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스승과 제자 (2)
힘과 힘. 마력과 마력의 충돌이 만들어 낸 얼음 탑이 부서지는 광경은 흡사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작은 얼음 결정들이 부서지며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며 무지개를 이룬 것이다.
하지만 그런 구경도 그닥 오래 이어지진 못했다. 하늘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까닭이다.
―살겠다고 발악하는 꼴이 귀엽기만 하구나.
월식이 와서 붉어진 달. 그런 달이 하늘에 두 개가 떠 있었다.
신의 눈이 자신을 내려다본다.
―내 자식들을 셋이나 죽인 네놈을 보고만 있을 줄 알았느냐.
칼렉의 모습을 한 사도가 다시 수인을 맺고 눈을 붉게 물들이지만 카를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대신, 자신 또한 수인을 맺는다. 술식을 구성하고 영창까지 동반해 세 개의 마법을 동시에 펼쳤다.
“하늘을 가리는 방패여!”
거대한 방패가 하늘을 가로막고, 수인과 술식으로 만들어 낸 보조 마법이 방패를 보조했다.
보조 마법엔 신격마저 담겨 있었다.
다시금 거대한, 무형의 주먹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신이 강림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영향을 끼치는 중이었다.
―쿠웅!
그 주먹이 방패와 부딪치며 육중한 충격이 발생했다.
127. 한 번에 깎여 나간 신격의 양이 눈앞에 수치화되어 나타났다.
단 한 번의 공격을 막은 것뿐임에도 부담이 크다. 그렇다고 사도가 쉬는 것은 아니다.
“부여: 마비.”
눈으로 염동 마법을 발현해 쇳덩이들을 무차별적으로 날린다.
마비라니, 스치기라도 하면 잡아 내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
수인으로 발현한 또 한 번의 마법이 카를의 발을 묶었다.
콰득! 카를은 아예 땅에 발을 박고서 외쳤다.
“대지의 신령이시여, 제게 가호를 내려 주소서.”
그는 숲의 신, 알시아의 신격을 품은 적 있다.
그 덕택에 자연에 존재하는 정령들은 자신의 편이다.
정령들의 지원을 유도했고, 이는 옳은 수로 작용했다. 카를의 몸에 대지의 마력이 밀려들어 왔다.
이를 몸으로 돌려 발을 묶은 마법에서 벗어났다. 아슬아슬하게 피한 까닭에 살짝 스친 팔에서 저릿하게 마비가 퍼졌다.
“……하.”
다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주먹.
카를은 이를 으득 갈고서 땅을 박찼다.
머리 위로 얼음 방패를 만들어 충격을 한 차례 받아 내고, 도망갈 시간을 번다.
기사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던 방어막의 형태가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다.
물리적인 벽. 강철에 가까워지는 그 모습에 카를은 미간을 찌푸리고서 손에 마력을 모았다.
“발현, 낙염(烙炎).”
맹렬한 불길이 쇳덩이로 된 벽을 녹인다. 자신의 마법에 휩쓸리지 않도록 온몸에 마력을 둘렀으나,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 덕택에 벽이 녹아내리며 구멍이 생겼다. 카를은 구멍을 비집어 밖으로 빠져나왔다.
“……빌어, 처먹을.”
밖으로 빠져나오자 추격하는 마법이나, 더 이상의 개입은 없었다.
옅은 화상을 입은 손이 화끈거렸다. 손을 매개로 강력한 화염 마법을 발동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보단 다른 것이 카를의 분노를 끓게 만들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
에르딘 칼렉. 그를 재현한 사도. 마법과 마법의 순수한 기량 싸움. 거기에 잠깐이라도 도취된 자신이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
“뭘 기대한 거지….”
신성 시대의 마법사. 현재 제국에 존재하는 마법의 기초를 세운 존재. 냉철한 판단보다는 마법사로서의 호기심이 먼저 그를 이끌었다.
하지만 놈은 사도였다. 자신과 대결을 위해서 기다리던 것이 아니라, 확실한 기회를 노릴 뿐인 적.
까드득.
어금니를 깨물며 뒤를 돌아본다.
쇳덩이로 바뀌어 있었던 방어막은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다.
자신이 정한 무대가 아니면 싸우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
놈을 쓰러트리기 위해선 놈을 꺾어 내는 것은 물론이고, 신의 개입까지 이겨 내야 한다.
