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243
243화 잿더미 속에서 (8)
“어라?”
“왜 그러십니까? 카리아 양?”
“아뇨…그냥.”
어쩐지 위화감이 느껴진다. 데자뷔일까. 아니,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위화감이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위화감에 몸을 찌르르 떤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가 사용하는 무장, 크로우 가문의 에스커천이자 아티팩트인 방패였다.
“으.”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감각. 그에 카리아가 어깨를 잔뜩 움츠리자 아담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방패 조각을 탁 쳐내곤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음. 지금 그게 어설픈 속임수가 아니라면 상당히 성장하신 겁니다. 집중이 흐트러질 법한 상황에서도 조작이 상당히 정확합니다.”
“…어, 속임수는 아닌데요.”
그를 증명하듯 카리아는 일제히 방패 조각들을 조작하고 있는 염동 마법의 사용을 중단했다. 그녀는 팔에 돋는 소름을 손으로 쓸어내려 진정시키고는 아담을 향해 말했다.
“뭔가 이상해요. 있으면 안 될 게 있는 것 같은…느낌이에요.”
“있으면 안 된다고 하심은?”
“……어, 밤에 잠을 깨서 화장실을 가려고 촛대를 켰는데 방바닥에서 기어다니는 바퀴벌레 소리를 들었을 때 같은 느낌일까요?”
“음.”
꺼림칙하고 혐오스럽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아담은 이해했다는 의미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카리아 양.”
“네?”
“제가 크로우 경에게 당신의 교육을 부탁받으면서 들은 말이 하나 있습니다.”
처음엔 거절하려 했다. 아무래도 자신은 선생이라는 것에 어울리지 않으니. 다만,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만이라도 같이 있어 달라는 은빛 거미의 부탁을 들은 나머지 카를로스 크로우의 부탁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어…어떤 건가요?”
“카리아 양 당신은, 세계의 사랑을 받는다는 겁니다.”
“네?”
“뭐, 작게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조금도 다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서…크게는 죽을 수도 있는 공격이 급소를 피해 가는 것 따위가 있겠지요. 그런 겁니다. 카리아 양.”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아마 지금 느끼고 있는 위화감은.”
아담이 중간에 말을 멈추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하늘이 바다고 구름이 배라면, 하늘에 뜬 탁한 색의 구름들은 모두 돛을 펼친 배처럼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구름이 순식간에 시야를 벗어나는 기이한 광경. 그는 언젠가 그런 광경을 본 적 있었다.
자그마한 새끼용이 자신을 선택한다고 하였을 때. 그 용의 뒤로 수많은 용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 그때, 하늘이 이러하였다.
“백색용들은 공간을 다룹니다. 성체 용들은 날개를 직접 펄럭이지 않고 자신이 속한 ‘공간’ 자체를 움직입니다.”
“그러면 구름이 저렇게 움직인다는 건….”
“예. 저 하늘에서 백색용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겁니다. 그것도, 최소 수십은 되겠군요.”
백색용이 한꺼번에 움직이고 있다. 또 다른 승천자를 택하려는 것일까?
아니, 아닐 것이다. 아담 자신을 ‘선택’할 때보다 훨씬 거대한 움직임이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백색용들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카리아 양 당신을 사랑하는 ‘세계’가 느끼고 있는 위화감일 겁니다.”
“어…네? 그렇게 되나요?”
“왕이 없는 백색용들이 저렇게 움직인다는 건 명백한 목표가 있는 까닭입니다. 즉, 세계가 용들에게 명령한 것이지요.”
움직여야 하노라고.
아마 그 이유는….
“카리아 양, 신에 대해서 아십니까?”
“…….”
아담의 물음에 카리아는 흠칫 몸을 떨며 입을 다물었다. 안다. 알고는 있다. 언젠가 ‘아스텔’이란 이름을 가진 여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카리아에게 말해주었으니까.
다만, 그 이야기를 해도 될지는 모르겠다. 카리아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신이 강림하려는 모양입니다.”
“그러면…뭘, 해야 할까요?”
“저는 용의 선택을 받은 몸입니다. 아쉽게도, 용과 함께 움직여야 하지요.”
“아….”
