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 두 사람의 시간전선 (6)
다시, 시간이 흐른다.
카를은 고개를 들고는 선 자리에서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무엇이 회귀를 부른 걸까.
그리고 누가 회귀를 발생시킨 걸까.
‘간격이 짧아.’
마지막으로 발생한 회귀는 율법의 성녀에게 죽어서 발생한 것이다.
카를이 율법의 성녀를 쓰러트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회귀가 발생했다.
‘성녀를 살리려고 칼리테가 회귀를 발생시켰다…?’
절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근거만 두 가지였다. 성녀가 쓰러지기 전으로 회귀하지 않았고, 칼리테는 제 입으로 이 사태를 막을 것이라 말했다.
회귀를 발생시킬 이유가 없었다.
‘칼리테도 아니고 나도 아니라면….’
또 다른 누군가가 죽음을 극복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 누군가가 죽음을 겪었다.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한 명 뿐이었다.
“보고 있는 거 압니다. 아스텔.”
직후, 카를은 자신의 의식을 가라앉혔다.
* * *
다시 눈을 뜬 공간.
이제는 익숙해진, 따사로운 햇빛이 들어오는 고즈넉한 세계.
그곳에서 카를은 다시 그녀를 마주 보았다.
“그래서, 누군가요?”
“이 힘을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
“…자격이라.”
방긋 웃는 것과 함께 말하는 아스텔. 카를은 그녀의 대답이 내포한 의미를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아스텔이 자신에게 손을 내민 이유.
크라누스라 불린, 세간에서는 신이라 칭해지는 존재를 죽였기 때문이었다.
자신 이전에도 용 사냥꾼 둘에게 접촉했다고 했었나.
“저처럼 신을 죽였거나, 최소한 용 사냥꾼이라는 말처럼 들리는데….”
카를의 표정이 의문으로 일그러졌다.
“미쳤다고 지금 이 상황에 강림하는 신은 없을 테니 죽은 신도 없을 거고…용 사냥꾼도,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시나리오 내에서 용 사냥을 노리는 인물은 딱 둘 뿐이다.
개중 하나는 자기는 언젠가 커서 용들을 쓰러트리겠다고 하는 어린아이고 남은 하나는 용을 사냥해보고 싶다는, 용의 힘을 받아 승천한 ‘검귀’다.
그리고 지금 검귀는 아마, 절망의 신이 불러들인 마족들을 상대하느라 바쁠 것이다.
“대체 누굽니까?”
“아, 자격을 그런 식으로 이해했구나…. 음, 그러면 다르게 설명해볼게. 이 세상의 흐름을 바꿀 힘이 있는 사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처럼.”
짐작 가는 인물이 몇 늘었다.
시험이 아니다. 답이 틀리더라도 손해 볼 건 없다. 카를은 그런 마음으로 툭 대답했다.
“탑주…아마도 시아나 선배님입니까?”
“음, 그 아이도 강하지. 아직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하고. 하지만 그 아이는 아니야.”
“그러면 남은 셋은 아닐 테고요.”
그들 셋의 한계는 알고 있다.
당장은 카를보다 강하다.
하지만 베샤네는 늙었고 셰르핀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다. 키시온은 이미 뛰어넘었다.
“마법사 중에 없다면…제 학교의 학생들 중에 있겠네요.”
“응? 그렇게 단정해도 되는 거야?”
“저로 인해서 많은 게 비틀렸어요. 원래 절망의 신이 지금 강림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하면 이제 고작 2년 차에 불과하다.
원래라면 제국이 본연의 힘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대.
아직 진짜배기 영웅들은 등장하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중요 NPC들을 미리 길러 놓지는 않았을 테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른 공작들이 전부 자신처럼 미래를 아는 것도 아니며, 사실대로 말해주고 설득하는 것도 불가능하니까.
자신의 힘이 미치는 북부에서 최대한 끌어모으는 것이 최선이다.
“제가 세운 학교…카리아 밖에 없겠네요.”
“응. 맞아. 그 아이야.”
카리아 프라헨.
타인과는 규격 자체가 다른 존재.
“아직 신살이나 용을 사냥할 정도는 아닐 텐데….”
