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205
205화 두 사람의 시간전선 (3)
우습게도 처음으로 든 생각은 죽음을 몇 번 겪어 보아서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남들은 한 번도 겪지 못할 죽음의 감각을 무감정한 목소리에서 느끼고 필사적으로 몸을 튼 것이다.
말 그대로 죽음이 스쳐 지나갔다.
“……윽.”
오른쪽 어깨 아래에서 하얀 고리가 날카롭게 빛났다.
그 고리 아래의 팔은 옷째로 날아갔다.
날카로운 칼로 두부를 썰어 낸 것처럼 절단면이 깔끔해서 도리어 더욱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눈이 공중을 날았다가 바닥을 나뒹구는 팔을 목격한 직후, 격렬한 고통이 밀려들어 왔다.
―까드득.
이빨을 깨물어서 나는 소리라곤 생각할 수 없는 소음이 카를의 입안에서 새어 나왔다.
이빨을 깨무는 행위를 통해 밀려들어 오는 고통을 도로 밀어내고 다시 눈앞의 상황을 주시했다.
무표정. 무감정. 창백함. 그 세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눈앞의 사도가 가진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접근할 수… 있나?’
원거리에서 발동되는 마법의 제한이라는 최악의 환경.
권능으로 무장한 적의 사정거리는 길다. 단번에 목숨을 날릴 수 있을 정도로 위협적이다.
접근해서 이길 수 있느냐의 여부는 둘째 치고,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첫째.”
사도는 카를이 죽음을 피해 낸 것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는 눈치였다.
묵묵하게 다시 한번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며 목숨을 노릴 뿐.
후우.
카를은 짤막한 한숨과 함께 눈앞의 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죽음을 각오했다.
“거짓의 악함이 그대를 병들게 하리라.”
오른팔이 잘려 나가고 남은 왼손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또 무슨 술수를 벌인 것인가. 마력을 끌어 올린 카를은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무언가 마력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었다. 아마도, 사도의 권능.
사도가 말한 거짓의 의미는 마법이었다.
“둘째.”
‘최대한… 버텨 보자.’
죽음을 작정했음에도 카를은 그렇게 판단했다.
만약 오늘 아침, 아니 어제로 되돌아가더라도 카를은 똑같은 선택을 내릴 것이다.
그렇다면 적도, 절망의 신도 같은 선택을 내릴 것이고 또 한 번 눈앞의 사도를 마주할 것이다.
어떤 수단을 가지고 있는지 최대한 알아야 한다.
억지로 마력을 쥐어 짜내 만든 얼음 창을 손에 쥐고 카를은 땅을 박찼다.
“횡포하는 것을 금한다.”
이전처럼 몸뚱이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단어는 달라도 효과는 비슷하다. 그 사실을 머릿속에 새긴 카를은, 땅을 거세게 박찼다.
죽음을 각오한 이상 이후를 생각할 건 없었다. 몸의 마력 회로가 망가지든 말든, 모든 걸 쏟아 낸다.
“세, 셋째.”
그 기세에 당황한 걸까. 사도의 발음이 살짝 엇나갔다.
아무것도 담지 않고 있었던 동공이 처음으로 카를을 주시한다. 당황했음을 알리듯 동공이 확대되었다.
“악행의 대가리를 치르리라.”
사도가 양손을 모았다. 손 틈이 마름모꼴을 이루고 그곳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카를을 노렸다.
한 줄기 광선이 왼쪽 어깨를 관통했다.
순간 왼손의 힘이 풀렸지만 마력을 이용해 억지로 근육을 잠시 이어 붙였다.
카를의 기세는 꺾이지 않고 여전했다. 그는 그대로 창을 내질렀다.
“……!”
사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카를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린 사도는 무언가 자신의 가슴을 관통한 것을 보았다.
투명한 얼음 창이었다.
“…그대여.”
피차에게 마지막 순간이었다.
심장을 꿰뚫린 사도는 창이 뽑히거나 사라지는 순간 목숨이 끊길 것이었고, 카를은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중상을 입은 채였다.
끝에 다다르기 직전, 찰나에 불과한 시간.
사도가 카를의 이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지엄한 율법 앞에, 무릎 꿇을지어다.”
“하….”
목소리와 한숨 소리가 교차하고, 한 사도와 한 인간은 동시에 끝에 도달했다.
* * *
“…아?”
다시 눈을 뜬 순간 카를은 온몸의 잔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창백한 머리칼과 무감정한 눈동자. 바로 직전, 자신을 죽였던 사도가 눈앞에 있었다.
