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219
219화 스승과 제자 (3)
“아,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냐. 그냥 내가 딱 보자마자 느낀 게 그거였어.”
“단순하다….”
“어. 아, 마법 자체가 단순하다는 말도 아냐. 네가 쓰는 마법은 내가 쓰는 것보다 훨씬 발전해 있으니까.”
그가 관자놀이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그냥 뭐, 성능만 따지면 네가 쓰는 마법이 훨씬 뛰어난 게 사실이거든.”
“예.”
“근데, 단순해.”
에르딘 칼렉이 몸을 일으켰다.
“아스텔! 부탁 하나만 하자.”
“응? 뭔데?”
“여기 환경 좀 바꿔 줘. 내가 마법 쓸 수 있게.”
“여길?”
“상관없습니다.”
타인의 의식 세계를 어떻게 마음대로 바꾼다는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칼렉은 당연하다는 듯 부탁했고, 아스텔은 못 한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믿지 못할 일투성이인데 뭐 어떤가. 카를은 그런 심정으로 말했다.
“음… 그럼 허락도 떨어졌으니까, 알겠어.”
아스텔이 그렇게 말한 직후,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
의식. 사념 세계라고도 불리는 인간의 내면. 카를은 자신의 내면이 뒤바뀌는 것을 보고 있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자, 두 개의 달이 떠 있었다.
유달리 밝고 하얀 달빛에 카를은 고개를 내려 주위를 살폈다.
“다른 나를 만나 본 적은 없어서 모르겠다만.”
“…….”
“지금의 나는 첫 번째 삶을 분명히 기억해.”
아홉 번의 삶.
그중 첫 번째, 고양이의 삶.
에르딘 칼렉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양이였지. 네가 만든 저 고양이랑 다르게 털은 시꺼멓고 눈은 노랗고 털은 퍼석퍼석하고.”
“…예.”
“그리고 음, 더럽게 약해서 다른 고양이들한테 먹을 걸 다 뺏겼어. 그래서 비쩍 말랐다.”
카를은 달로부터 고개를 내렸다.
주위를 둘러보자 새하얀 눈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겨울이 온 거야.”
“…….”
“털도 없고 마른 고양이가 겨울을 지냈겠냐?”
“잘, 못 지냈겠지요.”
“어. 그래서 죽었다.”
꽥. 그는 고개를 살짝 꺾으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카를이 무표정으로 그걸 가만히 바라보자 흠흠, 헛기침을 하고서는 다시 말했다.
“어쨌든 그렇게 죽은 거야. 얼어서 죽었지. 더럽게 추웠어. 죽기 직전도 기억해. 그때가 유일하게 안 추웠으니까.”
그가 수인을 맺었다.
“그리고 내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을 때, 그 겨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알았다.”
“…….”
“일흔여덟 명. 여기에 고양이 같은 들짐승들도 많이 죽었지.”
수인을 맺은 손을 양옆으로 벌린다.
손과 손이 서로 떨어진 순간 미약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더럽게 추웠던 거지.”
하아. 카를의 입에서 얼어붙어 하얗게 된 숨이 흘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겨울이었어. 갑자기 찾아온 겨울이니까. 겨울이 올 시기가 아닌데, 하늘에선 눈이 쏟아지고 칼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니까.”
손이 서로 멀어질수록 바람의 세기가 거세졌다.
“준비가 안 되어 있었어. 벽난로를 땔 장작이 모자랐지. 장작을 구하러 산으로 올라갔는데도 그랬어. 그 겨울은 나무를 죽일 정도로 차가웠거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먹을 것도 없었지. 여름에 농사를 짓고 가을에 수확을 해서, 겨울에 먹을 준비를 해야 하는데… 가을도 아니라 여름에 겨울이 온 거니까.”
“…….”
“푸릇했던 작물들도 다 죽어 나갔어. 감자나 옥수수 같은 걸 기르기에도 너무 추웠지.”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거센 바람이 불어닥쳤다.
“고양이 같은 짐승은 얼어 죽었지만, 인간들은 굶어 죽었지.”
“…….”
“장작이 없으면 식탁이라도 때는 게 인간이니까. 악착같이 살았지만 그래도 뭐… 방법이 없는 겨울이었어. 너무 갑작스러워서, 허무맹랑한 겨울.”
눈에 발자국을 남기며 다가온 에르딘 칼렉이 말했다.
“우리는 마법사다. 나도 마법사고, 너도 마법사야. 그러면 너한테 물어볼게. 마법사는 뭐냐?”
“어떤 존재냐고 물어보시는 겁니까?”
