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202
202화 잊지 못하는 자 (7)
용아귀 기사단, 중앙 마탑에서 탈출한 마법사 몇 명, 하얀 잎 상단이 고용한 용병단.
현재의 상황에서 아군이라 부를 수 있는 이들.
카를은 그들을 여러 개의 그룹으로 쪼개었다.
용아귀 기사단은 제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그림자들을 사냥하도록, 마법사들은 용병들과 함께 제도의 민간인들을 대피하도록.
“좋아….”
그들은 카를의 말에 군말 없이 따랐다.
용아귀 기사단에게 카를은 황제가 직접 임명한 ‘수호자’였고 마법사들에게 카를은 탑주를 뛰어넘는, 강력한 마법사였으며 용병들은 카를의 말을 곧 고용주의 말이라 생각하고 따랐다.
움직임을 개시하고 10분은 지났을까.
하늘이 검게 물들며 절망의 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너희가 만든 악의에 삼켜져라.
온다.
절망의 신의 권능이.
카를로스 크로우는 하늘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허어….”
용아귀 기사단, 기사단장 가렌델.
산전수전은 다 겪어 보았을 그도 하늘을 올려다보자 탄식을 흘렸다.
붉게 물드는 하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구멍이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수가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입니다. 가렌델 경.”
“…그런 것 같구려.”
“폐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카를의 말에 가렌델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는 지금, 난장판이 된 제도에서 유일한 구심점이 되어 줄 인물이다. 그녀는 무슨 수를 써서든 살려야 한다.
만약 황제가 죽는다면.
그 상황까지 카를은 이미 가정하고 있었다. 그때는 지체없이 회귀를 일으킬 것이다.
‘회귀를 해도 알아낼 방법이 있다는 게 문제지만….’
만약 칼리테가 작정하고 절망의 신의 편에 붙는다면 이길 방법은 없다.
하지만,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녀석은 절망의 신의 편이 아니다. 자신의 손으로 사도를 죽이는 것도 카를은 똑똑히 보았다.
칼리테는 적이 아니다. 그런데, 아군까지 아니다. 대체 뭘까.
‘…적어도 하나는 확실하지.’
카를은 눈을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마수와 마족들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절망의 신의 권능과는 다르다. 원래는 애매한 육체를 가진 사념체들을 내보내는 것이다.
마수는 그런 사념체들보다 훨씬 강하다.
‘그놈이 마수와 마족들을 끌어들였다는 거.’
적인가 아군인가 저울질을 하면, 적에 가깝다. 카를은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마력을 끌어 올렸다.
자신의 장기인 결계 마법은 물론이고 원거리 마법을 모조리 봉인당했다.
하지만 이 상태로도 충분히 싸울 수 있다. 절망의 신의 사도는 그 머릿수가 많은 만큼 각 개체는 그리 강하지 않으니까.
‘그러면….’
카를은 다시금 자신의 목표를 되새겼다.
자신이 노려야 할 상대는 그림자들이 아니다. 제 몸을 가지고 강림한, 사람들을 학살하려는 사도들이었다.
다행히 놈들의 위치는 알고 있었다. 궁정 마법사가 녀석들이 어느 위치에 마법을 사용하라 명령했는지 있는 그대로 실토했다.
‘시계탑 광장은… 진작 처리했고.’
남은 사도는 넷.
궁정 마법사가 토해 낸 단서를 떠올려 본다.
변신술과 거대한 불, 방전 마법과 바람.
첫 번째는 교회로 향하는 길에 마주친 놈이다. 그렇다면 남은 셋은 어떤 사도일까.
하나는 온몸이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들었다.
‘제도의 청사….’
황족이 거주하고, 제국의 여러 일들이 결정되는 황궁과 달리 오로지 제도의 일만을 처리하는 도시 청사.
그곳에서 사도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 무언가 수작질을 벌이려고 한다.
그 사도가 황궁 마법사에게 주문한 것은 도움이 아니라 ‘피날레’였으니까.
“…….”
직접 모습과 목소리를 드러낸 절망의 신 때문에 도시는 혼란에 빠졌다.
고함과 비명, 그리고 울음소리. 그 혼란스러운 소리들이 도시 청사의 광장에선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에 날카로운 자극이 새로운 자극을 일깨웠다. 후각. 짙은 혈향이 코를 스쳤다.
“이미 늦었나.”
처참하게 살해당한 여러 구의 시체가 거기서 흘러나온 피 웅덩이에 잠겨 있다.
