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238
238화 잿더미 속에서 (3)
당신들이 다루는 힘은 폭력에 불과합니다.
완력이든 무력이든 아니면 권능이든. 어떠한 단어로 불리더라도 폭력이라는 궤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저는 다만 바라니.
제 품에서 서로에게 행하는 모든 폭력을 종식시켜주십시오.
이렇게 바라고 있으니.
* * *
“너를 노리는 적은 전쟁의 신은 부하들…그러니까 발키리들이야.”
“천사들.”
“맞아. 응. 우리는 그게 천사인 줄 알았어. 하얀 날개를 나풀대면서 날아다니는 아리따운 여인들…그들이 타고난 전쟁꾼들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지. 그리고 나는…부끄러게도 얼마 전에 알았어. 나는, 발키리들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전하기 전에 죽었으니까.”
다시금 아카시아는 숨을 가쁘게 내쉬며 말을 쏟아붇기 시작했다.
“그래서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사실 잘 몰라…딱 하나 확실한 건 그 발키리들이 황금 가지를 찾고 전쟁의 신으로 하여금 시간을 극복할 수 있게 하려는 것뿐…아, 이, 이건 이미 한 말이구나. 미안, 미안해. 내가 원래도 이랬거든. 그래서 사람들이 별로 안좋아했어…”
“아닙니다. 폐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이것이 아카시아의 본래 모습이 아님은 카를이 알고 있다. 쉽게 불안에 빠지고 말이 많은 것. 거짓 없이 사실만을 써놓은 역사서에선 드러나지 않는 모습이다.
하페마나이스에게 영혼을 강탈 당하면서 남은 후유증이 분명했다.
그를 알고 한 말이었으나 아카시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냐. 내가 이래서 카이렌이 항상 연설문을 써줬는걸. 내가 촌뜨기라 필기체를 잘 못 읽으니까 정자체로 또박또박 써줬어. 내가, 응, 말을. 생각없이 하는 편이라…”
그에 이어지는 또 한 번의 자학. 아스텔은 입술을 짓씹으며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아카시아? 잠깐 내 얼굴 좀 봐줄래? 잠깐이연 돼.”
“아, 응?”
“진정해 아카시아. 내가 말했잖아. 카이렌은 돌아올 거야. 잠깐 머리 식히고 있자. 괜찮지?”
“아, 응.”
“사르시아? 부탁할게.”
아스텔의 말에 아카시아의 뒤에서 나타난 사르시아가 그녀를 폭, 하고 품에 안았다. 서리 거인. 아카시아보다 키가 1.5배는 더 큰 탓에 아카시아는 그녀의 품에 쏙 들어갔다.
짐짓 당황한 것처럼 보이지만 곧 아카시아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서리 거인들은 사람을 진정시킬 수 있거든. 알지? 사나운 거인이랑…온화한 거인이 있다는 거? 사르시아는 온화한 쪽이야.”
그들은 자신의 기운을 사방에 퍼뜨릴 수 있다. 겨울의 신의 사도들. 거인들이 겨울의 기운을 퍼뜨리기 시작하면 한여름밤도 냉혹한 겨울의 밤이 된다.
아마 그 능력의 응용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카를을 향해 아스텔이 손짓했다.
“잠깐 이리 와줄래? 카를로스? 너한테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예.”
“카이렌, 아니. 칼리테에 대한 거야.”
그녀는 관측실 내부의 한 망원경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카를은 그 망원경의 접안점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또 내가 너한테 하는 부탁이기도 해.”
과거가 눈앞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 * *
타스타로스 평원은 불타고 있다. 제국군 4연대. 네시안 레지엘이 이끄는 병사들과 ‘죽지 않는 것’들의 신의 권속들이 서로 부딪혔다. 승패는 분간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필요한 싸움이었다.
죽지 않는 것들은 멈추지 않는다. 어처구니없게도 그들은 애매하게 죽여놓아야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경계에서 멈춰선다.
넓고 광활했던 평원은 불탔고 비옥했던 농지는 죽음의 땅이 되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투만 이어지는 전쟁. 그 ‘전쟁’은 그런 전쟁이었다.
“…과거.”
혼잣말을 내뱉음으로서 자기자신의 존재를 자각한다.
눈앞의 광경은 과거의 것이었다.
매캐하기 짝이 없는 냄새에 섞여서 불어오는 바람. 카를은 생생한 후각을 신기해하며 바닥을 손으로 쓸었다.
