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227
227화 다만 왕이 이르기를 (1)
제국이 용을 숭앙하는 이유는 제국이 세워질 적 그들이 인간들을 위해 날았기 때문이다.
이후로 700년. 제국은 대륙에서 제일 거대한 국가가 되었으며 땅을 걷는 종족 중에선 제국을 위협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마법으로 인간을 압도하던 마족들은 더 이상 그러지 못하게 되었으며.
지천에 깔려 있던 마수와 마물들은 여러 인간에게 하나씩 사냥당했고.
그나마 제국 내에서 번성했던 다른 종족, 엘프와 드워프 역시 제국에 흡수되어 똑같은 인간으로 불리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용과 제국이 맺은 맹약도, 그들이 제국을 수호한다는 사실도 잊은 이가 많았다.
살면서 한 번 보기도 힘든 존재가 용이었기에 그 존재에 의구심을 갖는 자가 생겨나기 시작할 무렵.
제국의 심장, 제도의 상공에 다섯 용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오랜만에 힘을 좀 썼군.”
용의 날개는 이곳저곳이 찢어져 있었다. 구멍이 뚫린 곳도 있었다.
비늘이 부서져 벌어진 틈도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그런 상처들은 가벼운 생채기에 불과했다.
상처 입은 용 역시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상처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대신 그 눈은 어느 구조물을 향해 있었다.
“…흐음.”
용과 신의 싸움. 그 여파로 폐허가 된 제도에서 유일하게 이전과 같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건물.
노을빛을 반사하는 하얀 십자가가 인상적인 백십자교의 교회였다.
“저것이 이렇게 무리를 한 이유도 이해가 되는군. 신앙 하나만큼은… 알아줄 법해.”
“역시 속아 넘어간 건 아니었군요.”
“아페마나이스 그것은 영리하진 않아도 멍청하지도 않다. 거느리는 사도들도 수없이 많은데 인간 한 명에게… 속아 넘어가겠느냐.”
마지막 말을 느리게 꺼내는 ‘붉은 눈’의 습관. 싸움에 임했을 때는 평범하게 말하던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여전히 나른한 어조로 말을 늘였다.
“아마 카이렌 그것도 알고 있었겠지. 아페마나이스는 제 놈에게 속아 넘어갈 놈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미끼를… 함께 던졌다.”
“…신앙심.”
“그래. 저 교회를 보아라. 신앙이 깊으니 아페마나이스의 파괴에서도… 살아남지 않았느냐.”
아페마나이스가 노린 것은 저 막강한 신앙심.
놈을 향한 신앙심은 ‘절망’이니 저만큼이나 깊은 절망을 새겨 넣고 힘을 얻으려 했으리라.
대전 시기, 막강하기 짝이 없었던 그때만큼이나 강한 힘.
‘가만히 있었어도 됐을 텐데….’
이 세계가 시나리오대로 흘러갔더라면 저절로 제국에는 절망이 넘쳤을 터이니.
놈이 원래의 운명대로 강림했더라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으리라.
다만, 놈은 그런 미래를 모른다. 그러니 칼리테가 유도한 것처럼 친히 강림한 것이겠지.
속이진 못했지만, 머리를 잘 썼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너희 인간들은 미약하지만, 마음의 힘은 강하다. 신들이 너희를 끊임없이 못살게 구는 이유지. 그런데 네 녀석은 그런 것도 아닌데… 이전과는 격이 달라졌구나.”
“…격,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잔재주 같은 마법 말이다. 아페마나이스가 부리는 거수는 꽤 까다로운 녀석인데 말이다. 약해진 채라고는 해도… 그 사실이 변하진 않지.”
용은 자신의 말을 곱씹는 카를을 보더니 느릿하게 날개를 펼쳤다.
“뭐어… 이걸로 내 딸아이를 도와준 값은 충분히 치렀겠지? 이만….”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음?”
“격이 올랐는데 신들과 같은 방법으로 강해지지 않았다는 뜻입니까?”
화염과 비슷한 색의 눈. 용은 그 붉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선 카를을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눈빛에 카를이 말을 이었다.
“제 신이, 말했습니다.”
“네 녀석의 신?”
“예. 저는 당신의 신도가 아니고… 저는 저만의 방법으로 신이 되어 가고 있다고.”
“아.”
용의 거대한 입 사이에서 피식, 아주 자그마한 웃음이 흘렀다.
“아주 거짓말은 아니다. 네 녀석은 신이 되어 가고 있다… 다만 느릴 뿐이지.”
“얼마나 느리기에….”
“지금처럼이라면 아마…수십 년은 걸릴 테지.”
