
무능했더라면 펠하임가의 데릴사위로 들어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테니까.
하지만 칼리테는 그런 제 아버지를 누르고 가문 내의 입지를 다지고… 가문 밖으로 나와 제국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다.
“……역시. 이게 정답이었나.”
그만큼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이다. 그런데 목숨을 걸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다른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었다.
신의 강림을 직접 유도해 보았던 카를은 알고 있었다.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기다리기만 해도, 신이 강림한다는 것을.
“대체 어떤 신을…?”
조건이 갖춰지고 시간이 너무 오래 흘렀다. 강림 자체를 막는 것은 어려웠다. 강림한 이후를 생각해야 했다.
어떤 신인가, 그것을 아는 것이 중요했다.
카를은 문득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비늘 한 장. 자신이 가진 비장의 수단이 그곳에 있었다.
‘그 용이라면….’
승천자의 강함은 용의 강함에 비례하는 경우가 컸다. 아담의 경우 어린 새끼 용에 의해 승천자가 되었기에 처음엔 약했으나, 성장을 해서 강해진 경우였다.
하지만 이시엘은 처음부터 강했고, 지금은 더더욱 강했다.
용들 사이에서도 특별히 강한 개체. 용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웬만한 신들을 ‘손봐 줄 수 있는’ 존재였다.
‘충분히 가능해.’
카를은 그런 확신을 내린 뒤 황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찌하시겠습니까, 폐하?”
“도망갈 것이냐고 묻는 게냐?”
“……몸을 피하시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상황이 심심치 않았다. 신이 강림하려는 판국이며, 칼리테는 권능을 다룬다. 수십의 그림자들이 적이었고, 그 외에도 수많은 적이 있을 것이다.
카를 자신도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 그녀의 목숨을 지켜 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짐은 이곳에서 어린애처럼 벌벌 떨고 있을 때도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팔란 녀석이 내 대신을 하면 그만이다.”
코웃음 치듯 대답한 목소리는 만용이 아니었다. 삶을 내던지려는 것 따위도 아니었다. 황제는 이 자리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리라.
“마법사는 이목을 끄는 법이다. 공작. 그리고 그대는 탑주를 둘이나 꺾은 이 시대 최고의 마법사이며 명명백백한 제국의 최강자이다. 제국의 백성들이 그대를 보게 될 것이고, 또한 짐을 보게 될 것이다.”
황제가 뚜벅뚜벅 걸어 거울이 걸린 화장대를 향해 다가갔다.
비녀까지 가져갔군, 썩을 것들.
한 차례 욕을 씹어뱉은 황제의 손이 푸르게 빛나며 작은 고리를 만들었다.
그 고리를 이용해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묶은 황제가 카를을 향해 다시 몸을 틀었다.
“그대가 말하지 않았더냐. 온 제국이 짐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노라고. 달아나면 제국이 무너질 것이라고. 공작 그대가 짐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런 뜻으로 드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짐이 알아먹기를 그리 알아먹었으니 어쩌겠느냐. 가자꾸나, 공작. 한시가 급하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공포를 그녀는 억지로 짓눌렀다.
이제 와서 급한 척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편한 곳에서 우물쭈물하다 보면 다시 그 공포에 사로잡힐 것 같았다.
“켈! 켈 이 녀석아! 게 있느냐!”
방문을 향해 목청을 높이자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호위대장 켈. 말단의 그림자보다 약하지만 그래도 황제를 호위하는 기사가 있어야 한다는 구색을 갖추기 위해 남겨져 있었다.
“예! 폐하! 소인, 이곳에 있습니다!”
“짐에게 남은 신하가 공작 그대 한 명만은 아니었군.”
“다행이군요.”
“그래. 가지.”
황제가 어깨를 펴고서 걸어갔다.
따악, 손가락을 튕겨 방 안의 불을 끈 카를은 잠시 그 내부를 둘러보았다.
‘감시는… 없는데.’
들어온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개입이 없는 것이 퍽 기이했다.
황제를 무력으로 위협해 이곳에 가둬 두지 않았던가. 그런데 감시하는 인원은커녕 마법적 장치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대로 방치해 두었을 가능성은 없다. 그러면, 이 또한 칼리테의 의도란 말인가?
머리가 복잡해진 카를이 손으로 제 이마를 꾹 눌렀다.
‘의도가 뭔지부터 알아내야 해.’
가장 좋은 방법은 칼리테 펠하임, 본인을 붙잡아 물어보는 것이지만 놈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딱 하나 힌트라면 아나스타시아가 보내 준 편지에 있었다. 그림자들은 칼리테 그 자체다, 라는 말. 그렇다면 그림자들도 칼리테의 계획을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켈, 네 녀석의 검을 내놓아라.”
“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 녀석은 검을 두 개씩 들고 다니지 않느냐. 내놓아라. 짐도 몸을 지킬 것이 있어야 하니.”
“허, 허나 폐하….”
“황명이다. 내놓아라.”