“하지만 카리아 양은 아닙니다. 카리아 양에게는 분명히 선택권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건 스스로 정하시면 됩니다.”
“제가…스스로.”
“예.”
스릉.
검귀가 검을 뽑아들었다.
그의 시선은 카리아를 넘어, 그녀의 뒤편에 있는 어느 인영을 향했다.
그 인영은 천사의 것을 닮은 날개를 가지고 있었고, 갑옷을 입은 채 창을 들고 있었다.
“어떤 선택을 내려도 그 선택이 옳을 것입니다. 그러니 스스로를 믿으시면 됩니다.”
“저를….”
“예. 뒤는 부탁하겠습니다. 카리아 양.”
아담에게 개인 교습을 받은 지도 벌써 몇 달이나 되었다. 대부분 그 형태는 대련이었지만, 성장이 빠른 카리아에게 대련이라는 실전 경험은 그녀를 몇 단계나 성장 시켰다.
그렇기에, 판단은 빨랐다.
‘만약 그 사람에게 들은 대로 신이 강림하는 거라면….’
아담이 질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힐끗 본 천사의 모습을 한 존재는 아담보다 한참 못한 기량을 가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자신이 아담을 도와봐야 아무 의미가 없으니,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 옳다.
‘…다른 사람한테 도와달라고 하는 게 맞아. 그러면, 누구한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사장, 카를로스 크로우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자리를 비웠다. 아카데미에 나오지 않은지 꽤 되었다.
그렇다면 아카데미의 교장이자 탑주인 시아나에게? 아니, 이것도 아니다. 카리아가 들은 ‘신’은 마탑 하나로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아주 강한 힘을 가진 존재. 세계에 위화감을 일으키고 용들을 움직이게 하는 존재. 그것이 신이라는 사실을 피부로 깨달았다.
그러면 그 신에 대항하려면 뭐가 필요할까.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 그건….
“아.”
카리아가 알기로 딱 한 명이 있었다.
그녀는 곧장 아카데미로 향했다.
그 한 명을 만나기 위해서는 굉장히 먼 거리를 가야 했으니, 시아나의 도움이 절실했다.
* * *
“흐음.”
대륙의 패권을 쥔 강대한 국가. 제국.
황실의 핏줄이 가지는 아데나라는 성씨를 따와 아데나 제국이라고도 불리는 제국의 심장, 황궁에서 황제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대가 카리아 프라헨이로고.”
“엇…저, 저를 아세요…? 아! 어, 그게, 그러니까…저를 아시옵니….”
“어차피 예법이라곤 조금도 모르는 듯한데 집어치우거라. 마침 짐은 그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 넵.”
“대신 묻는 말에는 확실히 대답하거라. 그대가 카리아 프라헨인가.”
“네! 제, 제가 카리아 프라헨입니다!”
“호오.”
헬레나는 눈을 둥글게 떴다. 자신이 가진 ‘기억’에 있는, 이 세계가 시나리오대로 흘러간다면 제국의 영웅이 되었어야 할 소녀.
정사대로였다면 진작에 자신에게 대장군의 칭호를 받았을 테지만 지금 눈앞의 소녀는 어디까지나 아카데미에 다니는 학생에 불과했다.
“여러 번 너의 이름을 들었는데 이리 만나는 건 처음이구나.”
“제, 제 이름을요…?”
“그래.”
비록 이번에 그녀의 이름을 들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말이다.
그 사실에 황제가 저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자 카리아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황제는 잠시 그렇게 웃다가 물었다.
“어쨌든, 제국의 황제인 짐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더냐. 그것도….”
넓은 알현실에는 헬레나와 카리아를 제외하고도 한 명이 더 있었다.
시아나. 대마법사이자 마탑주인 그녀가 가만히 카리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짐을 알현할 수 있는 탑주에게 부탁까지 해서 말이다.”
잠시 머뭇거리던 카리아는 곧장 결론을 꺼내놓았다.
“신이 강림하려고 해요.”
“…신이라.”
“그게, 그,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신이에요! 역사서에 나와 있는 신이요! 그러니까….”
“전쟁의 신. 그대가 말하는 것이 그 신이냐.”
“네! 버, 벌써….”
“벌써 사도들이 강림하고 있지.”
