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92
192화 안일함의 대가 (5)
황궁의 궁정 마법사. 꽤 거창한 직위였지만 실제로 궁정 마법사가 황궁에서 하는 일은 많지 않으며, 대접도 좋지 않다.
자잘한 사건, 가령 예를 들면 황족이 마법을 배우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을 때 과외 선생으로 쓰는 정도였다.
궁정 마법사들 자체가 그리 뛰어난 마법사가 아닌 것이 그 이유다.
‘마탑 출신이 아닌 마법사….’
마탑의 마법사들은 황제가 소집령을 내리는 게 아니라면 먼저 황궁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정치에 관여했다가 다섯 마탑 간의 동등한 관계가 깨질 수도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기에 궁정 마법사는 마탑에 들어올 수 있을 만큼 재능이 뛰어나지 않은, 어중이떠중이 마법사 중에 그나마 뛰어난 자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지금 카를의 눈앞에 있는 소년 모습의 마법사 역시 말이다.
“궁정 마법사로 임명될 때, 분명 폐하께 충성 맹세를 했을 텐데.”
맹약과 같은 강제적인 절차는 아니다. 하지만 충성 맹세를 어긴다는 것 역시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황제에게 충성하지 않는 제국민은 곧 반역자로 간주할 수 있었다.
특히, 지금 이 마법사처럼 적에게 협력한 것이 확실시되는 경우엔 더더욱.
“저, 저는 속았습니다!”
슬쩍 고개를 든 마법사는 카를의 눈이 분노로 일그러져 있는 것을 보고 다시 넙죽 엎드렸다.
얼마나 바짝 엎드렸는지 마법사의 목소리가 조금 울렸다.
“속았다? 누구에게?”
“펠….”
“펠하임 공자?”
“예! 그, 그렇습니다!”
“더 이해가 안 되는군. 황궁 소속의 마법사가 왜 폐하가 아닌 귀족의 명령을 들었지?”
“그게… 그, 그러니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라는 듯 마법사가 한참이나 입을 우물거렸다.
“제대로 된 이유가 아니라면 나는 너를 죽일 수밖에 없다. 그림자들이 배신자로 판명된 상황에서 궁정 마법사라고 뭐가 다를까.”
“제, 제가 시녀 한 명과 잠자리를 가졌습니다!”
“…….”
“그, 그, 그게 펠하임 공자가 알게 되어서….”
“요지는 약점을 잡혔다는 거군.”
마법사가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황궁의 시녀와 그렇고 그런 짓을 했다, 중형 감이지만 지금은 그걸 왈가왈부할 때가 아니었다.
약점을 잡혀서 벌인 일이라면 최소한 이 마법사는 그림자들처럼 사도의 육체가 되었거나, 이 녀석 자체가 사도는 아니라는 뜻이었으니.
“그러면 됐다.”
“사, 사, 살려 주시는 겁니까…?”
“그건 폐하께서 결정하실 거다.”
“예? 어, 억?”
카를은 마법사가 입은 로브 뒷덜미를 움켜쥐었다. 바싹 엎드리고 있어 잡기 편했다.
그 상태로 비행 마법을 발동한 카를은 마법사를 한 손에 든 채 제도의 하늘 위를 날았다.
황궁에 도착한 그는 잠시 주변을 살피다가 황제의 침소로 향했다.
‘아마 이 황궁에서 가장 안전한 곳.’
아직, 황궁을 감싸고 있는 결계는 유지되고 있다. 사도들이 다루는 권능 앞에서는 무력할 테지만 웬만한 마법과 재래식 폭발물 테러 따위는 방지할 수 있다.
그렇기에 카를은 이전에 황제를 다시 그녀의 침소로 데려다 놓았고, 아마 호위대장인 켈의 판단 역시 비슷할 것이다.
“폐, 폐하!”
그 예상은 정확히 적중해, 침소 안으로 발을 들인 순간 어둠 속에서 호위대장 켈과 눈이 마주쳤다.
황제와 켈은 그녀의 침소에서 숨을 죽이고 몸을 숨긴 상태였다.
켈의 외침에 빼꼼 고개를 내민 황제는 카를을 확인하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처리하고 온 모양이구나, 공작. 그런데 손에 들린 그 녀석은….”
“적에게 협력한 것을 발견해서 잡아 왔습니다.”
카를은 고개를 살짝 끄덕여 황제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눈치 빠른 그녀는 눈짓으로 수긍의 뜻을 보내며 무거운 목소리를 내었다.
“호오? 이놈이 짐을 배반했다는 뜻인가?”
“주,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폐…?”
마법사의 시선이 황제의 손에 들린 검으로 향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마법사가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한, 한 번만 용서하여 주십시오! 폐하!”
“그럼 아는 대로 지껄여 보거라.”
“…예?”