일방적인 학살의 광경.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카를은 어금니를 아득 깨물었다.
그는 광장을 둘러보며 이 학살을 저지른 사도를 찾기 시작했다.
설마 벌써 달아난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던 카를은 곧 기이한 인영을 마주했다.
“…저건.”
여태껏, 절망의 신의 사도들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귀기(鬼氣)를 내뿜는 기사 한 명이 청사 앞에 서 있었다.
은빛 갑옷과 함께 꼿꼿한 자세로 검을 들고 서 있는 기사.
멀리서도 확신이 들었다. 원거리에서 마법을 쓰지 못하는 지금 저걸 쓰러트리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것과는 별개로 카를은 문득 그 기사의 얼굴을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어디선가 본 수준이 아니었다.
자신이 본 어느 기사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단안경. 멋들어진 카이저 수염. 가지런하게 넘긴 머리카락.
그것들이 모인 은빛의 기사는 자신이 아는 ‘관측자’ 멜릭 경과 소름 돋을 정도로 닮아 있었다.
* * *
아나스타시아 펠하임은 기사 한 명과 제 휘하의 용병 다섯 명과 함께 따로 움직였다.
위험할지도 모르는 상황, 아니 반드시 위험한 상황이었으나 스스로 요청한 것이었다.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녀는 줄곧 책임감을 느꼈다. 다른 이도 아닌 자신의 핏줄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서.
규모라도 작았으면 모른다. 차라리 반란이 귀엽게 느껴질 정도로 막대한, 천재지변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다. 그녀가 직접 움직이기로 마음먹은 이유다.
“상단주님, 도착했습니다.”
“…네.”
“일단 그분의 말씀대로 황궁 자체를 지키는 병력은 없는 것 같습니다…. 들어갈까요?”
긴장한 기색을 띤 용병의 물음에 아나스타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의 상반신만큼 거대한 방패를 든 용병이 방패를 들이밀며 문을 열었다.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문이 열리자 용병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혹시라도 모를 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깨끗합니다.”
“이쪽도 그렇습니다.”
“없습니다.”
황궁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사람은커녕 벌레 울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아나스타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곧장 궁 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궁의 뒤편으로 돌아갔다.
황궁의 마법 정원. 그곳의 상태를 카를이 확인해 달라 부탁했기 때문이다.
―삐이.
마법 정원은 그대로였다. 사시사철 똑같은 상태로 유지되는 장소.
정원에는 여전히 봄의 온기가 유지되고 있었고,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작은 새 두 마리가 날개를 빠르게 파닥이며 정원 안을 서로 스치며 날아다녔다.
“…마법 정원은 멀쩡하네요. 그럼 황궁 안으로 들어가죠.”
“예. 상단주님.”
두 명의 용병들이 앞서서 황궁의 정문을 열어젖혔다.
역시나 아무도, 아무것도 없다.
수십 번이나 황궁을 오간 기억이 있는 아나스타시아로서는 사람 한 명 없는 고요한 황궁이 사뭇 기이하게 느껴졌다.
“일단… 제가 말한 대로 하죠. 다들 구석구석까지 확인해 주세요. 저는 기록 보관소 쪽으로 가볼게요.”
“예. 상단주님.”
아나스타시아가 직접 움직이겠다고 했을 때, 카를은 그녀에게 두 가지 부탁을 했다.
하나는 황궁의 마법 정원을 확인하는 것. 두 번째는 황궁의 기록 보관소에서 제국의 진짜 역사서를 찾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아무에게나 할 수 있는 부탁이지만 두 번째는 너에게만 할 수 있다는 카를의 말이 떠올랐다.
“여기가 기록 보관소….”
황족만 오갈 수 있다는 장소. 아나스타시아는 긴장한 나머지 마른침을 삼켰다.
조금 높은 문턱을 넘어 기록 보관소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훅 불어닥친 먼지에 손을 내저으며 기침했다.
바닥에는 아예 먼지가 쌓여 있어서 발자국까지 보이는 상태. 썩 달갑진 않았지만, 최소한 이 기록 보관소 안에 아무도 없다는 뜻은 되었기에 아나스타시아는 안심했다.
“역사서….”
왜 다른 문서도 아니라 역사서를 찾아 달라고 하는 걸까.
그런 의문을 품은 채로 아나스타시아는 책을 찾기 시작했다.
곧 먼지 쌓인 제국의 사서들을 발견하고 가장 첫 번째 책을 찾았으나,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페이지를 닫았다.