“아…?”
“용들은 그에 대응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고.”
“그, 그걸 어떻게 전부….”
“그대가 찾아온 이유는 짐에게 강림을 알리고 대응을 요구하려는 것이렷다.”
마치 속을 들여다보고 하는 듯 한 말에 카리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는 카리아를 바라보며 황제가 말했다.
“하지만 짐을 찾아오는 것은 틀렸다. 전쟁의 신에게 전쟁으로 맞서는 것은 멍청한 짓이야.”
“아…! 그, 그런데 그러면 어떻게…?”
“이미 방법을 알고 움직이고 있는 자가 있다. 짐에게 경고하려 한 것은, 기특하지만 무용한 일이 되었구나.”
카리아의 입에서 안도와 탄식이 섞인 한숨이 흘렀다. 그러다가 문득 의문이 섞인 투로 물었다.
“그게 누구인가요…?”
“누구일 것 같으냐. 짐작 가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보거라.”
“어….”
카리아가 한참 동안 머뭇거리기만 하자 헬레나는 피식 웃었다. 썩 만족스러워 보이는 웃음에 카리아의 표정에 의문이 떠올랐다.
“한 번 상상해보겠느냐.”
“네?”
“어떤 사람이 전쟁의 신을 막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모름지기 대마법사라면 네 개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신을 막을 수 있을 만한 자는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하는지, 한 번 말해보거라.”
“으음….”
카를로스 크로우가 가진 ‘시나리오’에 대한 기억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이 시나리오를 공략해내지는 못했으나, 헬레나에겐 기어코 강림하고 말 마지막 신을 공략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필요한 것은 열쇠, 그리고 자격.
‘열쇠는 갖추었지. 자격도 거의 다 갖추었어….’
신의 강림은 자격을 갖출수록 앞당겨진다. 강림의 전조가 대륙 곳곳에서 나타나는 지금, 이미 카를로스 크로우는 자격을 거의 다 갖춘 것이리라.
하지만 아직은 미완성이다. 자격은 완벽히 충족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아이의 말 한 마디면 가능하겠지.’
카리아 프라헨이라는 소녀는 그 자체로 세계의 사랑을 받는다. 저 소녀의 말 한 마디가 곧 세계가 요구하는 ‘자격’의 인정이다.
“자격…이라면.”
“그래.”
“저는, 포기하지 않는 거요.”
“포기하지 않음이라. 단순한 끈기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구나. 평범하게 끈기가 있는 자는 많으니 말이다. ”
“으음….”
눈썹을 모은 채 고민을 이어가던 카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
“견딜 수 없을 것 같아도 그걸 견디고 다시 일어서는 거.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호오.”
아마 자전적인 이야기이리라. 카리아 프라헨이라는 소녀가 어떤 상황에 처했었는지는 헬레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대, 짐에게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 물어도 되겠는가.”
“네? 어, 아…! 아, 네!”
잠깐 정신줄을 놓았다가 자신이 이야기 하고 있는 상대가 황제라는 사실을 떠올린 카리아가 놀란 얼굴로 고개를 열렬히 끄덕였다.
그 어리숙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황제는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그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게 하는 것은 무엇이더냐.”
“…….”
“절망해 쓰러지더라도 무언가가 너를 다시 일어서게 하지 않았을 것이냐. 그게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다.”
“저는….”
한참을 고민하던 어린 영웅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냥,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대가 말이냐. 오직 그대만이?”
“네. 저만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아무리 힘들어도 제가 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으니까….”
그들은 죽음을 통해 운명을 고쳤다.
눈앞의 소녀 또한 죽음을 겪으며 제 스스로의 운명을 극복했다.
“고귀하군.”
“……어, 네?”
“그대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라도 그대가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그 정신이 고귀하다 말한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게 하는 고귀한 이상. 그것이 그대가 생각하는 자격이렸다.”
“네…!”
“다행스럽게도, 정확히 그 자격에 부합하는 자가 움직이고 있구나.”
이로써 자격은 충족되었겠지.
이 소녀가 몇 마디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자격은 갖추어 질 테니.
그래, 그대여. 지금 내가 무어라 말하든 내 말을 듣지는 못하겠지만 잘 듣거라.
