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uke is so good at magic RAW novel - Chapter 247
247화 찬탈자
“…어라라.”
아나스타시아의 고개가 갸웃, 하고 기울여졌다.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진 기적을 직접 보았음에도 믿기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녀의 손에서 발동된 염동 마법이 정원에 있는 작은 사과 나무로부터 사과를 따내었다.
아삭. 사과를 깨문 그녀의 표정이 살짝 찡그려졌다. 관상용 사과나무인 까닭에 맛은 좋지 못했다.
“진짜 되네요.”
마법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은 있다. 이제는 마법을 사용할 때의 감각도 알고 있다. 자칫하면 트라우마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짙게 남은 기억이기에.
그렇기에 시험 삼아 해보았다. 마침 세계 최고의 마법사가 옆에 있었으니까.
“…..”
“왜 그렇게 놀라요?”
남들이 본다면 무표정이라 할 얼굴. 눈동자가 아주 약간 커졌을 뿐이지만, 그녀만은 알아볼 수 있었다.
“…완벽해서.”
“네?”
“마법의 구성, 마력의 조절 뭐 그런 것들 말이야. 아나스타시아 방금 네가 보여준 마법은…웬만한 마법사보다 뛰어났어.”
자신이 트리플 캐스터, 삼중술사가 된 직후의 자신보다 지금 아나스타시아가 뛰어나다.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어도 초심자가 이만큼 완벽하게 마법을 다루는 건 불가능했다.
카를이 아는, 최고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그의 스승도 어릴 땐 저렇게 하지 못했으니까.
“그럼 카를 당신은요?”
“나?”
“제가 그 정도라면 당신은 더 완벽해지지 않았을까요?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는데, 시험해보시는 거 어때요?”
“…그런가.”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생각한 카를은 몸에서 마력을 끌어올리고, 가볍게 간단한 마법을 영창했다.
많이 써왔고, 스스로도 자신 있는 빙결계열 마법을 무영창으로 가볍게 사용했다.
마법의 발현. 그 직후 카를의 눈이 살짝 크게 뜨이고, 아나스타시아가 숨을 집어 삼켰다.
지금까지 발현되던 투박한 형태의 얼음창이 아니었다. 정교하게 조각된,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운 창. 수십 개의 창이 정원에 떠올랐다.
“…..”
카를은 가볍게 손을 쥐었다 폈다. 소모된 마력의 양이 심상치 않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적게 소모되었다.
그 약간의 소모가 계기가 되었다. 체내에서 천천히 흐르던 마력이 활성화되었다.
지금이라면,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마도, 봄은 이미 지났겠지.”
문득 흘러나온 그 중얼거림에 아나스타시아가 작게 숨을 삼켰다. 낭랑한 목소리. 그와 함께 느껴지는, 격렬한 마력의 흐름.
“그래도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고 싶어라.”
그의 말마따나, 이미 봄은 지났다. 꽃이 지고 그 자리에 열매가 피어나는 계절이다.
가문의 위세처럼 거대하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펠하임 가의 정원을 차지한 여름.
마법으로 그 여름에 봄을 뒤덮어 계절을 비튼다.
“…..”
여기까진 쉽다. 원래도 가능했다. 바라는 것은 그 이상이다.
자신이 아는 한 가장 완성도 높은 결계 마법. 마법사 한 명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마법.
황궁을 감싸고 있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결계 말이다.
“이곳에 거짓된 봄을 불러들이고, 모방된 여름이 찾아오도록, 가을을 꾸미고 조립된 겨울이 내리도록. 그리하여 계절을 내 손 안에 넣으리.”
카를은 허공에서 손을 휘저었다. 동그란, 구로 만들어진 지도를 돌리는 것처럼. 그러자 손짓에 따라 계절이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다.
황궁에선, 바란다면 어떤 계절이라도 볼 수 있다. 그 마법의 재현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황궁의 계절을 유지하는 마법은 열 두 명의 마법사가 한 해에 수십 개의 마력석을 소모해가며 겨우 유지하는 마법이라는 점이고, 이건 카를이 혼자서 사용한 마법이라는 점일까.
“…흐음.”
카를의 머릿속에서 의문이 떠올랐다. 마법의 규모나 구성만 보아도 단순히 얼음창을 소환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마력이 소모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얼음창을 소환하는 것이나 지금 이 결계를 친 것이나 마력의 소모엔 큰 차이가 없다.
어쩌면…
“안나. 손, 줘볼래?”
“네? 음, 저야 좋지만 갑자기 왜요?”
“확인해볼 게 있어.”
심장. 인간이 가지는 목숨의 증거. 인간이 스스로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더없이 확실한 수단.
그리고 마법사에게 심장은 평범한 인간보다 더욱 의미가 깊다. 마력이 심장에 모이는 까닭이다.
오른손보다는 왼손이 조금 더 심장에 가깝다. 마법사들이 서로 왼손을 맞잡으면, 서로의 마력이 흐르는 것을 그리고 그 마력이 이어진 심장을 느낄 수 있다.
“…..”