“……?”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막막함을 느끼며 방법을 강구하던 그때, 귓가에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마력을 펼쳐 생명 반응을 찾지만 고양이로 여겨지는 건 없었다.
허나 환청은 아니다.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고양이 울음소리는 곧 자신이 창조한 고양이 모습의 정령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였으니까.
“그래. 에멘탈.”
카를은 그 고양이의 부름에 답했다.
* * *
상업 지구로 돌아온 카를은 안전한 장소에 앉아 눈을 감았다.
외부를 인식하는 의식을 반강제로 꺼뜨리고 내면의 의식에 집중한다.
그 의식 내부로 들어오자 이전과 비슷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가장 먼저 치즈색 고양이가 품으로 뛰어들었다.
“주인이 시킨 거 다 했다!”
“…시킨 거? 아.”
염동 마법에 대한 수업과 아티팩트. 카리아에게 알려 주라고 한 것.
타인의 회귀로 인해 발생하는 기시감이 잦아들었기에 카를 또한 카리아가 성공했음은 인지하고 있었다.
“잘했어.”
가르릉. 머리를 쓰다듬자 턱을 울리며 손에 머리를 비벼 댔다.
카를은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반갑습니다. 아스텔.”
“응. 안녕, 카를로스? 근데 너도 알지? 오늘 너를 찾은 사람은 내가 아니야.”
“예.”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알 것이다.
아스텔, 그녀의 옆자리에 앉은 젊은 청년의 모습을 한 에르딘 칼렉.
커다란 방의 형태를 한 자신의 의식 세계. 그 한 부분에서, 젊은 청년의 모습을 한 에르딘 칼렉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잘해 봐. 난 에멘탈이랑 놀고 있을 테니까.”
냐아아…. 고양이 정령이 내는 나른한 울음소리를 뒤로 카를은 그를 마주 보았다.
“오랜만입니다.”
“…그래. 꽤 오랜만이네.”
그와의 첫 만남은 그닥 인상 깊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자신이 아는 에르딘 칼렉이 아니라는 것과 그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물어봐. 편하게.”
“도대체 에르딘 칼렉은… 어떤 인간입니까?”
눈앞에 있는 칼렉은 신성 시대 최고의 마법사.
자신이 아는 칼렉은 수많은 업적을 남긴 수호자.
각각 다른 칼렉이면서, 같은 칼렉이다.
도대체 뭔가 싶은 그들의 정체에 대해 칼렉 본인은 엉뚱한 대답을 꺼내 놓았다.
“고양이.”
“……예?”
“고양이는 아홉 번의 삶을 살지. 내 첫 번째 삶은 고양이였고, 두 번째 삶이 지금이야.”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선 말을 이었다.
“세 번째 칼렉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지. 마법에 재능은 타고났지만 그게 마법이라는 것도 모르는 깊은 산골에서 태어났거든. 거기서 나무꾼으로 죽었다.”
“……그렇습니까?”
“그래서 나도 그 녀석 이후의 ‘나’에게서 관심을 끊었어. 네가 동경하는 그 에르딘 칼렉이 네 번째인지 다섯 번째인지도 몰라.”
에르딘 칼렉이라는 이름과 마법에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을 제외하면 완벽한 타인이다.
자신이 속으로 스승으로 여겨 온 칼렉과 눈앞의 칼렉은 다른 인간이다.
“영혼이 망가지는 게 아닌 이상 환생은 반복되니까…. 뭐, 나는 특이한 경우고.”
“영혼이 아홉 갈래로 나뉘었다든가….”
“뭐, 그런 셈이지. 자세히는 몰라. 알 수가 없지. 내가 무슨 신도 아니고.”
자조적으로 중얼거린 칼렉이 카를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뭐, 실망스럽겠지만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 칼렉이 아냐. 마법에 대해 뭔가 가르쳐 준다던가 하는 건 어려워.”
쯧. 혀를 찬 그는 손안에서 수인을 맺었다.
영혼만 남은 존재는 당연하게도 마법을 쓰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마법을 쓰는 것처럼 수인을 맺고서 웬 곰방대를 꺼냈다.
대충 쭈그려 앉은 그가 그걸 입에 물자마자 아스텔의 외침이 날아들었다.
“칼! 여기선 그거 피우면 안 돼!”
“물고만 있는 거다.”