“아마도?”
“마법사는.”
사전적인 의미를 묻는 게 아니다. 마법사라는 존재의 의미. 그걸 물어보는 것이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존재이지요.”
“그래.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거야. 그때 그 갑작스러운 겨울도 웬 미친 마족 한 놈이 저지른 짓이었지.”
“…….”
“인간이, 아직 마법으로 마족에게 맞서지 못했을 때였으니까.”
신들이 살아 숨 쉬고 추종자들과 함께 살았던 신성 시대의 이야기였다.
“더럽게 진부하고 낡은 이야기다.”
“예.”
“단순하다는 게 그냥 단순하다는 게 아니야. 언령의 구조, 술식의 구조, 수인의 형태. 그런 게 아니라… 마법 자체에 대한 이야기지.”
겨울의 한가운데서 태초의 대마법사가 말했다.
“네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성적인 놈이었으면 이런 이야기도 안 했을 거야. 그런데 너는 나름 호기심도 있고 낭만도 있어.”
“…그 호기심이 패착이었습니다.”
“그 호기심이 마법을 더욱 발전시키지.”
에르딘 칼렉이 카를의 어깨를 두드렸다.
“우리는 상상으로부터 마법을 만들지. 그리고 상상을 더 뛰어나게 만들어 주는 건 경험이다.”
“…….”
“고양이였던 나를 죽인 겨울을 직접 겪고 나니까 그런 겨울을 만들 수 있더라.”
눈보라가 짙어서 달도 보이지 않는 환경.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인간이었을 때 이 겨울을 직접 피부로 맞았더라면, 이것보다 훨씬 혹독하고 추운 겨울을 상상할 수 있었을 거다. 인간은 그런 존재니까.”
진중하게 얼굴을 굳힌 칼렉이 말했다.
“근데, 지금 제자 너는 그런 경험을 보충할 물리적인 시간도 없고 그럴 환경도 아니지.”
“시간이라면 충분합니다.”
“아, 사망 회귀?”
손끝이 얼어가는 것을 느끼며 카를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 칼렉이 헛웃음을 흘렸다.
“죽음도… 뭐, 경험이 될 순 있어. 하지만 난 반대다. 죽음은 경험보다는 트라우마에 가까워. 트라우마가 쌓이다 보면 중요할 때 망설이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 여기.”
발목까지 눈이 쌓인 설원, 아니 설국.
“네 의식 세계.”
“…….”
“이 세계의 주인은 너다. 우리는 손님이고. 네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곳이야.”
“그러면 아스텔은, 어떻게.”
“걔는 재주가 뛰어나서 그런 거지.”
그는 눈으로 뒤덮인 어깨를 으쓱였다.
“꿈에선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아. 그리고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지. 조금만 노력하면 네 의식을 네가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될 거다.”
“…….”
“뭐, 한 번 분리됐던 것 때문에 조금 힘들긴 할 텐데, 그래도 해 봐. 제자야.”
그런 말을 남기고서 에르딘 칼렉은 돌아섰다.
푸욱, 푹. 성큼성큼 걸어가던 그의 모습은 곧 눈보라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남은 흔적이라곤 그의 다리가 있었던 구멍 두 개. 그마저도 눈이 쌓이고 있어, 곧 흔적 자체가 없어질 듯했다.
“…….”
카를은 선 채로 눈을 감았다.
꿈을 꾸는 것처럼 이 세계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도록….
그러는 동안에도 눈은 끊임없이 내렸다.
끊임없이.
* * *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제국 최강. 본인의 이름으로 말하길, 검귀.
검의 귀신이라는 이명은 동부에서 생겼다. 그 이명의 주인은 그것을 몹시 흡족해하며 이곳저곳에 대고 다녔다.
그런 검귀의 이야기는 테나도 알고 있다. 집행관은 순수한 무인이라기보다는 적당히 정치적이고, 적당히 무력을 지니고 있으나 마음만은 무인에 가까웠다.
당연하게도 강한 힘을 동경한다.
“허….”
그런 힘의 정점을 본 듯 해서 테나의 마음은 싱숭생숭했다.
얼마나 베었나. 자신이 스물 남짓한 마족을 벨 때, 검귀는 족히 일천은 베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용은 어땠나.
조금 큰 도마뱀 수준의 새끼용이 갑자기 덩치가 커지더니, 성체용과 다를 바 없게 되었다.
곧 있어 다른 성체용들도 몰려왔다.
백색용들끼리는 보는 것을 공유한다. 검귀가 한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후우.”
“왜 그러십니까? 수석 집행관님?”