이윽고, 부드럽게 아나스타시아의 손목을 잡았다. 새하얗고 얇은 손목. 그 아래에서 조용히 뛰고 있는 맥박. 그것이 요동치는 것은 느껴졌지만, 심장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예상대로였다.
“아, 음. 카를? 그렇게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아무리 저라도 조금 부끄러운데…”
맥박이 조금 더 빨라졌다. 그에, 카를은 아무 말없이 아나스타시아에게 자신의 손목을 쥐어주었다.
놀란듯 살짝 크게 뜨인 눈. 뭐라 말을 하려던 그녀는 이내 입술을 다물고 카를이 그랬던 것처럼 가만히 맥박을 느꼈다.
“안나.”
“네?”
“맥박말고, 심장이 느껴져?”
자신의 손으로 맥박을 재면 심장을 느끼는 건 불가능하다. 맥박보다 가슴 속에서 뛰는 심장 박동이 더 크게 느껴지기에. 그래서 그녀에게 부탁했다.
“으음…”
오늘 처음으로 마법을 사용해본 그녀에겐 어려운 일이리라. 하지만 카를은 믿었다. 그녀는 그만큼 현명했으니까. 곧 그녀가 입을 열었다.
“맥박 말고 심장이라면…그러면, 심장이 느껴지는 거 맞죠?”
“…응, 그럴 거야.”
“그럼, 안느껴지는 것 같아요.”
아나스타시아가 말했다. 살짝 떨리지만, 확신이 담겨 있는 목소리다. 그녀는 곧 카를의 가슴 위로 손을 뻗었다.
멀쩡히, 그리고 강하게 뛰는 심장.
아나스타시아는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멀쩡하게 뛰는 심장이.”
“…그렇구나.”
확신이 생겼다.
자신의 몸에 깃든 힘이 무엇인지, 지금의 자신이 어떻게 된 건지 모든게 이해가 된다.
“잠시만 기다려줘. 안나. 다녀올 곳이 생겼어.”
“네. 그런데 그거 알아요? 카를?”
“어떤?”
“당신이 어디 있든 제가 당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거요.”
입가에서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어서 다녀와요. 걱정하지 말고.”
* * *
이 세계에 숨겨진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현실이라 불리는 이곳과 허상 세계라 불리는 곳을 잇는 통로.
시아나만큼 공간 마법의 숙련도가 높지 못하면 허상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를 열기는커녕, 허상 세계의 존재조차 알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왜인지 알 것 같다. 허상 세계로 향하는 길을 ‘가고 싶다’라고 생각했을 뿐인데, 길이 열린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이곳까지 올 수 있도록 인도해주었던 소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스텔. 그녀를 만나고 싶다고 소원했을 때, 도저히 해답이 떠오르지 않는 문제가 있을 땐 그녀가 먼저 자신을 찾아왔다.
다만 생각을 가지는 것만으로 현실에 닿는 것.
어쩌면 그녀의 그런 권능은 지금 자신이 가진 것과 비슷한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에.”
허상 세계에 발을 들인 순간 느껴지는 여러 기척들. 카를을 향해 명확히 적의를 가진 것도 있었고, 피하는 것도 있었다.
개중에는 카를에게 선의를 가지고 먼저 다가오는 기척도 있었다.
“여긴 무슨 일이야, 찬탈자?”
혓바닥을 낼름 거리는 자그마한 백색용. 불과 몇 시간 전, 제룡에 버금가는 위엄을 내뿜었던 존재가 지금은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다가왔다.
“까마귀에 여행자. 이제는 찬탈자라니. 내 별명이 언제 이렇게 많아졌는지.”
“헤에, 그러면 성배를 찬탈한 너를 찬탈자 대신 뭐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그냥, 이름으로 부를까?”
“찬탈이라…. 난 성배를 찬탈한 적 없는데 말이야.”
“그건, 동의해. 맞아. 너는 성배를 찬탈한 적 없지. 성배를 가지기에 마땅한 자격을 갖추었을 뿐이니까. 지금까지 찬탈자가 너무 많았고, 자격을 갖춘 이는 없었어. 마땅한 명칭을 모르겠네.”
용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몸집이 작은 탓에 귀엽게까지 보이는 행동. 직전에 보았던 하늘꿈의 모습과 너무나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카를을 향해 용이 물었다.
“그래서, 여긴 무슨 볼일로 온 거야?”
“중요한 이야기인가보지? 계속 물어보는 걸 보면.”
“헤에, 역시 눈치가 빠르구나. 맞아. 너는 이제 이 세계와 너의 세계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을만한 힘을 가지고 있거든. 그래서야.”
헤에, 하고 하늘꿈이 혀를 날름거렸다.
“하지만 네가 그럴 거라면 애초에 자격을 얻지도 못했을 거야. 이게, 내가 맡은 역할이기에 너한테 물어볼 뿐.”
“…네가 맡은 역할.”
증명의 수행을 맡았다.
하늘꿈의 그 선언은 카를 역시 똑똑히 들었다. 그토록 현명한 용들이 태어난지 고작 백 년도 되지 않은 새끼용에게 그런 임무를 맡겼을 리 없다.
