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스승과 제자 (5)
막다른 길. 그 의미는 카를도 알고 있었다.
그들의 기록에 생생히 적혀 있다.
인간과 마족들의 전쟁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탄생한 전쟁의 신.
그 신에게 패하고 아스텔을 비롯해 8명의 건국 공신들이 기록에서 지워진 것.
“우리는 결국 싸움에서 졌어.”
스륵. 코스모스가 팔을 들어 올리자 로브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손이 드러났다.
일부는 피부로, 일부는 비늘로 뒤덮인 손. 피부에서부터 시작해 비늘에서 끝나는 기다란 흉터가 새겨져 있었다.
“그건 결국, 우리의 방식이 틀렸다는 뜻이야.”
영혼에 새겨진 흉터.
얼마나 깊이 새겨진 상처이기에 영혼이 된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가.
카를은 문득 그것이 궁금해졌다.
“그뿐이야. 이번엔 지지 말았으면 해.”
“…방식이 틀렸다고 하셨지요.”
“응.”
“어떤 방식이었습니까?”
이들이 신과 싸운 방법.
붓을 쥔 사관의 손에서 쓰인 글보다는 직접 말로 듣는 것이 훨씬 정확하리라.
“여러 가지가 있었어.”
“여덟 가지인가요?”
“음… 우리가 여덟 명이긴 하지만, 방식은 그보다 훨씬 많았어.”
문득 코스모스가 고개를 돌렸다.
눈이 휘몰아치는 설국과 고요한 겨울. 상반된 두 겨울의 사이, 경계선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 무언가 있는 걸까. 잠시 그곳을 바라보던 코스모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스텔은 수많은 방법을 고안해 냈어. 수백 개가 넘은 걸로 기억해. 물론, 그것들을 전부 다 시도해 보진 못했어.”
“그러면 시도해 본 것 중에, 가령 예를 들면 어떤 게…?”
“용들과 같이 싸우는 것.”
―아스텔은 나이를 짐작할 수도 없는 고룡들과 친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벗처럼 보였다.
아나스타시아가 해 준 말. 그 목소리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용은 신들과 마찬가지로 불멸의 존재니까. 물론 불멸의 방식은 전혀 다르지만, 불멸자는 불멸자로 상대해야 하지 않을까하고 떠올린 아이디어였지.”
“그리고 성공했군요.”
“응. 심지어 아스텔은 용왕들을 설득했어.”
그녀의 말을 들은 카를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용왕이라고요?”
“응. 용들의 왕. 들어 본 적 없어?”
“…예.”
그 자존심 강하고 고고한 존재들이 왕을 섬긴다고? 전혀 처음 들어 보는 소리였다.
기록에서도, 이 세계를 기반으로 한 게임에서도 용왕이라는 말은 들어 본 적 없다.
“아, 하긴 그럴 만하겠구나. 용왕은 셋이 있어… 그런데 여행자, 너는 이미 용왕 중 하나를 만나 본 적 있어.”
“……예?”
자신이 마주친 용이라고 해 봐야 그리 많지 않다. 새끼 백색용, 하늘꿈. 허상 세계에서 멀찍이 마주친 이름 모를 백색용. 그리고 이시엘을 마왕이라 불리는 승천자로 만들어 준 흑색용.
하늘꿈은 확실히 아니다. 그렇다면 다른 둘 중 하나라는 말인데….
“설마, 그 흑색용이.”
영혼의 떨림에 대해서 말하던 흑색용. 카를이 아직 자신을 ‘이정현’이라고 인식하고 있을 때 마주친 존재.
몸과 영혼이 서로 다른 이의 것이라고 여길 때 발생하는 간극, 그 뒤틀림. 그는 그것을 간파한 유일한 존재였다.
“응. 우리랑도 안면이 있어. 별명은… 붉은 눈. 아스텔의 설득을 받고 대전에 참여한 용왕이야.”
“신들에 대해 그렇게 호전적인 것도, 그것 때문입니까?”
“그 영향이 적지 않지. 심지어 자기 승천자도 신살을 할 수 있는 아이로 삼았잖아?”
코스모스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물론 흑색용들은 무리를 짓지 않고 딱히 충성심 같은 것도 없어서, 너희가 생각하는 왕과는 다를 수 있어. 하지만 왕이 될 수 있는 흑색용은 붉은 눈이 유일해.”
짚이는 부분이 있었다. ‘붉은 눈’이 이시엘의 요청에 따라 땅으로 내려왔을 때, 그것만으로 연합의 마족들이 절망하고 포기한 것이다.
‘아무리 용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용이 본능적으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포식자에 해당하는 생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날 선 투지를 꺾을 정도는 아니다. 그랬더라면 한낱 인간이 용을 살해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붉은 눈’이 용들 중에서도 격이 다른 존재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그런 용이 있었는데도 전쟁에서 패했다니….”