그대로 바닥을 통과하는 손.
감촉은 느껴지지만 자신이 간섭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연극에 참여할 수 없는 관객이 된 듯 했다.
“아스텔은 뭘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게 말한 걸까. 그 말을 중얼거린 순간 카를의 눈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 무리의 가장 앞에서 걷는 사람과 바로 뒤따라 걷는 둘은 특히나 더 잘보였다.
“네시안은? 설마…”
“시신은 없었습니다. 남기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아닌 듯 합니다.”
“다른 곳으로 갔겠구나. 다행이야. 네시안은 항상 판단이 빠르니까…살아남았겠지. 적들은?”
“살아남은 개체는 없습니다. 네시안의 군대는 강건하니까요. 대신 탈리아가 저격에 실패했다고…저것들을 이끄는 신을 죽이진 못했습니다.”
눈은 그대로인채 아카시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웃음이 아니라 차마 대놓고 아쉬워하지 못해 짓는 표정이었다.
잠시 뒤, 다행이라는 듯 아카시아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저지하는데 성공해서 다행이야. 저격은 아쉽지만…괜찮아. 기회는 또 있을 테니까.”
“네시안을 믿고 타스타로스를 맡기신 게 아니었습니까.”
“맞아. 확실히 그래. 그런데…”
“폐하께서 폐하 자신을 믿지 못하신 것인지요.”
“부끄럽지만…응, 맞아. 우리가 적들보다 뛰어난 건 서로에 대한 믿음 뿐인데…”
무덤에서 보았던 터지기 직전의 불안정했던 아카시아의 모습과는 달랐다. 완전했던 시절의 아카시아. 그녀는 아주 다른 사람이었다.
불안감이 묻어 나오는 표정 자체는 비슷하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현재의 그녀는 얼이 빠진 듯한 모습이었으나 과거의 그녀는 미세한 흔들림이 전부였다.
“폐하께서 그렇게 스스로를 깎아내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껏 폐하 덕분에 저희는 여기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그리 말하며 아카시아를 위로하는 이는 자신이 아는 누군가를 닮아 있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 아카시아의 가장 가까이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있었으니까.
카이렌 펠하임이 그곳에 있었다.
“우선은 돌아가자. 네시안이 미리 돌아와 있을지도 몰라. 다른 적이 나타날 수도 있고. 전사자들의 뒤처리는…”
“수습하고 모아서 화장해야 할 듯 합니다.”
“응. 부탁할게.”
죽지 않는 것들의 권속에게 죽었다연 언제든 ‘죽지 않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시신을 땅에 묻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그걸 몰랐다면 애초에 지금까지 전쟁은 이어지지 못했으리라.
“항상 고마워. 카이렌.”
“아닙니다. 폐하.”
그리고.
“저는 언제나 폐하를 위해 움직이겠습니다.”
아카시아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곳을 떠났다.
여전히 불타고 있는 타스타로스 평원에서 카이렌은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하지만 카를이 서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그 눈동자에 비치는 건 없다. 카를은 그곳을 관측하고 있을 뿐, 일테지만.
“어떻게 네가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괜찮다면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자신은 현실에 아무런 개입도 할 수 없다. 그를 증명하기 위해 카를은 땅에 비스듬히 박힌 깃발을 향해 손을 휘저었고, 그대로 통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개의치 않는다는 듯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카이렌이 말했다.
“네가 아는 나는 마법과 동떨어져 있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야. 칼렉만큼은 아니어도 웬만큼은 다룰 수 있어. 아는 마법을 내게 가르쳐줬으면 하는데.”
“어떤 마법을.”
“트라크를 죽일만한 것.”
―그오오오오!
“이 전장에서 아카시아 폐하는 트라크에게 살해당하셨다. 아마도 네가 아는 것처럼, 혼을 빼앗기셨지.”
“…..”
“이번엔 다르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그러니까 내게 방법을 알려줘.”
“내가 썼던 방법은 안 될 거야.”
저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진동.
카를은 언젠가 제도를 뒤흔들었던 그 괴물의 모습을 떠올렸다.
곧 나타날 괴물은, 그 괴물보다 수십 배는 강할 것이었다.
사람에게는 각각의 성격이 있듯 각각 어울리는 마법이 있다. 카를이 트라크를 죽였던, 정령술에 가까운 방식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너만의 방식이라면 가능해.”
“어떤.”