“그 아이, 회귀를 눈치챘어.”
“……예?”
“물론 정확하게 안건 아니야. 기시감으로 느꼈을 뿐이니까. 하지만….”
“아스텔 당신이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회귀를 눈치챘다는 겁니까?”
“응.”
아스텔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어떻게 그게…다른 사람의 회귀를 아는 게, 가능합니까?”
“나도 그런 아이는 나도 처음 봤어.”
똑같은 회귀의 힘을 가졌다면 아는 것은 가능하다.
칼리테가 자신의 회귀를 알아냈고, 카를이 칼리테의 회귀를 기억하듯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아, 그래. 카리아 그 아이는 사랑받고 있어.”
세계에 사랑받는 자, 카리아 프라헨.
게임에서 그녀를 지칭하던 단어를 떠올린 카를은 혀를 내둘렀다.
“회귀를 느낄 정도로 넘치는 총애를 받는 아이. 그래서, 두 번째에는 내가 찾아갔어. 너한테 그랬듯이 힘을 줬어.”
“그런데 그 힘이 작동한 거고요.”
“응. 그렇게 됐나 봐.”
카리아 프라헨이 죽었다.
아직 아카데미에 학생으로 살고 있을 카리아가, 목숨을 잃었다.
“아카데미가 공격받고 있다….”
어느 정도 염두에 둔 일이긴 했다.
게임 내에서 구현된 절망의 신의 권능 또한 이와 비슷했으니까.
정해진 지점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특정한 인물을 노리는 권능.
그 때문에 게임 후반부에는 제국 전역을 덮치는 권능이 되지만….
‘칼리테로 인해서 바뀌었지.’
애초에 절망의 신이 마족을 쏟아내는 것도, 그들의 사도가 ‘색깔’을 가진 이들을 흉내내는 것도 게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내용이다.
자신이 미래를 들여다보는 방법, 게임의 시나리오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봐야 크게 도움이 안 될 것이다.
“누구에게 죽었습니까? 카리아가.”
“이제는 떠나버릴 까치야 이 바람을 타고 내 별빛을 내 마음을 그리고 내 의지를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에게 전해줘.”
“……예?”
낭랑한 목소리로 시를 읊듯 중얼거린 아스텔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바꾸려면 그 운명을 미리 알고 대처하는 게 아닌 이상 불가능해. 그 운명을 마주친 여행자에 대한, 내 응원이야.”
“…제 이야기군요.”
“응.”
“카리아는 그렇지 못하다는 말이고요.”
“운명의 갈림길이 여러 번 바뀌긴 했어. 하지만 이 정도로는 원래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가로막는 벽을 피해 갈 순 없다는 뜻이야.”
카리아 프라헨을 가로막는 벽.
달리 말하면,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벽.
신생 마족 연합의 간부 1위, 실라스.
“힘든 싸움이 되겠군요.”
“아마 그럴 거야.”
원래 실라스와 마주쳐야 하는 시간이 앞당겨졌다.
카리아는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했고, 실라스는 이미 강하다.
그런 상태에서 서로를 마주친다면 결과는 뻔하다.
“감사합니다. 아스텔.”
“으응? 갑자기?”
“제가 모르는 사이에 카리아가 목숨을 잃었다면…일이 꼬였을 거에요. 아스텔 당신 덕분에 카리아가 살았으니까요.”
신이라는 존재들이 작정한다면 카를 한 명의 힘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아직도 자신의 힘은 모자라다. 다른 이의 힘이 필요하다.
카리아 프라헨 같은 사람.
“아직 끝난 건 아니야. 카를로스.”
“…예. 압니다.”
“그 아이가 포기하지 않아야 해. 아무리 무한한 기회가 주어졌다 한들 그 기회를 부여하는 건 ‘죽음’이야.”
죽음. 아스텔의 입에서 흘러나온 무거운 단어를 직접 들은 카를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이 살짝 떨리고 있다.
수전증 따위가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안다. 벌써 여러 번 겪은 죽음 때문이다.
“그 아이가 꺾이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글쎄요.”
카를 자신은 마법사였다. 사사로운 감정을 죽이고 오로지 이성에만 집중하는 것에 익숙했다.
