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236
236화 잿더미 속에서 (1)
“어때요? 무섭지 않죠?”
“…응.”
신기한 일이었다. 권능을 상실하기 전까지 느껴지던 공포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포근함만이 느껴졌다.
그 포근함의 출처가 아나스타시아의 손에서 전해져 오는 온기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정말이지, 안나 너는… 나한테 과분한 사람이야.”
방금 보인 아나스타시아의 행동은 자신의 권능을 단번에 파훼했다. 욕을 씹어뱉었을 때 놀랄 것이라고 권능이 예측했으나,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다는 듯 포용적인 미소를 지으며 입가에 묻은 과자 조각을 떼어내다니.
카를은 인간의 탈을 쓴 사도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사도의 권능을 파훼하다니. 진심으로 놀라웠다.
“어머. 저도 그걸 매번 느끼는데. 서로에게 과분한 사람이네요. 저희는.”
“하하…”
카를은 멋쩍게 웃었다. 그녀에겐 매번 신세만 지는 것 같다고 그가 생각했다. 이윽고 아나스타시아가 눈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자격은 갖춘 것 같네요. 그럼 이제…힘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요?”
“…그래.”
“제룡이라는 용이 용중의 용이라면 그런 제룡이 요구하는 힘은 대체 뭘까요?”
백색용은 공간의 권능을, 흑색용은 파괴의 권능을 가진다. 제룡이라면 그 두 가지 권능을 모두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카를은 생각했다.
자신을 마주하고 떠나갈 때 발생했던 전이. 어떤 전조도 없이 발생했으니 권능이 아닌 다른 형태의 힘일 가능성은 낮다.
더군다나 제룡은 분명 말을, ‘용언’을 자아냈으나 칸슬 자신의 몸에 생채기도 내지 않았다.
용들이 다루는 파괴의 권능은 무분별하지 않으니 ‘용언’을 권능으로 조절한 결과이리라.
“신이 될 수 없는 인간이 자격이라면…힘도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신을 죽일 수 있는 힘.”
“아마 아닐 거야…”
아나스타시아가 나름의 추측을 꺼내놓았으나 카를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카를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두 개의 열쇠를 꺼냈다. 네모반듯한 정육면체 두 개. 열쇠는 여전히 새까맣게, 색이라곤 전혀 없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힘과 자격. 그 둘을 모두 갖추게 된다면 이미 세 번째 열쇠가 손에 들어왔으리라.
“그러면 천천히 생각해봐요. 시간은 많으니까.”
“…..용은.”
“네에.”
“보통은 두 세력으로 나뉘어. 백색용과 흑색용.”
“얼마전에 나타난 용들은 흑색용이고요.”
“맞아. 그런데 제룡은…내가 봤을 땐 딱히 어떤 용도 아니었어. 비늘의 색은…색이라고 할게 없었어.”
바다 아래에서 그 용을 바라보았을 때, 카를은 그 용의 눈을 달이라 착각했다.
그것이 용의 눈이라 알지 못했더라면 카를은 제룡을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제룡의 비늘은 밤하늘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용의 육신은 주변의 색에 따라 저절로 변해갔다.
아마도.
태초에 존재했던 고룡 중 하나. 전설 이전 신화의 시대, 그 이전에 존재했으리라.
“…..으.”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지 말고요. 카를 당신은 답을 알고 있잖아요.”
“모르겠어…그게, 맞는 건지.”
“당신은 분명 알고 있어요.”
어쩌면 자신보다 그녀가 더 잘 알고 있는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그녀는 카를을 부드럽게 이끌었다.
“일이 많았잖아요. 카를 당신은 죽음을 극복하기도 했고…당신 스스로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그 모든 상황을 당신은 모두 넘어왔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아나스타시아는 팔을 뻗어 카를의 목을 어루만졌다. 목울대를 톡톡, 건드렸다.
“심지어 제가 당신의 목을 찌르기도 했어요.”
“…..”
“그것보단 지금이 낫지 않나요? 급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요. 천천히 생각해봐요.”
당신은 분명, 답을 알고 있으니까.
아나스타시아의 목소리가 끝맺음 지어진 직후, 카를의 머리속에서 무언가 번뜩였다.
“공간과 파괴를 모두 뛰어넘고…”
제룡을 모든 용의 왕으로 만든 힘.
“전쟁의 신과도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절대적인 힘.”
전쟁의 신은 무한히 강해진다. 그런 힘에 맞선다는 것은 단순히 강한 것이 아니다. 세계를 이루는 절대적인 개념에 가깝다.