“나랑 탈리아는 그 전쟁을 대전(大戰)이라고 불러. 그 정도였으니까, 진 거였지.”
낙천자가 텅 빈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우리의 패인은 너무 큰 싸움을 했다는 거야. 여행자, 너는 우리처럼 해선 안 돼. 그러면 역사가 반복될 뿐이야….”
“이번에는 끝이 좋지도 않을 테고요.”
“그래. 맞아, 카를로스. 그러니까… 우리랑은 다른 길을 찾아.”
코스모스가 고개를 내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느라 머리를 가리던 로브가 벗겨져 한 쌍의 작은 뿔이 드러났다.
기록에서 이르기를, 용의 선택을 받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실패자.
자신의 존재 그 자체가 증거라는 것처럼 몸을 드러낸 낙천자가 말을 이었다.
“너만의 길을, 너만의 마법을 찾아.”
* * *
코스모스는 그 후로 등을 돌려 떠났다.
애초부터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자신의 마법을 실패작이라 여기던 카를의 생각을 바로잡아 주고, 대전 시기에 대한 말들을 꽤 하긴 했지만….
애초부터 그걸 말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인지 더 할 말이 없는 모습이었다.
‘낙천자.’
승천에 실패한 존재. 용과 같이 날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이.
하지만 승천에 근접했고, 육신의 일부가 용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만큼 용에 대해서는 잘 알았다.
‘지금 남아 있는 용왕은 둘.’
대전 시기에는 용왕이 셋이 있다고 했다.
백색용들의 왕과 ‘붉은 눈’ 그리고 제룡(諸龍)이라 불리는 용.
백색용들의 용왕은 목숨을 잃었으며, ‘붉은 눈’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제룡은 참전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었다.
“승천의 운명….”
승천자는 ‘반드시’ 존재한다. 시나리오에서 카리아 프라헨이 승천을 이루기 전에 목숨을 잃은 경우, 다른 이가 승천자가 된다.
원래는 승천자가 되었어야 할 드라일이 죽었다. 한 명의 승천자가 남았고,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카를 자신이었다.
“…….”
자만하고 있는 걸까. 칼렉의 마법과 자신의 마법을 비교했던 감정이 아직 남아 있어 그런 생각이 들지만, 카를은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용왕이라 불리는 ‘붉은 눈’이 인정한 사실이다. 카를 자신은 어떤 용의 선택도 받을 수 있다고.
제룡이라 불리는 또 다른 용왕의 선택을 받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다.
다만.
“모르겠다….”
승천이 답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승천은 막강한 힘을 갖게 해 준다. 그럼에도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이유는 그런 막강한 힘도 부족한 탓이다.
승천자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그 힘을 준 용보다 강할까.
그런 용마저 패배해 목숨을 잃었다. 힘이 모자란 것은 사실이다.
“……후.”
카를은 한숨을 내쉬고서 고개를 저었다.
부정적인 생각은 도움이 안 된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정체되는 시간이 아깝다.
이 세계는 자신의 무대. 마법을 무제한으로 구현할 수 있다. 단련은 안 되지만, 연습은 가능하다.
카를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붉은 눈….”
그 용왕이 선물한 비늘은, 자신의 의식 내부에서도 구현되어 있었다.
확정적으로 용왕의 힘을 빌릴 수 있는 방법. 본래의 계획은 사도들을 쓰러트리고 절망의 신이 강림하면 그 즉시 용을 불러들이는 것이었으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절망의 신은 전쟁의 신 다음가는 존재다. 놈에게 카를 자신의 힘이 통한다면 전쟁의 신에게도 어느 정도는 통할 것이다.
이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나, 이곳에 서서 지평선의 끝을 바라보니.”
아까 코스모스가 바라보던 방향. 그곳으로 시선을 돌린 카를이 마법을 영창했다.
“그 끝과 딛고 선 대지를 이으리라.”
공간 마법의 응용. 웜홀이라 표현해도 좋을 그 마법을 사용해 카를은 한 순간에 공간을 도약했다.
어마어마한 마력의 소모가 있어야 하지만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역시, 이 세계는 자신의 세계다.
그리 확신한 순간 당황한 목소리가 흘렀다.
“어.”
자신이 제멋대로 스승이 되어 달라 청한, 에르딘 칼렉의 목소리다. 고양이의 음성으로 이루어진.
눈 덮인 설원에서 웅크리고 있던 에르딘 칼렉은 카를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풉….”
참지 못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옷에 묻은 눈을 털던 칼렉이 신경질적으로 몸을 돌렸다.
배를 부여잡은 채 소리를 죽이고 폭소하는 아스텔. 부들거리던 칼렉은 이내 익숙한 듯 한숨을 내쉬고서 입을 열었다.
