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2
2화 공작가의 차남 (1)
카를로스 크로우, 정현은 천천히 자신의 기억을 되짚었다.
정확하게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정현으로서의 기억은 게임을 하던 것이 마지막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몸의 원래 주인, 카를로스 크로우의 기억이 남아 있었다.
‘전쟁터.’
그가 있었던 곳은 전쟁터였다.
인간과 마족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
카를로스 크로우는 인간 측, 그중에서도 거의 총사령관에 해당하는 남자였다.
하지만 카를로스 크로우는 대학생 신분으로 교생 실습을 나와 있었던 정현과 비슷한 나이다.
스물여섯 살.
어린아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한 군부대의 총사령관에 오를 만한 나이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사령관에 맞먹는 지위를 가지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귀족이기 때문에.’
이 세계는 신분 사회였다. 그것도 아주 철저한.
귀족의 말이 곧 법이었다. 그리고 카를로스 크로우의 가문, 크로우 공작가는 그런 귀족 중에서도 차원이 다른 대귀족이었다.
하지만 딱 하나 의문스러운 것은.
‘왜 이런 귀족이 전쟁터에서 죽어 가고… 아니, 죽었던 거지?’
그것과 관련된 기억은 흐릿했다. 몸의 원래 주인인 카를로스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전쟁터에서 머리를 부딪쳤다든가 해서 잃어버린 것인지, 알 노릇이 없었다.
확실한 것은 이 상황이 꿈이 아니라는 거다.
‘아는 사람을 찾을 수밖에.’
정현은 이런 상황에 그런대로 익숙했다.
자신이 직접 겪어 본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많이 접해 왔다.
그가 평소에 읽던 소설이나 만화 등으로부터 말이다.
회귀, 빙의, 환생.
그 셋 중 무엇인가 하면… 빙의였다.
크로우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아덴 크로우. ‘에라 오브 엠파이어’에 등장하는 악역 캐릭터. 크로우는 그의 성(姓)이었다.
‘북방을 지배하는 공작… 그리고 카를로스 크로우는….’
어디서 들어 본 기억은 있었다. 아덴 크로우에 대한 기억은 확실히 존재했다.
NPC에 불과하긴 하나 일단 인게임 캐릭터 중 하나였으니까.
그리고 카를로스 크로우는… 아덴 크로우의 동생이다. 출중한 재능을 지니고 있지만, 아덴 크로우에게 속아 넘어가서 죽은 동생.
‘그런데 왜 나는, 아니 얘는 전쟁터에서 죽어 가고 있었던 거지?’
크로우 가문의 위세는 드높았다.
제국에 다섯 개밖에 없는 공작가. 그들 중에서도 가장 넓은 영지와 백성들 다스리는 이들이었다.
그런 가문의, 그것도 아들이 왜 전쟁터에서 죽어 가고 있었단 말인가?
기억은 흐릿했고, 앞뒤 맥락을 살필수록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가능한 사정을 아는 사람을 빨리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졌다.
“……막사인가?”
사극에서 본 적 있었다.
대규모 전쟁 신 직전, 장군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장면에서 ‘조선군 진영’ 따위의 자막과 함께 나오는 천막이 늘어선 진지.
그게 저 멀리, 시야의 끝에 들어왔다.
‘인간들의 진영이다.’
후우.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쟁터를 떠날 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무작정 걸었다.
그나마 괴물이나 마족보다는 인간들의 발자국이 많은 쪽으로 걸어갔고 다행히 그 방향이 맞은 것이었다.
“까마귀….”
크로우 가문의 상징은 까마귀였다. 그리고 저 막사에 꽂힌 깃발에는 까마귀가 그려져 있었다.
크로우 가문과, 지금의 정현과 분명히 관련이 있을 것이다.
“누구냐!”
엉성한 나무 울타리 사이의 문을 찾아내 그쪽으로 걸어가자 웬 병사 하나가 그를 향해 창을 겨누었다.
정현은 속에서 뭔지 모를 뜨거운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감동… 은 아니고 분노였다. 자연스럽게 입이 열리고, 말이 튀어나왔다.
“네놈은.”
정현 자신이 듣기에도 차갑고 날 선 목소리였다.
“네놈의 주군이 누군지도 알아보지 못하나?”
