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217
217화 스승과 제자 (1)
제도, 상업 지구.
원래라면 발을 들일 일도 없었을 장소에서 황제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래, 그대는….”
비록 지금은 왕관은커녕 옷마저 안감이 꺼끌꺼끌한, 평민의 옷차림이었으나….
황제의 외관.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귀티와 위엄은 타인을 자연스레 이끌었다.
하루 여덟 시간 이상을 옥좌에 앉아, 격무로 보냈을 때와 다를 바가 없다.
그녀가 황제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사람은 언제나 모여들었다.
원래라면 정수리 밖에 못 보았을 하급 귀족 나부랭이들.
그런 이들에게도 황제는 자신의 최선, 즉 격려를 해 주고 있었다.
―뚜벅.
그 순간 작게 울린 발소리. 흙바닥이었기에 자연스러운 소리는 아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냈다는 것임을 깨닫고 이목은 그곳으로 집중된다.
거기엔 흔치 않은 검은 머리의 사내가 서 있었다.
그는 한 귀족을 붙잡고 물었다.
“많이 바쁜가?”
“예…?”
“폐하와 급하게 할 일이 있어서 그런다. 중요한 용건이 아니면 자리를 좀 비켜 주었으면 하는데.”
“아…! 예! 당연히 그래야지요. 하하….”
귀족들이 우르르 황제의 곁에서 물러났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황제는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듣는 귀가 많구나. 다른 데로 가자.”
“예, 폐하.”
저것들의 꼬락서니를 보고 싶지 않다. 카를은 헬레나의 말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아무도 없는 골목으로 들어가서야 그녀는 입을 열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죄다 짐을 봉으로 생각하는구나.”
“많이 시달리셨습니까?”
“제 놈들도 아는 게다. 이 일로 펠하임 공자 놈이 사라지고 나면 황궁에 들어설 신하를 새로 뽑아야 한다는 것을.”
제도 주변은 펠하임 가문의 영지다. 제도를 감싸고 있으니, 당연하게도 펠하임 가문이 제도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황궁에 드나들 수 있는 신하도, 반절은 펠하임 가문과 연줄이 있다.
그런 펠하임 가문이 반역죄를 저질렀으니 제도, 아니 제국의 정치판은 완전히 뒤바뀔 것이다.
“얼굴 도장을 찍지 못해 안달이니 참…. 헌데 공작, 그대가 짐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짐이 그대를 걱정해야 옳지 않은가?”
“제왕이 신하를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을 위하는 유일한 신하도 걱정하지 않으면 곁에 누가 남겠느냐. 외톨이 황제는 허수아비와 다를 바 없다.”
탁. 황제가 바닥에 구르는 돌멩이를 발로 찼다.
“그러니 다시 물으마. 지쳐서 쓰러졌다 들었다. 몸은 괜찮으냐?”
“예.”
괜찮은 수준이 아니다. 푹 자고 일어난 지금은, 전보다 몸이 훨씬 가벼웠다.
마력 동화를 한 번 겪으니 마법이 아니라 마력을 다루는 기량 자체가 월등해졌다.
“지쳐 쓰러질 정도로 구르는 놈이 제 걱정은 말라니, 쯧. 그런데 공작… 아무래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구나.”
“그림자들이 조용한 것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래. 어째 놈들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구나. 기사 녀석들도 어제부로 그림자를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하였다.”
아는 게 있느냐? 황제가 고개를 들며 물었고 카를은 고개를 끄덕였다.
“칼리테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라. 이번엔 또, 무슨 짓을 벌이려고….”
“저희를 해하기 위한 움직임은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카를은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결계의 빛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푸른 하늘은 온데간데없고, 결계를 뚫고 들어오는 햇빛만이 지금이 낮이라 말해 주고 있었다.
“이제 신의 사도는 하나가 남았습니다. 그 하나마저 쓰러지면 신은 직접 강림할 것입니다. 그 강림의 순간에, 하늘에 거대한 틈이 생깁니다.”
“…그래.”
“칼리테는 그 틈으로 들어갈 겁니다. 아마, 자신의 그림자들을 몽땅 이끌고.”
“…….”
황제는 별안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다가 물었다.
“저기에 놈이 바라는 게 있는 모양이구나?”
“예.”
“허면 공작 그대는 어찌할 생각인가? 그놈이 바라는 대로 움직일 셈이냐?”
“하고 싶지 않아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미 칼리테는 배수진을 쳤다. 녀석이 아니꼽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사도는 주민들을 학살하기 시작하리라.
지금은 어째서인지 카를을 기다려 주는 것 같으나, 그 인내심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한번, 싸워 보고 싶습니다.”