황제를 뒤따라 방에 나가자마자 켈이 넙죽 고개를 숙이며 허리춤에 메고 있었던 검 한 자루를 검집째로 내밀었다.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본 적이 있지만 검을 잡은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검은 잘못 다루면 저 자신을 다치게 할 수도 있는 무기. 그에 카를이 우려 섞인 목소리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폐하, 아무래도….”
휘익! 황제가 검집에서 뽑아내 휘두른 검이 바람을 가르면서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었다.
검술에 문외한이 아니었던 카를은 알아볼 수 있었다. 만만치 않다는 것을.
“공작? 뭐라 했느냐?”
“……아닙니다.”
“짐은 황제가 되기 전엔 나무를 패던 나무꾼이었음이야. 통나무에 비하면 이깟 검은 별달리 무겁지도 않다. 또, 검은 착실히 배워 두었으니 뒷짐만 서고 있을 일도 없을 것이다.”
검을 거두어 검집에 다시 넣는 그 자세까지도 완벽했다.
하지만 황제의 검술 실력이 꽤 뛰어나다는 것을 감안해도, 적은 그림자들이었다.
저 뛰어난 검술도 그들 앞에선 최후의 발악으로서나 의미 있을 것이다.
결국 카를 자신의 역할이 중요했다.
“…이 고요한 밤에 부는 상서로운 바람이, 나의 눈과 귀가 되어 주리니.”
작은 목소리로 읊조리자 창문도 없는 복도에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돌풍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 복도를 휩쓸고 지나갔다.
복도에 이어진 방과 계단들을 향해 바람이 뻗어 나갔다.
“…지하입니다.”
황실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딱 두 곳. 황궁의 꼭대기 층과 지하. 이 두 곳에서만 사람이 느껴졌다.
다만 꼭대기 층에는 그 수가 적었다. 단 한 명만이 그곳에 있었고, 지하에는 수십 명에 달하는 인원이 몰려 있었다.
‘그림자보다 수가 많아.’
게다가 그들이 비효율적으로 뭉쳐 다니는 일은 없다.
자연스럽게 판단은 그들이 그림자나 칼리테의 말을 듣는 병사 따위는 아니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지하에 시종들이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 폐하께서는 켈 경과 함께 지하로 가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감옥인가. 그러면 공작 그대는 어찌하고?”
“……따로 움직이는 게 나을 듯합니다. 놈은 폐하를 노리고 있습니다.”
황제가 단순히 자신의 계획에 방해될 것이라고 여겨서 방에 가두어 놓은 것은 아닐 테다. 탑주들의 말을 무시하고 이종족을 마탑에 세운 놈이 황제의 말을 무시하지 못할 게 있을까.
황제를 노리고 있다. 그 노림수가 뻔히 보이는데 당사자와 함께 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카를의 의견에 거부를 표시했다.
“목숨을 노리는 건 아닐 게다. 목숨을 노렸다면 이미 짐은 죽었을 테다.”
“고, 공작의 말이 옳습니다! 폐하, 아무래도 그곳에 직접 가시는 것은….”
“눈치 좀 챙겨라. 호위대장. 짐이 그놈에게 직접 물어봐야겠으니 막지 말거라.”
“예, 그럼 폐하 받으십시오. 켈 경도.”
“흠?”
“보험입니다.”
이시엘이 사용했던 마법의 복제였다. 마이너 카피에 가까웠지만,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한 안전장치 역할은 수행할 수 있을 터였다.
황제가 펜던트를 받아 주머니에 넣는 것을 확인한 카를은 고개를 돌려 바람이 뻗어 나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켈. 네 녀석은 가서 시종들을 구해 오거라. 이번에도 쓸모가 없으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야.”
“예! 폐하!”
“가지, 공작.”
미궁 같은 황궁의 구조를 완벽히 파악해 최단 경로를 따라가자, 최상층까지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5분도 되지 않았다.
그 짤막한 시간 동안 계단을 오르는 헬레나의 숨이 높은 산을 오르는 것처럼 점차 거칠어졌다.
계단이 높은 산처럼 느껴지는 걸까. 한참을 오르던 그녀는 난간을 붙잡고 숨을 깊게 몰아쉬었다.
그 모습을 본 카를이 다가가려고 하자 그녀는 오히려 카를을 내쳤다.
“썩을… 정녕 그놈이 빌어먹을 권능을 다루는 것 같구나.”
권능이 괜히 권능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신의 권능은 때로는 물리 법칙도 무시하고 자신만의 법칙으로 작용한다.
개중에는 ‘권능의 소유자에 가까워질수록’ 증폭되는 권능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다.
“내 직접 물어보아야겠다.”
어금니를 꽉 깨문 소리. 그녀의 의지에 카를은 고개를 끄덕인 뒤 옥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황궁의 옥상. 제국의 황제들이 이따금 궁을 열고 백성들의 자유로운 출입을 허락하는 행사에서 황제가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 이 옥상이었다.
그런 용도로 만들어졌으니 당연하게도 허락 없이는 출입할 수 없다. 그리고 카를의 눈앞에 있는 남자는 그런 허락을 받지 않았다.
