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193
193화 안일함의 대가 (6)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황궁을 빠져나오던 카를은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말뜻 그대로 하루가 일주일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잠에서 깬 것이 만 하루, 24시간도 지나지 않았지만, 일주일은 눈을 뜨고 있었던 것처럼 피곤했다.
‘빌어먹을….’
황제와 카를, 켈과 궁중 마법사. 이 넷은 카를이 사용한 은신 마법으로 몸을 숨긴 채였다.
만약 지하 감옥의 그놈처럼 죽을 작정으로 달려드는 그림자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카를을 제외하면 없었고, 카를도 피로 때문에 자칫하면 반응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이봐.”
“예, 예…?”
목소리를 한껏 낮춘 카를이 궁중 마법사를 불렀다. 은신 마법은 모습뿐만 아니라 목소리까지 감춰 주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낮게 깔린 목소리에 놀라서 어깨를 움찔 떤 궁중 마법사가 대답했다.
“남은 사도가 넷이라고 했지.”
“예!”
“그 넷도 너한테 마법을 주문했나?”
황실의 궁정 마법사. 마탑 출신은 아니기에 마법사 전체로 따지면 겨우 중위권에 들까 말까 하겠지만, 마탑 출신을 제외하면 이 마법사는 대륙 최고의 마법사가 된다.
달리 말하면 마탑을 폐쇄하고 그 안의 마법사들을 통제하고 있는 지금, 제도에서 가장 우수한 마법사는 이 궁정 마법사였다.
아마 남은 넷도 이 마법사에게 마법을 시켰을 것이다. 그런 카를의 예상은 적중하여, 궁정 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건지 말해 보도록.”
백인 사도가 가진 권능은 무궁무진하다.
이 세계가 아직 게임이었던 시절, 백인 사도는 정말로 각기 다른 백여 개의 권능을 가지고 나타났다. 그걸 보며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게임에서도 백 가지 권능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 게임의 원본이 되는 이 세계는 당연하게도 백 가지 혹은 그 이상의 권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일단 하나는 변신술을 요구했습니다.”
“변신술?”
“예. 팔다리를 마수처럼 바꾸고 날개를 달아 달라고 했습니다.”
어려운 난도지만, 그가 간신히 수행할 수 있는 정도였다.
또 황궁의 기록 보관소에는 마탑 못지않게 많은 마법에 대한 자료가 있다. 접근 권한이 있었던 궁정 마법사는 황제가 없으면 시간이 날 때마다 그곳에 가서 책을 읽었다.
변신술도 그곳에서 알게 된 것이었다.
“다른 놈은 거대한 불을 피워 달라고 했습니다. 분명히… 자기를 도울 필요는 없으니, 피날레나 화려하게 준비하라고….”
“도울 필요가 없다?”
“예. 분명 그랬습니다. 자기 혼자서 총애를 독차지하겠다고… 여러 번 중얼거리는 걸 들었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궁중 마법사는 다급하게 입을 열어서 덧붙였다.
“아, 아마 조금 독선적인 놈인 것 같습니다.”
살아야 한다. 충성심을 증명해야 한다.
약점을 잡혔다지만 자신이 황제를 배신한 건 사실이다.
원래라면 극형 감이지만 아직 목이 붙어 있다.
정보를 아는 대로 털어놓는다면 자신이 적에게 협력한 것보다 첩자로서의 가치가 더 컸다고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궁정 마법사의 입을 빠르게 움직이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아, 이놈도 이상한 놈이었습니다. 일단은 그게,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
“몸뚱이가 쇳덩이 같았습니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금속이었습니다. 그놈은 저한테 방전(防電) 마법을 준비했습니다. 역시 금속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굉장히 특이한 놈이었다.
몸뚱이가 사마귀처럼 얄팍했고 대가리에는 귀, 코, 입이 없었고 눈 대신에 커다란 보석이 하나 박혀 있었다.
골렘. 그래, 골렘과 비슷하다고 궁정 마법사는 생각했다.
“마지막 놈은 바람을 일으켜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다른 놈들은 저한테 왜 필요한지 말은 해 줬는데 그놈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냥 바람을 일으켜 달라고만 해서 다른 건 잘….”
궁정 마법사는 주절거리면서도 언짢음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자기가 을이라지만 최소한 맞장구라도 쳐 줘야 할 것이 아닌가. 아무 말도 없이 듣기만 하는 것이 살짝 기분이 나빴다.
듣고 계십니까? 그렇게 묻기 위해 궁정 마법사가 고개를 돌린 순간이었다.
“……어.”