“그대가 신을 죽였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신살. 그걸 이룬 본인은 말하고 다니지 않으나 이곳저곳에서 들어오는 정보가 서로 교차되며 부정할 여지 없는 사실이라 증명되었다.
기록 보관소의 책이란 책을 모조리 섭렵한 황제는 그게 얼마나 거대한 위업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자신감이 붙은 것이냐? 아무리 그래도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는 저놈은….”
“아닙니다, 폐하. 저 신이 아니라, 광장에 있는 사도를 말씀드린 겁니다.”
“아, 그 마법사? 북쪽으로 가는 기사들을 틀어막는다고 들었는데… 그놈이 뭐라고.”
“그는 에르딘 칼렉입니다. 폐하.”
황제의 눈이 커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도 에르딘 칼렉을 알고 있었다.
과거의 역사서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에르딘 칼렉이라는 이름은 곳곳에 적혀 있으니.
“물론 칼렉 그 자신은 아닙니다. 하지만, 상당히 흡사합니다. 저는 그 사도와 한번 싸워 보고 싶습니다.”
호승심 혹은 투지. 그렇게 불러 마땅한 감정이 피어났다.
카를과 칼렉의 관계를 전혀 모르는 헬레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왜? 과거의 대마법사를 뛰어넘어 보고 싶어서 그러느냐?”
“비록 책으로만 가르침을 얻었지만, 저에겐 스승 같은 분입니다.”
“그래서였군. 청출어람(靑出於藍), 출람지예(出藍之譽). 제자가 스승을 넘어서고자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니….”
피식 웃은 황제가 말했다.
“그래. 잘해 보거라. 단, 죽지는 말고.”
* * *
에르딘 칼렉의 모습으로 재현된 사도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거리, 아니 중거리 마법으로도 개입할 수 있을 만한 거리에서도 놈은 지켜만 보고 있었다.
사도들에게 동료 의식 따위는 없었지만 마력을 거의 다 소모하고 간신히 버티던 카를을 보고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굳이 추측하자면, 회귀를 깨달은 것이 아닐까.
‘재현된 사도들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조라야를 재현한 사도가 그랬다. 율법. 사도의 권능과는 명백히 다른 힘을 그 사도는 자유자재로 다루었다.
기억을 통해 알고 있는 게 아니면 율법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세 번째 사도. 놈은 자신이 용의 육신으로 있다는 것만으로도 발광했다.
낙천자(落天者) 코스모스.
역사서는 그녀가 승천에 실패했다고 기록했다. 그럼에도 용을 닮고 싶어서, 그런 육신을 가지게 되었다 적혀 있었다.
하지만 진짜 용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외형이다. 어디까지나 닮은 것에 불과했으니.
카를도 처음 봤을 땐 용이 아니라 괴물이라 생각했으나, 놈은 분명히 자신의 모습이 용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기억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에르딘 칼렉은… 초기부터 있었어.’
아스텔보다도 빠르게 아카시아와 합류한 인물이 에르딘 칼렉이었다.
죽음을 극복한 힘은 아스텔이 가져왔다. 모를 수가 없다. 에르딘 칼렉을 재현한 사도가 회귀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끌어들여서 확실히 잡겠다는 거겠지….’
회귀의 약점, 영혼.
혼을 빼앗기면 회귀는 무용지물이 된다.
절망의 신. 놈의 방식이니 놈의 사도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리라.
공격이 적중해도, 죽음은 곧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 새로 시작조차 하지 못하게 영혼을 빼앗는 것이 답이다.
나쁘지 않은 판단이다.
―투웅….
제도 북쪽 구역으로 향하는 길은 막혀 있었다.
비눗방울 같은 방어막. 기사들이 진입하는 것을 틀어막았다는 마법이 이것이리라.
그 방어막을 잠시 바라보던 카를은 곧 구조에 대한 분석을 끝마쳤다.
―푸욱.
단순한 구조였다. 물리력에 중점을 둔 방어막. 기사들의 오러는 자연스럽게 물리력으로 치환되니 뚫어 낼 수 없었을 테지만, 마력을 조금만 동원하면 쉽게 뚫어 낼 수 있다.
방어막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거름망이었다. 오직 마법사만 걸러 내는 거름망.
“…그래.”
상대는, 에르딘 칼렉.
결계 마법의 대가. 200여 년 전의 수호자. 자신이 알고, 혼자서 스승으로 생각한 그 칼렉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두 번째 칼렉은 제국 이전, ‘신성 시대’ 최고의 마법사다.
아니, 신화적인 존재다.
인간이 마족과 마법으로 맞설 수 있게 만들고,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는 마법 체계의 기초를 세우고 최초로 마탑을 세운 선구자.
700년간 마법은 끊임없이 진보했으나, 그렇다고 방심은 할 수 없다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기본에 충실한 마법일 테니….