“짐에게 네놈이 쓸모 있다는 것을 증명하란 뜻이다.”
혹시 모를 가능성, 이 마법사가 협박이 아니라 자의로 배신했을 경우를 고려한 것이었다.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도 거짓말을 할 수 있을 만큼 담이 큰 자로 보이진 않았으니까.
카를에겐 보험이 있었지만, 이런 사소한 일로 ‘다시’ 시작하고 싶진 않았다.
“다, 다섯 명이옵니다.”
“앞뒤 맥락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체 무엇이 다섯이라는 말이냐.”
“아, 아…! 그림자가 아닌 사도가 총 다섯… 아니, 이젠 네 명이옵니다.”
“시계탑에서 죽은 그걸 제외하고 남은 게 넷이란 뜻인가?”
카를의 물음에 마법사는 헉, 하고 놀란 소리를 내더니 맹렬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제, 제, 제가 그것들에게 필요한 마법의 뼈대를 대신 구축해 주기로 해서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남은 사도는 넷입니다!”
“뼈대를 구축해?”
“예. 시계탑 광장에 있는 그 사도는 제게 결계 마법을 사용하라고 했었습니다. 다른 사도들은 결계가 아니라 다른 마법을….”
“아니, 그걸 물은 게 아니다. 뼈대라니? 자세히 설명해 보도록.”
이전 회차에서 뚫어 냈던 그 결계는 분명 권능의 종류가 아니었다.
처음 보는 구조이긴 했지만 마법으로 이루어진 결계였다. 그래서 사도가 마법을 못 쓴다는 것을 확인한 뒤 대리로 마법을 사용한 자가 있다고 판단해 이 마법사를 찾아낸 것이다.
“아, 그게… 제가 마법을 대강 구축만 해 놓으면 나머지는 자기네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해서….”
“즉 그대는 뼈대만 구축했고, 사도들이 살을 덧대서 마법을 발동시켰다는 거군.”
“예… 그, 광장의 사도 같은 경우엔 자기가 사람들을 끌고 올 수 있으니 결계만 준비해 놓으라고 그, 그리 말했었습니다.”
‘왜 한밤중에 사람이 그렇게 많나 했더니….’
달이 밝은 밤이라고 해도 지금 제도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건 세 살 꼬마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시계탑 광장에는 유달리 사람이 많았다. 우연이라고 생각했으나, 실상은 그 사도가 감정을 통제하는 권능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한 듯했다.
“마법처럼 보이도록 눈속임을 했군.”
혼자서 결계를 펼칠 수 있는데 번거로운 과정을 거쳤다. 남을 속이기 위해서다.
제도의 사정을 정확히 모르는 외부인의 눈에 사도가 아닌 마법사로 보이도록.
“그러면… 탑의 마법사들은 어떻게 됐지?”
“중앙 마탑의 마법사들 말입니까?”
“그래.”
그 사도는 마탑에서 탈출했다는 표현을 썼다. 마탑을 폐쇄하고 마법사들을 가둔 상태로, 사도들을 마법사인 것처럼 꾸며 그들의 반란으로 보이게 할 작정이리라.
“탑의 마법사들 중 일부가 탈출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그 외는….”
모르겠다며 고개를 젓는 궁정 마법사. 아는 게 크게 많지는 않은 모양새였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카를을 대신해 황제가 검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면서 물었다.
“다른 것은? 가령 예를 들자면 펠하임 그놈의 위치 같은 것 말이다. 아는 게 있느냐?”
“위, 위치는 잘….”
“짐을 배반한 것치곤 푸대접을 받았구나.”
얼굴이 창백하게 물드는 궁정 마법사. 황제의 어조에는 진지함을 가장한 장난기가 섞여 있었지만 그걸 궁정 마법사가 알 방법은 없었다.
“……설마.”
그러던 와중 사색에 잠겨 있던 카를이 중얼거리면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고개를 갸웃 기울인 황제는 켈에게 궁정 마법사를 감시하라 일러두고 그를 뒤따라갔다.
그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황궁 옥상의 테라스. 그곳에 선 카를은 황제가 깜짝 놀랄 만큼의 막대한 마력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뭔갈 찾고 있구나, 공작.”
“……예.”
“그게 무엇이냐?”
“결계나… 그와 비슷한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시계탑 광장의 사도는 주민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할 요량으로 결계를 둘러놓았다.
하지만 다른 사도들은 결계가 아닌 다른 마법을 준비시켰다.
그럼에도 결계를 찾는 이유는….
“아마 마탑에서 탈출한 마법사들이 흩어져서 각자 도망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작은 결계라도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누구보다 결계 마법의 효과를 잘 알고 있는 것이 카를이었다.
마탑의 마법사들도 이미 그림자들이 적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림자’라 불릴 정도로 은밀히 움직일 수 있는 그들을 대비하기 위해선 결계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허어….”