잘하고 있다.
이 어린 소녀는 여전히 그대가 심어준 고귀한 이상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그대여, 그대 역시 믿음을 잃지 말거라.
* * *
너는 대체 누구냐.
카를은 그렇게 묻고 싶었다. 눈을 밝게 빛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소년인지 소녀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작은 아이.
자신을 이런 기이한 상황에 처하게 만든 존재가 저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드는 의문이 있었다.
그런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
힘겹게 입을 열자 목소리가 흐른다.
아, 아. 성대를 울리며 입술 밖으로 나오는 목소리는 분명 자신의 것이었다.
잃지 않았다. 아카시아가 충고한 대로, ‘나’라는 존재는 이곳에 확고하게 존재한다.
“……넌.”
그렇기에 묻는다. 반짝이는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확고한 질문을 던진다.
“넌, 뭐지?”
“…….”
대답이 없다. 여유가 생긴 사고는 추측을 시작했다. 성배. 그리고 성배가 요구하는 자격. 그리고 자신의 현실은 단 하나라는 말.
성배는 이 세계 자체의 힘이고, 눈앞의 소년은 그 힘에 대한 자격을 요구했다. 그리고 수많은, 하지만 카를의 것은 아닌 ‘현실’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이 세계 그 자체에 가까운 것.
그리고 소년은 그를 부정하지 않았다.
“아마도 당신들이 세계라고 부르는 것의 의지?”
물음표가 달려 있는 말. 아마도라고 표현하는 것조차 보니, 제 존재에 대한 확신도 없는 듯 했다.
그것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당신의 자격을 시험하는 존재.”
“……시험. 지금까지 보여준 것들이 전부 다?”
“아직 두 개 남았어.”
천진난만한 얼굴로 그것이 웃었다. 까르르, 해맑게 웃으며 소녀가 말했다.
“그리고 남은 하나는, 이거야.”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방에서 빛 알갱이들이ㅁ 모여들어 글자를 이루었다.
반투명한 푸른 빛. 카를 자신이 ‘상태창’이라 불렀던 것을 닮아 있었다.
[퀘스트 : 자격의 증명] [질문에 답하시오.]간단한 설명으로 이루어진 퀘스트.
카를은 그것을 읽은 후, 소녀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 뭔지 제게 들려줘요.”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
“단, 추상적이어선 아니 되어요. 당신이 겪지 않은 것도 아니 되어요. 당신이 아는 것, 겪은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걸 들려줘요.”
“너는.”
곰곰이 고민하던 카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나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것이고 나도 너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야.”
“책의 구절인가요? 확실히 아름답네요. 그러면 왜 그 문장을….”
“그 책을, 나는 내 연인과 함께 읽었어.”
무감하게 목소리를 내던 소녀가 입을 다물었다.
“온화한 하늘 아래였어. 오랜만에 여유가 생긴 날이기도 했지. 사실 여유를 가져도 되나 싶긴 했어. 그때, 내가 있었던 곳은 신이니 용이니 하는 것들 때문에 난장판이 되어 있었거든.”
“어….”
“하지만 사후 처리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어. 내 연인은 그렇지 않았지만…직접 나서기 어려운 입장이었어. 그래서 잠시 둘이서 집에만 있기로 했지.”
소년이 눈을 연거푸 깜빡였다.
“그때 그 책을 읽었어. 나는 원래 책 읽는 걸 좋아했고…그 사람도 그랬거든. 그 사람의 저택에는 책이 많았거든. 그래서 같이 책을 읽었지. 정원에 있는 작은 분수 옆의 벤치에 앉아서…서로 한 장씩 소리 내서 읽었어.”
“…….”
“그때 내가 내는 목소리에 집중하던 모습이…그리고 낭랑하게 울리던 내 연인의 목소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해.”
침묵이 흘렀다.
카를은 대답을 기다리며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고, 소녀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사람은 같은 사람을 가장 아름답게 여기는 건가요. 그러면, 마지막 질문을 해도 될까요?”
“응. 어떤 질문이길래?”
“당신에 관한 질문.”
세계가 말했다.
“그걸, 당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 사람에게 물어 볼 거에요.”
“그래.”
카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