수십 년.
자신만이 아는 그 신을 만나고서 아직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정녕 수십 년이 필요하다면 단기간에 극적인 변화가 발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카를은 자신의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왜 그러지? 아, 격이 높아진 네 자신에게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냐?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내 딸아이도 처음부터 승천의 힘을 잘 다룬 것은 아니었으니….”
“그게 아닙니다. 아페마나이스가… 분명히 저를 보고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엇이라고 하였기에.”
“사주를 했느냐더군요. 어리석은 신, 빌어먹을 인간이라고 말하면서.”
놈이 말하는 어리석은 신. 그게 누구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알시아일까. 아니, 아닐 것이다. 크라누스를 죽인 뒤엔 알시아와 전혀 접점이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카를 자신에 의해 탄생한 그 신뿐이다.
“아페마나이스는 허상 공간에서도 제일 깊숙한 곳에서 거처를 만들어 지냅니다. 그러니까… 허상 공간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사념체를 알아도 이상하지 않아요.”
“흥미로운 이야기로군… 그래서?”
“어리석은 신과 빌어먹을 인간. 여기서 빌어먹을 인간이 칼리테라고 생각하면… 어리석은 신은 저와 이어진, 그 신이어야 합니다.”
“흐음….”
“그런데 이상한 점은 저는 이번 싸움에서 단 한 번도 제 신이 저에게 내려 준 신격을 쓴 적이 없다는 겁니다.”
에르딘 칼렉을 만나서 가르침을 받았다. 거기에서 마법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고 정령술과 연계한 새로운 마법까지 구상해서 직접 실현했다.
거수를 상대할 때, 마력이 부족해서 신격을 동원할까 고려한 것은 사실이나….
어디까지나 고려했을 뿐, 행동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신격을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제 마법과… ‘색’으로만 싸웠습니다. 아니면 제 권능을 알아챘다는 건데….”
“권능이라? 어떤 권능을 다루기에… 그러지?”
“혹시 지금 제가 권능을 다루고 있다는 걸 느끼지 못하십니까?”
카를의 물음에 용왕은 조금 기분 나쁘다는 듯 눈매를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해 보아라. 어떤… 권능이기에?”
“같은 수수께끼를 풀어도 다른 이들보다 수수께끼의 본질을 알고 이해하면서, 답을 얻어 내는 속도가 빠른… 그런 권능입니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이유가 있었군. 과연, 인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는데….”
그리 말하던 용은 흠칫 입을 다물고서 물었다.
“그 권능이 지금도 발휘되고 있다는… 말이렷다?”
“예.”
“전혀 몰랐군. 권능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내가 모르는 것을 그것이 알아낼 리는 없을 터인데….”
지금까지 카를이 가진 권능을 알아챈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평범한 형태의 권능이 아니기에 더더욱 그런 것일 터이나, 알아내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권능의 존재를 모른다면 아페마나이스가 제 신을 언급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놈이 지껄인 그 어리석은 신이, 네 녀석의 신은 아니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것이로고.”
“예.”
고개를 끄덕인 카를이 용의 붉은 눈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해서 묻는 것인데, 대답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얼마든지.”
“카이렌의 이름을 알고 있었으니 아스텔의 이름도 아시겠지요.”
카이렌. 제국의 옛 언어. 붉은 눈은 칼리테를 그리 불렀다. 모를 수가 없다. 그는 대전에 참여한 용이었으니.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용을 향해 카를이 말했다.
“그들에겐 이명이 있었습니다. 칼렉은 두 번째 고양이, 코스모스는 낙천자… 그런데 아스텔의 이명은 들어 본 적이 없어요.”
“그 이명을… 묻는 것이냐?”
낮은 웃음을 흘린 용이 말했다.
“어리석은 신.”
“…….”
“우리 용들은 아스텔을 그리 불렀다. 아마, 저것들도 그럴 것이고. 흐음….”
카를의 얼굴을 바라보던 붉은 눈이 물었다.
“이미 짐작한 것이로고. 하기야 몰라서 물은 것은 아닐 테지… 확신이 필요했을 뿐.”
“예.”
“아마 그것이 부르짖은 어리석은 신은 아스텔이 맞을 것이다. 그것이 가장 증오하던 것이 아스텔이었고… 그래서 아카시아의 혼을 빼앗았다.”
기억의 회랑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사념 세계의 주인.
타인의 의식을 드나들며 그 의식 내부를 자신이 바라는 대로 바꿀 수 있다.
사망 회귀의 힘, 색깔. 그것들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타인에게 선사할 수 있다는 것까지.