“카, 카를로스 크로우 각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됐다. 카일론은 안에 있나?”
“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카일론이 누구인지, 정현은 알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입에서 흘러나온 이름일 뿐.
그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병사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진지는 넓었으나, 안에 사람은 많이 없었다. 그중에서 가장 큰 막사 안에 카일론이 있었다.
“들어올 때는 분명 허락을… 카를 도련님?”
병사를 보고 노기 섞인 목소리로 말하는 초로의 노장. 그가 바로 카일론이었다.
노장은 그를 보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나도 허락을 받아야 하나, 카일론?”
“카, 카를 도련님.”
주름진 얼굴에 환희가 차올랐다.
“노구의 눈이 멀어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전장에 돌아갔을 때 도련님의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는데, 이리 살아오시다니. 아아, 신이시여. 감사드립니다.”
충신.
카를이 태어났을 때부터 그를 모셔 온, ‘자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기억들이 정현의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용병이 아닌, 나의 병사들.”
“백 명이 채 안 됩니다. 그마저도 멀쩡히 살아남은 이는 거의 없습니다.”
“근처에, 마을이 있나?”
“작은 마을 여럿이 띄엄띄엄 위치해 있습니다.”
“용병들은 해산시키고 마을로 가서 병사들을 먹이고 쉬게 해 주도록. 주민들에게는, 가문의 이름으로 보상하겠다 하고 싸울 수 있는 자들만 따로 모으도록.”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의지로 움직이는 게 분명했다.
아마도 카를로스 크로우 본인일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 말을 속삭이던 사람 또한.
‘그때 창에 맞아 죽은 게 아니었나?’
아직 의지만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고서야 정현은 모르는 내용의 명령을 자세하게 내릴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그리고….”
노장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카를로스 크로우의 의식이 멀어지고 있었다.
죽음마저 거부한 그가 마지막으로 하려고 한 말이 무엇인가.
정현은 그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최우선 목표 : 복수] [당신을 제거하려 하는 아덴 크로우를 제거하십시오. 실패할 시, 사망합니다.] [보상 : 특성 포인트 +5]눈앞에 아른거리는 글자들.
놀랍게도 에라 오브 엠파이어의 퀘스트 창과 비슷했다.
원래 카를로스 크로우의 목표, 그것이 주인공과 똑같이 빙의한 정현에게 보이는 것이었다.
정현, 아니 카를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간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형이라는 작자에게 복수를 해야만 했다.
* * *
그 뒤로 이틀 동안 카를은 정보를 모았다.
머릿속에 들어온 카를의 기억, 그리고 잘 기억나지 않는 것은 카일론에게 물어보며 전후 사정을 파악했다.
“하.”
역시 그는 게임 속으로 들어온 게 맞았다. 그가 친구와 내기를 하고 플레이하던 ‘에라 오브 엠파이어’ 속 세계로.
대학 생활이 힘들 때면 늘 게임 속 캐릭터에 빙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런 복잡한 상황에 놓이고 싶진 않았다.
그가 빙의한 몸의 원래 주인은 ‘에라 오브 엠파이어’에 나오는 등장인물 아덴 크로우의 이복동생 카를로스 크로우.
몇 년만 있으면 마법의 재능을 꽃피웠을 테지만 형의 계략에 목숨을 잃고 만 비운의 천재.
‘이런 천재를 알아보지도 못했다!’라며 여동생과 함께 죽은, 아덴 크로우의 무능함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였다.
아덴 크로우와 카를의 차이점이라면 그의 몸에 깃든 압도적인 마법의 재능, 그리고 살짝 뾰족하게 돋아난 귀였다.
겉보기에 사람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손을 갖다 대면 뾰족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하프, 아니 쿼터 엘프.’
‘에라 오브 엠파이어’의 세계관에는 엘프나 드워프 등의 이종족이 존재했다.
그리고 카를의 기억에 없는 어머니가 바로 하프 엘프였다.
이 마법의 재능은 그 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리라. 거울에 비치는, 원래의 정현보다 훨씬 미려한 외모 또한.
“도련님, 싸울 수 있는 병사들을 모았습니다.”
“수가 얼마나 되지?”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반말을 쓴다는 게 정현은 불편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온 탓일까, 그의 말투는 자연스럽게 원래 카를이 쓰던 말투가 되었다.