애초에, 하늘꿈의 탄생과 존재하는 목적이 그 역할 때문이리라.
제룡의 죽음과 함께 완성되는 성배. 자격을 갖춘 이에게 그 성배를 인도하는 것.
그것을 깨달은 카를이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그런 거였군. 애초부터….”
자신이 친 결계에 갇힌 작은 새끼용. 그로 인해 성사된 만남. 애초에 그것부터가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우연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그 용들은 미래를 본다. 이 미래 역시 보았고, 제룡의 죽음을 대비해 하늘꿈이라는 존재를 안배한 것이다.
존재 자체가 ‘제룡의 죽음’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존재. 그 까닭에 자아가 미숙한 상태에서도 검귀를 승천자로 삼은 것이리라.
만약, 카를이라는 변수가 없었다면 검귀, 혹은 카리아가 그의 위치에 있었을 테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카를을 향해 동그래진 눈으로 되물었다.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어.”
아무 이유 없이 허상 세계를 방문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열어낸 길은 특정한 좌표와 이어져 있다. 절망의 신이 거처로 삼던 곳. 그리고 세계의 힘을 품은 ‘황금 가지’가 자라나 있었던 곳.
이곳에서 아스텔을 만난 이후엔 성배를 가지기 위한 자격을 증명해야했다. 그것이 끝나고 현실로 되돌아온 그는 이곳에 자라나 있었던 황금 가지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
“헤에…그런데, 그건 알고 있지?”
백색용이 혀를 날름거렸다. 타고난 지배종, 포식자의 그것이 연상되었던 그 행동이 이번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그것이 불길하게 혀를 놀렸다.
“성배를 노리는 존재가 있다는 거.”
“…그래.”
쩌저저적!
날카로운 파열음이 고막을 때렸다. 허구와 현실이 뒤섞인 허상 세계에 생긴 균열.
멀쩡한 공간에 균열을 내어 저렇게 가를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얼마 되지 않는다.
눈대중으로도 어마어마한 크기의 균열이 발생했다. 저만한 크기의 균열이 필요한 이유는, 저만한 크기의 격을 가진 존재가 이 세계에 넘어오려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존재는 투구를 쓰고 검과 방패를 들고 있었다.
“네가 ‘공작 까마귀’인가.”
투구 속에서 한 쌍의 눈이 별빛처럼 반짝였다. 인간과 비슷한 크기의 몸집. 인간과 비슷한 목소리. 얼핏보면 인간처럼 보이는 그것은 어마어마한 격을 숨기지 않고 내뿜고 있었다.
크르르-
용들이 그것을 경계하여 낮게 으르렁대었다. 용이라는 고상한 종족이 사나운 본성을 드러낼 만큼 위협적인 존재였다.
“…..나를 아나?”
“물론이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옆에서 용들이 으르렁대고 허상 세계의 괴물들이 울부짖어도 그것은 오롯이 카를만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천천히, 검을 들어 카를을 겨누었다.
“영원의 기사.”
“…?”
“그것이 나의 진명(眞名)이다. 공작 까마귀.”
카를이 한 번도 듣지 못한 진명. 아마도 그가 알지 못할, 유일한 신의 진명.
‘전쟁’의 말에 카를이 답했다.
“카를로스 크로우 그게, 내 이름이다.”
“예의를 아는 전사로군. 그래, 카를로스 크로우. 그대에게 감사를 표한다.”
전쟁의 신은 담담했다. 검을 겨누고는 있었으나 살의는 없었다. 그의 검은 화살표처럼 기능하고 있었다. 자신이 카를을 마주하고 있다는 의미인듯 했다.
그의 검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카를로스 크로우, 왜 이곳에 온 것이지?”
“…네가 바라마지 않는 그 성배를 내가 쥐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거든.”
“재미있는 도발이군. 그래, 이곳에서 나와 결판을 내기 위함은 아닐 테지.”
허상 세계는 인간이 아닌, 불멸하는 것들이 사는 세상이다. 카를이 인간 이상의 무언가가 되긴 하였으나 그들만큼 허상 세계에서 익숙하진 못했다.
만약 전쟁의 신과 이곳에서 싸우게 된다면, 카를은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건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었으나.
“너에게 하나 제안을 하마, 카를로스 크로우.”
“어떤 것이지?”
“나는 나의 방식대로, 너는 너의 방식대로 싸우는 것을 제안한다.”
그런 자명한 사실에도 불과하고 신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네가 가진 성배를 찬탈하기 위해 너의 세계를 공격할 것이다.”
이제까지 그러했고.
“너는 나를 막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러할 방법으로.
“나를 막아보아라. 공작 까마귀.”
영원의 기사, 전쟁의 신이 선언했다.
신의 눈동자는 찬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굳게.
그의 말에 어떤 속임수도, 거짓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카를은 무심코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
마찬가지로 더없이 올곧은 목소리로 카를이 대답했다.
“그래. 각자의 방식으로 싸워보자.”