그 개념은, 아마도 하나뿐.
“시간.”
아스텔은, 다만 말하길 회귀가 시간이 아닌 ‘죽음’을 극복한 힘이라고 했다.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만을 극복한다. 원하는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 역시 불가하며, 그렇기에 그들은 아카시아를 빼앗겼을 때도 손 쓸 방법이 없었다.
“힘과 자격을 갖춘 존재…그리고, 중재자.”
세 번째 열쇠는 칼리테 펠하임이다. 카를은 그것을 확신했다.
그는 이미 시간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언제든 세 개의 열쇠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칼리테 자신의 목적은 신들을 죽이는 힘을 갖는 게 아니었으니까.
오직 아카시아를 구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그가 700년을 기다린 이유는 단지 자신이 아카시아를 구할 수 있도록, 하페마나이스의 발을 묶어둘 수 있는 존재를 찾은 것뿐이다.
그게 다름아닌 카를이었고.
“칼리테가 썼던 방법.”
“…흐응.”
“맞아. 맞았어. 안나 네가 말한댄소야.”
아나스타시아가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방긋 웃었다.
“거봐요. 제가 뭐랬어요. 당신은 알고 있다니까요.”
그녀는 찻잔을 든 손을 내려놓고 테이블 너머로 팔을 뻗어 카를의 넥타이를 잡았다. 두 번째로 만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넥타이를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제 말 들어서, 손해 볼 건 없잖아요.”
“…확실히 그렇네.”
“그러니까 한 번 더 할까요.”
박력마저 느껴지는 손길. 카를은 몸에서 힘을 빼고 그녀의 손에 이끌려갔다.
“저희 있잖아요. 카를.”
“응.”
“기회가 생기면 꽃구경을 하러 가요.”
카를은 자신이 바스라뜨린 자수정 머리핀을 꺼내었다. 권능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오직 자신만의 개성을 담아낸 마법.
다시 원상태로 돌아간 머리핀은 꽃 모양이 아니라 꽃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모습이었다.
“저희, 있잖아요. 카를.”
“응.”
카를은 직접 그녀의 머리에 수정꽃을 달아주었다.
“기회가 생기면 꽃구경을 하러 가요.”
“꽃구경?”
“네. 별과 꽃과 그대만을 위한 기사의 이야기는 꽃구경을 하러 가면서 끝나거든요.”
“…그래. 얼마든지.”
“네. 그럼, 다녀와요. 이번에도.”
아나스타시아가 슬픈 기색을 억지로 지워낸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돌아올 거라 믿고 있을 게요.”
***
칼리테는 이미 답을 알려주었다. 말로서 직접 전해주진 않았으나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았던가.
열쇠의 존재와 그의 행동을 연관지어 생각하지 못한 탓에 지금까지 헤맨 것이다.
허상 공간.
시간이 고인 연못.
그곳에선 시간을 뛰어넘는 게 가능하다. 시간을 뛰어넘는다면 제룡을 마주 볼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어지간히도 권능에 의지하고 있었군.”
모든 것이 수식이나 법진과 같은 구조로 보였는데, 이제야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
카를은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자신의 성자은 분명 권능의 도움을 받은 영향이 크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스스로의 손으로 쌓은 경지. 카를은 그곳에 올라서서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해보자.”
꽃은 모두 열매가 되려 하고.
아침은 모두 저녁이 되려 한다.
이 세계에 영원한 것은 없다.
변화와 세월의 흐름만이 있을 뿐.
나는 다만 인간이기를 바라니.
나는 다만 고여서 썩어가고 있는 시간의 섭리를 바로잡으리라.
그리하여 기꺼이 변화를 맞이하리라.
-쩌저적!
나뭇잎 하나가 눈앞에서 팔랑거리며 떨어졌다.
카를은 그 나뭇잎 너머에서 깨져나가는 세계를 보았다.
세계의 빈틈은 또 다른 빈틈으로 이어졌다.
카를은 다시 한 번 신과 용들이 노니는 세계로 발을 들였다.
이번에는 순수한 인간으로서.
“아쿠르마트나.”
어느 괴물이 뜻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괴물의 눈동자는 새까맸다. 머리카락 비슷한 것이 있었다. 다리가 열 개도 넘게 달려 있었지만 괴물은 인간을 닮아 있었다.
허상 세계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괴물.
함부로 허상 세계에 발을 들이는 필멸자를 잡아 먹는 존재들이었고.
아마도.
자신과 똑같이 신이 되어가던 인간.
-인간의 삶은 미약하여라.