또한 불편해도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카를로스 크로우의 기억이 말하고 있었다.
“모두 합쳐 마흔여덟 명입니다. 저와 도련님을 포함했습니다.”
며칠 전의 전투에서 카를은 크로우 가문의 사병과 용병으로 구성된 일천이백 명의 병사를 마족과의 전투에서 대부분 잃었다.
신뢰하기 어려운 용병을 제외하고 사병 중,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100여 명. 싸울 수 있는 사람은 50명이 채 안 된다.
만약 여기서 원래의 카를이 가지고 있었던 특유의 카리스마와 위엄을 잃어버린다면 남은 병사들도 잃을 것이다.
복수를 위해선, 그들이 있어야 했다.
“도련님, 집으로 돌아간다 하심은… 본가로 가시겠다는 뜻인지요?”
“그렇다.”
“헌데 어째서 싸울 수 있는 병사를 모으시는 겁니까? 자칫하면 가주께서 도련님을….”
“반란군으로 몰겠지. 상관없다. 실제로 그렇게 할 것이니.”
영지 내의 마탑에서 마법 연구를 하던 카를이 영지로 돌아와야 했던 이유도.
그리고 병법이라곤 모르던 카를을 전쟁터로 내몬 것도.
전부 아덴 크로우가 직, 간접적으로 관여한 일이다.
“저는 도련님의 뜻에 따를 뿐이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놈이 아버지를 살해했다. 나는 인륜을 저버린 놈을 심판할 뿐이다.”
“예? 선대 가주님은 병을 얻어서 돌아가신 게 아니었습니까?”
“카일론. 그대는 내가 한낱 병 하나 못 고치는 무능한 마법사라고 생각하는 건가?”
노장이 고개를 숙였다. 카일론 또한 직접 보아서 알고 있었다. 선대 가주, 카를의 아버지를 간호한 것이 바로 카를 본인이라는 것을.
몸을 꿰뚫린 상처도 단 한마디 주문으로 쉽게 치유할 수 있는 것이 카를이다. 그런 마법사가 치료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평범한 병을 얻어서 죽은 게 아니었다.
“그건 병이 아니라 저주였다. 내가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한 저주. 놈이 마족을 끌어들여서 아버지를 죽인 거다.”
정현의 기억 속에 있는, 지금으로부터 몇 년은 지나야 밝혀지는 아덴 크로우의 죄목 중 하나.
마족을 끌어들여 크로우 가문의 선대 가주를 저주로 살해한 죄.
카를은 주술사가 아닌 마법사였으므로 당연히 저주를 해주할 수 없었고, 아버지의 죽음을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마 정현이 이 몸에 빙의하지 않았으면 카를로스 크로우는 게임의 정사대로 제 아버지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으리라.
“게다가 나에게 그 죄를 뒤집어씌웠지. 아버지의 병 하나 고치지 못하는 무능한 놈이라고.”
아덴 크로우는 카를이 마탑에 가 있는 동안 집안의 가신을 모조리 제 편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가신들과 아덴은 카를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크로우라는 이름을 버리고 밖으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전장에 가서 명예를 되찾을 것인가.
“그대로 나까지 죽일 작정이었겠지. 안 그런가?”
“…확실히, 마족 놈들의 기습은 이상했습니다. 저희의 위치를 훤히 꿰고 있는 게 아닌 이상 불가능한 기습이었습니다.”
“정보를 줬겠지. 아덴 그놈이. 그러니까 병사들의 대부분이 죽어도 상관없는 용병이었던 거고.”
카를은 눈앞에 떠 있는 반투명한 글자를 노려보았다.
방금 막 [서브 퀘스트 : 의문 해결!]이라는 글자가 떠오른 참이었다. 보상으로 지급된 특성 포인트 1점은 덤이었다.
아무래도 카일론에게는 이 글자가 안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놈은 우리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 이전에 크로우라는 이름을 갖고 태어난 이들 중 권력에 눈이 멀어 제 아버지를 죽이고, 동생까지 죽이려 한 자가 있었나?”
“없었습니다.”
“심판해 마땅한가, 마땅하지 않은가.”
“마땅합니다.”
“그러니 이제 병사들을 데리고 와라.”
머릿속에서 더 이상 목소리가 들리진 않았으나.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