신성 시대 최고의 마법사.
마탑의 근원. 모든 마법의 기틀을 세운 자.
그런 어마어마한 칭호들과 달리, 그는 굉장히 소탈한 자였다.
아니, 격이 없었다.
아마도 카를이 또 다른 자신을 스승으로 여기는 것이 그 이유이리라.
“네가 쓰는 마법이 내가 쓰는 마법보다 훨씬 진보했어. 내 마법이 돌도끼라면… 네 마법은 쇠도끼야.”
“그런데 저는 쇠도끼를 쥐고도 돌도끼를 쥔 상대와 비등했군요.”
“어… 말이 그렇게 되나? 뭐, 이해해라. 비아냥거린 건 아니야. 그냥 비유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곰방대를 만지작거리던 손길이 멈추었다. 칼렉은 카를을 말없이 올려다보았다.
“돌도끼를 지닌 이의 체급이 훨씬 높았거나, 싸움법이 좋았거나… 아니면 쇠보다 단단한 돌을 쓴 도끼일 수도 있습니다.”
“…….”
“제가 왜 이기지 못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선 제 무릎을 탁, 치고는 말했다.
“너 인마, 그거 재밌는 말이네. 내가 살아만 있었으면 널 제자로 들였는데. 아쉽게 됐어.”
“……그렇습니까?”
“어. 왜냐하면 너는 다르게 물어볼 수 있었거든. ‘댁의 약점은 뭐요?’라고.”
북쪽 광장의 사도는 눈앞에 있는 두 번째 에르딘 칼렉의 재현이다.
본인에게 직접 약점을 묻고 공략하는 것 역시 방법이었다.
“그러면 쉽고 편한 길로 가는 거지. 훨씬 진보한 마법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걸로 약점을 파고들면 끝이잖아?”
“그렇게 쉽게 당해 주진 않더군요.”
“음, 글쎄다? 쉽게 당해 주지 않은 건지, 아니면 네가 쉽게 끝내고 싶지 않았던 걸까.”
정답은 후자였다.
신성 시대 최고의 마법사와, 겨뤄 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으니까.
“약점부터 잘 파고들어. 내가 쓰는 마법은 네 마법처럼 짧게 발동되지도 않고, 최적화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뛰어나지도 않아.”
“…….”
“마법 자체가 차이가 난다니까? 그냥 그걸로 밀어붙이면….”
“아니오. 칼렉. 당신의 모습을 한 사도는… 제게 안 밀렸습니다.”
그는 곰방대를 입에 물고 카를을 향해 더 말해 보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위력도 완성도도 마법을 구성하는 속도도, 무엇 하나 밀리는 게 없었습니다.”
“흠.”
“제가 구시대의 마법을 썼다면 그대로 밀렸을 겁니다. 분명, 차이가 있어요. 무엇이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낸 건지, 그게 알고 싶습니다.”
에르딘 칼렉이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아까 했던 말 정정해야겠다.”
툭. 그가 곰방대를 놓았다.
파스슷… 손에서 떨어진 그것은 곧 빛의 입자가 되어 사라졌다.
“나는 비록 죽어서 이렇게, 영혼만 남아 있어서 말밖에 못 하지만… 말뿐이라도 가르치는 건 할 수 있어.”
“예.”
“그런 방식에 불만이 없으면 뭐, 죽었어도 제자는 들일 수 있지. 제자 할래?”
카를은 고개를 숙였다.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스승님.”
“…….”
곧바로 나온 대답. 물어본 본인도 놀랐는지 그는 잠시간 카를을 말없이 응시했다.
그가 고개를 살짝 갸웃 기울인 순간 어디선가 짝짝짝―하고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스텔이 친 박수였다.
“축하해, 칼! 첫 제자네!”
“……그러게. 아니, 근데 바로 스승이라고 해 버리네. 이 나이 먹고 제자가 생길 줄은. 허, 참.”
에르딘 칼렉이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두 번째 칼렉에겐 제자가 없다.
정확하게는, 그를 추종하며 따르던 마법사는 있지만 그가 제자로 삼은 마법사는 없다.
그를 따르던 마법사들은 그 당시를 기준으로도 그리 뛰어나진 않았기에.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하암. 고양이가 연상되는 하품을 한 그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래. 간단하게, 네 마법이 더럽게 단순하다는 것부터 알고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