설마 바로 직전으로 회귀한 것인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주인이다!”
탓. 치즈색 고양이가 카를의 품으로 뛰어들어 왔다. 털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온기에 카를은 정신을 차렸다.
“아… 에멘탈?”
“맞다! 에멘탈이다!”
“네가 여기에 있다는 건….”
창백한 표정의 사도 옆에서 아스텔이 푸른 눈을 반짝이며 손을 살짝 흔들고 있었다.
에멘탈을 바닥에 살며시 내려놓은 카를이 그녀를 향해 질문했다.
“…이 죽음을 극복하는 힘, 말입니다.”
“응?”
“횟수에 제한은 없는 겁니까?”
아스텔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의지가 꺾이지 않는다면, 무한해.”
“…의지요?”
“응. 아마 카를로스 너도 느꼈을 테지만 그 힘에는 한계가 존재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없다는 거.”
시계탑 광장에서 한 번 느껴 본 감각이었다. 스스로의 죽음은 회귀를 발동시킬 수 없으리라는 막연한 추측 아래 가만히 손을 놓고 있었으나, 그게 정답이었다.
“우리에게 이 힘을 선물한 죽음의 신은 우리가, 인간들이 앞으로 나아가길 바랐어. 스스로를 죽인다면 그곳에서 정체되었다고 생각했던 거지.”
“……앞으로 나아간다면 몇 번이고.”
“응, 맞아.”
회귀에 제한은 없다. 그 대답을 이 힘을 선사한 이에게서 받은 카를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한 가지 더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아스텔.”
“응? 그게 뭘까?”
“칼리테 펠하임.”
자신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극복하는 힘을 가진 사내.
그리고 아스텔을 비롯한 다른 이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었던 그에 대해서.
“그 녀석은… 당신들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
“단순히 기록을 읽어서 알고 있었다기엔 조금 이상합니다. 당신들을 ‘기회주의자’라고 불렀어요.”
정확히는 영혼을 빼앗겨 껍데기만 남은 채 잠자고 있는 아데나를 제외한 다른 일곱 명을.
“제 눈으로 본 당신들은 기회주의자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아요. 그렇다면 칼리테가 저보다 더, 당신들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겠죠.”
“…….”
“칼리테와 당신들은 무슨 관계가 있는 겁니까?”
한순간 아스텔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카를은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옆에 있었던 사도의 모습을 한 소녀 또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는… 이미 답을 찾았어. 네 연인, 그 아이가 답을 알려 줄 거야.”
“기록 보관소에 있는 그게 전부입니까?”
“응. 그리고 말이야 카를로스, 지금 우리는 네 의식 속에 있어.”
알고 있었다.
이전에 방문했던 이들의 세계와 달리 지금 눈에 보이는 광경은 그가 처음으로 아스텔을 만났던 곳과 비슷했으니까.
“시간이 흐르고 있어 카를로스. 물론 너는 바란다면 시간을 거스를 수 있지만… 기회를 허투루 날리는 사람은 아니잖아? 너는?”
아스텔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정말 시간 문제라기보다는 대답을 꺼리는 것에 가까웠다.
그것을 읽어 낸 카를은 더 물어보는 것이 그닥 의미 없음을 깨달았다.
“예, 아스텔. 그럼 중요한 이야기로 넘어가죠. 그것들…대 체, 뭡니까?”
그의 시선이 오른쪽 어깨 아래로 향했다.
잘려 나갔던 팔은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게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떨어져 나갔던 고통은 남아 있어서 어깨 아래가 욱신거렸다.
흔히 말하는 환상통일까.
“하나는 멜릭 경을 닮아 있었고… 방금 저를 죽인 건 아스텔 옆에 있는, 저 사람을 닮아 있었습니다.”
“아, 맞다.”
살짝 어두워졌던 아스텔의 표정이 풀어졌다. 활짝 미소 지은 아스텔은 무대에 선 진행자처럼 창백한 소녀를 손으로 가리켰다.
“소개할게! 여기 있는 이 아이의 이름은….”
“아이라고 하지 마세요. 아스텔.”
“아, 응. 알았어. 여기 있는 이 귀엽고 깜찍한 소녀의 이름은… 조라야야!”
하아. 조라야라 불린 소녀가 깊게 한숨지었다.
“멜릭 경에게 ‘관측자’라는 이명이 있듯이 조라야에게도 이명이 있어. 바로, 율법의 성녀야.”
“……성녀요?”
“응. 아, 카를로스 네가 아는 성녀랑은 달라. 이 아이, 아 참, 조라야는 사도가 아니야. 오히려… 어머니에 가깝지.”