“…….”
광장에 들어선 카를은 고요함을 느꼈다. 북쪽엔 피난하지 못한 주민이 꽤 많음에도, 주변에 생명 반응이 몇 없다.
그나마 걸리는 것도 인간이라기엔 작은, 들짐승의 것.
이미 다 죽인 걸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 옮겨 놓은 걸까.
괴이한 존재감을 느끼며 카를은 광장 안으로 발을 들였다.
“부여.”
광장에 깔린 돌바닥을 딛자마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 의미 없는 중얼거림이 아니다. 엄연히 영창이었다. 시어 마법이 밀려나기 이전의, 언령 마법. 그 초기적인 형태.
“관통.”
수백 개의 마력 덩어리들이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것이 느껴졌다.
시선을 돌린다. 화염구나 얼음덩어리 따위는 아니었다. 「분석」은 그 마력 덩어리들이 모래 알갱이라 일렀다.
그걸 확인한 순간 카를은 망설임 없이 땅을 박찼다. 흩뿌려진 모래 알갱이들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카가각!
모래 알갱이가 스치는 소리라곤 여겨지지 않는 찢어지는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속성 부여. 기초적이고 간단한,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마법. 적은 모래알에 ‘관통’이라는 속성을 부여했다.
그런 기본적인 마법임에도 불구하고 초월적인 기량은 관통을 무슨 폭격에 가깝게 만들어 놓았다.
“…에르딘, 칼렉.”
자신이 아는 칼렉은 아니다. 그는 늙어서 죽었다. 동부 마탑에 남아 있는 초상화 또한 주름진 노인의 모습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칼렉은 젊다. 그때, 아스텔의 곁에 있었던 두 번째 칼렉이라 자신을 소개했던 이와 닮았다.
그 마법사는 공허한 눈빛으로 카를을 바라보며 재차 마법을 영창했다.
“부여: 변형.”
딛고선 땅바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칼렉은 수인(手印)을 맺었다.
그와 동시에 공허한 눈이 빛나기 시작하며 모사(眸使) 마법을 준비한다. 땅바닥에는 마법진이 깔렸다.
본격적인 공세였다.
“파쇄의 발걸음.”
쾅! 바닥을 강하게 발로 내려찍어 부여된 마법을 깨뜨렸다.
그와 동시에 수인으로부터 맺어진 마법. 보이지도 않는 모래 알갱이가 카를을 향해 튀었다.
마력을 머금은 모래는 바닥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튀며 거대한 불덩이가 되어 다시 날아왔다.
“일어나, 삼켜라.”
카를은 어제의 자신이 한 일을 떠올렸다. 얼음벽과 물. 막대한 양의 물은 하수도로 흘러들었고, 광장 근처에는 하수도가 있다.
그곳에서 물을 끌어내어 날아오는 불덩이들을 차례로 삼킨다.
두 개는 막았다. 그렇다면 남은 마법은 둘. 그중 하나는, 정면이다.
“한파의 울음이 대기를 얼린다!”
무형(無形)의 공격. 하지만 카를은 막대한 양의 마력이 자신에게 들이닥침을 인지했다.
거대한 파동이 광장에 우뚝 서 있는 동상을 말 그대로 갈아 버린 순간, 냉기가 퍼졌다.
대기가 얼어붙으며 흐름이 끊겼다. 파동은 그 형태와 충격 모두를 잃어버렸다.
―투웅!
남은 것은 뒤늦게 들려오는 소리뿐. 고막이 크게 울려 머릿속이 찌잉 울렸다.
하지만, 아직 하나가 남았다. 발아래의 마법진.
“……!”
마법진은 구조를 알면 대응하기 쉽다. 그렇기에 마법진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순식간에 마법진의 구조가 바뀌었다.
본래는 화염을 뿜어내는 형태에서…정반대인 얼음으로 바뀐다.
화염구를 삼켰던 물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리라.
―쩌저저저적!
마법진에서 거대한 얼음이 솟아났다. 날카롭게 돋아난 가시들이 카를을 노리고 쇄도했다.
그에, 카를 역시 대응했다.
“한파여, 진군하라!”
파동을 얼렸던 얼음이 아직 남아 있다. 그것을 기반으로 정면에서 얼음 마법으로 맞선다.
순수한 힘과 힘의 싸움. 서로의 얼음이 부딪치며 어느 한쪽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공중으로 솟구친다.
거대한 얼음의 탑이 세워졌다. 솟아 올라간 얼음 탑이 결계에까지 닿으려는 순간.
―콰앙!
그 결계로부터 거대한 주먹이 튀어나와 얼음 탑을 분쇄했다.
마법이 아니었다. 권능 또한 아니었다.
신격이라 불리는 힘.
절망의 신이 개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