그러나 신이 되지 못한 인간.
그 인간은 카를을 바라보며 으르렁대었다. 수백 개의 이빨을 드러냈다.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것이 어찌하여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는지 알기에.
“선택해라.”
-그러면서도 모두가 신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품고 있으니 그 미약한 삶에도 한 줌 의미가 있다.
“내 손에 죽던지.”
-카피나카!
“아니면 나를 연못으로 안내하고 네 원래 모습을 되찾든지.”
고함치던 괴물이 뚝 입을 다물었다. 놈은 카를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를은 위협적인 어조를 누그러뜨리고 말했다.
“네가 뭘 바랐는지는 몰라.”
“…..”
“내 친구처럼 과거에 미련이 있었든, 아니면 그곳에 있는 신을 죽이고 싶었든 강렬한 소망이 있었겠지. 그러니 여기에 온 것일 테지만 그걸 잃어버리고, 지금 같은 모습이 됐을 테고.”
괴물이 침묵했다. 날카로운 이빨을 카를을 향해 드러내지 않았다.
카를은 그것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직 소망이 남아 있다면 나를 도와줘.”
괴물이 몸을 낮추었다.
카를은 나지막히 시를 읊기 시작했다.
그는 어둠 속을 걸었다. 검은 수목들의 쌓인 그림자가 꿈을 식혀 주는 어둠 속을.
그러나 그의 가슴은 빛을 향한 타오르는 욕망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시어로 인해 마법이 발현되었다.
처음 마주한 괴물 한 마리가 카를을 따라왔다. 연못 주위에는 수많은 괴물들이 있었다. 절망의 신 앞에 무너져 절망한 괴물들. 그 괴물들은 카를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다가,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뒤따라왔다.
아직 한 소절이 남아 있었으나, 이미 완성된 마법은 사방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카를은 연못에 닿아 그 안으로 들어갔다. 무릎까지 잠기는 깊은 물 속에 서서 수면을 바라보았다.
“…?”
마지막 한 소절을 읊음으로서 마법을 완성하려던 순간 수면이 일렁였다.
“안녕?”
그 수면 아래에서 붉은 머리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 보고 싶었지?”
…머리 위에서 수백 개의 별들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카를은 모르고 있었다.
***
“오랜만이다. 주인!”
“…그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수면에 닿은 순간 발생된 의식의 전이. 카를은 두어 차례 눈을 깜빡이다가 에멘탈에게 간신히 대답했다.
“잘 지냈어?”
“잘 지냈다!”
에멘탈의 목소리는 밝았다. 고양이는 꼬리를 흔들며 대답했다.
“에멘탈이 모르는 지식이 많았다! 새로운 지식을 얻는 과정은 즐겁다! 주인이 없어서 아쉬웠다!”
“나도 보고 싶었어.”
“앗.”
에멘탈은 아스텔의 품에서 탁 뛰어올라 카를의 품에 안겼다. 그의 어깨에 올라간 고양이는 원래부터 그곳이 자신의 자리였다는 것처럼 편한 자세로 앉았다.
아스텔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벌써 열쇠를 다 찾았구나.”
“…..예.”
“마지막 열쇠를 찾기 직전이라서 내가 왔어. 알려주고 싶은 게 있었거든. 괜찮지? 시간은 많으니까.”
카를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직후 주위가 사념 세계에 위치한 ‘무덤’으로 변화했다.
“오. 반갑다.”
두 번째로 그를 맞이한 것은 칼렉이었다. 자신이 스승으로 삼고자 한 칼렉은 아니지만, 이제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사람.
세 번째는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냉기를 흘리면서도 부드럽게 웃고 있는 키 큰 여인. 서리 거인 사르시아였다.
“너한테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열쇠와 관련된 사람이야.”
아스텔이 카를의 팔을 잡아 끌었다. 이젠 이 곳의 구조도 어느 정도 눈에 익어서 어디로 가는지 알 것 같았다. 멜릭이 관리하는 관측실이었다.
그 관측실로 향하는 계단. 그 끝에 누군가 서 있었다.
황제의 의복. 그것과 색 조합은 같으나 이제는 볼 수 없는 구식 의복. 초상화에나 나오는 복색을 한 여인이었다.
“어떻게 인사를 해야할지 모르겠네.”
카를은 그녀를 알고 있었다. 다만 쑥스러워하는 얼굴은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본 것은 평온하게 잠든 얼굴 뿐이었다.
“그냥, 아스텔의 말을 빌려서…”
제국을 건국한 강철의 여인.
“안녕? 여행자?”
아카시아가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