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24
24화 탑주 (1)
[메인 퀘스트 달성 : 황제의 승인!] [보상 : 특성 포인트+15]카를은 고개를 들어 황제의 표정을 살폈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 일이 이렇게 풀려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그녀의 행동에 사사건건 딴지를 걸며 견제를 해대는 대신들이 이번엔 입을 다물고 있어서였다.
“짐은 게이트가 있는 방으로 가서 직접 탑주들을 맞이하겠다.”
“폐, 폐하. 그렇게 하시면 황실의 위엄이….”
“그대가 입을 닥치고 있으면 짐의 위엄이 살아날 것이다.”
황제는 대신을 향해 일갈하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옥좌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자신을 따라붙는 궁녀와 환관들에게 손을 저어 뒤로 물린 뒤, 카를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카를로스 크로우. 짐을 따라오도록.”
“예. 폐하.”
이번에는 대신들의 입에서 크로우 공작은 폐하께서 대마법사들을 접견하는 장소엔 가선 안 되나이다, 따위의 소리가 나왔으나 황제는 그들의 말을 묵살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들은 정확히 카를이 고개를 틀어 알현실 내부를 한 번 슥 둘러본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한심한 것들.”
알현실의 문이 닫혔다.
고요한 복도에는 늘어선 경비병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저것들은 짐은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카를로스 그대는 두려워하는구나.”
“……아닙니다. 폐하.”
“아니긴 뭐가 아닌가. 짐을 물어뜯으려 대놓고 이빨을 드러내는 놈들이 그대가 옆에 있으니 감추기 급급한 것이 보이지 않느냐.”
황제가 증오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씹어 뱉어 냈다.
쯧. 한 번 혀를 찬 그녀는 황궁의 복도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카를을 향해 말했다.
“카를로스.”
“예. 폐하.”
“그대만은 짐의 적이 되지 않기를 바라지.”
“…실망을 안겨 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믿겠다.”
두 사람이 걸어서 도달한 곳은 워프 게이트가 설치된 방에 도착했다.
그 방의 문 앞에서 경계를 서던 병사는 황제의 얼굴을 보자마자 경례를 올리며 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녀는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짐의 역할은 다 한 것 같군. 탑주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그대의 몫이야.”
“감사드립니다. 폐하.”
“행운을 빌겠네. 공작.”
카를은 황제를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뚜벅― 뚜벅―
복도를 걷는 그녀의 발소리가 멀어져서 들리지 않게 될 때까지,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다.’
이제 남은 일은 탑주들을 설득하는 것뿐.
카를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크로우 가문의 저택에 있는 워프 게이트는 유사시를 대비한 일종의 비밀 통로였으나, 황궁에 설치 된 워프 게이트는 그 용도가 달랐다.
저택에 설치된 워프 게이트처럼 비밀 통로로 쓰이는 것이 있었고, 오늘처럼 황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을 급하게 불러올 때 쓰이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후자에 해당하는 워프 게이트가 설치된 방은 회의실로 쓰이기도 했다.
“다들 조용히 하시게. 폐하께서 오신 것 같군.”
방 안에 들어온 카를의 인기척을 느낀 누군가가 말했다.
게임에 등장하는 대마법사 중 한 명으로, 카를의 기억 속에 있는 목소리였다.
“…다들, 처음 뵙겠습니다.”
다섯 명의 탑주들이 둘러앉은 원탁.
카를은 그 앞에 서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시아나를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의 탑주들은 의문 섞인 시선으로 카를을 바라보았다.
“이보게. 황제 폐하의 탑주 소집령을 받고 왔건만, 폐하는 어디에 계신가?”
“황제 폐하께서는 이 자리에 오지 않으실 겁니다.”
“허? 어째서?”
“여러분을 이 자리에 모은 것은 저이기 때문입니다.”
탑주들의 눈에 의구심이 깃들었다. 개중에는 짜증으로 미간을 일그러뜨린 자도 있었다.
“여러분을 이 자리에 모은 저는 크로우 가문의 당주이자, 북부 마탑에 속한 마법사인 카를로스 크로우입니다. 감히 폐하께 탑주 여러분의 소집을 요청드렸습니다.”
“하. 잠시만, 잘 이해가 안돼서 그러는데 내가 듣기로는 일개 마법사 나부랭이가 우리를 불러 모았다는 것 같은데, 맞나?”
서부의 마탑을 관리하는 탑주가 물었다.
다섯 명의 탑주들 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자. 아마 오늘 카를이 꺼내 놓을 이야기를 들으면 기함을 할 것이다.
“마법사 나부랭이라뇨…카를은 거의 저만큼….”
“임시 탑주. 그대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니 입 다물고 있게.”
“……네.”
서부 마탑주의 말에 시아나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둘 다 탑주라지만 시아나는 아직 대마법사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임시 탑주였다.
다른 탑주들이 입을 다물라고 하면 잠자코 입을 다물어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예. 탑주님의 말씀대로, 일개 마법사 나부랭이가 소집을 요청했습니다.”
“하, 참 나. 어이가 없군. 황제 폐하의 소집령인 줄 알고 왔건만 이게 무슨…! 나는 돌아가겠네!”