“너는 아카시아 폐하를 잃었을 때 어떤 생각을 했지?”
핏줄이 불거졌다.
“어떤, 생각이라니.”
“슬픔. 분노. 원망. 그런 것들.”
“나는.”
과거, 사관은 카이렌 펠하임을 이렇게 기록했다.
더욱 더 날카로워졌다고.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이 흐를수록 더더욱 날이 섰다고. 그렇게 벼려낸 날을 적들을 향해 겨누었노라고.
“아무 생각이 안들었다.”
깰 수 없는 잠에 빠진 아카시아의 몫을 수행하려는 듯 카이렌은 더더욱 유능해졌다고.
그가 사실상의 황제였고 재상이었노라고.
“처음으로 든 생각은 아마도.”
기계적으로, 그리고 완벽하게 변한 카이렌은 전쟁을 이끌었고.
전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패를 결정짓지 못한 채 끝을 맞이했다.
“이대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700년간 그의 삶을 이어온 원동력이었고.
죽었음에도 죽음을 거부하는 이유였다.
“그걸 마음에 담아.”
“…대체, 어떻게.”
“마법은 심상의 발현이야. 그걸 네 마법의 뼈대로 삼아.”
목소리가 희미해질 정도로 땅이 크게 울렸다.
본능적으로 말을 남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는 깨달았다.
“방식은 중요하지 않아. 불이든 얼음이든 다 똑같지. 중요한 건 불이 어떻게 타오르냐고 얼음이 어떤 모양을 하느냐야. 그래야.”
약화되지 않은 하페마나이스. 놈이 부리는 거수. 카이렌이 놈을 죽이려면, 기적이 필요했다.
하지만 칼리테는 스스로 기적을 만들었다. 700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렀다. 아카시아를 되살렸다. 그가 품은 심상은 기적을 만들 수 있었다.
“이대로 끝낼 수 없다고 후회하지 않을 거다.”
* * *
의식이 회귀했다. 카를은 망원경을 들여다보던 자세에서 고개를 들었다.
시간은, 아마도 흐르지 않았다. 자신이 바라보았던 것이 과거이기 때문이리라.
“아스텔.”
“응.”
“킬리테는…과거를 바꾸고 있는 겁니까?”
“맞아.”
아스텔이 작게 고개를 주억였다.
“수많은 시간의 가지들. 무수한 가능성들…그 속에서 모든 시간을 바꿔놓으려고 하고 있어.”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 입니까?”
“카이렌은 뛰어나지만 그건 불가능해. 전쟁의 결과를 바꿀 순 없을 거야. 대신…”
그녀는 여전히 사르시아에게 안겨 있는 아카시아를 슬쩍 바라보았다. 방긋 미소 지어 보인 뒤 다시 고개를 돌린 그녀가 말했다.
“아카시아는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 거야.”
“아카시아 폐하를 위해…”
사소했다.
아카시아는 되살아나지 못한다. 부활은 없다. 그녀는 여전히 무덤에 있다.
칼리테는 단지 아카시아가 무덤 속에서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아카시아가 절망의 신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과거를 모조리 바꾼다면 아카시아는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그렇기에 카를, 네가 반드시 시간을 극복해야해.”
그것이 아스텔이 아까 말했던 그 부탁이리라.
“지금 당장 시간을 극복한 인간은 카이렌 뿐이니까, 분명 전쟁의 신은 카이렌을 노리고 있을 거야.”
“칼리테가 목적을 완수할 수 있도록…”
“네가 그 신과 천사들의 이목을 끌어줘. 카이렌이 스스로의 손으로 만들어낸 가능성의 끝에 도달했으면 해.”
“네. 아스텔. 그렇게 하지요. 대신 저도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게 어떤 걸까?”
과거에 있었던 지독한 전쟁.
그 전쟁을 이끌었던 인간과, 인간이 되고 싶었던 신.
멈춘 심장을, 그것이 뛰던 시절로 되돌림으로서 죽음을 극복했던 신.
다만.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하진 못하고.
연인을 구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를 도와달라 말하는, 불완전한 신.
그녀가 인간이 된 까닭에 불완전해진 걸까, 아니면.
“아마도 당신은 처음부터 불완전했을 테지요.”
“…..”
“당신은 어떤 개념에서 비롯된 신인지…그리고.”
카를은 자신의 추측을 조심스레 꺼내놓았다.
“제가 당신에게서 시작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