보통의 존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래. 신이 아니고서야 말이 안 되었다.
“왜 어리석은 신이라 불리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저기.”
붉은 눈이 턱으로 백십자교의 교회를 가리켰다.
“저 신이 제 신도들을 지키기 위해 직접 강림했던가.”
“…지키긴 했지요.”
“직접 강림하진 않았다. 제 목숨이 아까운 줄은 아는 게다. 그런데 아스텔은 어찌하였지?”
지워진 기록이 없는 진짜 역사서.
아카시아에 대한 기록만큼이나 아스텔에 대한 기록도 적혀 있었다.
그 책이 소설이라면 흔히 더블 주인공이라고 불러도 좋을 법할 정도로 그녀의 존재감은 짙었다.
“…인간들과 함께, 인간들을 위해서 싸웠지요.”
“그래. 자신을 향한 신앙심을 모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어리석은 신이라 하는 게다. 신들이 할 법할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기에. 그러다가… 죽었기에.”
“인간들을 위한 신….”
“인간들을 사랑한 신이다.”
“예?”
“아스텔 그것이 자기를 그리 불러달라더군.”
“기록에는, 없었습니다. 그런 말이.”
“고 녀석은 단 한 번도 너희들에게 자신이 신이라 한 적 없다. 내 눈을 속일 수 있었다면 내게도 그랬겠지.”
하긴, 용에게서 자신을 평범한 인간으로 숨기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신이라는 정체를 숨겼다. 그리고 기록에 남은 아스텔의 마지막 행동 역시 자신을 숨기는 것이었다.
“나를 잊어야 한다….”
황제가 될 수 있었음에도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잊게 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기록에도 남지 않아, 그녀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왜 그런 말을 한 것이고, 그런 선택을 한 걸까.
“……붉은 눈.”
“흐음?”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이게 마지막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용을 향해 카를이 물었다.
“제룡(諸龍)은 어디에 있습니까?”
* * *
어느 인간의 물음에 ‘붉은 눈’은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제룡. 모든 용들의 왕. 섬김을 받는 존재는 아니지만, 그 용이 가진 힘은 능히 모든 용의 왕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용왕 ‘붉은 눈’이 자신보다 강하다 인정한 두 존재 중 하나였다.
“……참.”
급하게 인사를 하고 떠나가는 인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용의 언어로 중얼거렸다.
드물게도 감정이 있는 그대로 묻어 나오는 말이었다.
“역시 내 딸아이가 보는 눈은… 정확하군.”
조금은 뿌듯한 마음마저도 들었다.
아스텔보다도 더 빨리 저 인간의 잠재력을 알아보았다는 뜻이니.
“설마 저 녀석이….”
아스텔이 자신을 설득할 때가 떠올랐다.
신들이 세계를 제 것인 양 주무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느냐고, 신들에게서 해방된 세계를 보고 싶지 않느냐고.
아스텔은 그런 세계를 만드는 데 실패했지만, 저 녀석이라면.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그는 이시엘의 안목에 또 한 번 미소 지었다.
그것이 인간들에게는 흉포한 얼굴로 보인다는 것을 알 리가 없는 ‘붉은 눈’은 문득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웬 인간 무리를 발견하고서 눈을 크게 떴다.
“흐음?”
인간들이 세운 제국의 한복판이니 인간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싸움은 끝났으니 겁 없는 자들이 호기심에 이끌려 자신에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흥미를 끄는 것은 그에게 다가오는 인간들이 입은 복색이었다.
용의 머리를 닮은 투구. 비늘 형상의 갑옷. 용의 피를 타고났다는 ‘용인’의 모습을 흉내 낸다면 꼭 저럴까.
“무슨 일인고.”
그에 흥미를 가진 ‘붉은 눈’은 다시 인간의 언어로 입을 열었다.
그에 인간들이 하나같이 놀란 얼굴을 짓고, 그들의 대표 격으로 보이는 인간이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신기한 복색을 하고 있구나. 아, 설마 사냥꾼이더냐? 가끔 그것들이 전리품으로 우리 동족들의 비늘을 벼려 입는다는 말은… 들었는데.”
“정, 정말로 용이십니까?”
“그렇다. 내가 용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인데… 허어.”
씩 미소 지은 용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올리고 입을 열었다.
용의 숨결. 신의 육신마저 태우는 불길을 하늘을 향해 쏘아 낸 ‘붉은 눈’은 경악한 얼굴의 인간들을 향해 물었다.
“이제 믿겠느냐?”
그 말에 용아귀 기사단의 단장, 가렌델은 경악과 감탄으로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