얼마 되지 않는 정보를 규합해 단서를 찾아내는 모습에 헬레나는 감탄을 흘렸다.
어쩌면, 이 상황을 돌파할 방법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그녀의 안에 깃들었다.
자신이 퍼뜨린 마력이 무언가에 부딪히는 것을 느낀 카를이 곧장 입을 열었다.
“찾았습니다. 동쪽입니다.”
“바로 갈 것이냐, 아니면….”
황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기울었을 정도로 밤이 깊었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자정을 넘은 새벽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날이 밝으면 움직일 것이냐?”
“…어두운 밤이 몸을 숨기기엔 더 적합합니다.”
“그럼 바로 움직이는 편이 좋겠구나.”
“예.”
옥상에서 내려가는 계단. 잠시 머뭇거리던 황제가 입을 열었다.
“공작.”
“예, 폐하.”
“그대는 어떤 상황이 닥치든, 살아남을 자신이 있느냐?”
카를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카를은 아스텔의 말처럼 죽음을 극복한 상태였으니.
자신감이 느껴지는 대답이었지만, 외려 살짝 위축된 목소리로 그녀가 또 한 번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그대가 아니라 그대 주변의 사람에게 위험이 닥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
“…똑같습니다. 살릴 겁니다.”
“자신이 있느냐?”
“예.”
“그러면 다행이구나. 공작 그대 곁에 있으면 죽지는 않을 테니. 하지만, 그래도 말이다.”
황제는, 헬레나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사도가 넷, 그림자가 수십. 마탑의 마법사들과 합류한다고 하더라도 아군은 얼마 되지 않는다.
방에 틀어박혀 있었을 때와 달리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그들은 자신을 노릴 테고, 그렇게 되면 자신은 살아남기 어려우리라는 것을.
“만약 짐이 위험에 빠져서 그대가 살리기 어렵다면….”
“폐하, 그런 말은 하시는 게 아닙니다.”
“그래도, 만약 짐이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면 그땐 짐을 버리거라.”
“…….”
“짐이 살아남는 것보단 그대가 살아남는 편이, 이 제국에도 더 이로울 것 같으니.”
“거듭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폐하.”
카를은 상대가 황제라는 것도 잊었다는 듯,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 말씀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알겠다. 앞으로 이런 말은 입에 담지도 않으마.”
오히려 그 격한 반응이 기꺼워 그녀는 옅은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 * *
검 하나만 들고 북방을 유랑하는 낭인의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한 건 봄이 끝나 갈 무렵이었다.
원래부터 북방, 아니 제국 전체를 통틀어 검 한 자루만 가지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검사는 그 수가 꽤 많은 편이었다.
출신과 신분이 불명확한, 검 하나에 의지해 살아온 이들. 그렇기에 검을 다루는 솜씨만은 뛰어난 이들.
어딘가의 용병이나 의뢰를 받아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 칼 솜씨 덕분에 유명해지는 것은 그리 희귀한 일이 아니었다.
“예. 확실히 저희는 구면인 모양입니다. 제가 그 거북 시체를 보러 갔을 때 뵀었지요?”
스쳐 지나간 인연. 얼굴만 간신히 기억하고 있는 아담과 달리 테나는 확실히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모를 수가 없었다.
동쪽에서 온 검귀.
그녀가 섬기는 주군을 제외하면 천하에 상대할 이가 없는 검사.
“저를 알고 계시는 모양이니 따로 제 소개는 하지 않겠습니다. 무슨 용건이신지요?”
마법사를 제외하면 사실상 제국 최강.
그런 이였기에 검 하나를 가지고 방랑하더라도 그 이름이 유명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건 조금 과하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할 만큼 테나는 아담을 찾는 데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했다.
워프 게이트를 자유롭게 사용해도 된다는 허가. 그녀는 곧장 영지 곳곳에 퍼져 있는 부하들에게 연락을 넣어 가장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를 찾았다.
운이 좋게도 워프 게이트가 설치된 마을 근처의 숲이었다.
“각하께서 아담 경께 부탁드리고 싶으신 것이 있습니다. 직접 오시기는 어려운 상황인지라… 제가 대신 말씀을 전해 드리려고 왔습니다.”
“음? 어떤 겁니까?”
“…마족들이 군대를 이루어 저희가 있는 이곳, 북부를 침공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그거 큰일인데요….”
테나는 카를에게서 받은 명령서를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이게 말이 되나 싶은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주군의 명령이었기에 그녀는 일단 명령서대로 아담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명령서를 직접 아담에게 건네었다.
“적어도 셋, 많으면 다섯 개의 군단으로 나눠서 남하할 적들 중, 한 개 군단을 아담 경께서 막아 달라는… 부탁입니다.”
“저 혼자서 말입니까?”
“……예.”
명령서를 전달한 테나 자신도 어처구니없게 느껴지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