은신 마법은 그 은신의 범위에 포함된 다른 대상은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자기도 모르게 은신 마법을 고쳐 쓴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기억을 되짚었으나 마법이 새로 발동된 적은 없었다.
“뭐야, 이게.”
즉, 이건 제삼자가 일으킨 이상 현상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궁정 마법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 *
“빌어먹을….”
카를은 자신을 덮친 이상 현상을 거의 바로 깨달았다.
바로 옆에서 중얼거리던 궁정 마법사의 목소리가 갑자기 뚝 끊긴 것이다.
처음에는 그림자의 습격을 의심했지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은 금방 깨달았다.
“결계….”
황궁의 옥상에서 보았던 결계. 그 안으로 발을 들인 탓인 듯 했다.
결계와 전이 마법을 응용하면 이런 짓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으니까.
카를은 일단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마력의 흔적을 쫓았다.
“……음.”
황제와 호위대장에게 준 ‘보험’은 아직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휴대용 방어 결계. 이시엘이 자신에게 준 것과 비슷한, 치명상을 입게 되면 발동하는 방어막.
그게 아직 건재하다는 뜻은 공격받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적일 가능성도 생각해야겠군.”
처음에 결계를 발견한 카를은 이 결계가 탈출한 마법사들이 그림자를 경계해 만든 결계라 생각했다.
그래서 침입자의 접근을 차단하는 종류라 생각했고, 접근해서 결계 조금 건드려 마법사들을 끌어낸 뒤 대화를 시도할 작정이었으나.
‘보호나 차단보다는 함정에 가까운 결계.’
마탑의 마법사들이 그림자들을 잡기 위해 만든 함정이라면 좋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골치가 아파진다.
카를은 일단 정신의 피곤함을 억지로 지워 없앤 채 주변에 마력을 퍼뜨렸다.
사람의 기척과 마력의 움직임을 감지하기 위해서였다.
‘……있다.’
먼 곳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 확정 짓기에는 미묘했다. 언젠가 황궁으로 왔을 때, 그림자들에게서 받았던 그 시선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살기보다는 호기심에 가까운 시선.
그래도 경계심을 허물어뜨리는 것은 금물이었다.
‘일단….’
카를은 허리춤에 찬 단검, 별빛광채를 손에 쥐었다. 고순도의 마력석으로 만들어진 단검은 흉흉한 푸른빛을 흘려 댔다.
만약 이 결계가 그림자들의 함정이라면 단검을 이용해 결계 자체를 찢어 버리고 황제만 구출해서 빠져나갈 작정이었다.
그렇게 몸을 긴장 시킨채 언제 덤벼들지 모르는 적을 대비하던 카를의 귀에 짧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창.’
마법의 영창으로 발생하는 특유의 호흡 소리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카를은 자신의 몸에 방어막을 두르는 것과 동시에 퍼뜨려 둔 마력을 이동시켜 영창이 발생한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찾았다.’
날 선 바람 칼날이 자신을 향해 쇄도했으나 카를은 방어막을 믿고 앞으로 내달렸다.
마법을 시전한 마법사는 후드를 깊게 눌러 써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카를이 단검을 들고 달려들 것을 예상하진 못한 듯 날이 겨눠지자 당황해서 몸이 뻣뻣하게 굳는 것이 눈에 보였다.
“후드를 벗도록.”
“…….”
“어서.”
연합 소속의 마족이 제도에서 테러를 벌이려고 할 때 마주친 두 명의 그림자들이 모두 후드를 눌러 쓰고 있었던 것을 떠올린 것이었다.
목에는 칼날이 겨누어져 있고 단검이 없더라도 마법의 영창은 카를 쪽이 더 빠르다. 변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후.”
후드를 벗고 얼굴을 드러낸 마법사는 칼리테와 조금도 닮은 구석이 없는 여인이었다.
손등에 문양 또한 없었다. 그 두 가지가 그 여인이 그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군.”
“네. 다행이면… 이것 좀 치워 주시겠어요? 부탑주님? 공격한 건 사과드릴게요.”
자신의 목에 겨눠진 단검을 가리키면서 말하는 마법사의 말에 카를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부탑주. 오랜만에 듣는 명칭이었다. 카를 자신도 잊고 있었으나 그는 확실히 시아나가 정식 탑주가 되고 나서 부탑주가 되었다.
마법사는 정확히 카를이 누구인지를 알아본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출신이 명확해졌다.
“중앙 마탑의 마법사였군.”
“…네. 그렇죠.”
“다른 마법사는? 설마 혼자인가?”
“다들 흩어져 있어요. 몇 명은 제가 부탑주님을 감시했던 것처럼 부탑주님이 데리고 오신 일행들을 감시하고 있고요.”