자신이 본 모든 내용을 테나는 아티팩트를 통해 연락 담당 집행관에게 전했다.
그 집행관은 다른 집행관에게, 다른 시설에… 그렇게 연쇄적으로 이어져, 이미 당주가 있는 저택에 도달했으리라.
믿기지 않는 소식이어서 뭐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수석 집행관이라는 이 자리가 좀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런 복합적인 마음에 그녀는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아, 혹시 좀 마실 거 있나?”
“물이랑… 또 독한 술 있습니다. 어떤 걸로 드릴까요?”
“물.”
아무리 그래도 근무 시간에 술은….
테나는 손사래를 쳤고 근무지의 담당자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물이 담긴 컵을 내밀었다.
물을 들이켜고 나서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
“아! 테나 집행관님!”
벌컥. 나무로 된 문이 열리면서 검귀, 아담이 들어왔다.
그의 머리는 흠뻑 젖어 있었다. 아담은 천으로 제 머리를 털면서 말했다.
“여긴 되게 좋네요? 이런 외곽에서 따뜻한 물이 나오는 곳은 처음 봅니다!”
“…평범한 여관이랑 비교하시면 안 됩니다.”
외곽으로 파견되는 관리들을 위한 시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여관과 다를 바 없지만, 내부는 완벽했다.
테나가 아담을 데려온 이유 또한 그 완벽한 시설 때문이었다.
수많은 적을 베어 피범벅이 되었던 그는 씻을 곳을 찾았다. 그리고.
“그런데 테나 집행관님, 정말 돌아갈 방법이 있는 겁니까? 바로?”
“예.”
그 시설에는 워프 게이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테나가 아담을 찾기 위해 이용했던 게이트였다. 아직 활성화가 되지 않아 바로 쓸 수는 없었지만.
“대신 아담 경… 일단은 저희 당주님을 한번 뵙고 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법사님이요?”
“아, 아니요. 각하께서 가주직을 양보하셔서… 지금은 동생분이 맡고 계십니다.”
“아하! 그렇습니까? 그러면 마법사님은요?”
“제도에 중대한 문제가 생겨서 제도로 가셨습니다.”
“아하, 이런 습격 말씀이시지요?”
“예. 일단은 그렇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수석 집행관인 그녀도 제도의 상황은 알 길이 없다. 제도로 향하는 워프 게이트 경로는 틀어막혔고, 소식도 들어오지 않고 있으니.
“당주님을 뵌 다음에는 원하시는 곳으로 가실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아카데미도 가능합니까?”
“예. 물론이지요. 아카데미라면… 그, 연인분을 만나시려는…?”
일천 명의 적을 베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해맑은 얼굴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너무 오래 돌아다녔습니다. 화가 잔뜩 났을 것 같은데, 하하….”
“꽃이라도 한 송이 사 들고 가십시오.”
“꽃, 말씀이십니까?”
“예. 저도 여자이니 나름 마음을 압니다. 분명 꽃을 좋아하실 겁니다.”
“아하… 알겠습니다.”
꽃. 검 손잡이를 어루만지면서 그 단어를 되뇌이는 검귀를 향해 테나가 물었다.
“그런데 아담 공, 그 용은… 같이 안 가십니까?”
“예!”
“혹시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아담 공께서 얻은 힘은, 그 용이 주었다고….”
승천자. 인간을 초월한 힘과 오러를 가진 검귀는, 그 승천자였다.
“그렇긴 합니다만 제가 그 용과 같이 다니진 않습니다. 어차피 그 녀석은 어디선가 저를 보고 있을 테니까요.”
“아….”
“용들은 자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고고한 존재를 원하는 거지 자기들을 쫓아다니는 추종자를 원하진 않습니다.”
하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테나 또한 고개를 주억였다.
전장에서 새끼용과 아담이 짧게 주고받은 몇 마디의 말. 그것은 테나의 귀에도 들어왔다.
힘을 준 존재와 힘을 받은 존재의 대화라기엔 믿기지 않았다.
대화의 주도권을 가진 것은 아담이었고 용은 가만히 요구를 수용할 뿐이었다.
“아담 공께선 그러면 용을 추종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대체 어떻게 했기에 그, 용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겁니까?”
“음.”
자신의 턱을 한 차례 쓰다듬은 아담이 말했다.
“저는 용을 사냥하고 싶습니다. 그걸 들으니까 한번 해 보라면서 저한테 힘을 주더군요.”
“아….”
“저 같은 별종만 승천자가 될 수 있나 봅니다.”
그렇게 말하고선 아담은 하하,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