서부 마탑주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러자 그의 반대편에 앉아 있었던 동부 마탑주가 말했다.
“저놈은 빼고 이야기하지. 실력만큼이나 인내심도 모자란 놈이거든.”
“하…? 이 영감탱이가 드디어 노망이 났나?”
“내 말이 틀렸으면 일단 앉아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도록.”
동부 마탑주의 말에 서부 마탑주는 오만상을 쓰면서 다시 의자에 앉았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수염에, 하얗게 샌 머리카락.
간달프가 떠오르는 외견을 가진 동부 마탑주는 서부 마탑주와 반대로, 가장 자유로운 성향을 지닌 탑주였다.
“폐하께 청원을 올려서까지 우리를 불러 모은 이유가 무엇인가?”
“제가 계획하고 있는 일에, 탑주 여러분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그게 무슨 일이기에? 폐하께서 우리를 소집하실 만큼 가치 있는 일인가?”
“제 영지에 새로 지어지고 있는 아카데미로 북부 마탑을 옮기고자 합니다.”
“옮기다니? 탑을?”
“예. 정확히는 탑은 그대로 두되, 탑에 속한 마법사들이 아카데미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쾅!
서부 마탑주의 팔이 원탁을 강하게 내리쳤다.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미친 소리였군! 마탑을 옮겨? 그것도 아카데미로?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이네!”
“…자네의 의견에는 동의한다만, 목소리를 좀 낮추게. 시끄러우니.”
서부 마탑주의 옆에 앉아 있었던 중앙 마탑주가 말했다.
서부 마탑주 만큼은 아니지만, 그 또한 보수적인 자로 카를의 의견에 반대할 것이 명백한 자였다.
“나는 이유를 들어 보고 싶은데, 왜 멀쩡한 마탑을 옮기려고 하는 건가?”
“새로 아카데미에 입학할 학생들을 가르칠 이들이 필요합니다.”
“호오… 근데 그건 마탑에서 해도 되는 일이 아닌가? 새로 입학할 학생이 몇 명 정도 길래 그러나?”
“적으면 오백 명, 많으면 칠백 명입니다.”
동부 마탑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백에서 칠백이라. 확실히 마탑에서 그들을 다 가르치기는 어렵겠군.”
“예. 그래서 마탑을 옮기고자 합니다.”
“일리가 있는….”
“일리가 있기는 무슨! 버러지만도 못한 나부랭이들을 가르친답시고 신성한 탑을 버리고 간다고?!”
서부 마탑주가 목소리를 높였다.
손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에 튄 침을 닦은 중앙 마탑주도 입을 열었다.
“나도 동감일세. 오백에서 칠백은 수가 너무 많아. 그중 9할 9푼은 서부 마탑주 말대로 고작 해야 싱글일 테지.”
싱글.
동시에 하나의 마법만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를 그렇게 불렀다.
게임 내에선 기본 유닛 중 하나인 1티어 마법사 유닛이었다.
“고작해야 싱글이 한계인 마법사들을 위해 더블이나 트리플 혹은 그 이상에 도달할 수 있는 마탑의 마법사들의 시간을 뺏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야.”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허어… 자네도 마탑에 속한 마법사라면 알 테지. 열 명의 싱글이 한 명의 더블보다 못하고, 열 명의 더블이 한 명의 트리플보다 못하다는 것은 이미 자명한 이치일세.”
“그 말씀이 옳습니다. 다중 연계 마법을 제외한다면 말이지요.”
카를의 말을 들은 서부 마탑주는 기가 찬 나머지 폭소를 터뜨렸다.
다중 연계 마법을 제외한다면?
그 말은 수백 명의 유사 마법사 나부랭이들이 다중 연계 마법을 사용하게 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와… 내 살다 살다 이런 헛소리는 또 처음 들어 보는군. 다중 연계 마법이 우스워 보이나?”
여러 개의 마법을 구성하는 술식을 하나로 묶어 발동시키는 마법. 그것이 다중 연계 마법이다.
한 번의 발동으로 여러 마법을 펼칠 수 있으니, 다중 연계 마법을 다룰 수 있는 마법사는 싱글이나 더블 따위로 분류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동시에 펼칠 수 있는 마법의 개수로 실력과 강함을 논한다.
이유는 단순했다. 다중 연계 마법을 다룰 수 있는 마법사가 극히 적기 때문이었다.
“여러 개의 술식을 하나의 술식으로 덧대어 합치려면 얼마나 많은 계산이 필요한지 알고 있나? 술식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정교한 계산을 할 수 있는 자만이 다중 연계 마법을 다룰 수 있어!”
“탑주님이 관리하시는 서부 마탑에서는 그럴 겁니다. 하지만 북부 마탑에서는 아닙니다.”
“뭐라? 내가 틀렸다는 말이냐?”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방식의 차이일 뿐입니다. 서부 마탑에서는 마법을 술식으로 보고 계산해서 사용합니다. 하지만 북부 마탑에서는 마법을 언어로 보고 시로 지어서 사용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계속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 주는 것이 탑주들의 이해를 이끌어 내기 쉬울 것이다.