때로는 공포도 억누를 수 있다.
아니, 자신이 창을 맞아 쓰러지고 타인의 기억을 얻어 다시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한 것이 죽음의 공포를 억누른 것이 아닌가.
“어려울 겁니다.”
그런 자신도 은연중에 공포를 느끼고 있다.
지금의 카리아는 카를이 아는 카리아가 아니다. 마법을 어떻게 발동시키는지 알고 싶어 자신을 쫄래쫄래 따라오던 소녀였다.
“하지만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아이에 대한 신뢰가 깊구나.”
“저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될 테니까요.”
산골에서 자라나 장작이나 패던 소녀가 판을 깔아줬다고 며칠만에 마법을 사용하는데 성공했다.
재능이 떡잎부터 다르다. 더 강해질 수 있고 더 굳세질 수 있다. 그런 미래를 아는 카를이다.
“아스텔.”
“응?”
“저는 그 아이를 못만나지만 당신은 그 아이를 만날 수 있겠죠?”
이곳은 자신의 의식 속이다. 만날 방법은 없다. 사념 세계를 방문한다 하더라도 기억의 회랑을 갖지 못한 카리아는 사념 세계를 방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 사실을 아는 아스텔은 은은한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카리아 그 아이에게 말 한마디만 전해줄 수 있을까요?”
“한 마디가 아니라 열 마디 백 마디도 할 수 있어. 나, 다른 사람이 한 말은 안 까먹으니까.”
“예. 그러면…이렇게 전해주세요. 운명을 정할 순 없지만 어떤 사람이 될지 정할 순 있다고.”
“……음.”
톡, 하고 아스텔의 손가락이 그녀의 뺨을 살며시 두들겼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알았어. 꼭 전해줄게.”
“예. 부탁드릴게요.”
“그러면 카를로스…나도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괜찮을까?”
카를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병사한테서 들은 그 괴물의 정체는 코스모스야. 우리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전사이기도 해.”
“…가장 뛰어난 전사.”
“응. 그리고 코스모스는…너한테 자기 약점을 가르쳐주는 걸 거부했어.”
잠시 침묵하던 카를이 물었다.
“이유가 뭔지 알수 있을까요.”
“네가 마음에 안 들어서…라는데. 미안해, 카를로스. 코스모스 성격이 원래 이래….”
“아니요. 괜찮습니다.”
가장 뛰어난 전사.
전성기가 지난 멜릭과 ‘색깔’을 다룰 수 있다면 상대하기 쉬운 조라야.
그 둘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뜻이리라.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기는 게 절대 불가능한 상대는 아니다.
어느 정도 동등한 위치에 서 있으니까.
“이길 수 있습니다.”
“코스모스가 들으면 또 화를 낼 것 같은데…음, 글쎄. 나도 카를로스 네가 이길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힘든 싸움이 될 거야.”
“예.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길 수 있어요.”
카를의 대답을 들은 아스텔은 부드럽게 웃으며 팔을 뻗었다.
아스텔의 손이 카를의 이마를 덮었다. 눈을 감은 그녀가 다시금 낭랑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별빛이 네가 가는 길을 비춰주길, 새들이 너를 위해 노래해주길, 꽃들이 너를 위해 만개하길. 우주의 기적이 인도한 너는 세상을 별들처럼 반짝이게 할 수 있을 테니.”
그녀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카를이 눈을 감았다.
아스텔은 자신의 손에 맞닿아 있던 체온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아직 미지근한 온기가 남아 있는 손을 잠시 바라보던 아스텔이 문득 고개를 돌려 말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는 거, 별로 좋은 취미는 아니야.”
“…….”
아스텔의 말을 들은 이가 시야의 사각지대에 있는 구석에서 조용히 걸어 나왔다.
“…자격이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을 뿐이야.”
“하긴, 네가 남한테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니까.”
짜증으로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을 본 아스텔이 웃으면서 말했다.
“조금 언질이라도 주게 해주지 그랬어. 그 편이 너한테도 좋았을 텐데…안 그래? 코스모스?”
코스모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방금 그곳을 떠나간 남자에 대해서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