“…폐하가 계시는데도 말인가?”
“환영술사 때문에요. 제가 부탑주님을 공격한 것도 그것 때문이에요.”
담담하게 말하는 마법사를 향해 카를이 질문을 던졌다.
“환영술사가 있나?”
“그림자들 중에 있어요. 그 자식 때문에 좀 골치 아픈 일이 많았거든요. 어쨌든… 여기 있는 부탑주님은 환영이 아니니까, 다른 분들도 환영은 아니겠죠. 잠시만요.”
매개 마법을 고유 마법으로 사용하는 곳이 중앙 마탑이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부는 바람을 매개로 마법을 사용해 사방으로 퍼뜨렸다. 환영이 아니라는 신호였다.
“환영술사한테 당했다는 건 마탑을 탈출할 때 있었던 일인가? 마탑은? 어떻게 탈출했지?”
“저희가 자력으로 탈출하진 못했죠. 그 개같은 엘….”
욕설을 씹어뱉던 마법사가 슬쩍 카를의 눈치를 보았다. 카를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 개같은 엘프 놈이 마탑을 통째로 봉쇄하고 그림자들이 순찰을 돌았거든요.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으면 탈출은 못 했을 거에요.”
“조력자가 있었나?”
“네. 여기 있어요. 안내해 드릴게요.”
조력자. 반가운 소리에 카를은 곧장 마법사를 뒤따라갔다.
걸음이 나아가는 장소가 어쩐지 익숙했다.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던 카를은 마법사가 어느 건물 앞에서 멈추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얀 잎 상단이라고 적힌 나무 간판. 그 아래에 서 있는 여성.
“아.”
어깨와 가슴 주위를 가리는 경갑을 입은 아나스타시아가 그곳에 있었다.
중앙 마탑의 마법사로 보이는 이들과 뭐라 대화를 나누던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가 카를을 마주치고는 순간 작게 탄식하며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던 마법사들이 눈치껏 자리를 비켰다. 자수정색 눈동자를 깜빡이던 그녀가 겨우 입을 열었다.
“……왔어요?”
“…왔어.”
묘한 문답 이후에 이어진 침묵. 카를은 그녀에게 하려던 말을 떠올리곤 입을 열었다.
“편지, 잘 받았어.”
“아, 편지… 그, 그거 제대로 읽었어요?”
“제대로 읽었어.”
딱. 카를은 가볍게 손을 튕겨 작은 불꽃을 피워 냈다. 편지를 태웠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었다.
“다행이다… 혹시나 제대로 못 읽은 건 아닐까 싶어서 살짝 걱정했는데, 역시 괜한 걱정이었네요.”
“나도 걱정했는데.”
카를의 말에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어라?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녀가 물었다.
“…네?”
“갇혀 있었다면서. 감시도 심하고. 빠져나왔나 보네?”
“네. 탈출했죠. 거기서.”
“다행이다. 어떻게 탈출한 거야?”
오랜만에 듣는 다정한 목소리. 아나스타시아는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참아 내며 대답했다.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갑자기 감시가 줄어들었길래 통신용 아티팩트를 작동시켰거든요. 그때 제 직원들이 와서 저를 탈출시켜 줬어요.”
“…직원들이?”
“상단을 운영할 땐 용병단이 무조건 있어야 하거든요. 저희 상단은 꽤 규모가 큰 만큼 고용한 용병도 꽤 많아요. 다 제 직원들이고요.”
아나스타시아가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폈다. 상단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에서 험악하게 생긴 용병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용병들을 데리고 마법사들까지 탈출시킨 건가?”
“네. 황궁은 그림자들이 쫙 깔려 있어서 갈 엄두도 못 냈는데… 카를은 어떻게 폐하랑 함께 황궁에서 빠져나온 건가요?”
“그림자들이 쫙 깔려 있었다고?”
“네. 어슬렁거리는 게 제 눈에도 보일 정도였는걸요.”
아나스타시아의 눈에 보일 정도라면 일부러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하지만 카를은 그렇게 황궁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그림자는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
“……뭔가 이상한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칼리테가 아나스타시아를 일부러 놓아줬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안나.”
“네?”
“칼리테가 그림자들 그 자체라고 했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고.”
“네.”
“그 비밀이 숨겨져 있는 장소를 알 것 같아.”
그림자와 칼리테의 연관성. 그걸 알아낸다면 칼리테가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나스타시아를 탈출하게 내버려둔 것인지 알 수 있으리라.
비밀이 숨겨진 장소 아나스타시아도 짐작 가는 것이 있는지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학원 지하.”
그녀의 말에 카를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