“이건 아냐….”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건 진짜 역사서가 아니다.
‘진짜’를 본 적도 없지만 아나스타시아는 알 수 있었다. 손에 있는 건 시중에서도 구할 수 있는 역사서를 황실의 방식으로 제본했을 뿐이니까.
진짜 역사서는 어디에 있는….
―뚜벅.
“……!”
기록 보관소 안에 울려퍼지는 묵직한 발소리. 아나스타시아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자신이 데리고 온 용병도, 용 갑옷을 입은 기사도 아니다. 용병들이었으면 뭐라 말을 했을 것이고 기사였으면 금속 소리가 났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 기록 보관소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대체…?
문득 그림자들은 갑옷을 입지 않은 것을 떠올렸다. 그림자가 황궁 안에 있었던 것이다.
숨소리도 새어 나가지 않게 입을 틀어막은 채 아나스타시아는 빠르게 방법을 강구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 거야….’
바닥에는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자신의 발자국이 남았을 것이다.
아나스타시아 그녀가 그 먼지를 보고 안에 아무도 없다고 짐작한 것처럼, 그림자는 안에 누군가 있다고 짐작할 수 있으리라.
다행인 점이라면 기록 보관소는 방대하고, 아나스타시아는 몸을 잘 숨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잘만 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떼려던 그녀의 귓가에 또다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깝다. 거의 근처에 있다. 애초부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온 걸까?
빠르게 회전하던 아나스타시아의 사고는 발소리의 주인을 마주친 순간 얼어붙은 것처럼 멈추었다.
“자.”
“……?!”
“여기, 안나 네가 찾던 거.”
하얗고 큼지막한 손이 검게 제본된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제목이 없는 책이 눈앞에 드리운 순간 아나스타시아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주저앉은 여파로 먼지가 일었다. 콜록. 연신 기침을 한 아나스타시아는 호흡이 진정되자마자 고개를 들고 물었다.
“…오라버니?”
“응?”
“오, 오라버니가 왜 여기에…?”
너무 놀란 나머지 혀가 굳어 말이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이 사태의 원인, 아니 원흉. 그녀의 오라버니가 눈앞에서 책을 내밀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평소 같은 얼굴로.
일단.
일단, 그 생각과 함께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아나스타시아는 칼리테의 손에서 검은 책을 낚아챘다.
“안나, 네가 기록 보관소에 왔다는 건… 카를로스가 부탁한 건가?”
“말, 했어? 그 사람한테…?”
“모든 걸 말해 줄 순 없어. 카를로스에게도, 너에게도. 모든 걸 듣는 귀가 항상 나를 따라다니고 있거든.”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던 아나스타시아는 칼리테가 등을 돌리자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훅. 먼지가 크게 일었다. 손을 저어 먼지를 걷어 낸 아나스타시아가 입을 열었다.
다시 마주칠 때 하려고 했던 말.
“오라버니, 아직 해결할, 수 있지 않아?”
“왜?”
“일이 너무 복잡해지긴 했지만… 이 정도면 수습할 수 있잖아. 지금이라도….”
“너랑 카를로스는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구나.”
“어…?”
“하긴 그렇게 마음이 잘 맞으니까 사이가 좋을 수 있는 거겠지.”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니? 제도에 와서 만난 적조차 없는 두 사람이 대체 언제…?
그러던 아나스타시아의 뇌리에 카를로스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과 칼리테는 회귀를 겪고 있다고.
아마도 저 대화는 아나스타시아 자신이 말로만 들어서 알고 있는 ‘이전’에 나눈 대화이리라.
“그러면 오라버니는 왜… 이런 일을 벌인 거야?”
“…….”
“혹시, 이것도 그 사람이 이미 한 질문이야?”
잠시 침묵하던 칼리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책에 있다고, 그렇게 말했지.”
“이 책에…?”
“맞아. 하지만 너는 이미 책을 가지고 있으니까… 굳이 돌려 말할 필요는 없겠지.”
칼리테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거기에 아나스타시아가 알던 칼리테 펠하임의 모습은 없었다. 손바닥 뒤집듯이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한 그가 입을 열었다.
“나는 케리엔 펠하임.”
“……어?”
“그 어떤 것도 잊지 못한 죄인으로서, 나의 죄에 대한 속죄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말을 끝마친 칼리테, 아니 케리엔 펠하임은 몸을 돌려 기록 보관소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