카를은 탑주들을 슥 둘러보았다. 지금까지 일언반구 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던 남부 마탑주의 앞에 놓인 물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실례합니다. 탑주님, 잠시 물을 빌려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감사합니다.”
카를은 팔에 끼고 있었던 마력을 감지하는 팔찌를 벗어 버렸다. 어차피 황제는 돌아갔으니 벗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이윽고 카를은 물통의 뚜껑을 열어, 그 안의 내용물을 테이블 위로 쏟아 버렸다.
“흠?”
그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보고 있었던 동부 마탑주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러나 테이블은 물에 젖지 않았다. 카를이 내뱉은 나직한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흐르던 것은 멈추고.”
물통에서 쏟아지던 물줄기가 그 한마디에 얼어붙은 것처럼 공중에서 멈추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중앙 마탑주의 표정이 조금씩 바뀌어 갔다.
‘얼린 게 아니군… 염동인가.’
그의 주력 마법은 염동이었다. 허나 그는 주로 지팡이의 마력석을 활용한 매개 마법으로서 염동을 사용한다.
시어 마법을 통해 발동하는 염동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나의 뜻대로 변화하니.”
줄기를 이루었던 물들이 이번엔 방울이 되어 흩어졌다.
새벽에 맺어지는 이슬보다도 훨씬 작은 크기. 물방울이라기보단 물기라는 말이 어울렸다.
그 물방울들을 통제하는 마력의 흐름을 읽어 낸 중앙 마탑주가 속으로 중얼 거렸다.
‘꽤 정밀한 제어로군.’
마탑의 어지간한 마법사들은 저 제어 능력의 반의반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정밀한 제어조차도 탑주들의 눈에는 어린아이의 재롱에 불과했다.
‘물 같은 다루기 쉬운 원소를 시어 마법으로 염동하는 것이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
당장 자신이 시어 마법을 대충이나마 배워 읊어도 저만큼은 할 수 있었다.
이름이 카를로스 크로우라고 했던가.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자신의 제자들 사이에서도 그의 이름이 몇 번 오르내렸다.
흔치 않은 결계 마법을 연구하는 마법사.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 에르딘 칼렉을 뛰어넘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었다.
‘고작 이게 전부인가….’
에르딘 칼렉을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장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동부 마탑주가 에르딘 칼렉의 제자였다.
동부 마탑주가 하던 이야기 속 에르딘 칼렉은 대마법사 그 이상의 위대한 마법사였다. 동시에, 결코 자만하는 법이 없었다.
‘…쯧.’
시간만 낭비했군.
중앙 마탑주가 그렇게 생각하며 혀를 찬 순간.
“…곧, 하나의 세계가 되리라.”
문장이 끝을 맺고, 마법이 펼쳐졌다.
마력을 머금은 물방울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그것들은 제각각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동그랗고 밝은 구체가 공중에 떠올랐고, 바닥의 한 구석에는 약하게 울렁이는 작은 웅덩이가 생겼다. 그 이외의 공간엔 흙과 모래가 차올랐고, 그 위로 손가락 마디만 한 작은 식물들이 자라나 약한 바람에 흔들거렸다.
“허어.”
동부 마탑주가 수염을 쓰다듬다 말고 감탄에 찬 목소리를 터뜨렸다.
그는 흥미로운 눈으로 방을 한 바퀴 쭉 둘러보았다.
태양. 바다. 대지. 생명. 아주 작은 규모이긴 했지만, 하나의 세계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저보다 여러분들께서 훨씬 더 잘 아실 테지만, 저는 이것 외에 다른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다른 마법을 사용했다면 또 다른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네 명의 탑주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한 줄기였던 것이 여러 갈래로 퍼져 이런 풍경을 만들었다. 그뿐이다.
‘한 방 먹었군.’
왜 이런 장면을 보여 주었을까 생각하던 중앙 마탑주는 쓴웃음을 지었다.
물이라는 하나의 원소를 가지고 불과 흙, 바람과 생명을 만들어 냈다.
이게 다중 연계 마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그가 최소한 동시에 네 가지 마법을 다룰 수 있다고 인정하는 셈이 된다.
최소한 자신들과 같은, 대마법사의 자격을 갖춘 마법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을 아는 서부 마탑주는 자기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래. 실력 하나는 인정하지. 하지만 모순적이지 않나?”
“어떤 것이 모순적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방금 그 시어 마법은 언뜻 보면 투박하지만 단어 하나하나에 딱 알맞은 양의 마력이 담겼어. 어지간한 마법사들은 그렇게 정밀한 마력의 제어를 하지 못해!”
“감사합니다. 서부 마탑주님께 칭찬을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더블조차 되지 못하는 마법사 나부랭이들이 어떻게 네놈이 펼친 것과 같은 다중 연계 마법을 펼칠 수 있겠냐는 말이다!”
“그러니까.”
동부 마탑주는 말없이 카를로스 크로우의 눈을 바라보았다.
오래전, 자신이 스승으로 섬기던 에르딘 칼렉과 비슷한 눈이었다.
“저처럼 할 수 있도록 만들 겁니다.”
그것은 확고한 신념이 깃든 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