“…아. 이건 또, 예상외로군요. 폐하께서도 오실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 남자, 칼리테 펠하임은 달빛에 미소를 비춰 보이면서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이질감, 그리고 키가 약간 줄어든 듯한 모습에 카를은 그가 원래 자신이 알던 ‘칼리테 펠하임’이 아님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양팔을 벌려 두 사람을 환영했다.
“폐하께서 병마를 이겨 내시고 자리에서 일어나셨군요.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그리고 카를로스 나의 벗. 이게 얼마 만인가.”
“공자. 네놈.”
내용과는 달리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에게 원인 모를 공포를 심어 넣었던 권능의 작용이었다. 검의 손잡이를 꽉 잡아 몸과 목소리의 떨림을 가라앉힌 황제가 말을 이었다.
“공작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소리처럼 들리는군. 설령 네놈은 공작마저 네놈들 역도의 무리에 집어넣으려 한 게냐.”
“그 부분은, 오해가 있으십니다. 폐하. 저는 폐하보다 카를로스를 잘 아는바, 그가 폐하께 역심을 품을 일은 만에 하나라도 없습니다.”
헬레나가 언짢다는 듯 얼굴을 구겼다. 그렇지 않으냐, 하고 가짜 칼리테가 카를을 향해 물었다.
“카를로스 그는 목숨을 걸고 제국을 지켰습니다. 마족들의 연합을 무너뜨리고 그 마왕을 그의 편으로 만들었지요. ‘수호자’라 불리기에 마땅하지, 저와 같은 반란 분자와 엮는 것은 얼토당토않습니다.”
“제 주제는 잘 알고 있구나. 펠하임. 그럼에도 공작을 기다렸다는 것은 짐에게 한 짓을 공작에게도 할 셈이었느냐.”
“아니요. 폐하. 카를로스는 그런 잔재주가 통할 만큼 유약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가 제 계획에 필요했을 뿐이지요.”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칼리테가 눈을 번뜩이며 공중에서 손을 휘저었다.
황제를 노렸다. 그것을 직감한 순간 카를은 방호 마법을 구성해 황제를 보호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방패가 황제를 감쌌으나, 그녀의 몸이 어이없이 허물어졌다.
“……!”
“미안하군. 카를로스, 이건 너의 마법으로도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전원이 나간 듯 픽 쓰러지는 헬레나의 몸을 카를이 겨우 받아 내자 칼리테가 뻔뻔한 얼굴을 하고 그리 말했다.
그 작태에 분노를 느낀 카를은 그를 향한 반감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말했다.
“악마의 힘도 아니군. 칼리테… 이제 인간이기도 포기한 거냐.”
“아니, 그 점은 확실하게 부정할 수 있어. 카를로스.”
악마의 힘도 그 기본은 마법이다. 악마라는 생물 자체가 마력에서 탄생하는 법이니.
칼리테가 방금 휘두른 힘에는 그 어떤 마력의 작용이 없었다.
권능이라는 추측이 확실한 사실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런 것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칼리테는 카를의 눈을 들여다볼 뿐이었다.
“나는 인간이야. 언제까지고 나는 인간일 거다.”
“사도가, 언제부터 인간이었지?”
“그건 인간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달리겠지. 하지만 카를로스, 나는 이런 무의미한 언쟁을 하고 싶지 않아. 그러려고 무리하게 폐하께서 악몽을 꾸게 만든 게 아니거든.”
빌어먹을. 카를은 어금니를 으득 갈았다.
이미 자신은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칼리테가 만든 판 안에 있었다.
이번에는 더했다. 학생과 그 가족 수백 명이 아니라, 제도 전체의 수만 명을 인질로 붙잡고 있는 셈이었다.
결국 어울려 주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러면 이렇게까지 해서,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단순해. 카를로스 넌 최선을 다해서 나를 막아라. 그거면 돼.”
“……뭐?”
“나는, 차라리 네가 부러워. 제국을 지킨다. 너의 그 소박한 비원과 다르게 내가 품은 소원은 나 혼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룰 수 없었거든.”
그런데, 하고 칼리테가 말을 이었다.
“너는 내가 낸 문제를 정확하게 풀어냈어. 이번에도 그러길 바랄 뿐이야.”
“…칼리테.”
노기가 섞이지 않은 그의 목소리에 칼리테 펠하임은 약간의 의아함을 담은 시선을 보냈다.
“네 비원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도움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직접 말을 해. 아직, 수습할 수 있어.”
“…….”
“네 벗으로서 하는 마지막 충고다.”
카를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아직은 수습이 가능한 상태였다. 칼리테가 반역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그의 가문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칼리테와 그에 동조한 인원만 반역죄로 처벌하면 그만이었다. 칼리테 본인은 귀양이나 추방 등으로 목숨을 부지할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칼리테는 카를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선선히 고개를 저으면서 거절의 의사를 표명했다.
“아니, 카를로스. 역시 이 방법이 아니면 안 돼.”
“…….”
“그리고 방금 확신이 들었다. 너는 확실히 날 막을 수 있어.”
그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을 심장이 위치한 왼쪽 가슴 앞에 가져갔고.
“피와 죽음이 피워 내는 꽃으로, 나는 다시 태어나리라.”
그의 육신이 잿빛 화염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