“그래. 코스모스가 뭐라든?”
“제 길과 스승님의 길이 다르다고 하더군요. 다른 마법을 찾으라고….”
“틀린 거 하나 없어. 맞는 말이야. 내가 그랬잖냐. 네가 쓰는 마법이 훨씬 진보되어 있다고.”
팔짱을 낀 칼렉이 물었다.
“나는 내 경험을 중점으로 마법을 수련했다. 다른 수련법은… 내가 죽기 전까진 몰랐다. 그런 걸 연구할 만큼 여유가 있진 않았거든.”
“예.”
“경험을 바탕으로 마법에 깊이를 더하는 거. 그거 외엔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게 없어. 그런데도 나한테서 가르침을 구하려고?”
카를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휘둥그렇게 뜨는 칼렉을 향해 그가 말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경지에 이른 것 역시 사실이지요. 그리고 꼭, 이론적인 가르침이 아니어도 됩니다.”
“그러면?”
“당대 최고의 마법사가 펼치는, 경험을 기반으로 한 깊은 마법. 그걸 보고 싶습니다.”
“어….”
칼렉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래, 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니까….”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자신의 겨울 한가운데서 칼렉이 수인을 맺었다.
수인(手印)은 전혀 공부하지 않은 카를도 알고 있는 손맺음, 열(熱)과 물이었다.
“극과 극은 서로 상충되는 부분이 있어. 이런 극저온에서 열기를 이용하면 갑작스럽게 식으면서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지.”
수인을 맺은 양손을 떼는 것과 동시에 마법이 발동했다.
시리도록 차가운 겨울에 흩뿌려지는 뜨거운 물이 순식간에 얼어붙으면서 장관을 연출했다.
당연하게도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최초의 대마법사답게 그 이후가 있었다.
―퍼버버벙!
찰나에 불과한 순간 동안 얼어붙은 결정들이 굉음과 함께 폭발을 일으켰다.
온통 하얀 설원이었기에 그 위력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일대의 눈밭이 초토화된 것은 분명해 보였다.
“격렬한 반응을 마법으로 한 번 더 발동시키면 이런 것도 가능해. 어쩌다 알게 된 건데, 잘 썼지.”
“다른 것도 보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얼마든지. 대신, 이번엔 머리를 좀 써야 할 거다.”
짝. 에르딘 칼렉이 손뼉을 쳐서 자신이 만들어 낸 겨울을 끝냈다. 휘몰아치던 눈보라가 그쳤다.
화염 마법을 쓰려는 것이리라. 카를의 그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눈보라가 그침과 동시에 구름이 개었다.
가장 먼저 구름이 개어 하늘이 열린 곳. 그곳에서 햇빛이 쏟아졌다.
―화아아아악!
칼렉은 마력을 덩굴처럼 뻗어 그 햇빛을 끌어모았다. 그의 손안에 모인 햇빛은 따스하게 발광하다가, 곧 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 수준이 아니다. 무언가를 태우거나, 녹일 수 있는 열기. 칼렉의 손안에 모인 열기가 구체의 형태를 갖추었다.
그는 사과를 쪼개듯 양손으로 구체를 쥐어 비틀었다.
―후욱!
구체가 커지기 시작했다. 칼렉의 몸보다 커진 구체는 더 이상 빛이 아닌, 화염이 되었다.
점점 커지며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화염과 열풍. 두껍게 쌓인 눈은 녹아내림과 동시에 증발해 수증기를 일으켰다.
“……아.”
실전(失傳)된 걸까, 아니면 난도 높은 마법이라 배운 이가 없는 걸까.
햇빛을 응용해 화염 계열 마법을 발현하다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방으로 뻗쳐 나가는 화염을 바라보던 카를은 그 화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온 화염이 마력에 닿는다. 단순히 보기만 하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묘리가 피부에 와닿는다.
딱!
카를은 손가락을 튕겨 자신이 만들어 낸 겨울을 지워 없앴다.
칼렉과 마찬가지로 햇빛이 구름을 비집고 쏟아졌다. 옆에서 본 것과 똑같이 마력으로 햇빛을 끌어모아 응축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떠오른 발상을, 응용한다.
‘구체여야 할 필요도, 내 주위로 퍼져 나가게 할 필요도 없어.’
햇빛이 응축되는 사이에 계산을 끝마치고 마법을 수정했다.
“가려졌던 태양의 힘으로써 창을 겨누리라.”
구체가 아닌 창의 형태. 마법은 카를에 의해 개변되어 손안에 새하얀 빛의 창이 형성되었다.
그것을 손으로 쥐고, 내던진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창이 눈밭 어딘가에 꽂힌 순간, 강력한 화염파가 발생했다.
“허….”
그 믿기지 않는 상황을 이해한 칼렉은 감탄과 기쁨이 뒤섞인 숨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