하얀 십자가의 신이 제 신도들에게 내려보내는 사도를 이 세계에서는 성녀라 부른다.
그런 성녀가 아니라 다른 성녀. 그리고 율법. 카를은 그 두 가지를 자신의 기억을 뒤져 찾아냈다.
“태초의 율법….”
“응.”
“그게, 이 사람과 관련이 있습니까?”
“관련? 당연히 있지. 왜냐하면 그 율법은 조라야가 만든 거니까.”
태초의 율법.
백십자교가 자신들의 교리로 삼는 ‘성서’의 원본이 되는 책.
카를은 아스텔이 말한 어머니에 가깝다는 뜻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본래라면 조라야에게로 향했어야 할 신앙이 하얀 십자가로 향하게 되어 신을 탄생시킨 것이리라.
“지금까지 강림한 성녀들이 모두 비슷한 외견을 하고 있었던 것도….”
기록으로 묘사된 성녀들은 전부 조라야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태초에 성녀로 추앙받던 존재의 신앙에서 탄생한 신이 내려보낸 사도.
무언가 연관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물었지만 아스텔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일 뿐이었다.
“그건 우리도 몰라. 직접 만나서 물어본 게 아니라서.”
“…….”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는 조라야.
율법의 성녀는 제 가슴에 손을 올리고서 카를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그 성녀들과는 다르게 네가 만난 존재는 나야.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재현이라… 지금의 조라야 당신이 아니라 살아 있었던 시절을 말하는 겁니까?”
“맞아. 내가 살아 있었던 시절.”
“그렇다면 멜릭 경을 닮은 그 기사도….”
“멜릭 경과 비슷한 능력을 썼지. 아마도 멜릭 경을 재현한 게 맞을 거야.”
아스텔이 설명했다.
“그리고 둘이 더 남았어.”
“…….”
“그 둘은 칼과 코스모스야. 다행히도 멜릭 경은 전성기가 한참 지난 뒤에 재현됐지만 다른 셋은, 전성기에 가까워.”
신과 맞서 싸운 이들의 전성기.
그 힘이 어느 정도인지 카를은 말뜻 그대로 온몸으로 느꼈다.
죽을 각오를 하고 덤벼들어야 겨우 잡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이들이, 셋이나.
“…지금, 저를 찾아온 건 그 셋의 약점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까?”
“맞아. 적이 조라야를 흉내 냈다면, 그 적을 제일 잘 아는 건 진짜 조라야일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아스텔은 조라야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던 성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다루는 힘은, 너도 알다시피 율법이야. 몇 가지 규칙을 통해서… 타인의 행동은 물론이고 자연의 현상까지 통제할 수 있어.”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지던 감각을 떠올린 카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 몸의 일부를 날려 버린 것도… 그 율법의 힘이겠군요.”
“맞아. 그런데 그건 율법의 힘을 잘못 쓴 거야. ‘머리가 있는 위치’가 아니라 ‘머리’로 강제하고 힘을 쓸 수도 있으니까.”
잠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던 조라야가 헛, 짧게 숨을 삼켰다.
“아무튼… 율법은 그런 힘이야. 사람의 행동은 물론이고 자연의 현상까지 강제할 수 있어.”
“평범한 힘으로는 저항하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맞아. 너는… 율법을 꺾었지만 만약 ‘다음’을 생각했다면 그건 불가능했을 거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조라야는 말없이 아스텔을 바라보았다.
“…색.”
“색깔, 말입니까?”
“응. 율법에 저항할 수 있는 색깔… 너한테는, 그 색깔이 없으니까 너는 아직 율법에 저항하기 힘든 거야.”
“조라야가 다루는 율법은 조라야의 머리카락처럼 무채색에 가깝거든. 하양이 다른 색과 섞이면 하양이 아니게 되듯이, 율법이 다른 색에 물들면 그 힘도 약해지지.”
아스텔이 카를을 향해 다가와 손에 작은 금속 하나를 쥐여 주었다.
“너에게는 아직 색깔이 없으니까, 내 색깔을 잠시 빌려줄게.”
그 금속이 카를의 손안에서 녹기 시작했다. 녹은 금속이 손바닥으로 스며들고, 핏줄 사이사이로 스며들었다.
“내 색깔과 함께라면, 카를로스 너는 절대 지지 않아. 설령 지더라도 걱정하지 마.”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아스텔의 목소리가 멀어진다고 느낀 찰나.
카를은 다시 현실로 회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